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무래도 저에게 있어 ‘만년(晩年) 스타일’의 끝을 장식할 소설이 될 것 같은, 그러면서도 오랫동안 뜬구름만 잡는 것 같았던 제 구상에 힌트 하나가 떠오른 것 같습니다. 그건 소설가로서의 제가 ‘우리에게 허락된 특별한 시간과 장소의 끝’을 확정지으려고 안달할 때에서야 비로소 얻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저 자신의 작업을 마주하는 데에 있어, 한 권의 소설집을 읽으며 가슴 설레도록 노동의욕을 불태우는 일은 좀처럼 없는 일입니다. 아직 만나뵌 적 없는 작가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오에 겐자부로, ‘오에 겐자부로상’ 심사평 중)
「삼월의 5일간」, 「내가 있는 여러 장소들」을 묶은 소설집 『우리에게 허락된 특별한 시간의 끝』은 제2회 ‘오에 겐자부로상’을 수상한 오카다 도시키의 작품이다. 오에 겐자부로는 심사평을 통해 ‘만년 스타일’의 힌트를 떠올렸다며 작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을 정도로 이 작품에 애정을 표시했다. 오카다 도시키는 소설가인 동시에 극작가로, 2004년에는 연극 <삼월의 5일간>을 발표해 일본 최고 권위의 희곡상 ‘기시다 구니오상’을 수상한 바 있을 정도로 다방면에서 뛰어난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 9월 8일 저녁, 오카다 도시키의 『우리에게 허락된 특별한 시간의 끝』 출간을 기념해 특별한 공연이 진행되었다. 마두영의 연출로 기획된 소설 「삼월의 5일간」의 낭독 공연이 합정동 북티크에서 열린 것이다. 낭독 공연은 다섯 명의 배우가 소설의 화자가 되어 소설을 낭독하는 형식으로 펼쳐졌다.
「삼월의 5일간」은 롯폰기의 한 라이브하우스에서 만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시부야의 러브호텔에서 닷새를 보내는 이야기다. 미국이 이라크 폭격을 시작한 날, 일본에도 이를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고 세상은 시끄럽다. 그 속에서, 남자와 여자는 마치 세상에 없는 사람들처럼 세상과 자신들을 러브호텔에 단절시킨다.
우리가 발길 닿는 대로 들어간 호텔방은 너무나도 싼 티가 났고, 그래도 뭐 좋았다. 벽지가 얼룩덜룩한 줄 알았는데, 원래부터 연한 핑크색이었던 것이 내 눈에 그렇게 보였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중략)하던 얘기가 끝나거나, 꼭 끝난 것은 아니어도 대충 휴식 시간이 오면, 우리는 또 서로 달라붙어 몸을 포개었다.
우리는 그 호텔에서 4박을 했고, 5일째 되는 아침에 헤어졌다.(54~55쪽)
「삼월의 5일간」은 이토록 단순하다. 두 남녀가 세상의 그늘 밑에서 웅크린 채 계속해서 섹스를 한다. 그렇지만 소설이 단순하지만 않게 느껴지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에 매료된 이유기도 하다. 특히 수시로 화자가 바뀌는 극적인 방식은 이 단순한 이야기가 매우 입체적으로 읽히는 훌륭한 장치다. 이 부분은 오에 겐자부로 역시 심사평에서 언급하며 극찬하기도 했다. “이들 화자의 (이것이야말로 연극적인 연출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원활한) 전환으로 인해, 문장의 질과 톤이 그때그때 화자에게 어울리는 것이 되어가고, 그 기술은 소설가로서의 탁월한 솜씨로 나타납니다.”
낭독 공연을 연출한 마두영은 “분명 A와 B의 대화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A가 C로 바뀌고, 대화 상대는 그대로 B였다가 마지막에는 A와 B가 대화하는 양상으로 끝나는 식이었”기 때문에 이것을 어떻게 공연 형식으로 바꿀지가 가장 고민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제부터 자기들이 그것을 보게 되리라는 것도, 그것이 어떤 류의 퍼포먼스인지도, 더욱이 여기가 라이브하우스라는 것도 몰랐다.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던 건, 여섯 명 중 아즈마 한 명뿐이었다. 그는 이날 퍼포먼스가 있다는 얘기를 누구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그 누구는 바로 그저께 영화관에서 만난 여자애였다. (중략)늘 그랬지만, 영화관은 그날도 사람이 뜸했는데, 그럼에도 나와 그녀는 옆자리에 앉아 영화를 봤다.(28~29쪽)
‘보는’ 소설
어떠한 다른 설명도 없이 배우들이 그저 소설을 낭독하는 것으로만 진행된 이 낭독 공연에서, 관객들은 소설을 ‘읽는’ 배우들을 통해 소설을 ‘보는’ 낯선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마두영 연출가는 공연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배우들의 움직임 하나까지 세심하게 구성했다고 말했다.
“공연 때 배우들이 많은 움직임을 하진 않았지만, 상징적인 배우들의 움직임, 프로젝터에 투영된 드로잉, 그리고 설치미술처럼 의자들을 사용함으로써 소설의 느낌을 최대한 전달하려 애썼습니다. 관객들이 소설을 ‘보고 듣는’색다른 경험을 하셨길 기대해 봅니다.”
낭독 공연에 출연한 배우 배선희는 「삼월의 5일간」에 대한 감상을 “주변의 인상을 스케치해놓은 것 같으면서도, 그 인상들이 모여 다 읽었을 때 어떤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작품 같았어요. 그 정서는 저 개인적으로는 동시대의 젊은 세대들이 많이 느끼고 있는 정서 같은데, 때로는 파괴적이고 모순적인 세계를 향한 하나의 개인으로서 느끼는 허무함, 공허함, 그럼에도 다시 살아가야한다는 것에 대한 마음, 그런 것들이었습니다.”라고 말하며 ‘젊음’을 이야기했다. 『우리에게 허락된 특별한 시간의 끝』 뒷부분에 수록된 작가 오카다 도시키의 인터뷰를 보면 작가가 이 ‘젊음’을 다름 아닌 바로 ‘자신’으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소설 속에서 그들이 느끼는 체념이나 불안, 희망, 그런 것들이 드러났다면, 그리고 그들에 대한 애정 같은 것이 묻어났다면, 그것은 그들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봤기 때문에 아니라, 쉽게 말하면, 그들을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썼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176~177쪽)
소설의 마지막은 여자의 시선으로 끝이 난다. 낭독 공연에 출연한 배우 전수지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으로 꼽기도 한 장면이다. 전수지는 이 장면을 “세상 어느 곳에서는 전쟁이 나 있고 모르는 남자와 러브호텔에서 5일 동안 거의 섹스만 하고 밖으로 나온 여자가 겪게 되는 아침, 그 상황이 아주 절묘한 것 같아요.”라며 이유를 전했다.
급기야 속을 게우고 말았고, 길바닥에 토사물을 흩뿌렸다. 그건 사람이 똥을 누는 광경을 목격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을 동물로 잘못 본 그 몇 초가 자신에게 있어 실제 존재한 시간이라는 것이 역겨웠기 때문이었다. 그걸 깨닫자 토했고, 토하고 나서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다. 자기와는 상관없는 것이라는 척하며 토사물에서 조금 떨어져 서서, 마음이 평정을 찾기를 기다렸다. 옷에 조금 묻고 말았다. 역으로 가서 개찰구를 빠져나갔다. 역 안에 있는 화장실에 들어가 두루마리 휴지로 옷을 닦을 때, 여자의 시부야는 이미 없었고, 늘 언제나의 그 시부야로 돌아와 있었다.(79쪽)
약 한 시간 가량의 낭독 공연이 끝나고 2부에서는 강백수와 언해피서킷의 축하 공연이 이어졌다. 소설과 연극, 음악이 어우러진 거의 완벽에 가까운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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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허락된 특별한 시간의 끝 오카다 도시키 저 | 알마
새로운 문학을 찾는 독자라면, 또 속사포 같은 연극 대사 속 오카다 도시키 문학의 심층이 궁금했던 독자에게 추천하는, 알마 인코그니타의 시작을 알리는 책이자 상징과도 같은 작품이다.
신연선
읽고 씁니다.
iuiu22
2016.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