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7일, 합정역에 위치한 빨간책방에서 이호준, 김진석 작가가 비하인드 북 콘서트로 독자들을 만났다. 프랑스 파리에서 노르웨이 트롬쇠까지 유럽 15개국을 추운 겨울날, 그것도 캠핑카를 타고 1만 키로를 달려온 작가들의 더욱 생생한 여행담을 듣고 싶은 독자들이 한데 모였다. 작가들은 책에 싣지 않았거나, 더 자세히 담지 못한 사진들을 공유하며 독자들과 두 번째 오로라 여행을 시작했다.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이호준 작가는 이번 신간을 두고 ‘그간 11권의 책을 출판했지만, 이번 신간은 목숨 걸고 쓴 유일한 책입니다’ 라는 말로 북 콘서트를 시작했다.
독자들과 사진을 통해 오로라를 한 번 더 만나다
스무 장 남짓의 사진 중 ‘동행’이라는 제목으로 제일 먼저 공개된 사진은 작가 두 분과 도움을 준 동행자가 담긴 ‘유일한’ 것이었다. 며칠 동안 씻지도 못하고, 면도도 못 한 채 찍은 사진이지만 오로라를 찍기 급급한 와중에 담은 유일한 인물 사진이기에 의미 있지 않을까.
가능하면 오로라 외에 일행들도 담으려고 노력했으나, 오로라 때문에 많이 찍지 못했어요. 이 사진은 오로라를 기다리며 시내 투어도 하면서 노르웨이 피오르 위 다리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사진은 여유로워 보이지만 정신적으로는 최악의 상황이었죠. 계속 눈이 와서 오로라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던 때에요. 펀딩(funding)까지 받아서 간 상황인데 오로라를 찍지 못할까 봐 하늘을 죽이고 싶을 만큼 정신적으로 힘들었죠.
이어서 ‘여정’이라는 제목의 사진들이 등장했다. 눈이 많이 오는 겨울날 캠핑카를 타고 여행한 것이기에 지금은 담담히 말할 수 있지만 이들의 여정에는 생존과 직결되는 아찔한 순간들이 많았다. 스노타이어가 없어 아슬아슬하게 달린 눈 쌓인 도로부터 캠핑장을 못 찾아 노숙하고, 전기가 없어 굶었던 순간까지 오직 오로라를 위해 달렸던 작가들의 웃지 못할 후일담이 전해졌다.
소소한 ‘사건’ 들을 주제로 한 사진 몇 장이 지나고, 대망의 ‘오로라’ 사진이 등장하자 독자들의 함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이에 부응하듯 김진석 사진작가의 말도 한 층 길어졌다.
이 장면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면이에요. 한 사람이 움직이는데 하루에 100유로나 들어서 날씨가 정말 좋을 때가 아니면 오로라를 보러 가지 않았어요. 이날은 오로라가 나올 날씨가 아닌 되게 안 좋은 날이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저 혼자만 나갔어요. 노르웨이에서 세 군데를 갔는데도 불구하고 오로라를 못 봐서 돌아가려 했던 날이죠. 그런데 오로라 가이드가 갑자기 두 시간만 더 가서 핀란드 국경을 넘어가자 했고, 거기서 오로라를 만났어요. 노르웨이가 아닌 핀란드 오로라죠.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는 게, 오로라를 봐서 좋기도 했지만 구름이 많이 껴서 흐리게 나온 사진이라 아쉬움이 남기도 해요.
마지막으로 등장한 사진은 이호준 작가와 김진석 사진작가가 함께 떠난 북유럽이 아닌, 김진석 작가 혼자 캐나다에서 만난 오로라 사진이었다. 만족할 만한 사진을 북유럽 오로라에서 찍지 못한 김진석 사진 작가는 유럽에서 귀국 후 캐나다로 오로라를 보러 한 번 더 떠났다고 한다.
노르웨이에서 맑은 하늘에 오로라가 춤추는 걸 찍고 싶었는데, 깨끗한 오로라 사진이 없었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캐나다 옐로나이프를 선택해서 일주일간 다녀왔어요. 이 사진은 섬 주변 호수가 언 아이스 로드인데요, 이 길을 통해 광산에서 필요한 물품을 수송하고, 얼음이 깨지면 수송된 물품을 이용해 다시 얼 때까지 생활하는 형식이에요. 이러한 아이스 로드가 오로라를 관측하기 제일 쉬운 곳이죠.
한국에서 파는 패키지 상품으로 캐나다 옐로나이프에 가면 ‘오로라 빌리지’ 에 갈 수 있어요. 오로라 빌리지에선 인디아 티핑에 불을 따뜻하게 때워두고 오로라가 나오기 전까지 기다리다 나오면 서로 알려주며 함께 봐요. 빌리지는 얼음 호수 위에 만든 것이라 바람이나 날씨의 영향과 관계없이 오로라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에요. 오로지 오로라 관측을 위해 만들어둔 전용 빌리지인 셈이죠. 책의 뒷부분에 실린 사진은 전부 캐나다 옐로나이프랍니다.'
여행을 주제로 독자들과 소통하다.
어떻게 오로라를 만나러 갈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김진석 : 사진 작업을 하러 외국에도 많이 나가고 사람들의 여행 에세이도 많이 봐요. 그중에 가장 와 닿는 말이 ‘죽기 전에 꼭 봤으면 하는 것들’인데요. 에베레스트, 아프리카, 몽골 등 남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자주 봤는데, 유일하게 안 간 곳이 오로라였어요. 그래서 언젠가는 사람들과 함께 오로라를 보고 싶다는 생각에 가게 되었어요.
작가님들께 오로라는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는지 질문 드리고 싶어요.
김진석 : 노르웨이에서 봤던 오로라는 저에게 개인적으로는 생소하면서 감각적으로는 찍기가 어려웠던 터라 도전의 의미가 있어요. 사진 적으로 구도를 만들고 찍어내야 하는데, 글로 표현하기도 힘들뿐더러, 사진으로도 있는 그대로 찍히는 게 아니라서 사진 찍는 데 급급했어요. 그래서 노르웨이에서 아쉬운 사진이 많아 캐나다에 간 거에요. 캐나다 오로라는 상당히 강한 오로라가 머리 위로 춤을 췄고 몽환적이었어요. 실제로 ‘우웅’ 하는 소리가 나면서 머리 위로 흩어지는 게 마치 살아있는 것이 춤추듯 흩어져 나가는 것 같았어요. 셔터를 잊을 정도였죠. 옆에 있던 친구는 오로라를 보면서 울기까지 했어요. 저 역시 오로라를 사진 외로 표현할 방법은 없는 거 같아요.
이호준 : 김진석 작가가 오로라를 보러 가자고 제안을 했던 때가 퇴직했을 때에요. 퇴직은 ‘내 인생이 끝난다’는 의미도 있어요. 하지만 오로라를 보고는 ‘내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고, 의지가 있다’ 라는 도전의 메시지를 대한민국 중년의 남성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걸 느꼈어요. 저 스스로 분명한 의미와 의지를 갖추고 한 것이기에 이런 의미를 보여주고 싶었죠. 나 자신이 다시 스스로 일어나기 위해 굳건한 힘을 다지려 한 것도 있어요.
여행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조언이 있을까요?
이호준 : 여행작가는 좀 고단해요. 세상을 다 가보고 돈도 버니 좋다고 생각하지만, 여행을 ‘여행이 아닌 일’로 가는 것은 자신도 모르게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불행한 일이에요. 여행은 자기 철학과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오로라는 제가 보러 가지 않아도 늘 그곳에 존재해요. 그래서 오로라를 보러 간 순간 ‘늘 존재하는데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경외심을 많이 느꼈어요. 이런 것이 오로라뿐일까요? 누군가가 농사를 짓기에 밥을 먹지만 그 당연한 것을 잊고 사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 것’을 배웠어요. 여행작가는 ‘그곳에 돌멩이와 나무가 있었다’는 것을 기록하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깨 달음이 있었다’고 기록하는 것입니다.
여행하고 작가님 스스로 본인이 기특하다고 느낀 점이 있나요?
이호준 : 퇴직하고 오로라를 보러 갔던 것이에요. 일을 관두고 느끼는 자괴감은 엄청나요. 하지만 오로라를 보고는 ‘좀 더 단단해졌다’는 것과 ‘난 아직 한창이다’ 는 것을 자각할 수 있었어요. ‘나는 계속 뭐가 진행되고 있었던 중이었구나, 삶에서 맺는 많은 매듭 중의 하나였구나’ 라는 것을 느꼈죠. 고통이 한 사람의 인생에 면역을 주듯이, 이제 내가 나이 먹었다고 못 할 건 없다는 자신감을 얻어왔어요.
오로라를 보고 온 후 단단해진 만큼, 또 도전하고 싶은 다음 목표가 있나요?
이호준 : 삶을 살아가는 의지나 방법에 비하면 극한 곳으로 여행을 가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직 다음 프로젝트를 갖고 있진 않지만, 다른 극한 여행을 가자고 하면 또 갈 거예요.
김진석 : 올해는 이미 작업한 사진들을 정리하고 싶어요. 프리랜서로 선언한 지 10년이 되는 해라서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정리하는 일을 많이 할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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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 오로라이호준,김진석 공저 | 예담
누구나 꿈꾸는 여행이자 죽기 전에 꼭 한 번 눈으로 보고 싶은 장면, 오로라! 이 책은 프랑스 파리에서 출발해 노르웨이 트롬쇠까지, 그리고 다시 프랑스로 돌아오는 여정을 따라 오로라 탐험을 떠난 겨울 여행의 기록이다. 눈 덮인 유럽 15개국을 캠핑카를 타고 누비는 황홀하고도 아슬아슬한 여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신수인(예스24 대학생 리포터)
좋은 글을 읽는 독자이며, 동시에 좋은 글을 쓰는 필자가 되겠습니다
willhelm
2017.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