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래’라는 말은 푸른 바다에서 매끈한 몸으로 점프하는 장면을 떠올린다. 우리가 만든 책들이 그렇게 넘치는 생명력으로 독자들의 삶을 도약시키고 고양시키는 자원이 되기를 바라며 이름 지었다. 돌고래는 지적이고 소통과 협업에 능하고 유쾌하고 재치 넘치는 동물로 유명하다. 돌고래 출판사도 다양한 연구자들과 작가, 번역가,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등과 협업해 알차고 아름다운 책, 흥미롭고 매력적인 책들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돌고래 출판사가 특별히 관심을 갖는 주제는 전통적인 인문학의 주제들 중에서도 돌봄, 모성, 개성, 죽음, 이야기, 신화, 상징, 의례(종교), 생태, 동물, 식물, 다양성, 창조성 등이다. 이제 막 세 돌을 맞이한 아기 돌고래지만 앞으로 꾸준히 인류의 가장 오래된 이야기와 지혜를 시대에 걸맞은 언어로 다듬어 소개하고 싶다.
바버라 G. 워커 저/여성 상징 번역 모임 역 | 돌고래
상징은 인류가 1만 년 이상 지혜를 축적하고 전수해 온 중요한 도구다. 우리는 문명의 시작을 메소포타미아에서 문자가 발명된 BC 4000~5000년경이라고 배워왔지만, 사실 인류는 그 훨씬 전부터 종교적 이해를 발달시키고 높은 수준의 문화를 유지해 왔음이 최근 고고학적 연구를 통해 속속 밝혀지고 있다.
바버라 워커 할머니가 30여 년간 동서고금의 종교 경전들과 밀교 저작들, 신화와 민담들을 연구해 집필한 이 책에는 600여 개의 상징들이 정성스러운 그림들과 함께 담겨 있다. 태곳적에는 어떤 의미였고 가부장제 역사를 거치며 그 의미와 용례가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에 관한 친절한 설명과 함께.
가령 비둘기는 그리스로마 고전기만 해도 아프로디테/베누스의 상징으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찬미하는 상징이었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원시 종교에서는 신의 영혼(그 자체로 여성적이었던)을 상징했다고 한다. 어쩐지 비둘기를 볼 때마다 평화나 순결 같은 말에 다 담기지 않는 힘이 느껴지지 않던가?
여성을 불결하고 오염된 존재로 보는 가부장적 종교가 제도화되기 이전까지, 인류는 여성적인 것과 남성적인 것의 조화를 중요시하고 선과 악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으며 인간의 한계와 가능성에 대해 훨씬 더 겸손하고도 진취적인 태도를 확립하고 가르쳤던 것 같다. 이런 오래된 지혜를 되살려내는 것은 가장 깊은 내면에서부터 우리를 억압하거나 북돋우는 힘을 알아차리는 첫걸음이 되리라 믿는다.
사이 몽고메리 저/맷 패터슨 그림/조은영 역 | 돌고래
동물에 관한 감동적인 논픽션을 써온 사이 몽고메리가 코로나 시기 거북 구조 센터에서 일하면서 만난 매력적인 사람과 동물들, 그들과 함께 겪은 사건들을 기록했다. 최신의 과학적 정보와 민담 속 신비로운 이야기들과 자신의 경험을 아우르는 황금비율을 꿰뚫고 있는 이 노련한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시간’(그리고 ‘나이듦’)에 관한 깊고 울림 있는 통찰까지 담아냈다. 다양한 문명권의 창조 신화에 등장할 정도로 오래전부터 인간이 귀히 여겼던 거북은 오늘날 한국에서는 아예 찾아볼 수도 없고 북미에서도 서식지와 이동 경로가 파괴되어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저마다 다른 이유로 거북에 매혹되고 거북을 돕는 이들의 사연도 흥미롭다. 무엇보다 책에 등장하는 거북들이 자신의 상처 입고 훼손된 몸을 오랜 시간을 들여 회복해 가는 과정은 읽는 이들에게 큰 감동과 함께 생명력을 전염시킨다.
함께 읽는 다른 출판사의 책
에드 용 저/양병찬 역 | 어크로스
우리가 오감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게 얽혀 있는 감각에 관한 ‘굉장한’ 정보를 담은 책. ‘시각’에만 너무 많이 의존하는 인간이 얼마나 세계를 좁게 누리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만드는 책이다. 소리로 만지거나 냄새로 보는 다양한 동물들의 사례가 세계의 풍요로움을 우리 앞에 활짝 열어젖힌다. 물론 이 책은 어떤 종의 감각 능력이 더 뛰어난지 더 열등한지 판단하지 않는다. “우월성에 관한 책이 아니라 다양성에 관한 책”이기 때문이다. 세계가 다양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가 각자 가장 ‘고유해지는’ 것이라는 사실도 새삼 깨닫게 된다. 정답 없는 생명의 세계를 이토록 아름답게 지켜온 수많은 종들의 고유한 선택들이 방대하게 펼쳐진다. 너무 많은 동물들의, 너무 많은 감각 활용 사례들이 등장해 책이 두꺼워지기는 했지만, 아마 저자가 담고 싶었던 내용에 비하면 아주 압축되고 요약된 버전일 것이다. 감사한 마음으로 아껴서 읽었다.
희정 저 | 한겨레출판
저자가 장례지도사의 일을 배우고 그 일에 참여하면서 만난 시신 복원 명장, 여성 장례지도사. 수의 제작자, 선소리꾼, 화장기사, 장묘업체 운영자, 반려동물 장례지도사 등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갖고 기록 작업을 이어온 작가의 책이기에 장례 노동 현장의 이야기들이 생생하게 다뤄지지만, 그에 못지않게 이번 책에서는 죽음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는 마음에 관한 저자 자신의 숙고가 더 많이 담겨 있다.
또 이 책에서는 얼마간 은폐된 죽음 이후의 과정을 배울 수 있다. 상주가 되어보기까지 나 역시 죽음 이후 어떤 일들이 펼쳐지는지 알지 못했다. 의례를 담당해 온 종교가(전통적인 것이든 외래의 것이든) 힘을 잃어가면서 이제 죽음이라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경험을 담을 새로운 그릇이 필요해졌다. 이것은 산업적이고 의료적이며 사회적이고 개인적인 문제이다. 생전장례식, 작은장례식, 무연고자들의 장례식, 탈가부장적 장례식 등에 참여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그릇의 모양을 상상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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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진(돌고래 편집장)
돌고래 출판사의 편집장이자 대표. 지은 책으로 『돌봄 인문학 수업』, 『사회과학책 만드는 법』, 함께 쓴 책으로 『서경식 다시 읽기』, 『돌봄과 작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