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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이틀 후, 나는 선생님의 말씀을 실행에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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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계획이 상팔자 정신으로 7박 8일 제주도로 떠났다. 가면서 딱 두 가지 목표만 세웠다. 하나는, 『시의 힘』을 소개해준 친구에게 제주도에서 편지를 부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삶의 빈칸을 만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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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오랜 시간 편지를 주고받는 독자님이 한 분 있었다. 과거형인 까닭은 올해 들어 관계가 변화했기 때문이다. ‘친구’라고 편지에 적어주셨으니 이제부터 우린 친구다. 그렇다고 내가 특별히 다른 행동을 할 것 같진 않다. 붙임성 없는 성격이다 보니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여행을 가면 해당 관할 우체국부터 찾아가 기념우표라던가 엽서를 구입해 되는 대로 보내는 정도의 행동만 되풀이할게다. 소설에선 이런 식으로 연락을 주고받다가 알쏭달쏭한 사이가 되기도 한다. 최근 읽은 소설 중 『일곱 가지 이야기』에 그런 경우가 나왔었다. 내 경우와는 거리가 멀다. 지난 5년간 쌓아온 우정은 서정書情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편지 내용 대부분이 책 이야기로만 가득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잊지 못할 책이라면 생일선물로 받은 『시의 힘』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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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주 중2병을 앓는다. 바닥까지 떨어진 기분으로 자아비판을 하다가도 다음 날이면 우주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줄 안다. 최근 카페 홈즈에 들렀다가 나 같은 만화 주인공을 발견했다. 만화 『먹는 존재』 속 주인공이 멘탈 케어를 위해 뱉는 주문(?)이 어찌나 위안이 되던지, 그대로 허리 펴고 앉아 시즌 1 3권을 정독하고 난 직후 『먹는 존재 season 2』가 나왔다는 사실을 알고는 바로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에 담았다. 구매금액 5만원이 넘으면 주는 사은품도 악착같이 챙겨 받을 거다. 이야기가 옆으로 샜다. 책이 관련되면 늘 이렇게 된다.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도 언제나 이런 식. 본래 이야기로 돌아가서, 나는 친구가 챙겨준 『시의 힘』이 마음에 들어 책의 저자 서경식 선생님을 뵙고 싶어졌다.

 

사실 서경식 선생님은 이 책보다 다른 저서들이 훨씬 유명하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비롯해 『고뇌의 원근법』, 『나의 서양음악 순례』, 『나의 조선미술 순례』, 『디아스포라 기행』, 『소년의 눈물』 등등, 수많은 책 중 누구나 “아, 그거!” 할 만한 책이 한 권쯤은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인간 서경식을 일천 퍼센트 알고 싶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시의 힘』이다. 적어도 나는, 『시의 힘』을 읽고 난 후 인간 서경식을 만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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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9일 일요일, 그 때가 왔다. 촉촉이 내리는 겨울비 사이로 나아가 탈영역 우정국에서 선생님을 뵈었다. 5시간의 롱런 강연 ‘예술과 희망’은 다채로웠다. 선생님의 다큐멘터리 영화 <아우슈비츠 증언자는 왜 자살했는가 ? 프리모 레비를 찾아서>를 다 함께 본 후 심층적인 강연이 진행되었다. 『이것이 인간인가』의 프리모 레비와 아우슈비츠 이야기를 비롯한 수많은 의문형의 희망이 떠도는 강연장은 격렬하게 숙연했다. 하지만 뭣보다 마음에 깊이 새겨진 건 마지막 질의응답이었다.

 

누군가 선생님께 물었다. “희망이 없는 헬조선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선문답 같은 이 질문에 선생님은 의문형으로 답했다. “아우슈비츠에 갇힌 인간에게 희망이 있었을까?”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아우슈비츠에서 인간은 사고가 불가능했다.” 선생님은 말을 연이었다. “인간답지 않고 무기력에 익숙해지는 것이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이걸 병리학적으로 풀이한 사람이 바로 프리모 레비였다. 하지만 그 프리모 레비조차 아우슈비츠를 바꾸지 못했다. 우리라면 어땠을까.” 나는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살아남지 못했겠죠.’ 선생님의 말은 계속됐다. “희망은 의문형이다. 왜인 줄 아느냐. 희망이 있다고 쉽게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라. 원한다면 무기력하게 살아도 좋다. 희망이 없더라도 조금이라도 편히, 살아남자.”

 

선생님은 강연 후 연이은 사인회에서 자신의 말을 실천에 옮겼다. “몸이 안 좋아서 사인은 내 이름 중 성 徐만 적을게요.”라고 양해를 구한 것. 나는 사인을 받으며 대꾸하고 싶었다. “선생님, 대충 해주셔도 됩니다. 편히 오래오래 살아주시는 것만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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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후, 나는 선생님의 말씀을 실행에 옮겼다. 무계획이 상팔자 정신으로 7박 8일 제주도로 떠났다. 가면서 딱 두 가지 목표만 세웠다. 하나는, 『시의 힘』을 소개해준 친구에게 제주도에서 편지를 부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삶의 빈칸을 만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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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조영주(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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