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만나는 방법 (1)
갑자기 대입 시험을 앞둔 고3이나 결혼식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신부가 된 기분이었다. 정말 실전에서 갑자기 놀라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나. 지나고 나니 모두 가능성이 희박한 가정일이라는 걸 아는데도 나는 다시 수많은 가정에 휩싸였다.
글ㆍ사진 서유미(소설가)
2015.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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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어떤 문제는 여러 번 겪어도 여전히 적응이 안 되고 어렵지만, 어떤 문제는 지나가고 통과하는 순간 만만하고 시시해진다. 그런가 하면 누군가에게 견딜 만하거나 평범한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두렵고 피하고 싶은 경우도 많다. 사람들이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여러모로 다르고 느끼고 받아들이는 게 제각각인 것. 인생의 묘미란 그런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임신 초기에는 노산이라는 단서 때문에 작은 일에도 불안과 걱정이 따라붙었는데 30주가 넘어 출산이 가까워질수록 지난날들이 별 일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가끔은 ‘배가 홀쭉할 때는 꽤 지낼 만했군. 한 번쯤은 경험해볼 만해’ 같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니까 임신과 관련된 대부분의 증상이 시시해진 상태에서 두려운 건 오직 하나, 출산뿐이었다.

 

30주가 되면서 병원에 갈 때마다 분만 방법에 대해 상의했다. 의사는 조심스레 수술을 권했다. 결정은 산모가 하는 거지만, 아이가 워낙 크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하고(이런 추세로 자라면 예정일에는 4킬로그램이 넘을 게 분명하다고 했다) 노산이라 것도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아무래도 젊은 산모들보다는 힘이나 기운이 달릴 거라고 했다). 나로서는 자연분만이나 제왕절개 모두 풍문과 상상의 산물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고민해보겠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갑자기 대입 시험을 앞둔 고3이나 결혼식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신부가 된 기분이었다. 정말 실전에서 갑자기 놀라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나. 답을 하나씩 밀려서 표기해 시험을 완전히 망칠 수도 있는 건가. 결혼식 당일에 배탈이 나면 어떡하나. 신부 입장을 하다가 드레스를 밟아서 넘어지는 건 아닐까. 그날 대판 싸워서 결혼식이 무산될 수도 있을까. 지나고 나니 모두 가능성이 희박한 가정일이라는 걸 아는데도 나는 다시 수많은 가정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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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육아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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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미(소설가)

2007년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같은 해 창비 장편소설상을 탔다. 장편소설 『판타스틱 개미지옥』 『쿨하게 한걸음』 『당신의 몬스터』를 썼고 소설집으로 『당분간 인간』이 있다. 에세이 『소울 푸드』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