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이런 책을 봤어요.”
2015년 11월 3일이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편집자 A가 페이스북 메시지로 사진을 하나 보내왔다. A는 출판사 일을 잠시 그만두고 캐나다와 미국을 여행 중이었다. 사진 속에는 뉴욕의 한 서점에서 발견한 『스노든』이 있었다. 내가 스노든 폭로 사건을 다룬 책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를 낸 적이 있다는 걸 알고는 관련 도서를 제보해준 것이었다.
아마존닷컴에서 도서 정보를 확인했다. 2015년 8월에 출간된 만화였다. 미리보기로 몇 페이지를 넘겨보니 흥미로웠다. 책은 소설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오웰은 가까운 미래에 국가가 국민의 모든 활동을 감시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동원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정부의 무차별 사찰이 폭로된 스노든 게이트는 소설 속 디스토피아가 현실화되었음을 깨닫게 해준 사건이었다. 만화 『스노든』은 이런 중요한 사건을 촉발시킨 인물을 특유의 캐리커처와 함께 재밌게 설명하고 있었다.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오른 적이 있는 저자의 이력도 책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에이전시에 본문 원고를 요청해 좀 더 자세히 검토를 했다. 『스노든』은 사건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사건과 인물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쉽게 구성되어 있었다. 저자 테드 롤은 책에서 ‘도대체 왜 스노든은 내부고발을 했는가?’라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스노든에게 내부고발은 고액 연봉이 보장된 직장과 사랑하는 여자친구, 천국 같은 하와이에서의 삶을 포기한다는 걸 의미했다. 그런 점에서 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화제가 된 고영태나 노영일의 사례와는 달랐다. 상대는 탄핵을 앞둔 대통령의 비선 실세가 아니었다. 재선이 유력한 오바마 정부였다.
스노든은 폭로 뒤 러시아에서 살고 있다. 원래 에콰도르로 가려 했지만 러시아 환승공황에 있는 동안 여권이 말소되자, 어쩔 수 없이 임시 망명을 신청한 것이다. 최근 그런 스노든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트럼프에게 '선물'로 주는 걸 검토 중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새로 취임한 미국 대통령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라는 것이 그 이유다. 트럼프는 대선 후보 시절부터 스노든 '처형'을 공공연하게 밝힌 인물이다. 스노든이 트럼프 손에 넘어가면 어떻게 될까? 공익을 위해 용기 있게 내부고발을 한 스노든의 삶이 완전히 망가질 게 뻔하다.
내가 스노든 시리즈를 출간한 사실을 아는 주변 사람들은 농담으로 그런 일이 벌어지면 책이 대박나는 거 아니냐고 한다. 책 판매가 기대에 못 미치지만 내가 원하는 시나리오는 이렇다. 막말왕 트럼프가 누적된 실정으로 탄핵된 뒤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 그러고는 "스노든은 미국인의 시민적 자유와 헌법적 권리가 얼마나 침해받는지 깨달게 했다"고 평가했던 버니 샌더스 대통령이 스노든을 사면하는 거다. 내가 버니 샌더스를 다룬 만화 『버니』도 낸 적이 있어 이런 말을 하는 건 절대 아니다.
박수민(모던아카이브 대표)
1인 출판사 모던아카이브의 대표. 우리 시대 인물, 사건, 토론이 있는 책을 만든다. 10년 이상 군 생활을 한 뒤 출판번역에 입문했다가 겁도 없이 출판사를 시작했다. 초창기에는 기획, 번역, 편집, 북디자인까지 도맡아하다 차츰 한계를 깨닫고 지금은 많은 부분을 실력 있는 외주자와 함께 책을 만든다. 그 덕분에 책 퀄러티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있다. 기획 출간한 책으로 『사피엔스의 미래』, 『스노든 게이트』, 『스노든』, 『0시 1분 전』 등이 있다.
iuiu22
2017.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