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노동의 일상
우리가 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난 이상, 자유롭게 집필생활에만 집중하는 것처럼 보이는 여느 작가들의 집집에도 안 아픈 어르신 하나 없는 집이 없을 것이다. 부모들의 문제로 보이는 이 문제는 머지않아 우리 자신들의 문제가 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도 안 될 것이고.
글ㆍ사진 임경선 (소설가)
2015.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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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한 작가생활’ 연재칼럼만 주욱 보다보면 대개 작가생활이라 하는 것은 개인작업실이나 단골카페에 가서 과묵하게 글을 쓰다가 때로는 담당편집자와 회의를 하고 세월이 일정기간 지나면 책이 나오고 독자들을 만나고…대략 이런 안온한 그림을 연상하기 쉽지만 저술업은 직업일 뿐, 직업 외에도 엄연한 ‘생활’이 있다. 가령 가족들의 끼니 걱정, 아이의 교육 걱정. 그리고 40대인 우리로서는 이제 너무나 당연한, 부모 걱정이 있다. 이 중에 단연 스트레스 갑은 부모 걱정이다.
 
다른 건 몰라도 장편소설을 쓰고 있는 동안, 75세 이상의 노령인 양가 부모 중 누구라도 몸이 아프면 당사자도 물론 그렇지만 자식들도 참 괴롭다. 늦은 오후부터의 시간을 물리적으로 가사나 육아에 할애한다고 쳐도 소설을 쓰는 동안에는 하루의 대부분을 머릿속에서 소설 생각만 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데, 양가 부모 중 누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신경이 그 쪽으로 곤두서게 된다. 장편소설 『기억해줘』를 쓰는 동안에는 시어머니가 골절로 입원하다보니 자연스레 아흔을 넘긴 연로한 시아버지는 집에 홀로 있게 되었다. 그러니 양쪽으로 돌봄과 간병인이 필요한 상황. 나는 직장생활을 안 한다는 이유로(프리랜서면 낮에 다 노는 줄 안다) 시누이들은 수시로 전화해서 앓는 소리를 했고 그때마다 나는 소설의 세계 속에 빠져있다가 화들짝 놀라 손을 멈추고 심부름센터처럼 출동해야만 했다. 달달하고 애틋한 내용의 글들을 매만지다가 우울하고 무거운 노인간병이라는 짐을 마주할 때면 솔직히 숨이 컥 막혔다. 한참 술술 잘 쓰여지는 와중에 하소연의 전화라도 걸려오면 흐름이 끊겨 미칠 지경이었다.
 
그 다음 장편소설을 쓰는 지금도 시어머니는 다시 장기입원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아버지는 초기 치매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양쪽으로 전문간병인을 구해야 함은 물론이고(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는 일은 쉽지가 않다), 시아버지의 치매증상을 위한 약을 멀리 가서 타와야 했고, 문병 가서는 시어머니의 ‘답답해죽겠다, 어서 죽고 싶다’라는 괴로운 말을 들어야 했고 시댁에 가서는 시아버지의 며칠 된 눈곱을 떼드리고 냉장고 내부를 신경써야 했다. 이따금 치매증상이 올라와서 욱 하고 호통을 치면 그것도 감내해야 했다. 지금 나는 여자와 남자의 격정적인 사랑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집중력과 체력은 수시로 분산됨은 물론이고 소설속의 열정적 세계와는 달리 현실은 서글픈 나이듦의 무기력한 증상들을 적나라하게 목격하고 있어서 기가 빨리는 것은 물론이요, 한 번 푸석해진 감정이 다시 촉촉해지기가 어찌나 힘든지. 친정이라고 사정이 다르지도 않다. 친정아버지는 파킨슨병을 가지고 있어 새어머니의 짜증을 들어주고 지원사격을 해야만 한다. 힘겹고 우울하다. 이런 말을 하는 내가 이기적이라는 것은 알지만 이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유럽의 한 도시로 홀연히 떠나서, 제주도의 바다 보이는 집을 빌려서, 하다못해 산 속에 들어가서 몇 달이건 고독을 마주하며 소설에만 집중한다 ? 어떤 작가들의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부러움, 아니 정확히는 질투에 미칠 것만 같지만, 생활인으로서의 나에게 부과된 노인부양의 의무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기에 불평은 할 수 없다. 그러나 겉으로 말만 안 했지, 우리가 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난 이상, 자유롭게 집필생활에만 집중하는 것처럼 보이는 여느 작가들의 집집에도 안 아픈 어르신 하나 없는 집이 없을 것이다. 부모들의 문제로 보이는 이 문제는 머지않아 우리 자신들의 문제가 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도 안 될 것이고.
 
P.S. 부모들의 나이듦을 보면서 새롭게 관심을 갖고 읽게 된 책들, 그 중에서도 많이 공감했던 몇 권을 소개한다.
 
 
책소개 
 

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툴 가완디 저/김희정 역 | 부키 | 원서 : Being Mortal

그동안 현대 의학은 생명을 연장하고 질병을 공격적으로 치료하는 데 집중해 왔다. 하지만 정작 길어진 노년의 삶과 노환 및 질병으로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하고 인간답게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 한다. 이를 성취해 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한계를 인정할 때 비로소 인간다운 마무리를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딴 얘기 좀 하면 안 돼?

라즈 채스트 글,그림/김민수 역 | 클

‘죽음’이란 말을 입에 담지만 않으면 절대 ‘죽음’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부모. 그리고 그들이 아흔 살이 넘어 병치레를 하다가 세상을 뜨기까지 긴 이별의 과정을 겪어낸 외동딸. 이 책은 만화가 라즈 채스트 자신이 만만치 않은 성격의 부모와 함께 보낸 마지막 몇 년의 기록이다. 저자는 어느 날 들른 부모의 집 구석구석에 내려앉은 더께를 보며 무언가 심상치 않은 전조를 느낀다. 그때부터 정기적으로 부모를 찾아가면서, 노인 전문 변호사에게 조언을 구하고, 노인복지시설로 부모를 이사시킨 후에도 수시로 병원을 드나들며 병구완을 한다. 결국 부모의 죽음을 마주하고 난 이후의 날들까지, 정신적, 육체적으로 내리막길에 들어선 부모 곁을 지키고 그들을 떠나보낸 지극히 현실적인 과정을 꼼꼼하게, 그리고 특유의 따뜻한 위트를 잃지 않고 그려낸다.

 

 

사와무라 씨 댁의 이런 하루

마스다 미리 글,그림/권남희 역 | 이봄

이 만화는 일본의 주간지 〈문예춘추〉에 인기리에 100회 가량 연재한 것이다. 마스다 미리는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키워드들을 나란히 놓고 바라보다가 자연스럽게 ‘평균 연령이 높은 가족’이 떠올랐다고 한다. 40살의 딸이 부모님 집에서 산다는 설정은, 요즘의 새로운 가족 형태이기도 하다. 노인이 된 부모를 모시는 일은 사회적인 문제로 다가온다. 그런데 이 만화는 조금 다른 시선을 보여준다. 부모님과 함께 산다는 것은, 이제 어른이 된 자식이 부모님을 이해할 시간을 갖을 수 있다는 것이다.

 

 

 

 

 

 

[관련 기사]

- 임경선 “사랑은 관대하게 일은 성실하게” 〈Across the universe〉
- 완전한 개인의 탄생을 환영하며 : 임경선 ‘나라는 여자’
- 좋은 편집자란
- 밥벌이의 덫
- 읽을 책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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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선 #나이듦 #돌봄노동 #생활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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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koko111

2015.10.21

작가님의 이런 현실적인 이야기.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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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선 (소설가)

『태도에 관하여』,『나의 남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