언스플래쉬
죄책감에 시달려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 사람을 도와야 하는 것일까요?”
A는 착한 사람이었다. 기본적으로 그랬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을 줄 그녀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다. 알고 지내는 후배가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 억울하고 분통이 터질 만한 상황이었다. 착한 사람 A도 사는 게 만만치 않은 상태였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다. 한 사건의 피해자인 후배를 도와 경찰서도 가고, 변호사도 만났다. 그게 정의로운 일이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추호도 망설이지 않았다. 일이 장기화되고 꼬이면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가해자가 만만한 A를 찾아와 협박하고, 후배와 그 가족은 더 확실히 도와달라고 읍소를 했다. 가운데 낀 A는 어찌할 바를 모를 상황이 되어 버렸다. 지금 여기서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고, 선한 의지가 승리한다고 믿는 A는 끝까지 도와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어느 순간부터 그 고민이 더 괴로운 일이 되어버렸다.
여기에 나는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상상해 보았다.
호숫가를 산책하다가 물에 빠진 사람을 보게 되었다. 이때 어떻게 해야 할까? 당장 물에 뛰어들어야 하는 것 아닐까? 물론 맞는 말이고 그게 일 번 옵션이 되어야 한다.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내 수영 실력에 대한 현실적 판단을 하는 것이다. 내가 수상구조원 자격증이 있는 수준의 수영능력을 갖고 있다면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저 물에 혼자 떠있는 것도 겨우 하는 정도라면? 자칫 뛰어들었다가 물에 빠진 사람이나, 자신 모두 매우 위험한 상황에 빠질 가능성이 더 높다. 차라리 빨리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던질만한 물건을 찾아보는 것이 낫다. 그렇게 한다고 ‘내가 뛰어들었어야 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려서는 안 된다.
이런 비유적 생각을 해본다면 A의 다음 대책은 무엇이 되어야 할지 어느 정도는 명확해질 것이다. 안타깝게도 더 많은 사람들은 ‘했어야 한다’, ‘그때 그걸 선택할 걸’, ‘그가 나를 미워하게 되었다’는 과거의 선택, 관계의 어려움 때문에, 또 현실적 타협을 이상적 가치로 자기 비판하면서 아파하고 괴로워한다. 그냥 버티는 것으로도 많은 힘이 드는 이 어려운 세상에 제 풀에 지쳐 무너질 지경에 이를 수 도 있다.
내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지
유대 랍비가 말했다. “내가 나 자신을 위하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위하겠는가”
우리는 나 자신을 먼저 위해야만 하지만 A와 같이 근본이 착한 사람들은 나와 남 사이의 적정선을 정의로움과 당위성이란 더 큰 명제 때문에 지키지 못하면서 개인의 본질이 흔들리기 일쑤다. 이럴 때 나의 현재를 잘 평가하고, 마음가짐을 적정수준으로 다잡기 위한 방법을 연마할 줄 아는 것은 꼭 필요하다. 이때 도움이 되는 책이 독일의 심리학자 호르스트 코넨이 쓴 『나에게 정중할 것』(와이즈베리)이다. 저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지나치게 가혹하고, 너무 함부로 대한다고 걱정한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자신을 사랑하고, 더 나아가 자신을 지키는 기술을 갖춰야만 한다고, 그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갈수록 필수요소가 되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마치 늦은 밤 혼자 귀가하는 여성을 위해 호신술이 필요하듯, 현대인들에게는 나를 지킬 마음의 호신술을 익힐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과거에 연연해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는 주는 것, 일상사의 스트레스로 짜증이 넘칠 때, 관계에서 유독 힘들게 하는 사람을 만날 때, 나쁜 생각과 충동이 떠올라서 괴로울 때와 같이 힘든 상황을 분류한 후 각각을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나에게 정중할 것』의 장점은 복잡하고 어려운 분석과 이론적 설명보다 간단하게 평가한 후에 꽤 구체적인 해결방법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과거의 관계와 선택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에게는 “있는 그대로의 내가 좋다”는 긍정적 자기암시를 하는 것으로 벗어나게 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과거보다는 삶의 목표를 찾고, 주머니에 콩을 주워서 넣듯 매일 작지만 소중한 긍정적 기억들을 수집하라고 조언한다. 삶의 스트레스의 중압감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는 무엇보다 나 자신에 대한 요구수준을 낮춘다. 즉, “내가 욕망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남과 지나친 비교를 하려는 조바심을 억제해야 한다. 내가 정한 삶의 목표와 전혀 맞지 않는 사람을 욕망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면 아무리 비교를 해도 내게 만족은 오지 않는다. 이때는 내 욕구 자체를 수정해야 한다. 그건 실현하기 어려운 욕망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가장 먼저 점검해야 할 것으로 제시하는 것은 ‘내가 살아가는데 가장 가치를 두는 것은 무엇인지, 내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지’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야 한다.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내 가치관을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욕망에 휩싸여 나를 잃어버릴 위험에 빠진다. 결국 나를 지키는 것도 자신이고, 나를 파괴할 가장 위험한 적도 내 욕망인 것이다.
저자는 지치고 힘이 들어서 마음이 너덜너덜 해질 때 나를 지키기 위해 ‘섬’을 만들어 그 안에서 쉬라고 조언한다. 먼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를 찾아서 나를 어린아이처럼 대하면서 하루의 스트레스를 푼다. 소파에 누워서 좋아하는 스포츠 경기를 보면서 흥분해도 좋고, 음악을 듣는 것도 좋다. 일 주일에 한 두 번 혼자서 울어보는 것도 억지로 참고 견디는 것보다 낫다. 울음은 스트레스와 부담을 덜어내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다. 나만의 별난 버릇도 도움이 된다. 혼자 산책하면서 노래 부르기, 인형과 얘기하기, 큰 소리로 음악을 틀고 드라이브를 하기와 같이 독특한 나만의 짜증해소법을 갖는 것이다. 그게 나를 현실에서 한 걸음 떨어뜨려 놓고 안전하게 만들어주고, 스트레스를 분출해준다.
이 책은 깊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 않지만 상당히 구체적으로 생활에 바로 적용해볼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미 다른 많은 책이나 심리이론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 일수도 있지만, 그러기에 더욱 실용적이라 생각한다. 인간은 참 변하기 어렵지만, 상황이 오면 변할 수 있고, 나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믿고 기다리고 상황의 불확실성을 두려워하기보다 즐기려는 자세를 갖고 서핑을 타듯이 삶을 만들어가라고 조언하고 있다. 그게 나를 지키고 소중히 여기면서 매일 조금씩 더 행복해지는 길이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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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정중할 것한희진 역 | 와이즈베리
이 책은 자기 자신을 외부 조건이나 힘에 이리저리 튀는 고무공이 아니라, 자기중심을 지니고 외부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변화 적응력’을 기르도록 다양한 심리 트레이닝법을 제공한다.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