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번역원이 주관하는 '2016 서울국제작가축제’가 9월 마지막 주, 대학로에서 그 막을 연다. 축제 준비가 한창인 8월의 어느 날. 설렘으로 잠을 설치는 소풍 전야처럼, 9월의 작가축제가 문득 궁금해진다. 작가축제에서 만나 볼 작가들의 릴레이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스스로를 말하길, 옛날에 ‘나는 까만 겨울’이었고,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라고 말하셨어요.
옛날에 나는 까만 겨울이었지
산동네에서 살던,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던
실패하고 얼어죽기엔 충분한
그런 무서운 말들도 봄이 오는 쪽으로 널어둔다
(「실내악」 에서)
고향이 태백이고, 아버지는 광부였어요. 광산촌의 검은 석탄 풍경들, 그리고 길었던 겨울에 대한 삽화들이 아직도 제게는 강렬하게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옛날을 떠올리면 꼭 ‘까만 겨울’ 같아요. 그리고 이산의 가족사 때문에 서울로 와서 살면서는, 고향을 떠나온 일종의 디아스포라 의식이 늘 존재했죠. 부모와도 떨어져 단절된 느낌이란, 말 그대로 고아는 아니었지만 늘 고아 같은 느낌이었어요. 고향과도, 시간과도 모든 것들과 단절된 깜깜한 겨울 같은 느낌이요!
그런 외로움과 힘든 시간들이 시인 안현미의 문학적 자양분이 되었을 것 같은데, 시를 시작하게 된 구체적인 계기는 어떤 것이었나요?
제가 처음 접하게 된 문학은 시의 형태는 아니었고, 소설이었어요. 물론 시골에는 워낙 책 종류도 다양하지는 않았죠. 그 중에서도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소설은 <폭풍의 언덕>이었습니다. 폭풍이 휘몰아치는 언덕의 모습은, 앞서 말했던 ‘까만 겨울’의 풍경과 굉장히 유사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어쨌든 음악이나 미술을 접할 기회는 아쉽게도 별로 없었지만, 책은 늘 가까이에 친구처럼 있었습니다.
역시 책을 좋아하는 문학소녀셨군요. 그래도 읽는 것과 쓰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일반인의 입장에서, 특히 시 창작은 특별한 재능이 필요한 분야라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특별한 재능이 있다기 보다는, 글쎄요. 제가 가진 것은, 무언가를 특별하게 사랑할 수 있는 어떤 태도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저도 처음에는 제가 시 창작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정말로! 그저 친구처럼 곁에 항상 문학이 있었던 거죠. 고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부터 일찍 취직을 해서, 일을 하다 뒤늦게 문예창작과에 입학하게 되었어요. 문학 공부는 그 때 하게 되었죠. 문예창작과에서는 다양한 글쓰기를 하잖아요. 시뿐 아니라, 소설, 희곡. 그리고 문법도 배우죠.
‘낮에는 돈 벌고 밤에는 시 쓰는’ 바쁜 삶 속에서도 시를 놓지 않는다는 건 큰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시인 안현미에게 문학적 영감을 주는 활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우리는 선천적으로 두개의 음악을 가지고 있다. 들숨과 날숨!
낮에는 돈벌고 밤에는 시 쓴다. 운에는 울고 율에는 웃자.
(「정치적인 시」 에서)
다양한 것들을 접할 만큼의 시간적 여유는 없어요 사실. 그래도 꼽자면, 여행을 좋아해요. 다른 공간을 입어보는 것의 매력에 대해 늘 생각하죠. 물론 계획해서 떠나는 긴 여행은 잘 못해요. 말하다 보니, 정말 제게 특별한 취미는 없는 것 같네요(웃음). 책보고, TV를 보고, 회사 다니고, 지극히 평범하게 사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특별한 것을 찾아가서 특별한 것을 발견해내는 게 꼭 시는 아니라고. 그렇다면 내가 살고 있는 순간순간, 뭐랄까 나의 더듬이! 나의 더듬이를 떨리게 하는 것들에 대해 예민하게 감지하고, 그것들에 대해 써보는 그런 사람이 되어 보자! 라고 생각하게 되었죠.
예술가로서의 삶이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의 삶도 굉장히 잘 돌보아야 한다는 생각은 늘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삶을 살게 하는 것이 시를 쓰는 행위이기 때문에, 그것과 내가 원하는 것들을 병행하기 위해서, ‘모든 게 시가 될 수 있다’는 나름의 전략을 취하는 거죠. 그런데 그 중에 이루는 건 0.1%나 되려나? 되는 게 거의 없죠(웃음). 손가락이 열 개인데 그 중 하나는 항상 시의 언저리에 늘 찍어두고 있는 것 같은 느낌으로 살아요. 그렇지만 이쪽저쪽 다 무능하다고 전 생각해요(웃음).
그럼 선생님께서 서울에 처음 오셨을 때의 이야기를 해볼까요? 서울 살이가 처음에는 녹록치는 않았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그랬죠. 감수성이 한참 예민하던 시기에 고향을 떠나서 도착한 거대도시가 ‘서울’이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서울은 늘 저에게는 버거운 공간이기는 했어요. 화려한 도시 안에서도 제가 살았던 곳들은 다 그렇게 후미지고 산꼭대기이고, 그런 거죠. 왜냐하면 고향을 떠나온 이방인에게 ‘가난’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에.
'아현동 산동네’, ‘청량리 굴다리’, 등 서울이라는 공간이 시인 안현미의 시에 자주 등장하잖아요.
제가 공간을 많이 이야기 하는 것은 어쩌면 뿌리 없이 떠도는 어떤 시간들에 대한 반작용이랄까? ‘난 여기에 존재하는 사람이야’라는 외침과도 같은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아현동 산동네고 청량리 굴다리고, 가난한 동네지만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을 계속 호명하면서 내가 여기 있다고 외치고 이야기하는 어떤 주절거림이랄까. 그런 비슷한 거죠.
혹시 ‘아현동 헌책방’에서 만난 행운과도 같은 책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안현미 선생님의 인생 소설이 있다면요?
꽃다운 청춘이었지만 벌레 같았다 벌레가 된 사내를 아현동 헌책방에서 만난 건 생의 꼭 한 번은 있다는 행운 같았다 그 후로 나는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진짜 가족이 되었다 꽃다운 청춘을 바쳐 벌레가 되었다 불 꺼진 방에서 우우, 우, 우 거짓말을 타전하기 시작했다 더듬더듬, 거짓말 같은 시를!
(「거짓말을 타전하다」에서)
「거짓말을 타전하다」라는 시에서 말한 책은 카프카의 『변신』이었어요. ‘변신’이라는 모티프는 제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기도 하죠. 저도 슬프고 고독한 어떤 이방인으로서, 이 거대도시에 살아가면서 늘 변신을 꿈꾸는 존재였으니까요. 시를 쓰면, 저에게 닥친 시련도 잊어버리는 ‘순간의 짜릿함’을 경험했어요. 바로 그런 경험을 거짓말로 타전하는 사람으로서, 시를 쓰는 사람으로 변신해가는 과정을 겪은 셈이죠. 문학은 비루하고 고독한 삶을 한 순간이지만 다른 차원으로 변신시켜줄 수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때 만난 게 바로 카프카의 문학이었던 거죠. 그 후로도 계속 관심을 가지고 카프카의 문학을 읽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는 체계적인 문학공부를 해오던 사람이 아니라, 지금 생각해보면 중구난방 식으로 읽었던 것 같아요. 제가 열아홉 살 겨울방학부터 직장에 다녔으니까, 남들이 대학에서 공부할 때 저는 먹고 사는 일에 매달려야 했고. 그러면서도 책은 늘 곁에 두었지만, 그 때 그때 제가 꽂히는 걸 골라 읽는 식이었죠.
시인 안현미를 말할 때, 항상 언급되는 「거짓말을 타전하다」와 같은 시들은 유독 ‘청춘’에 대한 언급이 많아요.
저의 시집에는 제 모든 인생이 담겨 있죠. 첫 번째 시집은 제가 태어나서 35살까지의 전체 인생이, 그 후로 36살부터의 삶은 두 번째 시집. 그 후는 세 번째 시집에, 「거짓말을 타전하다」는 저의 첫 번째 시집에 담겨있어요. 저에게도 각별한데, 시인이 되기까지의 모든 것들이 여기에 있죠. 거짓말을 타전하고, 고장 난 심장으로 생에 대해 절망하기도 하고. 그러나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시를 가지고 고군분투하는 ‘그 친구’가 그 안에 있죠.
「고장난 심장」에서 “어디까지가 바닥인가요? 왜 生은 고장 투성이인가요? 당신, 생은 다 그런 거라고 눙치지 말아요”라는 구절이 절절하게 다가옵니다. 삶이 고장 투성이라고 느끼는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쩌다 보니, 요즘 N포 세대의 현실을 선취하고 있는 시를 쓰게 된 것 같네요(웃음). 저도 청춘일 때 생의 바닥까지, 아니 그 바닥이 어디까지인지도 모를 만큼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했지만, 요즘 청년들도 여러 의미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그런 현실이, 청년들이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것처럼 강요당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까지도 한 일간지의 에세이 코너 필진으로 참여하셨죠?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셨는데요. 이렇게 시가 아닌 다양한 영역에서 독자들과 가깝게 만날 수 있는 활동을 또 기획 중이신지 궁금합니다.
저는 시에 집중하면서 시를 쓰기 위해 회사에 다녀요. 제가 돈을 버는 것도, 시를 쓰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이니까요. 그리고 독자들이 저의 시, 특히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에 대해 “그 시가 힘이 되었다”고 말해주는 그 순간이 정말 행복하죠! 그래서 기본적으로 저는 시를 통해 소통하고 싶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자기 장르의 외연확대를 위해 다들 고민을 많이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비단 문학 뿐 아니라 국악 같은 음악의 장르에서도! 그런 노력이 예술 각각의 영역에서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저도 서로 다른 영역에서 교류하는 것에 대해 좋게 생각하고 있어요. 옛날에는 내 장르에만 집중해서, 저의 분야에서 저 안현미의 시를 남기고 싶었는데. 물론 지금도 그런 마음은 가지고 있지만, 그렇게 나아가는 방법 중에 다른 것들과의 교섭이랄지, 교류를 통해 좀 더 확장된 방향으로 나의 시가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아직 구체적으로 기획된 것은 없지만.
마지막으로, 2016 서울국제작가축제에 참가하는 소감이 궁금합니다.
‘서울국제작가축제’에 올해 처음 참가하기 때문에 잘은 모르지만, 연희문학창작촌 매니저를 할 때부터 한국문학번역원과 국제행사들을 많이 협력해왔어요. 올해 문학계의 큰 이슈였던 한강 작가의 맨부커 인터내셔널 수상의 숨은 공로자가 있다면, 그 역시 한국문학번역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한국문학번역원의 노력이 담긴 축제이기 때문에 상당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서울국제작가축제
'2016 서울국제작가축제'가 9월 마지막 주, 대학로에서 그 막을 연다. 축제 준비가 한창인 8월의 어느 날. 설렘으로 잠을 설치는 소풍 전야처럼, 9월의 작가축제가 문득 궁금해진다. 작가축제에서 만나 볼 작가들의 릴레이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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