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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를 쓴다는 것

흑인 음식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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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서는 백인 남성이 남부에서 음식을 맛보고 평하며, 서점의 요리책 코너에는 백인 여성이 남부 요리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잘 사는 나라의 백인이 만들고 먹을 때 가장 ‘문명의 음식’이 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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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라운드트리Katherine Roundtree, <소울 푸드 만찬(Soul food feast)>

 

영화 <히든 피겨스>에는 흑인 여성 최초로 나사NASA의 엔지니어가 될 메리 잭슨이 교육받을 권리를 얻기 위해 ‘최초의 중요성’을 논리적으로 설명하여 판사를 설득하는 장면이 있다. 막힌 벽을 처음 뚫은 사람은 항상 중요한 역사가 되는 법이다. 최초로 픽션을 쓴 미국 흑인 여성은 누구일까. 현재까지 발견된 기록으로는1858년 『여성 노예의 이야기』를 완성한 한나 크래프츠Hannah Crafts이다. 출판은 2002년이 되어서였다.


대부분 문화는 ‘주인’을 중심으로 기록되기 마련이다.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발언권이 없는 하층민들의 문화사는 당사자가 기록하기 어려워 잘 남지 않는다. 식문화도 ‘주인’을 중심으로 기억한다. 그 많은 작물을 기르고 식재료를 직접 다듬어 주인이 먹을 음식을 만들어내던 과거의 노예들은 뭘 먹고 살았을까. 또한 그들이 ‘먹은’ 음식과 그들이 ‘만든’ 음식은 일치할까.

 

우에하라 요시히로가 여러 나라의 “차별과 빈곤, 박해 속에서 단결해온 이들 사이에 피어난 창조적이고 저항적인 식문화”를 경험하고 쓴 『차별받은 식탁』은 그런 면에서 꽤 신선했다. 만난 적도 없지만 괜히 동지애가 느껴진달까. 우에하라의 책에도 나오지만 프라이드치킨이 주로 흑인 노예들이 먹던 음식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은 이제 많이 알려져 있다.


60년대 중반 이후 민권운동의 일환으로 미국 흑인들의 음식을 ‘소울푸드’로 명명하기 시작했다. 소울푸드는 백인이 먹지 않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도 무언가를 만드는’ 흑인 문화의 대표적인 성격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여기에는 묘한 함정이 있다. 백인 가정에서 요리를 담당했던 흑인 여성들은 유럽과 서아프리카 식문화를 뒤섞으며 미국 남부에서 요리를 확장해왔지만 백인 중심의 역사는 그들이 ‘머리를 쓰고 기술을 익혔다’는 사실을 종종 간과한다. 어느새 ‘흑인’의 역사는 점차 탈색된 채 주로 백인의 입을 통해 ‘남부음식’은 미국의 미식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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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홀리필드John holyfield, <축복(Blessing Ⅲ)>. 현재 대표적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화가인 존 홀리필드의 그림에는 가족과 함께 둘러앉아 식사하거나 음식을 만드는 장면이 많다. 홀리필드뿐 아니라 미국의 흑인 화가들 중에는 유독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모습을 경건하게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과거에 노예들은 부부도 자식도 주인에 의해 마음대로 팔리다 보니 ‘가족’과 ‘식사’가 가지는 의미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흑인들은 미국 음식을 풍성하게 만드는 손이 되었으나 그들이 먹는 음식은 오늘날 정치 문제 중 하나다. 흑인 노예가 지은 백악관에 정작 흑인은 들어가기 어려웠듯이. 요리를 할 경제적 여건이 안 되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계층이 많다 보니 흑인들에게는 점점 요리법이 전수되지 않고, 전수되지 않으니 요리책을 쓰는 사람이 적고, 요리책을 읽을 사람도 적고, 그렇게 점점 더 전수되지 않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흑인의 음식 역사가 남지 않아서 안타까움을 가진 한 요리 저널리스트가 2015년 지난 200년간 미국에서 흑인들이 쓴 ‘요리책에 대한 책’을 썼다. 그에 따르면 흑인 음식이 변했다기보다는 흑인 음식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변했다고 한다.


TV에서는 백인 남성이 남부에서 음식을 맛보고 평하며, 서점의 요리책 코너에는 백인 여성이 남부 요리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잘 사는 나라의 백인이 만들고 먹을 때 가장 ‘문명의 음식’이 되지 않는가. 마치 살코기가 가득한 다리와 가슴살을 먹고 뼈가 많은 부위를 버리듯, ‘맛있는’ 역사는 ‘남부 음식’이라는 이름으로 백인의 역사에 흡수시키고 흑인 음식의 역사는 오늘날 도시에서 패스트푸트점에 앉아있는 청년들이 먹는 음식처럼 기름지고 살찌는 음식으로 축소시킨 셈이다. 식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흑인 여성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흑인 페미니스트의 주장을 접하기 전까지, 나도 별생각이 없었다.


과거에 흑인에게는 읽고 쓰기를 배우는 것이 금지되었기에 그들의 조리법은 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왔다. 조리법이 ‘문명의 언어’로 만들어지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다 보니 흑인의 음식은 자연스럽게 그 성격이 막연해졌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흑인이 처음으로 요리책을 쓴 건 언제일까. 1827년 백인 가정의 집사였던 로버트 로버츠Robert Roberts가 쓴 『집사 지도서』이다. 이 책은 미국에서 흑인이 쓴 최초의 출판물이기도 하다. 테이블 세팅과 위생 관리를 비롯하여 조리법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요리책’이라고 할 수 있는 출판물은 조금 뒤에 나왔다.


2001년에 미시간 대학의 식문화사 연구자인 잰 롱원Jan Longone이 아주 오랫동안 잊혔던 한 요리책을 발견했다. 남북 전쟁이 끝난 다음해인 1866년 출판한 맬린다 러셀Malinda Russel의 『가정식 요리책』이다. 세탁부로 이집 저집에서 일하다 간신히 자유민이 될 수 있었던 러셀은 테네시주에서 제과점을 운영하며 홀로 아이들을 기르고 생계를 챙겼다. 남북전쟁이 터지면서 러셀은 노예제를 철폐하려 한 북군을 돕기 위해 미시간으로 간다. 전쟁이 끝나자 그는 바로 미시간에서 요리책을 출간했다. 자신이 운영하던 가게에 오는 손님들에게 조리법을 팔아 생계를 꾸리기 위해 책을 썼다. 그가 남긴 책에는 다양한 디저트가 포함된 256개의 조리법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오늘날 전해지는 ‘소울푸드’보다 실제 남부 흑인들이 ‘만들었던’ 음식은 훨씬 복잡하고 풍성했음을 알 수 있다. 케이크, 쿠키, 푸딩 등 디저트와 유럽 영향을 받은 다양한 요리 등이 있다. 이 책이 미국 흑인 여성이 남긴 최초의 요리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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맬린다 러셀의 요리책

 

러셀의 책이 발견되기 전에는 애비 피셔Abby Fisher의 책이 최초의 흑인 여성 요리책으로 여겨졌었다. 1881년 출간한 애비 피셔의 『피셔 씨가 남부요리에 대해 알고 있는 것』에도 무려 160개의 조리법이 있다. 수프, 고기 요리를 비롯한 각종 저장 음식, 빵, 케이크, 파이, 푸딩 등이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다.


애비 피셔는 1832년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농장에서 태어나 노예로 자랐다. 남북 전쟁이 끝나면서 자유의 신분이 된 피셔는 1877년 가족과 함께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했다. 그 후 요리 대회에서 여러 차례 수상하고 요리 실력으로 명성을 얻어Mrs. Abby Fisher & Company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애비 피셔는 당시에 글을 알았을까. 노예 출신인 그는 역시 글을 쓸 수 없었다. 그는 요리법을 ‘불러줬다’. 샌프란시스코에는 글을 쓰지 못하는 여성들의 출판을 후원하는 기관Women's Cooperative Printing Office이 있었기 때문에 피셔는 기관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조리법을 남길 수 있었다.


그러나 19세기에 남긴 흑인들의 요리책은 오랫동안 역사에서 사라졌었다. 애비 피셔의 요리책은 1984년 재발견되어 하바드 대학 도서관에 소장되었고 1985년 재출간되었다. 학자들도 요리책이 소수 여성의 목소리를 담은 유일한 자료임을 인식하면서, 또 민권 운동이 시작되면서, 흑인들의 요리책 출판도 활발해졌다. 흑인 여성들에게 ‘요리책 쓰기’는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제도적으로 교육받지 못한 여성들에게는 요리책이 자신의 이름과 활동을 남길 수 있는 유일한 기록물이었으며 창작물이었다.


입소문을 듣고 그냥 점심을 먹으러 들른 식당. 오바마와 무하마드 알리의 사진이 곳곳에 걸려있고 지역 정치인들이 방문한 흔적이 가득했다. 식당이면서 흑인 사회의 만남의 장소 역할을 하는 곳이라 손님들이 대부분 아는 사이였다. 척 봐도 새로운 사람으로 보이는 내게 식당 주인은 뭔가 자꾸 말하고 싶어 했다. 벽에 걸린 여러 사진을 내가 유심히 봤더니 한 미식축구 선수의 사진을 가리키며 자기 아들이라고 했다. 코넬 대학에 합격했다는 사실을 재차 강조했으며 한 청소년 매체에 아들이 직접 쓴 글을 인쇄해서 걸어놓고 있었다. 글에서 아들은 자신이 얻은 교육 기회를 자신도 소수 민족 사회에 돌려주기 위해 일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었다. 주인 부부는 아주 조금만 반응을 보여도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으며 각자의 조상까지 거슬러 올라가더니 느닷없이 “트럼프는 자기랑 다르게 생기고 백만장자가 아니면 다 싫어해!”라며 흥분하는 목소리도 빼놓지 않았다.


주문하지도 않았는데 남부 디저트를 맛보라며 주인이 파이를 조금 담아주었다. 심지어 나올 때 싸주기까지 했다. 바로 애비 피셔가 기록한 피치 코블러다. 전에는 그저 별 생각 없이 먹던 복숭아 파이였다. 버터맛이 감도는 피치 코블러는 아마 나를 다시 오게 만드는 강한 유혹의 기술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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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라영(예술사회학 연구자)

프랑스에서 예술사회학을 공부했다. 현재는 미국에 거주하며 예술과 정치에 대한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 『여자 사람, 여자』(전자책),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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