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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돌보는 남자들

지금 생각해도 미스터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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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내 주변에 실존하는 “잘 돌보는 남자들”의 사례들을 몇 가지 기록해보려고 했다. 실제로 여자보다 더 주도적으로 가사와 육아를 책임지는 남성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글이 써지지 않았다. (2017.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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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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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식상한 현실에 대한 식상한 이야기를 좀 짚어보겠다. 남편이 임금 노동자(wage-earner)로서 가족을 부양하고, 아내가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도맡아하는 전통적인 핵가족 모델이 무너진 오늘날, 여성들은 일을 통해 자아를 실현할 기회를 누리게 되었다기보다 두 배의 역할과 책임을 짊어지게 된 측면이 크다.(물론 그렇다고 이전이 나았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여느 해와 다름없는 2016년의 통계에 의하면 맞벌이 부부가 각기 집안일을 하는 시간은 남성이 하루 평균 40분, 여성이 하루 평균 3시간 14분이다. 흥미롭게도 외벌이 가정의 남성이 가사 및 육아를 담당하는 시간은 49분이고, OECD 평균 남성의 가사 및 육아 담당 시간은 2시간 19분이라고 한다.

 

왜 남성들은 여성들만큼 가사와 육아를 담당하지 않는가? 우선 구조적인 문제로 남성과 여성 간의 임금차별 문제를 꼽을 수 있겠다.(몇 가지 숫자를 짚어보자면, 2016년 기준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52.1%, 남성의 참가율은 73.9%이다. 2015년 기준 여성노동자들은 남성노동자 임금의 평균 63.8%를 받고 있어 OECD 국가 중 성별임극격차가 가장 크다. 또 중위 2/3 미만 저임금 일자리에 취업해 있는 여성노동자 비율이 45%로 남성의 3배 정도 높다) 그리고 더 근본적인 문제로는 여성에게 가사와 육아의 책임을 더 무겁게 지우는 문화와 관습의 문제, 즉 성 역할에 대한 고정정인 인식의 문제 등을 꼽을 수 있겠다. 논문이나 신문, 잡지 등의 공식적인 매체에서 언급할 수 있는 이유들은 체로 이런 것들이다.

 

그런데 차원이 달라지면(구조적인 차원에서 개인적인 차원으로) 같은 상황도 조금 다르게 지각된다. 주변에서 일-육아를 병행하는 여성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보면 이들은 “내가 더 잘해서”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남편보다 부인이 더 높은 수준의 임금을 받는 경우에도 아이의 양육과 교육에 관한 문제를 부인이 거의 전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관습적인 요인, 문화적인 요인, 이념적인 요인을 모두 고려하더라도, 여성들이 압도적으로 잘한다는 관찰이나 증언이 많다. 생물학적으로 그런가, 문화적으로 그런가, 본질적으로 그런가, 역사적으로 그런가를 따져볼 수 있겠지만 일단 현상적으로 그런 경향이 나타난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런 현실을 우리는 우선 오롯이(지겨워도 반복적으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동시에 한없이 느린 그 속도에도 불구하고 변화와 예외는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볼 필요도 있다. 가령 육아휴직 사용자는 역시 2016년 기준 출생아 100명당 여성이 16.3명 남성은 0.0명이지만, 100명당 0명이라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다. 2015년 기준 전체 육아휴직자 중 남성 비율은 5.6%에 해당한다. 자, 이제 이 16.3명 중 5.6%에 해당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물론 육아를 핑계로 휴직을 한 후 다른 목적으로 사용한 사람들도 포함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없는 것이 아닌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집중해보자는 것이다.

 

원래는 내 주변에 실존하는 “잘 돌보는 남자들”의 사례들을 몇 가지 기록해보려고 했다. 실제로 여자보다 더 주도적으로 가사와 육아를 책임지는 남성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글이 써지지 않았다. 나 역시 그 식상한 현실 안에서 하루하루 겨우 살아가고 있는 개인이다 보니, 너그럽고 객관적인 관점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솔직히 말하자면, 보이는 대로 믿어도 되는 것인지 끝없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좀더 내 그릇에 맞고 내가 내키는 쪽으로 주제를 바꾸었다. 나를 잘 돌봐주었던 남자들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보기로 한 것이다. 나를 돌봐준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을 뒤져서 두 명의 남성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사실 이런 저런 측면에서 나를 괴롭혔던 남자들에 대한 기억이 압도적이어서, 그 모든 남자들의 틈바구니에서 이 두 명의 존재를 떠올린 것은 거의 기적으로 느껴졌다. (어떤 의미에서 돌봄, 남자들의 돌봄에 대해 큰 영감을 주는) 이런 존재들에 대한 구체적인 기억, 생생한 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이런 경험을 더 많이 떠올리고 더 많이 공유하고 더 많이 유통시키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 주변의 서사들 속에, 나아가 현실 속에 잘 돌보는 남자들이 활동할 여지를 더 많이 만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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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2. 

한 명은 1980년대 초반 내가 초등학교 2학년쯤 되었을 무렵 우리 동네에 살던 대학생으로 추정되었던 분이다. 편의상 ‘정다운 씨’로 부르겠다. 정다운 씨는 탤런트를 닮은 반듯한 외모에 다정한 목소리를 지닌 분이었다. 이분은 틈이 나면 나와 우리 오빠, 그리고 나보다 한 살이 더 많은 이웃집 언니 이렇게 셋을 잘 돌봐주었다. 우리끼리 동네 놀이터에 놀고 있다가 정다운 씨가 지나가는 모습이 보이면 우리는 목청껏 그 이름을 불러댔다. 정다운 씨는 우리가 부르면 거의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와주었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진짜로 재미있다는 듯이 같이 이야기하고 놀아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다운 씨가 우리와 조금 더 큰 스케일로 놀아주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는 이런 저런 논의 끝에 꽤 먼 곳에 있어서 아이들끼리 갈 수 없는 수영장에 가보기로 했다. 우리가 진짜 이런 것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다니! 머리끝까지 신이 났다. 각자 집에서 가서 수영복과 준비물을 챙겨서 다시 만나기로 했는데, 나는 수영복이 없었다. 실은 입장료도 없었다. 그래서 다시 모인 우리는 또 한 번 심각하게 작전회의를 했고 일단은 있는 돈을 다 그러모아서(주로 정다운 씨 돈에 이웃집 언니의 용돈을 조금 보탰던 것 같다) 교통비를 하고 입장료를 내고도 얼마가 남으니 그걸로 수영장에서 수영복을 빌리거나 살 수 있을지 알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수영장에 갔고, 거기서 제일 싼 수영복을 하나 사고, 잘 놀았다.

 

지금 생각해도 미스터리하다. 20대 청년이 돈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아니고, 불우한 환경의 아이들에게 봉사활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 동네 꼬마들과 왜 그렇게 즐겁게 놀아준다는 것인가! 아니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이분이 우리와 함께 이야기할 때의 그 예의바르고 반듯한 말투이다. 우리가 꽤나 버르장머리 없이 굴었을 텐데도, 이분은 화 한 번 내지 않고 온화한 말투와 표정으로 우리를 잘 구슬렸다. 강요나 강압 없이 아이들 사이의 갈등도 놀라울 정도로 매끄럽게 중재했다. 이렇게 민주적이고 재미있는 동네 어른은 거의 처음이었던 것 같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수영장에 다녀온 날 이후로 정다운 씨는 우리와 멀어졌다. 당시에는 아이들이 방과 후에 동네 친구들과 알아서 어울려 놀다가 저녁 먹을 시간쯤 알아서 귀가를 하곤 했는데, 그날은 멀리 놀러갔다 오느라 귀가가 평소보다 많이 늦어졌던 것이다. 우리를 찾아다니니다가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된 엄마가 그분에게 항의를 하셨던 것 같다. 엄마는 그분의 존재 자체를 그날에서야 알게 되셨는데, 엄마로서도 이해가 잘 안 되었던 것 같다. 다른 숨겨진 의도가 있는 것 아닌가? 무슨 의도인가? 그래서 엄마는 정다운 씨에게 앞으로 주의해달라고 한 것 같고, 정다운 씨는 마음이 상한 것 같았다. 그다음부터는 우리가 아무리 불러도 멀리서 보일 듯 말 듯 인사만 하고 집으로 바로 들어가버렸다. 낯선 동네 아이들에게 베푼 호의 때문에 오해를 산 경험이 이분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어렴풋이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도 같은데, 아이들을 많이 낳고 잘 길렀을까? 정말로 궁금하다.

 

 

3.
다음으로는 외할머니댁 근처의 방범초소에서 근무하며, 나와 오빠, 그리고 우리 외사촌들을 잘 돌보아주었던 의경(?)이 떠오른다. 우리가 어떻게, 왜 방범초소에서 놀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몇 살 때인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역시 9~10살 무렵이었던 것 같고, 할머니댁에서 반찬 같은 것을 가져다드리는 심부름을 하다가 눌러앉게 된 것 같다. 그런데 그 초소의 막내인 듯한 의경 아저씨 한 분이 특히 우리와 잘 놀아주었다. 정다운 씨처럼 외모가 훤칠한 것은 아니었으나, 모범생 같은 목소리를 지닌 분이었다. 이 의경 아저씨 때문에 우리는 외할머니댁을 방문하면 곧바로 이 방범초소로 들어가서 살다시피 했다.

 

그때가 겨울철이었던 것 같은데 이분은 우리에게 꿍쳐놓은 간식을 주기도 하고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노래들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이분에게 배운 노래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김민기의 <작은 연못>이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가사의 한 줄 한 줄, 그 의미를 짚어가며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이분이 초소 근무를 마치고 더 이상 나타나지 않게 된 후 우리는 다시 방범초소와 멀어졌다.

 

고 신영복 선생이 꼬마들과 함께 ‘청구회’를 만들었던 마음은 이런 것과는 좀 다른 종류였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선생 역시 아이들의 세계로 들어가는 방법을 잘 아는 소수의 아저씨들 중 한 명이었으리라는 것을 그 글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나는 어린이들의 세계에 들어가는 방법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중요한 것은 ‘첫 대화’를 무사히 마치는 일이다. 대화를 주고받았다는 사실은 서로의 거리를 때에 따라서는 몇 년씩이나 당겨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꼬마들에게 던지는 첫마디는 반드시 대답을 구하는, 그리고 대답이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만일 ‘애, 너 이름이 뭐냐?’라는 첫마디를 던진다면 그들로서는 우선 대답해줄 필요를 느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놀림의 대상이 되었다는 불쾌감으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뱅글뱅글 돌아가기만 할 뿐 결코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반드시 대답을 필요로 하는 질문을, 그리고 어린이들이 가장 예민하게 알아차리는 놀림의 느낌이 전혀 없는 질문을 궁리하여 말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청구회의 추억』 중에서)

 

4.
아마도 우리 딸이 내 나이쯤 되어서 이런 주제로 되돌아본다면 나보다 훨씬 더 풍부한 기억들을 갖게 될 것이다. 그래서 아주 근사한 이야기를 쓸지도 모르겠다. 그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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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희진(인문서 편집자)

6세 여아를 키우는 엄마이자, 인문서를 만드는 편집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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