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만나기 이틀 전
작은 방의 책장은 철수했고 베란다에서는 아이 옷이 보송하게 말라갔다. 아, 이곳으로 정말 새 사람이 오는구나, 이제 세 식구가 되는구나,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글ㆍ사진 서유미(소설가)
2015.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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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에 적응해간다는 건, 몸과 감정의 변화를 따라 점차 엄마가 되어간다는 뜻이다. 나 역시 이건 아닌 것 같아, 기분이 이상하네, 하면서도 10개월이라는 시간을 지나며 천천히 엄마라는 존재에 가까워져갔다. 입는 옷이나 먹는 것, 보는 것, 관심사가 달라졌고 세상과 사람에 대한 시선이 변했다.


주말에 근처 가구점에 가서 아이의 옷장을 샀다. 선반과 서랍이 넉넉한 것으로 골랐다. 조리원에 가져갈 거즈 수건과 집으로 돌아와서 쓸 기저귀와 옷가지 들도 빨았다. 아기용 세제와 유연제에서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아 순했다. 기저귀가 바람에 흔들리는 베란다의 풍경은 평화롭고, 동물 무늬가 앙증맞은 아기 이불과 베개는 귀여웠지만 낯설었다. 나는 아이의 물건과 미처 치우지 못해 한편에 쌓아놓은 책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임신과 관련해서 가장 마지막까지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바로 집의 풍경이었다.


부른 배를 하고도 내가 이물감 없이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던 건 바로 오래된 책장과 책상과 창밖의 황량한 풍경 때문이었다. 그런데 작은 방의 책장은 철수했고 베란다에서는 아이 옷이 보송하게 말라갔다. 아, 이곳으로 정말 새 사람이 오는구나, 이제 세 식구가 되는구나,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마지막 검진을 한 뒤 나는 병원 앞의 카페에 앉아 가족과 지인들에게 출산 예정 소식을 전했다. 몸무게는 매우 넉넉히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2킬로그램이나 오버했고 마감해야 할 산문 하나를 남겨두고 있었다. 마침표를 찍은 장편소설은 한 번 읽어본 뒤 병원에 가기 전에 송고할 계획이었다. 정리해야 할 품목도 수첩에 적었다. 임부복과 복대, 라고 쓰고 나서 복대를 조금 느슨하게 했다. 배가 빨리, 많이 나온 탓에 임신 후기에는 매순간 복대와 함께 외출했다. 세 개째의 복대인데도 표면에 인 보풀이 느껴졌다. 지긋지긋하지만 정들어서 버리긴 아깝다는 점에서 고3 때 학교에서 쓰던 방석과 비슷했다. 그때로부터 얼마나 멀어졌나, 생각하다 울적해졌지만 가족들의 응원은 따뜻하고, 언제 다시 마시게 될지 장담할 수 없는 커피의 맛은 깊고 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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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미 #임신 #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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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미(소설가)

2007년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같은 해 창비 장편소설상을 탔다. 장편소설 『판타스틱 개미지옥』 『쿨하게 한걸음』 『당신의 몬스터』를 썼고 소설집으로 『당분간 인간』이 있다. 에세이 『소울 푸드』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