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는 경계가 없습니다. 한데 애써 경계를 만들려는 사람들이 있어서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솔직히 저는 그것을 ‘허위적 관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대중가요를 종종 듣곤 했는데 그런 제 모습을 보고 후배가 한마디 툭 던지더군요. “이제 음악적 노선을 바꾸는 겁니까?” 물론 장난삼아 던진 말이겠지요. 한데 그 농담 속에도 우리가 가진 고정관념, 이를테면 클래식과 대중음악 사이에 놓인 견고한 장벽이 있습니다. 극단적으로는 클래식만을 ‘들을 만한 음악’으로 여기는 순혈주의자들도 종종 눈에 띕니다. 하지만 그것은 내면의 결핍을 보상받으려는 심리에 가깝지 않을까요?
정작 음악에서 중요한 것은 개성과 깊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장르 불문하고 그 두 가지를 품고 있는 음악은 훌륭합니다. 저는 최근에 싱어 송라이터 한대수의 옛날 노래를 몇 번인가 들었습니다. 18세의 천재가 뉴욕 롱아일랜드의 다락방에서 작곡했던 ‘바람과 나’를 혼자 흥얼거렸습니다. 신중현이 작곡한 ‘나뭇잎 떨어져서’라는 노래도 따라 불러봤습니다. 참 좋은 노래들입니다. 내친 김에 그리스 태생의 팝가수 나나 무스쿠리의 노래를 들으면서 회상의 감정에 젖어 보기도 했습니다. 물론 요즘 젊은 세대들이 보기엔 ‘완전 아저씨 취향’이겠지요. 그래도 저 같은 50대들에게는 한 시절을 동행했던, 지금 들어도 여전히 좋은 노래들입니다. 이런 노래들을 듣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근육과 신경이 서서히 이완되고 마음도 착해집니다.
자, 그러면 이번에는 더 어린 시절의 노래 한 곡을 떠올려볼까요? 혹시 이런 노래가 기억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릴 적 불렀던 동요 가운데 ‘아 유 슬리핑, 아 유 슬리핑, 브라더 존~’ 하면서 시작하는 노래가 있지요. 영어로 써보자면 ‘Are you sleeping, are you sleeping, brother John~’이 되겠지요. 아마 기억나는 분들이 꽤 있을 겁니다. 여러 명이 함께 부르던 돌림노래 형식의 동요인데, 주로 영어 가사로 많이 불렀습니다. 뒷부분 가사는 이렇습니다. ‘Morning bells are ringing, Morning bells are ringing, Ding-dang-dong, Ding-dang-dong.’ 구글에서 검색하면 귀여운 애니메이션과 함께 이 노래를 들을 수 있습니다. 예닐곱 살쯤 돼 보이는 소녀가 ‘잠꾸러기 동생’을 깨우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군요. 제목은 ‘Brother John’입니다.
사실 이 노래는 프랑스에서 가장 먼저 불렸습니다. 아마 18세기 초반 무렵이었을 겁니다. 원래의 제목은 ‘플레르 자크’(Freere Jacque)였습니다. 이어서 오스트리아에서도 유행했지요. 제목이 ‘Bruder Martin’으로 바뀝니다. 또 이것이 영어권으로 건너가면서 ‘Brother John’으로 다시 한번 바뀝니다. 한데 이 제목은 ‘동생 마르틴’이나 ‘동생 요한’이 아니라, ‘마르틴 수사’ 혹은 ‘요한 수사’로 번역되는 게 맞습니다. 수사란 가톨릭의 수도자들을 일컫는 말이지요. 말하자면 애초에는 게으른 수사들을 빈정대며 부르는 노래였다는 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남동생’으로 해석해 불러도 별 무리는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잠꾸러기 동생을 깨우면서 부르는 노래’라는 것이 외려 더 친근합니다.
근대의 음악가들 중에서 음악에 경계가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 인물로 구스타프 말러(1860~1911)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낭만주의 시대의 마지막에 자리하는 이 음악가는 자신의 몸속에 저장된 많은 음악을 교향곡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다시 말해 음악가로서 그가 보여준 태도는 ‘경계의 벽’에 갇히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예컨대 그는 어린 시절에 들었던 군대의 행진음악, 아버지가 운영하던 선술집에서 흘러나오던 유행가 가락, 농부들의 소박한 춤곡, 거리를 떠도는 장돌뱅이들의 음악을 과감하게 자신의 교향곡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졸저 『아다지오 소스테누토』에서 말러를 일컬어 ‘혼종의 음악가’ ‘융합의 음악가’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말러 이전에도 기존의 어떤 선율을 차용하는 작곡가들은 종종 있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그랬습니다. 낭만시대의 작곡가들에게서도 이런 식의 차용 기법은 종종 발견됩니다. 하지만 말러처럼 세속적 선율을 교향곡 속으로 과감히 끌어들인 작곡가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그는 감수성이 활짝 열린 어린 시절에 들었던 음악들, 그래서 자신의 몸속에 저장돼 있던 그 익숙한 선율들을 ‘교향악적 재료’로 사용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바로 이 혼종성, 혹은 성속(聖俗의 구분 없음이야말로 그의 음악이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봅니다.
말러는 흔히 낭만주의 교향곡의 마지막 방점을 찍은 작곡가로 기억되지요.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음악의 경계를 허물면서 모더니즘의 전망을 보여준 음악가라는 사실도 함께 기억돼야 할 겁니다. 베토벤이 고전과 낭만을 동시에 품었던 것처럼, 말러의 음악도 낭만과 현대를 함께 끌어안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완전히 종합되지 못한 채 때때로 분열의 양상으로, 다시 말해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이 바로 당대의 보수주의자들에게 말러가 혹평 받았던 이유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고상함과 퇴폐, 서정과 광기, 공포와 안식, 세속적 갈등과 영원함에 대한 갈망 같은 것들로 뒤범벅된 그의 음악에 많은 이들이 마음을 뺏기고 있습니다.
51세에 세상을 떠난 말러는 생전에 모두 9곡(‘대지의 노래’까지 포함하면 10곡)의 교향곡을 완성했지요. 첫 번째 교향곡을 구상한 것은 20대 중반부터라고 합니다. 본격적인 작곡은 1888년 초에 이뤄졌습니다. 앞에서 길게 설명한 ‘Bruder Martin’의 선율은 이 교향곡의 3악장 첫머리에서 들려옵니다. 한데 좀 이상합니다. 선율이 괴기스럽게 비틀려 있습니다. 원래 이 노래는 19세기 말 오스트리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을 뿐더러, 어린 아이들이 딱 좋아할 만한 유쾌하고 코믹한 돌림노래였지요. 하지만 말러의 교향곡에서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풍깁니다. 팀파니가 둥둥거리는 가운데 콘트라베이스가 연주하는 선율이 음산하고 비감합니다. 말러는 애초에 D장조였던 선율을 d단조로 바꿔 괴기스러운 느낌의 장송(葬送)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렇게 첫 번째 교향곡에서부터 희극을 비극으로 치환하는 독특한 패러디를 선보였습니다. 물론 지금의 감각으로 듣노라면 그 장송은 아름답게 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당대에는 어땠을까요? 1889년 11월 부다페스트에서 말러의 지휘로 이 곡이 초연됐을 때, 청중이 느꼈을 당혹감이 충분히 짐작됩니다.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어린 시절의 말러는 선술집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 베른하르트가 군부대 근처에서 운영했던 술집에서는 매매춘도 일상사였다고 합니다. 게다가 어린 말러는 동생들이 잇따라 세상을 떠나는 것을 여러 차례 목격했지요. 말하자면 술 취한 남자와 여자들이 드나들던 선술집 문으로 동생들의 시신을 담은 관들이 떠나가는 장면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특히 바로 아래 동생이었던 에른스트의 죽음은 말러에게 오래도록 상처로 남았던 기억이었다고 합니다. 그 동생은 말러가 열다섯 살이었을 때 세상을 뜨지요. 아마 형제는 ‘Bruder Martin’을 함께 불렀을 겁니다. 어쩌면 말러는 류머티스 고열로 시달리던 동생의 머리맡에서 이 노래를 불러줬을 지도 모릅니다.
1번 교향곡의 표제인 ‘거인’(Titan)은 작곡가 스스로 붙인 제목입니다. 연주시간 약 50분으로 말러의 교향곡 중에서는 비교적 길이가 짧다고 할 수 있겠지요. 말러의 교향곡을 처음 듣는 분들은 이 곡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작곡 당시 20대 청년이었던 말러의 서정성이 짙게 배어 있는 곡입니다. 지휘자 브루노 발터(1876~1962), 말러의 제자이자 친구이기도 했던 그는 이 곡을 일컬어 “말러의 베르테르”라고 표현하기도 했지요.
1악장은 느릿하게 막을 올립니다. ‘Langsam, Schleppend’(느리고 완만하게), ‘Wie ein Naturlaut-Im Anfang sehr gemachlich’(자연의 소리처럼, 매우 여유롭게)라는 지시어가 붙어 있지요. 현악기들이 A의 지속음을 길게 연주하면서 시작합니다. 서서히 먼동이 터오는 새벽의 느낌입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팡파르, 또 꾀꼬리 같기도 하고 뻐꾸기 같기도 한 새소리들도 들려올 겁니다. 이어서 첼로가 말러의 가곡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중 두번째 곡인 ‘아침 들판을 거닐 때’의 선율을 연주합니다. 매우 인상적인 주제입니다. 마지막에는 팀파니가 강렬하게 작열하면서 마침표를 찍습니다.
2악장에서는 빨라집니다. ‘Kraftig bewegt, doch nicht zu schnell’(힘차게 움직여서, 하지만 지나치게 빠르지 않게)입니다. 현악기들이 표정 있고 활기찬 화성을 연주하면서 시작합니다. 아주 리드미컬한 랜틀러 춤곡 풍의 선율이 펼쳐집니다. 이어서 음악이 잠시 멈추는 듯싶다가 목관과 바이올린이 주도하는 왈츠풍 선율로 넘어갑니다. 앞의 춤에 비해 좀더 세련된 도회풍의 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3악장은 ‘Feierlich und gemessen, ohne zu schleppen’(엄숙하고 장중하게, 그러나 느긋하지 않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콘트라베이스가 ‘Bruder Martin’을 선율을 장중하고 서글프게 연주하면서 시작합니다. 이어서 하프의 피치카토가 잠시 들려오다가 길거리 악사들이 연주하는 듯한 스타일의 음악이 펼쳐집니다. 약간 휘청거리는 듯한,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애잔한 분위기의 선율입니다. 인생의 희비극을 암시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지요. 이어서 바이올린이 가곡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중에서 네번째 곡인 ‘그녀의 푸른 눈동자’의 선율을 연주합니다. 젊은 말러의 서정성이 고스란히 전해오는 아름다운 멜로디입니다.
4악장은 3악장에서 쉬지 않고 연결됩니다. ‘Sturmisch bewegt’(태풍처럼 움직여서). 거의 잦아드는 것처럼 3악장이 끝나자마자 폭풍 같은 총주가 터져 나옵니다. 말러가 왜 이 교향곡의 표제를 ‘거인’으로 지었는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연주시간 약 20분으로 교향곡 1번에서도 가장 긴 시간을 차지하는 악장입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1989년/DG
지난해 1월 타계한 지휘자 아바도는 자타 공인의 ‘말러 스페셜리스트’였다. 1989년 베를린 필하모닉과의 실황이다. 균형 잡힌 연주, 정직한 해석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혹자는 깔끔하게 정돈된 사운드에 박한 점수를 주기도 한다. ‘절충주의’라는 평가도 있다. 아바도의 음반 중에서 좀더 드라마틱하고 힘이 넘치는 말러 1번을 원한다면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1981년 녹음(DG)을 선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1989년 실황이 보편적 호평을 받는 명연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현재 국내 매장에서 가장 많은 이들이 선택하는 말러 1번이기도 하다.
▶마리스 얀손스, 로열 콘세르트헤보우 오케스트라/2006년/RCO Live
최근의 녹음 중에서는 단연 추천작이다. 이 역시 실황 녹음이다. 얀손스와 로열 콘세르트헤보우가 2006년부터 진행해온 말러 교향곡 전곡 녹음은 어느 곡이 됐든 후회하지 않을 만한 선택이다. 얀손스의 지휘봉은 구조와 디테일을 모두 장악하고 있을 뿐더러, 로열 콘세르트헤보우의 세밀한 연주력은 ‘역시!’라는 찬탄이 아깝지 않다. 말러의 교향곡들을 연주한 여러 지휘자들과 녹음들이 있지만, 정교한 디테일을 제대로 맛보고 싶다면 이 음반이 단연 적절하다. 말러 교향곡의 세기말적 뉘앙스 표현이 좀 미흡하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놓치기 아까운 연주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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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수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다. 청년시절에는 음악을 멀리 한 적도 있다. 서양음악의 쳇바퀴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 부르주아 예술에 탐닉한다는 주변의 빈정거림도 한몫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을 다소나마 털어버렸고,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에도 한동안 빠졌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재즈에 대한 애호는 점차 사라졌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대편성의 관현악이거나 피아노 독주다. 약간 극과 극의 취향이다. 경향신문에서 문화부장을 두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2013년 2월 철학적 클래식 읽기의 세계로 초대하는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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