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문장(노안 이후 비로소 보이는 문장)
그레고르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침대에서 한 흉측스러운 갑충으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카프카 단편집-변신』, 프란츠 카프카, 권혁준 옮김, 29 쪽
1.
10대 때 읽어야 할 추천 도서, 20대 때 읽어야 할 소설, 30대 때 놓치지 말아야 할 자기계발서 등의 카피를 읽다가 문득, 이런 것도 재미있겠다 생각했는데, ‘00대 때, 읽지 말아야 할 책’ 같은 청개구리식 비추천 도서 분류법이다.
그러니까 『데미안』은 10대 때 읽으면, ‘아브락사스’ 운운하며 허세에 쩔 위험이 있으니 19금(禁), 『그리스인 조르바』는 20대 때 읽으면 바닷가에서 춤이나 추는 한량이 될 여지가 있으니 29 금(禁)…
이건 뭐 말도 안되는 막걸리겠지만, 50대 때 읽으면 우울증이 우려되니 권하지 않을 책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프란츠 카프카’의 그 유명한 『변신』을 말할 것이다.
자고 일어났더니 흉측한 벌레로 변해버린 주인공. 그리고 가족의 냉대 속에 버림 받다 죽어간 한 남자의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읽은 기억은 없지만 시험에 나온다니 밑줄 그어 대면서 “어머나, 징그러”, “대박, 말도 안돼” 와 같은 경악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던 것도 기억한다.
그러나 자식들 어느 정도 키워 놓고, 이제는 아이들 눈치 보느라 가재미 눈이 되어가는 50세 즈음이 되어 이 책을 다시 읽게 된다면 경악에의 감정은 비탄과 쓸쓸함으로 변신해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갑충으로 변한 아들 ‘그레고르 장자’가 이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이었다는 사실, 가족들은 이 아들의 고단한 노동 덕에 먹고 살면서도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는 것, 갑충이 돼 버린 아침에 출근을 못하는 그레고르의 문을 두드리며 어떻게든 돈을 벌어오라고 무언의 압력을 가하는 가족들의 뻔뻔한 모습, 더 이상 그레고르가 부양의 역할을 못하게 되자 그를 부담스럽고 수치스런 존재로 대하는 마더 파더 씨스터, 그레고르가 죽자 룰루랄라 소풍 가는 희망찬 그들. 이런 것들이 눈에 쏙쏙 들어오고 가슴에 팍팍 박히면서 내가 그레고르인지 그레고르가 나인지 모를 지경이 되는 것이니, 갑충이 되어버린 그레고르의 초상과 오늘을 사는 50대의 초상이 요모조모 닮았기 때문이다.
2.
후배는 20대 때 미얀마로 갔다. 그곳에서 자리를 잡았고 결혼을 했고 아이 둘을 낳았다. 올해 50세가 되었으니 인생의 절반을 미얀마에서 산 것이다. 그렇지만 자식 교육의 열정은 어쩔 수 없는 대한의 어버이였는지, 작은 아이는 엄마와 함께 태국으로 유학을 보냈고, 큰 아이는 올해 서울의 대학에 입학했다. 후배는 딸의 대학 적응을 위해 미얀마 일을 잠시 접고 한국으로 들어와 작은 월세 아파트를 얻어 딸과 함께 살고 있다.
얼마 전 시내에서 저녁 모임 중에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몇 시간이라도 기다릴 테니 모임 끝나면 자기와 술 한잔 하자고 했다. 경복궁 역 근처의 선술집에서 소주 한 병을 마시고 후배는 말했다.
“형. 내가 고민이 있어. 딸이 요즘 나를 피해. 같이 밥을 먹자고 해도 먹지 않고, 내가 외출을 해야 부엌으로 나와서 먹을 것을 챙겨 먹어. 딸인데 너무 어색해 죽겠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해?”
한국에 오기 전까지 부녀 관계는 따뜻했고 그 동안 특별한 일도 없었는데 대학에 들어간 직후부터 딸이 아빠를 노골적으로 피하더라는 것이다. 자기가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후배는 답답해했다. 택시 안에 취한 몸을 구겨 넣으며 후배가 말했다.
“방학이 돼서 하루 빨리 미얀마로 돌아갔으면 좋겠어. 애 눈치 보며 사는 게 지옥이야.”
딸도 무슨 이유가 있겠지,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좀 더 두고 봐봐, 라는 말을 한마디 해주고 택시 문을 닫아줬다. 마음이 덩달아 싸했다.
3.
애들이 크면서 부모 손을 덜 타니 편해진 것은 좋은데 머리 큰 자식들과 함께 살면서 후배처럼 눈치 볼 일이 점점 많아진다. 애비 말이라면 꿈뻑 죽던 애들이 자기 주장을 똑 소리 나게 드러내고, 자기들 눈에 부모의 모순이 보이면 칼같이 지적한다. 영민해지는 자식과 어눌해지는 부모의 말싸움에서 번번히 지는 것은 부모다. 홧김에 어디서 부모에게 말대답이야, 라고 했다가는 그날부터 쌍방 간 대화는 삼팔선이 그어진다는 것을 알기에 끄응하고 자리를 피할 뿐이다.
세대 간 문화가 다르니 생각하는 것도 점점 틈이 벌어져서, 부모가 생각하기에 옳은 것도 자식은 선뜻 옳다고 하지 않고 부모가 듣기에 도저히 이해되지 못할 상황도 자식은 왜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냐고 답답해 한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하고 싶은 말을 속으로 꾹꾹 누르지만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자꾸 서먹해지고, 뭔가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딱히 무엇를 해야 좋을지 모르겠고, 또 그것을 안다고 해도 가족 내 입김이 약해졌다는 것이 더 우울하다. 상상이 나래를 뻗어가면, 지금도 저리 제 멋대로인데 나이 들어 힘없는 노인 되면 저것들이 나를 거들떠나 볼까 하는 피해의식도 슬그머니 고개를 쳐든다. 우리네 아버지가 누렸던 가부장의 지위를 선망하지 않지만, 아버지로서 좌표 조차 상실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면 외롭고 암울하고 답답하다. 열심히 살았는데, 그레고르처럼 최선을 다해 가족을 부양했는데, 인정받지도 못하면서 외면 받는 듯한 이 기분은, 발설하면 구질구질한 신파가 되는 것 같아 잠꼬대로나 푸념할 뿐이다.
4.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여야 한다네.”
카프카가 그의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밝힌 문학에 대한 견해다.
그 도끼는 우리의 나른한 일상으로 들어와, 드러내고 싶지 않아 뒤집어 쓴 가면을 깨부수고, 몰래 숨어든 회피의 벽면을 부숴대며, 고통스럽게도 인간의 현실을 직면하게 한다.
그 때문에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카프카의 주장에 나는 상당히 동의한다. 그러하기에 글의 말미에 정정하고자 한다. 당신이 중년의 어느 즈음에, 가족들에게 조금씩 소외 당하고, 자신의 말이 점점 먹혀 들지 않아 외로울 때, 그때 봐야 할 책은 바로 『변신』이라고.
가족에게 버림 받는 주인공의 신세를 보며 우울해하든, 어쩌면 자신이 내면의 갑충이 된 것은 아닐까를 성찰하든, 이 불편한 소설 속에서, 불편한 자신을 피하지 않고 바라볼 때, 딸과의 화해든, 또 다른 중년의 행복 찾기든, 인생 제 2막의 해결점을 모색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답답할 때는 도끼로 쨍 하고 그 답답함을 내리 칠 때 답이 나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윤용인(<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저자, 노매드 대표이사)
<딴지일보> 편집장을 거쳐 현재 노매드 힐링트래블 대표를 맡고 있으며, 심리에세이 《어른의 발견》, 《심리학, 남자를 노크하다》, 《사장의 본심》, 《남편의 본심》, 여행서 <<시가 있는 여행> <발리> 등의 책을 썼다. 또한 주요 매체들에 ‘윤용인의 심리 사우나’, ‘아저씨 가라사대’, ‘남편들의 이구동성’ 등 주로 중년 남성들의 심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칼럼을 써 왔다.
ddoksaseyo
2017.06.09
아이들이 크면, 저마다 자신만의 세계로 나가겠죠.
나도 그런 아이었을 테고 말입니다.
우선, 부모님께 전화라도 자주 드려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