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2일 저녁, <누들로드>, <요리인류>를 연출한 이욱정 PD의 책 출간 기념회가 빨간책방 카페에서 열렸다. 신간 『이욱정 PD의 요리인류키친』은 보통의 ‘쿡 북’과는 달리 다큐멘터리 취재과정에서 어깨너머로 본 것들, 만난 사람들에 대한 얘기가 주를 이루는 책이다.
이욱정 PD는 강연을 시작하기 전 먼저 요리의 정의에 관해 설명했다. 그에게 ‘요리’란 “자연상태의 식 재료를 자기가 소화하고 섭취할 수 있게 바꾸는 과정”으로 “인간 상상력의 집합체이기도 한 것”이라고 전했다. 시사교양 프로그램 <추적 60분>에 배치되었을 때도 ‘학교 급식 문제’를 취재했을 정도로 음식에 대한 남다른 그의 열정은 이번 출간 기념회에서도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극한의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생존의 레시피
이욱정 PD는 <요리인류>에서 찾아갔던 곳 중 대비되는 두 지역을 먼저 언급했다. 지구 상에서 가장 추운 곳 ‘러시아 툰드라’에 대한 얘기로 말문을 연 그는 인간이 접근하자 소용돌이 모양으로 뛰는 순록들을 보여주며 당시 현장에서 경험했던 무용담을 털어놓았다.
“순록 떼들은 인간이 접근하면 소용돌이를 일으킵니다. 일종의 방어라고 할 수 있겠죠. 이 장면을 촬영할 때 굉장히 위험했습니다. 왜냐하면 녹용이 흉기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녹용에 긁히기만 해도 큰일 나는데 병원을 갈 수 없는 상황이니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재미있는 점은 인간을 경계하는 것 같아 보이는 순록이 사실은 인간 곁을 떠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인간은 순록에게 필요한 것을 주고, 순록은 인간에게 필요한 것을 주고. 농사를 지을 수 없는 툰드라에서 얻을 수 있는 식 재료는 순록이 거의 유일하기 때문에 인간과 공생관계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는 갓 잡은 순록의 피를 마시는 ‘코미족’이 야만적이고 미개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요리는 문화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 옳으며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탄생한 최적의 방법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보급이 가능해진 빵을 피에 적셔 먹는 ‘코미족’의 모습에서 나라 간, 종족 간에 주고받는 인류의 식문화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다음으로 이욱정PD는 툰드라와 반대로 지구 상에서 가장 뜨거운 곳 중 하나인 ‘에티오피아’를 이야기했다. 그는 서양에서 관상용으로 쓰이는 가짜 바나나를 조리해서 먹는 종족을 소개하며 배탈이 날까 봐 가짜 바나나의 섬유질을 발효시켜 빵으로 만드는 점 등이 툰드라 ‘코미족’의 순록의 피와 같은 지혜의 레시피라고 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빵이 하나의 전투식량이 된 거죠. 에티오피아 부족의 정체성을 일깨워준 전통음식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춥거나 더운 곳에서도 인간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듭니다. 저는 유명 레스토랑의 스타 셰프만 요리사가 아니라 이분들 또한 요리사라고 생각합니다. <요리인류>를 보면 단순하고 원시적인 레시피가 많이 나오는데, 전 그것이 더 훌륭해 보일 때가 많습니다.”
이욱정 PD의 인생을 바꾼 터닝포인트
어릴 때부터 먹는 데 관심이 많았다는 그는 요리를 좋아하는 부모 덕분에 여러 나라의 음식을 맛보며 요리에 대한 호기심을 키웠다.
“다른 나라 음식들을 먹어보잖아요. 그럼 궁금해지죠. 이탈리아는 어떨까? 일본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음식을 만들어 먹었을까? 그게 이어졌던 거예요. 대학원에서 인류학을 공부했는데 그때 쓴 석사 논문도 이슬람의 음식 금기가 주제였습니다. 논문을 쓸 때 참고하기 위해 포천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몇 개월간 함께 숙식을 했습니다. 그 분들이 제공해 준 음식이 워낙 맛있어서 금방 친해졌는데, 거기에서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음식으로 친해진다는 것을요. 예를 들어, 한국 음식을 잘 먹는 외국인에게 우리는 친밀감을 느낍니다. 음식이 우리를 보여주는 중요한 표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인생의 첫 번째 전환점은 다큐멘터리 <누들로드>다. 국수를 먹는 사람들을 보고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는 이욱정 PD는 다큐멘터리를 기획하면서 ‘그 음식은 언제부터 우리 식탁에 올랐을까, 백 년 후에도 후손들이 이 음식을 먹게 될까’를 고민했다고 한다. 국수를 통해 우리의 문명사를 알아보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그는 아예 이 길로 뛰어들어야겠다는 결심을 세웠다. 따라서 그의 두 번째 전환점은 120년 전통의 프랑스 요리학교 ‘르 꼬르동 블루’다. 음식 전문 프로듀서가 되려는데 가지고 있는 지식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그는 무작정 전 재산을 털어서 ‘르 꼬르동 블루’에 입학했다.
“휴직을 하고 요리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기본부터 가르친다는 말을 믿었는데 동기를 백 명이라고 친다면 그중 90명은 실력자였습니다. 칼이 굉장히 많았는데 다들 그것을 가는 사이 저는 아무것도 못 했습니다. 난감함에 땀이 흐르면서 ‘망신 제대로 당하겠구나’ 생각했죠. 이 처참한 과정들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유학생들을 모집해
고된 하루가 반복되는 와중에도 이욱정 PD는 다른 나라 사람들과 끈끈한 우정을 쌓았다. 포르투갈 사람에게는 포르투갈 요리를, 브라질 사람에게는 브라질 요리를 배우며 인류의 음식문화가 같으면서도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현 직업을 포기하고 오직 요리를 위해 ‘르 꼬르동 블루’에 온 사람들의 열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는 이욱정 PD는 꼭 다시 돌아와 음식 전문 프로듀서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로부터 10년 정도가 지나면 ‘동기들이 여전히 요리에 온 열정을 쏟아 붓고 있는지’와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이욱정 PD의 요리인류키친』 200% 즐기기
그는 책 『이욱정 PD의 요리인류키친』에 다큐멘터리 <요리인류>의 이야기를 남김없이 쏟아 부었음을 강조했다. <요리인류>에서 소개된 레시피 중 한국인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엄선하여 집에서 직접 만들어보기도 했다는 그는 독자들에게 『이욱정 PD의 요리인류키친』을 좀 더 재미있게 즐길 방법을 소개했다.
“먼저 다큐멘터리 <요리인류>를 시청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책에 있는 레시피들 중 최소 하나라도 따라 해보고, 만든 음식을 주변 사람들과 같이 나눠 먹어 봅시다. 요즘 왜 ‘쿡방’이 유행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우리가 외롭고 힘들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무언가를 만들면 여럿이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러니 같이 먹어야 더 맛있게 느껴지고, 그 순간이 재미있거나 행복할 겁니다.”
끝으로 그는 5월에 만나볼 수 있는 신작 다큐멘터리 <요리인류 시즌 2>를 언급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요리인류 시즌2>는 오지를 찾아다녔던 전 편과 달리 도시를 주제로 합니다. 독특한 이야기가 있는 도시에서 요리하는 사람들을 취재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요리를 함으로써 우리가 인간이 되었고, 요리를 통해 행복과 사랑을 얻었다는 것’을 시청자들에게 끊임없이 전해주고 싶습니다. 그 뜻이 부디 잘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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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욱정 PD의 요리인류키친이욱정 저 | 예담
《이욱정 PD의 요리인류 키친》은 다큐멘터리 [요리인류]와 [누들로드]에 미처 담지 못한 이야기, 그 남겨진 재료를 엮어서 만든 책이다. 훌륭한 셰프는 ‘이런 게 요리 재료가 될까’ 하고 버려지는 재료로 최고의 요리를 해내는데, 이욱정 역시 그들처럼 남겨진 재료로 멋진 요리를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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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원(예스24 대학생 리포터)
'소통하는 문화 얼리어답터' 예스24 리포터 김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