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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자존심, 실은 낮은 자존감

자존감과 자존심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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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의 형성은 성장 과정에서 맺어온 관계에 의해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는 하지만 고정되어 불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른이 된 이후 겪게 되는 경험들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튼튼하게 키워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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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나는 연애가 끝나면 슬프다는 감정에 앞서 엄청난 분노부터 느꼈다. 상실의 슬픔보다 내가 거부당했다는 사실에 엄청난 화가 치솟았다. ‘네가 어떻게 감히!’라는 정말이지 오만방자한 말을 쓰는 게 어렵지 않는 그런 종류의 인간이었다. 

 

분한 마음에 눈과 코가 퉁퉁 붓도록 울면서 두루마리 휴지를 하나를 다 썼다.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엉망이 된 채 화를 다스리지 못하는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가만히 모든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주던 D가 입을 열었다 “현정이 이런 일에 자존심을 세울 줄은 몰랐어요. 이게 자존심이 상할 일인가?” 그 순간 당혹스러웠다. 자신감 넘치고 당당하고 도도함을 내세우던 나는 상처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다친 건 아니라고 소리 지르며 절뚝거리는 다리로 비겁하게 도망이나 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왜 자존감이 아니라 자존심을 세우고 있었을까? 우선 그 둘의 차이부터 생각해봐야 했다. 사전적 의미로 자존심이나 자존감이나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남에게 굽히지 아니하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고,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 

 

그러나 그것이 표출되는 방식은 확실히 다르다. 내게 자존심이란 굳은 심지가 마음 중간에서 뻣뻣하게 서 있는 모습이다. 반면에 자존감은 바닥에 넓게 깔려 나를 포근하게 덮어주며 보호해주는 기분이다. 어감의 이미지로 이 둘을 구분을 하자면, 굽어지지 않는 오만함으로 높게 자란 자존심은 바닥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에 자존감을 느끼기 힘들다. 자존심을 세우는 사람치고 자존감이 높은 경우가 드문 게 그런 탓인 게 아닐까?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더 크게 보기 마련이고, 자신의 결함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칭찬을 해줘도 그걸 즐겁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뭔가 시도를 했다가 실패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도전의식도 빈약하다. 반면 자존심만 지나치게 높을 때는 주변 사람들보다 자신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자만하기 십상이고 타인을 배려하지도 않는다. 근거 없는 자신감을 드러내고 실수나 실패를 했을 때 남 탓만 한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나인데,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으면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상대에게 울컥하게 되는 드높은 자존심과 그의 사소한 행동 하나에 곤두서서 ‘내가 뭘 잘못 한 건 아닐까?’ 그의 싸했던 말 한마디에 내 탓은 아닐까 바닥 치는 자존감 사이에서 그만 괴로워하며 안정을 찾고 싶다. 연애가 평온하길 바란다. 그러나 나의 마음 상태가 극단을 왔다 갔다 하면서 좋은 연애를 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나쁜 연애할 때는 애매한 상대의 태도로 때문에 불안해지기도 했지만 내가 상대의 마음을 과잉 해석하거나, 내 감정 상태를 상대에게 솔직하게 전하지 못해서 불만을 말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혼자서 화가 나거나 시무룩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우선 상대와 별개로 나의 쓸데없는 걱정과 감정소모를 줄일 필요가 있었다. 쉽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줄 알아야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나의 자존감을 건강하게 만들어야 했다. 

 

자존감의 형성은 성장 과정에서 맺어온 관계에 의해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는 하지만 고정되어 불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른이 된 이후 겪게 되는 경험들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튼튼하게 키워나갈 수 있다. 

 

우선 자기 자신을 공정하고 정확하게 볼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의 가치를 잘 알고 긍정할 줄 알아야 한다. 동시에 부족하고 서툰 부분에 대해서도 인정해야 한다. 그걸 감추고 부정하면 뻣뻣하고 방어적인 태도만 취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약한 부분이 있다. 그것이 약점이 되지 않게 만드는 건 그걸 인정하고 약점보다 강한 나의 장점을 돋보이게 하는 태도이다.

 

그렇게 나의 자존을 키워나간다고 해도 뿌리 깊어 쉬이 흔들리지 않는 나무 같은 존재가 되기는 어렵다. 자존감이 생성된다고 한들 고정불변의 감정은 아니기 때문이다. 언제나 상황과 상대에 따라서 오르락내리락하기 마련이다. 연애를 하다가 이별을 하면 자존감은 바닥칠 수밖에 없다. 가장 신뢰하고 사랑하던 상대에게 거부를 당했는데 고고하게 괜찮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무렇지 않은 건 불가능하다. 그것은 자존감이 강한 게 아니라 감정을 느낄 수 없는 것, 감정이 없는 상태이다.  

 

자존감이 건강하다는 건 매순간 높은 자존을 유지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자존감이 바닥 쳤을 때 얼마나 빠르게 회복 가능하가를 의미한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상처받기 싫어!’라고 떼쓰는 게 아니라 ‘윽. 상처받아 버렸네. 아프네. 근데 이미 받은 거 뭐 어쩔 수 없지.’라며 상처받았다는 사실보다 그것을 회복하는데 집중하는 것이다. 처음에야 어쩔 줄 모르는 게 당연하지만 상처받지 않고 살아가는 건 불가능하고 몇 번의 반복을 의미 없는 분노로 소모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나아질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해 버릇하다보면 자존감도 점점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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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현정

사랑과 연애 그리고 섹스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몇 번의 사랑을 경험하며 제법 깊은 내상을 입었지만 그만큼 현명해졌으며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보는 걸 수줍어하지 않게 되었다. 놀라운 재생능력으로 사랑할 때마다 소녀의 마음이 되곤 한다. 누군가의 장점을 잘 발견해내고 쉽게 두근거린다. 『사랑만큼 서툴고 어려운』, 『나를 만져요』 등을 썼으며, 블로그 '생각보다 바람직한 현정씨'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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