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초원과 바람뿐인데
말을 타고 멀리 나가는 남편을 그저 믿고 기다리고 싶다. 식사를 하면서 최소한의 필요한 말로만 소통하고 싶다.
글ㆍ사진 사노 요코
2017.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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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든 것을 필요 이상으로 얻으면서도 좀처럼 만족하지 못한다. 그 대가로 인간은 생물로서의 본질을 잃고 고독해졌다. 그 전에 본질이 무엇인지조차 희미해지고 말았다. 가족 간의 정을 잃고, 자식을 자기 소유물로서 사랑하고, 능력이 아닌 학력으로 많은 월급을 받을 수 있길 기대한다. 그리고 자식은 부모를 버린다.


인간은 동물이다. 동물인 인간은 일단 먹어야 한다. 건강할 때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한 노동을 매일 반복하다가 나이 들면 죽는다.


나는 몽골에 대해 거의 몰랐다. 지도상의 광대한 면적을 보면 그저 아득한 초원만 떠올랐다. 유목민의 이동식 집인 파오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있지만, 조만간 근대화가 유목민들을 소멸시키리라 생각했다. TV에서 본 파오에는 안테나도 세워져 있었다.


몽골 영화를 처음 봤다. <동굴에서 나온 누렁 개>라는 제목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영화를 봐왔고 좋아하는 영화도 몇 편이나 되지만 이만큼 내 마음을 뒤흔든 영화는 없었다. 인간이 이렇게 아름다운 존재인지 이 영화를 보고 처음 알았다. 극영화인지 다큐멘터리인지는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내가 아는 몽골은 초원과 파오와 유목이고, 내가 몰랐던 것은 거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젊은 부부와 어린 세 아이가 있다. 나는 내 아들 외에 다른 아이를 진심으로 귀엽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세 아이는 내 아들 이상으로 귀여웠다. 나는 아이들이 얼마나 귀여울 수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할 수만 있다면 30년 전으로 돌아가 다시 한 번 그 귀여움을 느끼고 싶다. 60년 전으로 돌아가 야무지고 강한 아이로 한번 살아보고 싶다. 젊은 아버지가 말을 타고 바람처럼 달려와 길 잃은 어린 나를 찾아내어 영화처럼 안아주길 바란다. 그리고 40년 전으로 돌아가면, 좀 배웠다고 억지 이론을 늘어놓거나 남녀평등을 외치며 세상 밖으로 나가지 말고, 그저 엄마로서 아내로서 식구를 먹이기 위해 치즈를 만들고, 쇠똥을 태워 고기를 굽고, 또 쇠똥을 갖고 노는 아이를 묵묵히 지켜보고 싶다.


말을 타고 멀리 나가는 남편을 그저 믿고 기다리고 싶다. 식사를 하면서 최소한의 필요한 말로만 소통하고 싶다.


그 광대한 하늘 아래 지평선까지 펼쳐진 초원 위에서 고독 따위 끼어들 틈 없는 농밀한 시간을 살아가는 그들 가족의 모습에 나는 눈물을 쏟고 말았다.


나는 일본의 역사를 살고, 그들도 몽골의 문화와 역사 속에서 살아간다. 근대화는 좋든 싫든 피할 수 없다. 주인공 소녀 난살도 수십 년 후엔 나처럼 말로만 얄팍한 정을 표하는 게으름뱅이가 될까?


 


 

 

문제가 있습니다사노 요코 저/이수미 역 | 샘터
『100만 번 산 고양이』 『사는 게 뭐라고』의 작가 사노 요코가 가장 그녀다운 에세이집으로 돌아왔다. 중국 베이징에서 맞이한 일본 패전의 기억부터 가난했던 미대생 시절, 그리고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을 거쳐 홀로 당당하게 살아온 일생을 그녀 특유의 솔직함으로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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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 #몽골 #동굴에서 나온 누렁 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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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 요코

1938년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전쟁이 끝난 후 일본으로 돌아와 무사시노 미술대학 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 조형대학에서 석판화를 공부했다. 1971년 《염소의 이사》를 펴내며 그림책 작가로 데뷔했다. 주요 그림책으로 《100만 번 산 고양이》 《아저씨의 우산》 《내 모자》 등이 있고, 《사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시즈코 상》 등의 수필을 썼다. 《내 모자》로 고단샤 출판문화상을 수상했고, 수필집 《하나님도 부처님도 없다》로 고바야시 히데오상을 받았다. 2010년,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