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오~” 짧지만 강렬한 인사였다. 1995년 1집 <문화혁명>으로 데뷔한 후 삐삐밴드는 이듬해 정규 2집을 내고는 돌연 해체를 선언했다. 활동 기간 겨우 2년 남짓. 그러나 이들이 가요계에 새긴 족적과 그 잔향은 크고 길었다. 메가폰을 잡고 '딸기가 좋다'고 악을 쓰던 보컬은 당시로선 파격이었고, 주황색 머리에 트레이닝 차림을 하고서 종횡무진 무대를 휘젓는 모습도 분명 이색이었다. 틀을 깨는 음악적 자유분방함은 곧 기성 문화에 대한 저항과 동일했다. 삐삐밴드의 출현은 그 자체만으로 가요계에 일어난 또 하나의 균열이었고, 한국 펑크록은 그 균열의 틈새를 통로삼아 본격적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삐삐밴드가 다시 뭉쳤다. 데뷔 20년을 기념하는 EP앨범
19년 만의 재결합이다. 과거 매니저였던 김진석 팝뮤직 대표가 재결성을 권유했다고 들었는데.
이윤정 : 김진석 대표님은 예전에 삐삐밴드 매니저를 하셔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과 사건사고를 모두 담당하던 분이었죠. 그게 그리웠는지 1년 전부터 연락이 왔어요. 재밌을 거 같아 다시 모이게 됐습니다.
정말 오랜만의 작업이었는데, 어땠나?
이윤정 : 옛날이랑 똑같았어요. 마치 어제 만난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빨리 빨리 진행이 됐어요. 엉키는 거 없었고 의견 낸 거 서로 반영해서 예전 방식대로 쭉 간 거 같아요. 셋이 쭈그려 앉아서 '이런 단어 어때?' 라고 제가 써서 보여주면, 오빠들은 '이런 건 어때?' '그래 좋다, 하자!' 가사작업도 곡 나오면서 바로바로 쭉쭉쭉.
데뷔 20주년을 기념해 발매된 EP 타이틀이 < pppb >다. 앨범 설명을 해준다면?
이윤정 : < pppb >는 삐삐밴드(pippi band)를 뜻해요. 우리가 처음에는 'pipi밴드'로 나왔는데, 'pipi'가 오줌이잖아요. 그걸 뭔가 교체하는 느낌도 있고, 또 원래 삐삐가 'pippi'거든요. pppb가 디자인상으로도 음악적 이미지로도 잘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P' 세 개가 우리 셋 같기도 하고.(웃음)
타이틀 「Over and over」은 꽤 대중적인 스타일에 편하게 듣기도 좋다. 예전보다 대중성을 염두에 두고 만든 건가? 삐삐밴드 답지 않다는 의견도 있는데.
달파란 : 음악적으로는 진행이 제일 요즘스럽죠. 어차피 우리는 대중음악을 하는 거니까. 대중을 생각 안 한다는 건 말이 안 돼요. 대중 생각 안 하고 진행하는 작업은 또 따로 있고요. 이건 그냥 대중 팝이라 너무 무게를 갖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이윤정 : 그렇다고 대중성을 위해 막 고민하고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그래도 조금은 더 많은 사람들이 듣기 위한 방법은 뭐가 있을까를 생각해요. 하지만 '삐삐밴드다움'이라는 이미지는 우리가 만든 게 아니고 보는 사람들이 만든 거라서 그게 크게 맞는 말은 아닌 거 같아요.
「Over and over」에 피처링으로 참여한 자이언티와의 작업은 어땠나?
이윤정 : 자이언티가 활발하고 적극적으로 해 줬어요. 본인 파트 멜로디도 스스로 짜왔는데, 제가 같이 작업하는 날 줄무늬 티셔츠를 입고 왔어요. 곡의 내용에 대해서 막 이야기를 해 주는데 자이언티가 “누나, 옷 어디서 샀어요?”하고 물어보더니 갑자기 '그 줄무늬 티는 어디서 샀어' 그걸 가사에 넣은 거예요. 처음엔 가이드식으로 했었는데 제가 맘에 들어서 그대로 곡에 넣었어요.
당시 자이언티에게 곡의 내용에 대해 뭐라고 설명했나.
이윤정 : 비밀이에요.(웃음) 소외된 생명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 같아요. 버려진 개들이나, 불쌍하고 힘겨운 사람들. 그리고 다른 점이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 대해서요.
앞으로 또 협업해 보고 싶은 사람도 있나? 주목하고 있는 최근 뮤지션이 있다면?
달파란 : 글쎄요. 생각 안 해 봤는데. 자이언티도 염두에 뒀다기보다는 어쩌다 연이 닿아서 한 거예요. 뮤직비디오를 봤는데 가사가 되게 솔직한 편이더라고요. 일상적이고요. 목소리도 특색이 있고 노래도 잘하고. 우리가 노래 잘하는 사람을 쓰는 스타일은 아닌데, 그래도 반대가 만나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앨범엔 총 4곡이 수록되었다. 타이틀 곡 외에 다른 수록곡들에 대해 소개를 한다면?
달파란 : 만나서 제일 처음 작업한 게 「로봇 가나다 라마바」인데, 만나자마자 어떻게 시작을 할까 하다 대충 써서 나온 걸 그대로 한 거예요.
박현준 : 사운드 컬러가 일반적이지 않고 독특한 느낌이어서 재미있는 곡이죠.
이윤정 : 저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생각이 나서 '심장이 없는 사자', '용기가 없는 로봇' 같은 식으로 가사가 나온 거 같아요. 그런 사람들에게 이상을 좇아가자는 내용을 담았어요. 그리고 현준오빠가 무대 위에서 기타를 멋있게 연주하는 것에 대한 상상을 했고, 그 모습을 다시 보고 싶기도 해서 '그토록 원하던 기타를 튕겨라'하는 가사를 넣었죠. 오빠(달파란)가 요즘 영화음악을 해서 그런지 작업한 거 들으면 영상적인 게 많이 떠오르는 거 같아요. 그래서 저도 좀 빨리빨리 캐치가 되고, 단어나 글 같은 것도 빨리 생각이 나는 거 같아요.
「I feel rove」는 어떤가?
달파란 : 이 곡은 전형적인 디스코 진행의 곡이에요. 도나 섬머의 「I feel love」를 약간 오마주한 면도 있고요. 디스코의 원료를 존경하는 의미에서 그렇게 한 거예요.(나머지 멤버들이 “처음 듣는 이야긴데?”하며 웃었다.) 저는 'I feel love'로 하자 그랬는데 윤정이가 'rove'로 하자고 해서 그렇게 바꿨고요.
이윤정 : 'rove'라는 발음이, 들을 때는 'I feel love'로 들리거든요. 우리가 지금 사랑 타령을 하기엔 좀 그렇지 않나 싶어서요.(웃음) 가사도 전반적으로 현 시대의 빈부를 다루고 있어요. 요즘 사람들이 너무 겉도는 느낌이 많이 들고, 사건 사고가 많기도 하고 좀 이상한 느낌이기도 해서, '지금 우리 좀 붕 떠 있지 않나, 방황하고 있지는 않나?' 그런 걸 이야기 한 거 같아요.
마지막 곡인 「ㅈㄱㅈㄱ」은?
달파란 : 가장 빨리 만든 곡이에요. 좀 포스트 모더니즘한, 어쩌면 가장 삐삐밴드스럽다고 말해지는 곡이고, 키치적인 게 많아요. 코드도 촌스러운 코드거든요. 헤비메탈 진행 같은 것도 나오고, 예전 록 진행 같은 것도 나오고, 록 보컬도 나오고. 사실 우리는 웃기라고 되게 유머러스하게 하고 코드도 촌스럽게 한 건데 사람들은 웃기게 안 듣고 심각하게 받아들이더라고요.(웃음) 삐삐를 기억하는 데는 이 곡이 제일 좋겠다 싶어 선공개로 하게 됐어요.
'삐삐'라는 캐릭터는 어른이 되지 않는 말광량이의 상징이다. 20주년 앨범에서 삐삐밴드는 말괄량이 그대로인가? 아니면 어른이 된 것 같나?
이윤정 : 기술적인 것은 성장을 했겠죠. 다들 그 세월 동안 전문 분야에서 작업을 더 했고, 나름 연구도 했고, 자기 방향에 더 파고들었을 거고. 그런 건 확실히 성장을 한 거 같아요. 특히나 제가요. 어디서 주워 온 애가 “노래해봐” 하면 하는 애였지만, 지금은 진행도 빨라지고 더 잘 캐치하게 됐죠. 예전에는 오빠들이 “해봐” 해도 모르는 게 많았는데, 이젠 다 알아듣겠고 더 편해지고 심지어 제가 요구까지 하는 상황이(웃음). 그런데 캐릭터적인 면이나 인간적인 부분은 예전과 똑같은 거 같아요.
20년 전에 활동한 모습을 지금 보면 어떤가?
이윤정 : 전 진짜 재밌는 거 같아요.
박현준 : 전 예전에도 되게 귀찮아했구나. 하하하.
달파란 : 다행인 건 세월이 많이 지났는데 지금 봐도 안 부끄러운 거? 왜 옛날 사진 보면 창피한 사진이 있기도 한데 저희는 안 그런 거 같아요. 그때는 우리가 너무 꾸미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 그 시대에 충실하면 안 창피한 거 같아요. 예를 들어 디스코가 한참 유행할 때 미국사람이 배바지 입고 있는 걸 지금 보면, 촌스럽다기보다는 그 시대를 딱 보는 느낌이잖아요. 오히려 막 미래를 생각해서 옷을 만든다든가 특이해 보이려고 뭘 하는 노력이 지나고 나면 더 촌스러워 보이는 거 같아요. 우리가 트레이닝 복 입고 그런 게 당시 한국에서는 특이했지만, 세계적인 90년대 룩이었거든요.
그런 세계적인 흐름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안목인 거 같다.
달파란 : 그냥 뭐 느낌. 그런 느낌들을 서로 갖고 있었던 거 같아요.
박현준 : 평소 생각하던 것을 방송에서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뻔뻔함'이 있기도 했고요.
어찌 보면 활동기간이 짧았음에도 삐삐밴드는 참 많은 이슈를 남겼다. 그리고 현재 인디 관련 책에 전설처럼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자신의 이런 족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이윤정 : 저는 삐삐밴드 캐릭터가 너무 세서 다른 음악을 할 수 없던 시절이 있었어요. 이십대 중반쯤 그게 다 스트레스로 다가온 적도 있었어요. 하다못해 돈이 없는데 아르바이트도 할 수 없고, 얼굴은 팔렸고, 사람들은 다 딸기를 좋아한다고만 생각하고 있고(웃음), 한번 각인이 된다는 게 참 무서운 거더라고요. 우리가 딸기로 TV에서 공연을 한 게 한두 번밖에 안 되거든요. 그런데도 그렇게 이미지가 각인된다는 게 미디어의 힘이 놀라운 거죠. 그래도 결국에는 우리가 가지고 가려 했던 뮤지션으로의 형태는 갖고 갔던 거 같고 지금도 유지는 하는 거 같아요. '파격' 이런 건 우리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독보적인 건 맞는 거 같아요. 우리밖에 없었던 거 같아요. '왜 제2의 삐삐밴드가 안 생기는 거 같냐'고 누가 물어보더라고요. 생길 수가 없으니까요. 나처럼 노래 부르는 애가 어딨겠어요.(웃음)
심지어 '노래를 일부러 못한다'라는 말도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만큼 개성적인 보컬이었다. 그랬기에 '삐삐'로 영입된 것이 아닐까.
이윤정 : 그때부터 너무 착하고 예쁘게만 노래 부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오빠들이 펑크적인 이미지를 갖고 갈 멤버를 찾다가 제가 너무 겁 없이 막 부르니까 “너 그냥 해라” 한 거 같아요. 음정 나가고 삑사리 나고 그런 건 다 재미로 생각하고 그대로 녹음을 한 거 같은데, 저는 그게 속상하고 싫었는데도 다시 녹음을 안시키더라고요.(웃음)
이윤정의 매력은 뭐였나?
이윤정 : 그 전에 보컬로 설 애들이 몇 명 있었대요. 근데 말을 안 듣고 울고 그랬대요. 근데 저는 약간 겁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었나?
박현준 : 그 전의 보컬들은 뭔가를 해 보자고 했는데 못한다는 식으로 울어버리고, 통하지가 않으니 잘 안 됐죠.
이윤정 : 난 그 마음 십분 이해해.(웃음) 근데 “너 마음대로 해” 할 때 진짜 마음대로 하기가 쉽지가 않아요. '뭘 마음대로 하라는 건데?'싶잖아요. 그런데 저는 마음대로 했거든요.
달파란 : 너무 잘 하려고 심각해지는 느낌보다는 신선한 느낌? 느낌을 보는 거지 그때는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를 따지진 않았어요. 귀여운 여자애가 말괄량이처럼 노래하는 그림을 상상하니 재밌더라고요. 그런데 보통 노래하려는 친구들은 어떻게 하면 잘할까, 멋있어 보일까 하는 것만 신경을 쓰니까, 우린 그런 게 매력없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윤정이는 처음 딱 봤을 때 알았어요. 같이 하면 되겠다.
이윤정 : 나는 내가 되게 잘 부른다고 생각하고 불렀는데.(웃음)
박현준 : 사실 노래하는 데 있어 놀란 부분도 있었어요. 이렇게까지 나오는구나. 저도 깜짝 놀랐지만 놀란 척 안하고 있었죠.(웃음)
삐삐밴드 초기 달파란과 박현준의 영향력이 너무 컸나보다. 오빠들이 무섭기도 했다고?
이윤정 : 열아홉, 스무살짜리 여자애 앞에 이렇게 같이 앉아서 “빨리 해봐” 이러는데 무섭죠.(웃음) 주변에 어른이고 뭐고 신경 안 쓰던 시기였는데, 오빠들 말은 참 잘 들었던 거 같아요. 언젠가, 오빠 집에 작업실이 있었는데, 비틀스의 영상이나 전반적인 음악 역사에 관한 다큐멘터리 비디오테이프들을 계속 틀어놓고 보라는 거예요. “이거 첨부터 끝까지 봐!” 막 이러면서.(웃음) 그게 내가 좋아서 듣는 것도 아니고, 다른 걸 계속 듣는 게 쉽진 않거든요. 그걸 막 졸면서 보고 있었던 게 생각이 나요.(웃음) 음악보다는 문화적 개념을 가르쳐 주려고 했던 거 같아요. 전반적인 문화의 형태나 음악의 형태를 좀 알면 곡 이해도 빠를 거고 노래 부를 때도 영향이 있지 않을까 해서. 그래서 잘 부르지 않아도 되는 이미지가 나왔겠죠?
달파란과 박현준이 음악적 스승이겠다. 그런 경험들이 윤정씨의 음악 기반이 되지 않았을까?
이윤정 : 그랬던 거 같아요. 그 기반이 탄탄하고 클래식한 거는 아니지만, 나름 제가 좋아하는 음악적 방향을 찾아갈 수 있게 도움을 준거 같아요. 저는 아직 코드도 잘 몰라요. 멜로디도 흥얼거리며 나오는 거고요. 근데 그걸 믿어주는 게 좋고 성장의 계기가 됐어요. 믿어주지 않잖아요. 누가 그냥 아무거나 흥얼거리는 걸 곡으로 써주겠어요. 근데 그걸 정리해 주는 거잖아요 곡 하나로. 그게 너무 신기한 거죠. 재밌어지고요. 제가 보기엔 오빠들이 음악을 많이 해 와서 항상 나오는 뮤지션들의 패턴이나 기술적인 부분에 워낙 익숙해져 있다가 어떤 애가 말도 안 되는 걸 한 게 재밌어 보였던 거 같아요. 음도 안 맞고 코드도 안 맞는 걸 부르니까 웃긴 거 있잖아요. 「슈퐁크」 같은 것도 오빠들 기타 칠 때 혼자 주절주절한 걸 그대로 녹음한 거예요. 그냥 그게 저희 작업 환경인 거죠.
밴드가 말괄량이 같은 이미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큰 그림도 있었고, < 문화혁명 >이라는 데뷔 타이틀도 예사롭지 않다. 준비를 많이 한 것 같은데?
달파란 : 그때 어느 정도의 생각을 했는지는 기억이 잘 안나요. 음.. 그때 이미 저도 연주를 어느 정도 많이 했고 현준이도 연주한 지 오래 되고 음악적으로 정직한 것들에 실증이 났었던 거 같아요. 오히려 불협 같은 것, 불협에서 오는 재미들에 더 흥미를 가졌던 거 같아요. 그래서 삐삐밴드를 하게 된 거 같아요. 또 당시 반사회적인 성향도 있었고요. 당시 사회가 좋진 않았어요. 그게 답답해서 이런 게 왜 하나도 없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죠. 그래서 앨범제목도, 사실 붙여놓고는 너무 거창한 거 아닐까 걱정을 했었는데(웃음), 그렇게 내게 됐어요.
이윤정 : 오빠들이 구상을 다 한 상태에서 저를 찾은 거 같아요. 삐삐밴드란 이름도 오빠들이 만든 상태에서 삐삐를 찾은 거고요. 그래선지 막힘이 없었어요.
박현준 : 그렇기도 하고, 윤정이에게서 가사나 멜로디 소재가 딱 나오는 것도 있어요.
이윤정 : 저는 작곡을 했던 사람이 아닌데, 오빠들 방식이, 계속 기타를 치고 있어요. 왜 그러는지 몰랐는데 저보고 흥얼거리라는 거예요. “그냥 뭐 한번 불러봐” 그러는데, 저는 패닉이 오는 거죠. '안녕하세요'도 그렇게 나온 거예요. 뭐라도 해 보라고 해서 “안녕하세요~”하다가 즉석에서 곡으로 정리돼 나온 거예요.(웃음) 그게 어떻게 보면 교육이죠. 그런 식으로 작곡을 시킨 거잖아요. 작곡이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렇게 시키다 보니 다른 데서 다른 사람들이랑 작업하다 보면 다들 너무 신기해해요. 저 같은 방식으로 작업하는 사람을 많이 못 봤어요.
종종 '한국 펑크의 최초 발자취'으로 삐삐밴드를 꼽기도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달파란 : 아니에요. 우리뿐만 아니라 당시 홍대나 명동 길거리에서 크라잉넛, 노브레인 같은 친구들이 활동하고 있었어요. 저희도 몰랐었는데 그걸 보고 '얘네도 이런 걸 해?' 했던 기억이 나요. 아무튼 우리가 최초가 아니고 당시에 그런 흐름과 움직임이 있었어요. 그런데 우리는 대중매체를 탄 거고 그 친구들은 언더그라운드를 형성해 갔던 거고요.
이윤정 : 그런 말 하면 부담스러운 거 같아요. 그 친구들이 봐도 이상하잖아요. 사실 진짜 완전 펑크를 지향한다고 보면 우리는 펑크의 개념을 가지고 간 정도죠. 펑크적인 사상에서 봤을 때 대중매체를 탄다는 게 처음에는 되게 싫었을 거예요 아마도. 근데 나중에 알려지고 나서는 사람들이 펑크음악을 좋아하게 된다는 게 참 신기하잖아요. 어떻게 보면 일반적인 댄스음악이나 매체를 타는 음악이 아닌, 다른 장르라고 불릴 만한 음악과 뮤지션들이 90년대에 많이 나온 거 같기도 해요. 지금은 새로운 형태의 장르라든지 특색들이 새로 나오기가 힘든 시기인 거 같고요.
당시 통용되던 그룹 사운드에서 밴드(BAND)라는 이름을 최초로 사용했다고 하는데?
달파란 : 당시 그런 용어를 안쓰는 게 답답했던 거죠. 지금도 뭐. 답답한 건 한 두 가지가 아닌데.(웃음) 그런 것에서부터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었죠.
이윤정 : 최근에 오빠들과 만나서 서로 이야기한 건 말할 사람이 필요한 것 같아요. 너무 안하고 있는 것 아니냐. 다들 너무 아무 일 없는 것처럼 그냥 하는 거 아니냐. 그런 대화를 처음 만나서 많이 나눈 거 같아요. 뭐라도 하자.
여전히 답답한 게 많은 세상인 것 같다.
이윤정 : 계속 안 좋았죠 뭐. 근데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이 알지 않아도 될 정보까지도 많이 알게 되면서 좀 더 악해지는 거 같기도 하고, 좀 더 냉정하고 차가워진 거 같기도 하고, 외려 많이 무뎌진 거 같기도 해요. 굉장히 큰 사건사고에 대한 정보가 나왔는데 '좋아요' 누르고 5분이면 잊어버리잖아요. 뭔가 되게 매정하게 변해버린 거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게 슬픈 거 같아요. 아기 엄마다 보니 이게 과연 이러고 말 문젠가 하는 생각을 해요. 이런 것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걸 좀 알리든지 깊이 다뤄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요.
활동 당시와 비교하면 지금 음악 산업과 시장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보나?
이윤정 : 음악 하는 게 직업이 될 수 없는 세상이 온 거 같아요. 주변에 음악만 하는 애들이 없어졌어요. 따로 투잡을 하지 않으면 생계를 할 수 없으니까. 생계형 뮤지션이 1%도 안 되는 상황이죠.
달파란 : 문제는 산업적으로 따져봤을 때 분배의 문제가 있다는 거예요. 사실 전체 시장 규모는 매출이 줄어든 게 아니니까요. 음악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점점 더 안 좋아지고 그걸 유통시키고 판매하는 사람들은 더 많은 이득을 보니까. 그 사람들은 한 밴드가 뜨고 지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요. 전체에만 (관심이 있지). 또 보통은 그런 메인스트림이 있다 그러면 언더라는 시장이 따로 존재하는데 한국은 그게 형성이 안 된 거 같아요. 그래서 언더에서 음악을 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보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순환이 안 되니까, 그걸 이어 가기가 보통 쉬운 일이 아닌 게 돼 버렸죠.
박현준 : 때문에 음악이 더 발전하지 않고, 멈춰버리고, 듣기 좋은 거면 거기에만 한정시켜버리게 되는 부분이 있죠.
이윤정 : 지금은 잘한다 못한다가 중요하지 않아진 거 같아요. 음악 잘한다 못한다가 아니라 홍보 잘한다 못한다가 된 거 같아요. 홍보 잘하고 운 좋으면 잘 된 거고, 아니면 못한 거고요.
다시 삐삐밴드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 지금, 삐삐밴드는 각자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나?
이윤정 : 스무살 즈음 주민등록증이 생기잖아요. 제가 그 시기에 활동한 거라 저한테 삐삐밴드는 주민등록증에 첫 집이 찍힌 것 같은 느낌이에요. 지금은 20년 뒤에 갱신하는 느낌?
박현준 :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이렇게 관심이 된다는 게 참 다행인 거 같아요. 예전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것 자체에 대해 감회도 새롭고요. 앞으로 다른 계획을 세울 때 영향이 될 것 같습니다.
인터뷰 : 김반야, 윤은지, 윤석민
정리 : 윤은지
2015/08 윤은지 (theotherso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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