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낳는 게 두려우면서도 기다려지고 육아가 어떤 건지 알 것 같다가도 미궁에 빠졌다. 그저 나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동안 배에 넣고 다니는 한 몸의 시간을 충분히 누려볼 생각이었다.
살다 보면 나와 닿아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단 하나의 질문만 하는 시기가 있다. 대입, 취업, 결혼처럼 큰일을 앞두고 있을 때인데 피곤하고 난처해서 피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출산이 다가오면서 예정일이 언제냐고, 준비는 좀 했냐고, 필요한 건 없냐고 묻고 대답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만은 그런 질문이나 관심이 부담스럽지 않고 따뜻했다. 세상이, 사람들이 옆으로 조금씩 비켜나 아기가 들어올 자리를 만들어주는 기분이었다. 여기야, 이쪽으로 와, 손짓하는 것 같았다.
지인들은 배가 부른 나를 위해 기꺼이 집 근처로 와주었다. 출산의 경험이 있는 선배들은 그건 필요 없어, 그건 꼭 사, 하면서 실질적인 조언을 해주었고 미혼이거나 아이가 없는 후배들은 언니 기분이 어때요? 난 상상이 안 돼, 하며 웃었다. 군 입대를 앞둔 사람처럼 매일 친구들을 만나 맛있는 것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이후의 시간에 대해 상상했다. 지금 이 순간이 다시는 오지 않겠구나, 이렇게 만나는 일은 한참 뒤에나 가능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자 가슴이 뻐근해졌다.
출산 준비는 아이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나와 옆 사람에게도 필요한 것이었다. 둘만의, 혹은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것, 그게 기저귀와 옷을 사는 것만큼이나 중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소풍 계획을 세웠다. 둘이 많이 다녔던 곳에 가서 자리를 펴놓고 앉아 얘기를 하고 각자 챙겨온 책을 읽고 가져간 음식을 먹었다. 당분간 못 나갈 테니까, 한동안 여기 못 올 테니까, 앞으로는 이거 못 먹을 테니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열심히 돌아다니려고 노력했다. 내가 팔을 걷어붙일 때마다 옆 사람은 애 낳으러 가는 거지, 죽으러 가는 거 아니다, 하며 어깨를 잡았다.
아기를 낳는 게 두려우면서도 기다려지고 육아가 어떤 건지 알 것 같다가도 미궁에 빠졌다. 그저 나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배에 넣고 다니는 한 몸의 시간을 충분히 누려볼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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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미(소설가)
2007년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같은 해 창비 장편소설상을 탔다. 장편소설 『판타스틱 개미지옥』 『쿨하게 한걸음』 『당신의 몬스터』를 썼고 소설집으로 『당분간 인간』이 있다. 에세이 『소울 푸드』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