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리뷰] ‘상주음악가’를 아시나요?
올해 각 예술 기관에서는 어떤 음악가들을 상주 아티스트로 맞이했고, 또 이들과 함께 어떤 프로그램들을 준비하고 있을까?
글 : 묘점원 (뉴스레터 '공연장 옆 잡화점')
2025.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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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 - 라벨: 피아노 독주 전곡집 앨범 이미지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2025/26 시즌 영국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아티스트 포트레이트(Artist Portrait)’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조성진은 올해 9월 런던 심포니와의 유럽 투어를 통해 ‘아티스트 포트레이트’ 활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아티스트 포트레이트’는 무엇일까? 런던 심포니의 ‘아티스트 포트레이트’는 특정 아티스트의 예술세계를 집중 조명하는 기획 프로그램으로, 상주 음악가 또는 상주 작가(Artist-in-Residence)와 유사한 개념이다. 공연장이나 음악 단체, 미술관 등 다양한 예술 기관들은 이러한 상주 아티스트 제도를 통해 아티스트를 집중 조명하고, 동시에 해당 기관의 예술적 방향성과도 연결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조성진은 앞서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 중 하나로 꼽히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2024/25 시즌 상주 음악가로도 선정되어 5개의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하여 선보이고 있다.

 

국내에도 상주음악가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을 발굴하여 꾸준히 지원해온 금호문화재단의 금호아트홀도 상주음악가를 선정하고 있는데, 그 취지에 맞게 재능있는 한국의 음악가들을 상주음악가로 매년 선정하고 있다. 

 

상주 아티스트는 단순한 협업의 차원을 넘어, 한 시즌 동안 해당 예술 기관의 정체성을 상징하고 이끌어가는 ‘예술적 앰버서더(ambassador)’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공연 프로그램들은 때로는 실험적이기도 하고, 아티스트의 의도가 많이 투영되었기에 관객들에게 더욱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그래서 상주 아티스트와 함께 기획되고 소개되는 프로그램들을 들여다보는 일은 흥미롭다. 단순히 공연을 관람하는 것을 넘어, 해당 아티스트가 어떤 생각과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또 그것이 어떻게 무대 위에서 실현되는지를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올해 각 예술 기관에서는 어떤 음악가들을 상주 아티스트로 맞이했고, 또 이들과 함께 어떤 프로그램들을 준비하고 있을까?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 중 하나로 꼽히는 뉴욕 필하모닉의 2024/25 시즌 상주 음악가로 피아니스트 유자 왕이 함께한다. 파워풀한 테크닉과 감각적인 패션으로 주목받는 유자 왕은 클래식 음악계의 슈퍼스타로, 이번 시즌 뉴욕 필하모닉과 함께 협연, 리사이틀, 신작 초연 등 다양한 무대에 오른다. 특히, 그녀는 스트라빈스키, 라벨, 거슈윈 등 개성 강한 레퍼토리를 중심으로 오케스트라 협연뿐만 아니라 실내악 무대, 현대음악 작곡가 토마스 아데스, 뉴욕 시티 발레단 수석 무용수와 함께 하는 무대 등 다양하고 신선한 공연들을 선보인다. 2025/26 시즌에는 세계 무대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 중인 젊은 첼리스트 중 한 명인 영국 출신의 세쿠 카네-메이슨이 뉴욕필의 상주 음악가로 활약할 예정이다.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뉴욕 필하모닉과 함께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미국 오케스트라인 시카고 심포니의 2024/25시즌의 상주음악가는 러시아 출신의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다. 2011년 루빈스타인 콩쿠르, 차이콥스키 콩쿠르를 우승하며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피아니스트다. 2025년 가장 바쁜 피아니스트 1위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한편 2025/26 시즌의 상주 음악가는 세계적인 메조소프라노 조이스 디도나토다. 조이스 디도나토는 시카고 심포니와 파블로 네루다의 시에 곡을 붙인 가곡 사이클 공연 외에도 여러 음악 교육 프로그램에도 참여한다. 

 

드레스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독일의 명문 악단 드레스덴 필하모닉의 2024/25 시즌 상주 음악가로는 바이올리니스트 아우구스틴 하델리히가 선정되었다. 하델리히는 2022년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올해의 음악가’로 선정되어 한국에서도 협연과 실내악 등 다양한 무대를 통해 관객들과 만난 바 있다. 그는 어린 시절 화재 사고로 심각한 화상을 입고, 악기 연주가 어렵다는 진단을 받기도 했으나, 이를 극복하고 현재는 뛰어난 기교와 깊이 있는 음악성으로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비르투오조 연주자로 활약 중이다. 한편, 상주 작곡가는 파스칼 뒤사팽으로, 시즌 동안 새 작품을 드레스덴 필하모닉에서 초연한다. 뒤사팽은 2013년 통영국제음악제의 상주 작곡가로 초청된 바 있고, 지휘자 정명훈이 그의 작품을 초연하는 등 한국과도 깊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카네기홀

세계적인 클래식 공연장의 상징인 뉴욕의 카네기홀은 ‘상주 음악가’라는 명칭 대신, 특정 아티스트를 시즌 내내 집중 조명하는 ‘Perspectives’ 시리즈와 상주 작곡가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는  ‘Composer’s Chair’를 운영하고 있다. 2024/25 시즌에는 피아니스트 미츠코 우치다가 ‘Perspectives’ 아티스트로 선정되어 다양한 협연과 리사이틀을 선보인다. 또한, 멕시코 출신의 작곡가이자 그래미상 수상자 가브리엘라 오르티가가 상주작곡가로 선정되어 새 작품 초연을 포함한 그녀의 여러 작품들이 시즌 전반에 걸쳐 소개될 예정이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카네기홀은 연주자와 작곡가의 예술 세계를 깊이 있게 조명하며, 동시대 음악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로열 알버트 홀

런던을 대표하는 다목적 콘서트홀인 로열 알버트 홀은 ‘Associate Artists’ 프로그램을 통해 각 시즌마다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과 협업하고 있다. 2025년에는 인도 클래식 음악과 현대적인 사운드를 결합한 음악으로 주목받고 있는 러실 란잔(Rushil Ranjan)과 아비 삼파(Abi Sampa)가 새로운 ‘Associate Artists’로 선정되었다. 이들은 로열 알버트 홀에서 단독 공연뿐만 아니라 교육 프로그램, 커뮤니티 아트 프로젝트 등 다채로운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클래식뿐 아니라 월드뮤직과 크로스오버까지 아우르는 로열 알버트 홀의 아티스트 협업은 공연장의 예술적 스펙트럼을 한층 확장시키고 있다.

 

이처럼 전 세계의 주요 공연장과 오케스트라들은 각자의 정체성과 비전을 반영한 상주 아티스트 프로그램을 통해 아티스트들과 긴밀하게 협업하고, 그들의 예술 세계를 심도 깊게 조명한다. 상주 음악가는 예술기관과 동행하며 자신만의 기획을 선보일 수 있고, 관객들 역시 더 깊고 입체적인 예술 경험을 누릴 수 있다. 한 시즌을 함께 호흡하는 아티스트의 무대에 귀 기울여보는 것, 공연을 즐기는 또다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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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공연 기획사 '크레디아'에서 발행하는 뉴스레터. 클래식 공연 기획자들이 직접 무대 비하인드 스토리와 음악, 예술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