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이 마음의 바탕에 초석처럼 잘 깔려 있어야 갖가지 감정을 그 위에 튼튼하고 바르게 세울 수 있다. 그런 자존감을 형성하는 것이 쉽지 않은 까닭은 우선 나 자신과 직면해야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남에게 보여주기 싫은, 못나고 엉망인 나와 똑바로 마주해야 한다. 나를 아프게 만드는 혹은 발끈해서 방어적인 태도를 갖게 만드는 몇 가지 버튼들을 직접 눌러야 한다. 그리고 그 버튼을 이루는 콤플렉스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그게 제일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싶다. 자신을 객관화하기.
자기를 긍정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부정적인 면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 모순적으로 느껴지겠지만, 나 안에 잘 감춰둔 못난 나를 모른 척하거나 아닌 척 한다고 강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 녀석을 꺼내서 가끔씩 도닥여주고 안아주기도 해야 더 건강한 자아를 가질 수 있다.
자존감을 키우기 위해 자기 약점을 마주할 때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기 위함이 아니다. 자기를 사랑하기 위해 이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약점을 보듬는 것도 중요하지만 괴로운 현실을 피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대면할 때 자신에 대한 객관화가 가능해진다. 내가 내 편이 되어 주는 것만큼이나 내가 잘못한 행동을 했을 때 그것을 정당화 하지 않고 그렇게 되어버린 과정을 이해하고 바로 잡으려고 노력할 때, 비로소 자존감은 높아질 수 있다. 자기를 사랑하라는 말은 무조건 낙관주의나 낙천주의로 흘러가라는 것이 아니다.
자존감을 키우는 것은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자존감의 원리를 최초로 명확하게 규명한 미국의 심리학자인 나다니엘 브랜든은 『자존감을 지탱하는 여섯 가지 기둥』이라는 책을 통해 자존감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는 삶의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깨어 있는 정신으로 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자신에게 스스로 책임진다.
자신을 당당하고 주장한다.
목표를 가지고 살아간다.
성실하고 진지하게 살아간다.
읽고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 나도 해보겠어! 나의 자존감을 키우겠어!’ 이렇게 감흥을 일으켜 보지만 실천에 옮기기란 쉽지 않다. 온갖 가지 자기계발서를 읽을 때의 느낌과 다를 바가 없다. 읽는 순간에는 변할 수 있을 것 같고 의욕도 일어나지만 알다시피 우리는 편안함에 안주하고 좀처럼 예전의 습관을 바꾸지 못한다. 시도를 해 본다 쳐도 변화가 더디면 쉽게 포기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포기한 자신을 다시금 자책하게 된다.
삶의 태도를 변화시킬 때 무르고 약하던 자존감도 서서히 단단하고 굳건해진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만 우리의 삶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 누구나 쉽게 자존감을 높일 수는 없다. 성공학개론을 읽더라도 누구나 부유해지지 않는 것처럼. 그 사실을 인정하자. 한 번에 자존감을 획득!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변화를 원할 정도로 절박해질 때 이것 정도만 기억하자. 나를 변명하기 위해 늘어놓았던 말들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하겠다. 내가 한 말과 행동은 일치될 수 있게 노력하겠다. 자존감을 만드는 일은 집짓기와도 비슷해 보인다. 아기돼지 삼형제의 이야기처럼 안일한 마음으로 자존감의 근간을 만들면 지푸라기와 나무집처럼 금방 무너지고 만다. 손이 많이 가고 힘이 들더라도 벽돌로 차곡차곡 쌓아두면 문제가 생기더라도 튼튼하게 버텨낼 수 있다. 그런 마음으로 차근차근하게 자존감을 키워야 한다.
현정
사랑과 연애 그리고 섹스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몇 번의 사랑을 경험하며 제법 깊은 내상을 입었지만 그만큼 현명해졌으며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보는 걸 수줍어하지 않게 되었다. 놀라운 재생능력으로 사랑할 때마다 소녀의 마음이 되곤 한다. 누군가의 장점을 잘 발견해내고 쉽게 두근거린다. 『사랑만큼 서툴고 어려운』, 『나를 만져요』 등을 썼으며, 블로그 '생각보다 바람직한 현정씨'를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