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 골목에서 만난 삶
영화감독 김종관이 연출한 「최악의 하루」, 「조금만 더 가까이」 등의 영화에서 심심찮게 등장했던 서촌 일대의 골목들을 이번에는 영상이 아닌 활자로 만난다. 영화에서는 인물들이 주인공이었다면 책에서는 골목이 주인공이다.
글ㆍ사진 김종관
2017.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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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문장이 떠오르고 생각이 논리의 흐름을 타고 커질 때도 있지만, 이야기를 만들고 문장을 구성하는 능력이 내 몸 어디를 뒤적여봐도 흔적도 없이 사라진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컵을 보고 컵 이상이 생각나지 않고 볼펜을 보고 볼펜 이상이 생각나지 않는다. 며칠을 편안하고 멍청하게 산 끝에 그런 위기가 오면 난 편한 운동화를 신고 걸을 곳을 찾는다. 돈과 시간의 여유가 된다면 조금 더 먼 곳을 찾기도 하지만, 아니라도 가까운 곳을 찾아본다.

 

내가 주로 산책하는 곳은 작은 골목들이다. 서울에서 가장 천천히 시간이 흐르지만 그럼에도 조금씩 변해가는 장소들. 가지 않았던 곳과 가보았던 곳 전부. 아는 골목이라 하더라도 계절과 시간을 흘려보내며 조금씩 낯선 모습을 보여준다. 가던 길의 다른 시간과 계절에서, 익숙한 길 옆으로 난 샛길을 발견하는 것으로도 낯선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때문에 산책은 가끔 여행이 된다. 여행은 발견과 자극을 준다. 새로운 자극을 받아들이고 땀을 흘리며 걷노라면 이리저리 흩어졌다 모이는 생각의 흐름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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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산책하는 조용한 골목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성장을 하고, 살고, 늙는다. 골목을 벗어나 큰길로 접어들며 세상을 넓히는 시절로 떠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다시 그 골목으로 돌아와 늙어가는 이들도 있다. 노인들은 어릴 때처럼 자신의 세상을 골목 안으로 축소시킨다. 볕이 드는 자리에 의자를 두고 조용히 앉아 지나가는 산책자를 지켜본다. 노인과 골목을 뒤로하고 산책자인 나는 이 작은 여행에서 더 넓은 항로를 꿈꾼다. 누군가가 성장을 하고, 살고, 늙는 타국 혹은 도시에서 아이와 노인을 만나고 그들을 기억한 채로 나의 골목으로 돌아오는 것을. 가까운 곳에서 낯섦을 찾고 먼 곳에서 익숙함을 찾는 여행을 끝내고 언젠가 내 자리로 돌아온다면 볕이 드는 자리에 책상을 두고 여행에서 가져온 좋은 문장들로 이야기를 만들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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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바이 골목 #서촌 #최악의 하루 #조금만 더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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