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를 이루는 수많은 악기 중에 어느 하나 연주하기 쉬운 악기는 없다. 하지만 오보에는 ‘정말’ 어렵고, 특유의 고음 때문에 클래식음악의 초심자도 그 실수를 단번에 잡아낼 수 있는 예민한 소리의 악기다. 하지만 오케스트라에서 오보에 소리가 여러 악기들의 소리를 뚫고 나올 때, 그 순간이란 꽃대를 타고 올라온 봄기운이 꽃봉오리에 단번에 터지는 것에 비유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순간을 선사한다. 그 순간을 위해 노력하는 KBS교향악단 부수석 김종아를 만나보았다.
어떤 계기로 오보에를 전공하게 되었나요?
여러 악기를 접하는 데에는 부모님께서 많은 역할을 하셨죠. 초등학교 4학년 전까지 첼로와 성악을 공부했고요, 그 이후에 오보에와 만났어요. 예원중학교와 서울예고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중 뉴욕 맨해튼 음대로 유학을 갔고, 예일대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KBS교향악단은 언제 입단했나요?
2012년 9월에 오디션보고 11월에 입단했어요. 첫 연주회에서 차이콥스키 관현악 모음곡 3번의 제2선율을 불었던 게 기억나네요(*오보에ㆍ클라리넷ㆍ플루트ㆍ바순과 같은 목관악기의 각 파트는 곡에 따라 2~4명의 단원으로 구성되어, 수석과 부수석이 제1선율이나 제2선율을 맡고는 한다)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의 관악기 단원들을 인터뷰하다보면 학창 시절에는 오케스트라 입단에는 별관심이 없었는데, 어떠한 계기로 입단하고 음악의 새로운 세계와 만난다는 얘기들을 많이 하더라고요. 김종아 씨도 높은 경쟁률을 뚫고 20대에 부수석으로 입단했는데요, 공부하면서 오케스트라 입단을 생각했었나요?
저도 사실 솔리스트를 꿈꾸었어요. 대학원 졸업 때까지도 그 생각은 변함없었죠. 대학시절에 오케스트라 수업이 많았는데, 그 때 ‘어떻게 하면 빠질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어요(웃음). 2012년 5월에 대학원을 졸업했는데, 아무 것도 안 하니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 음악가들은 무대에 홀로 서지만, 사실 소속감은 음악가 이전에 인간으로써 느끼고 필요한 것이잖아요. 그렇게 힘들어하던 찰나에 KBS교향악단 오디션 소식을 미국에서 접했어요.
입단 시험에서 어떤 곡을 연주했나요?
6곡 정도 했어요. 독주는 모차르트의 오보에 협주곡 C장조를 연주했고요. 오케스트라이다 보니 입단해서 연주할, 예를 들어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등에 나오는 오보에 솔로 부분을 불었어요. 한 명 뽑는 자리에 서른 명 정도 왔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첫 도전이었기에 마음부터 비웠죠.
오케스트라에서 공연 시작 전에 오보에가 A(라)음을 내면 모든 악기가 따라서 첫 음을 조율하는 모습을 흔히 보게 됩니다. 그래서 오보에를 ‘중심을 외치는 악기’라고 하기도 하는 것 같은데요, 왜 그런가요?
음악의 기본음(C=도)을 바탕으로 한 C조용 악기이고, 다른 악기에 비해 소리가 또렷하여 잘 들리기 때문에 아닐까요? 우리도 정확한 음을 얻기 위해 튜너(음정기)에 맞춰서 조율을 한 다음, 기본음을 불어요. 같은 음정이어도 헤르츠(㎐)에 따라 오케스트라의 음색과 분위기가 다릅니다. KBS교향악단은 현재 상임지휘자로 계신 요엘 레비 지휘자님의 성향에 맞춰 441헤르츠에 맞추는데, 다른 객원지휘자는 442헤르츠로 하는 경우도 있어요(*헤르츠(Hz)란 1초당 진동수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똑같은 ‘도’음이어도 441헤르츠와 442헤르츠의 차이가 느껴져요? 일반적으로 듣기에는 잘 모르는 경우도 많은데요.
연주자들에게는 예민한 문제에요. 오보이스트들은 그 진동수에 맞춰 리드를 깎는 것도 달라집니다.
오보에와 바순은 입으로 무는 리드(Reed)라는 나무 조각을 공기로 떨어 소리를 내는 원리잖아요. 그런데 이 리드라는 것이 아주 예민한 존재더라고요.
아마 ‘리드 스트레스’가 없는 오보이스트들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오보이스트나 바수니스트는 자신의 리드를 직접 깎아서 써요. 어찌나 예민한 작업인지 깎고 있을 때, 동생이 밥 먹으라는 소리에 화 낼 때도 있었어요(웃음) 리드 두께에 따라 소리는 물론 연주 컨디션도 달라져요. 저는 두꺼운 소리를 좋아해서 두꺼운 리드를 선호했어요. 그러면 소리는 묵직한데 기동성이 떨어지죠. 두꺼운 종이를 입으로 불 때, 얇은 종이보다 잘 안 떨리는 원리와 같다고나 할까. 그런데 KBS교향악단 입단 후에는 “아! 오케스트라는 타이밍이구나!”라는 걸 깨닫고는 지휘자의 지휘에 맞춰, 제 때 제 소리를 내는 리드를 선호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려면 리드가 얇아야 하죠. 다른 악기들이 연주하는 동안 오랫동안 쉬는 부분이 있어요. 리드악기인 오보에ㆍ바순ㆍ클라리넷을 연주하는 단원들은 그러다가 자신의 독주 부분이 다가오면 리드를 입에 물고 ‘첫 소리’를 낼 준비를 합니다. 리드는 늘 촉촉이 젖어 있어야 제 소리가 나거든요. 특히 오보에는 첫 음을 막힘없이 부드럽게 내는 게 참 어려운 악기이고요.
오케스트라 생활 속에서 독주 무대가 그리울 때도 있을 것 같은데요. 독주회를 한다면 어떤 곡을 들려주고 싶나요?
오보에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곡을 올리겠죠. 슈만(1810~1856)의 ‘로망스’, 모차르트(1756~1791)의 오보에 4중주를 꼭 연주할 거예요(*오보에 4중주는 오보에ㆍ바이올린ㆍ비올라ㆍ첼로로 구성된다)
KBS교향악단은 매달 정기연주회를 포함하여 3~8회의 공연을 합니다.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다면?
2015년 공연인데요, 당시 수석 객원지휘자로 계시던 곽승 지휘자님과 함께 한 10월의 연주회(제699회 정기연주회)에요. 부수석인 제가 슈만의 교향곡 4번의 제1선율을 연주했죠.
슈만 교향곡 4번! 굉장히 어렵잖아요. 오보에 솔로도 많고요.
합주 중에 나오는 독주는 모두 저의 책임이니, 손가락이 틀리거나 지휘를 잘못 봐서 마디수를 잘못 세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잠이 안 올 때도 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이러한 긴장감들이 제 자신을 단련시키죠. 그래서 ‘경험을 쌓자!’고 마음을 비웠지만 공연을 준비하는 내내 긴장은 사라지지 않더군요. 곽승 지휘자님께 많은 격려와 질타를 받으면서 준비했어요. 그러면서 더 많은 생각을 하고, 음악을 대하는 새로운 자세를 배웠죠. 여러 정기연주회를 통해 지휘자와 단원들, 관객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항상 무대를 즐기려고 노력합니다. 악단의 선배님들도 제가 중요한 솔로를 맡게 되면 응원해주시기도 해요. 오케스트라는 같이 한 마음이 되어 연주하는 것이니 제가 실수를 해서 속상하면 같이 속상한 거죠. 그런 마음을 잘 아시니, 같이 긴장하고 응원해주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올해 3월 공연(제704회 정기연주회)도 생각나네요. 그 때는 타악 연주자 이글린 글레니와 함께 우리 오케스트라가 슈완트너(1943~)의 타악기 협주곡을 연주했어요(*영국 출신의 타악 연주자 이블린 글레니는 8살부터 청각을 잃기 시작해 12살 때는 아예 듣지 못하게 됐다. 피아니스트가 되려던 그녀는 큰 좌절을 겪은 뒤에 마림바(타악기)에 빠져들면서 꿈을 다시 가꾸어 나갔다. 소리를 귀로 듣는 대신 피부에 전달되는 진동으로 감지하는 훈련을 계속 했다. 그래서 무대에 맨발로 오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KBS교향악단 제704회 정기연주회 영상. 요엘 레비(지휘)ㆍ이블린 글레니(타악)가 연주한 슈완트너의 타악기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오케스트라에서 오보에 단원으로, 그것도 수석주자의 책임을 분담하는 부수석으로 산다는 건 어떤가요?
일단 오보에는 솔로 부분이 다른 악기에 비해 굉장히 많고, 음악적으로 책임져야 할 것도 많아요. ‘단원’의 한명으로 재직하지만, 사실 매번 ‘독주자’가 되는 거죠. 여러 악기들의 소리를 뚫고 나오는 오보에 소리를 상상해보세요.
연주 중에 틀린 적도 있나요? 만약 그러면 일종의 ‘시말서’ 같은 것도 쓰나요?
시말서까지는 안 쓰고(웃음) 스스로 먼저 실망하고 속상해하죠. 2015년 3월 공연(제691회 정기연주회)에서 프로코피예프(1891~1953) 작곡의 피아노 협주곡 5번을 요엘 레비 지휘자님과 연주할 때였어요. 연주 중에 피아니스트가 한 마디 일찍 나온 거예요. 곧 제 차례였는데 당황하여 순간적으로 “어? 이거 맞나? 맞나?” 하면서 갈팡질팡하며 연주했죠. 크게 티는 안 났는데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모두 안 맞았어요. 상대방의 ‘실수’가 있다고 해도, 그것에 순간적인 판단과 대처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계기였어요.
해외 오케스트라마다 재직 중의 단원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행하는 단원 오디션이 있잖아요. 한국의 오케스트라도 점점 이러한 관행을 도입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런데 참 예민한 문제에요. KBS 소속인 KBS교향악단이 2012년에 재단법인으로 출범하려 할 때에 단원들이 원래 소속이던 KBS를 퇴사하고 재단법인으로 재입사하는 원칙을 내세웠지만 KBS 소속으로의 유지가 교향악단의 연주력 강화와 보호 측면에서 맞다는 의견을 내놓았고요. 2015년에도 ‘재단법인의 운영규정에 따르면 매년 오디션을 실시해 단원을 3%씩 내보내게 돼 있다’며, ‘좋은 오케스트라를 위한 평가가 아니라 경비절감ㆍ인적청산만을 위한 것’이라며 단원들의 신분 문제를 놓고 충돌이 있었잖아요.
KBS 교향악단은 음악적, 또 인간적으로 서로를 잘 챙겨주는 분위기에요. 현재 단원평가를 상임지휘자에게 위임했고, ‘상시평가’ 제도를 하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연습도 일종의 평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새로운 곡을 연주할 때, 연습 첫 시간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자신이 연주할 곡을 받고 얼마나 연습을 해왔는지가 그 단원의 성실성을 파악하는 척도가 되거든요. ‘공연 중 실수’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생하지만, ‘연습을 위한 준비’는 그렇지 않잖아요.
1956년 창단 이래, 현재 8대 상임지휘자 겸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요엘 레비는 개인적으로 어떤 지휘자라고 생각하나요? 재단법인 이후 혼란스러운 내부 사정을 음악적으로 잘 타개해 보려고 여러 모로 노력하는 지휘자라는 생각이 들어요. 2015년 11월 제700회 정기연주회에서는 말러가 작곡한 교향곡 2번 ‘부활’을 ‘다시, 살아나리라’라는 제목과 함께 내걸어 인상적이었습니다.
음악적인 면과 인간적인 면이 있겠죠? 음악적으로는 완벽주의자입니다. 단원들이 자신의 역할을 잘 숙지하고 있나 확인하고 또 확인하죠. 그런 레비 지휘자가 만든 음악은 정직하고 반듯한 남자에 비유하고 싶어요.(웃음)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재미가 없다고도 하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그 반듯함이 참 좋아요. 지휘봉을 들지 않은 인간 레비는 동네 할아버지와 같은 친근한 느낌이에요. 한국음식도 잘 드시는데요, 단원들과 함께 KBS방송국 내의 구내식당을 이용하시기도 해요. 지휘자에게 ‘소통’이란 참 어려운 단어에요. 그걸 위해 늘 노력하시죠. 연습할 때나 공연 때 인상을 너무 많이 쓰시기에 그 이유를 여쭤봤더니 단원들을 향한 게 아니라 내 음악을 위한 것이라며, 집중할 때마다 있는 버릇이라고 하시더라고요(*1950년 루마니아 태생의 유태인 요엘 레비는 1978년 브장송 지휘콩쿠르 우승 이후, 지휘자 로린 마젤(1930~2014)이 이끄는 미국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부지휘자로 일했으며 1988년부터 2000년까지 애틀랜타 심포니 음악감독을 지냈다. 또 벨기에 브뤼셀 필하모닉 수석지휘자, 일 드 프랑스 국립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 등을 역임했다. 특히 애틀랜타 심포니에 12년간 재임하면서 보여준 리더십이 “오케스트라의 예술적 수준을 향상시켰다(영국 <그라모폰>)”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김종아 씨가 느끼는 KBS교향악단만의 특징과 분위기가 있다면?
이 역시 음악적인 것과 인간적인 면으로 나눌 수 있어요. 일단 음악적으로는 무게감 있는 사운드를 꼽고 싶어요. 이게 또 인간적인 것과 관계되는데요, 다른 오케스트라에 비해 연륜이 많은 단원들이 많고 그 시간이 녹아든 것 같아요. 그리고 연륜 있는 단원들이 함께 해온 시간이 많으니 인간적으로 서로를 잘 챙겨주는 것도 있고요. 저도 ‘오보에 부수석 김종아’이자 때로는 어머니뻘의 선배 단원들의 보살핌을 받는 ‘종아야~’로도 생활하고 있고요. 냉정함은 찾아볼 수 없는, 중후함과 따뜻함이 많은 악단입니다.
부수석 김종아는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7월의 제708회 정기연주회 준비로 바쁘다. 이번 공연은 요엘 레비의 지휘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1864~1949)의 ‘네 개의 마지막 노래’(소프라노 아가 미콜라이 협연)와 말러의 교향곡 4번을 연주한다. 그리고 9월 13일부터 18일까지 이탈리아 로마와 볼차노, 오스트리아 린츠를 순회하는 유럽 투어를 떠나 요엘 레비의 지휘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손열음 협연)과 브루크너 교향곡 3번을 연주한다. 이 외에도 12월까지 KBS교향악단의 달력은 정기연주회와 특별연주회로 빽빽하다. KBS교향악단을 만날 수 있는 일정은 홈페이지(www.kbssymphony.org)에 잘 정리되어 있다.
어느 특정 작곡가나 연주자를 애호하는 클래식음악의 마니아처럼, 한 오케스트라를 애호하고 편애하는 방식도 드넓은 클래식음악을 공부하고 알아가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어느 특정 악단에 특정 악기나 단원을 사랑하여 그 악기 소리를 기다리는 재미도 쏠쏠하고. 마음속에 ‘자신만의 오케스트라’를 하나씩 가져보자.
송현민
음악평론가로 음악 듣고, 글 쓰고, 음악가들을 만나며 책상과 객석을 오고간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공부했고, ‘한반도의 르네상스’를 주장했던 음악평론가 박용구론으로 제13회 객석예술평론상을 수상했다. 월간 <객석>을 중심으로 취재 및 집필 활동을, KBS 1FM에서 방송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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