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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둥이 음악가가 말하는 ´인생의 봄날과 사랑´

리스트, 교향시 3번 <전주곡>(Les Prelu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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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사에 새겨진 리스트의 족적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피아노 비르투오조의 시대를 열었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교향시’라는 장르를 개척했다는 점이지요.

작가 안데르센(1805~1875)은 30대 중반에 긴 여행길에 오릅니다. 1840년 10월 31일,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출발했습니다. 독일과 이탈리아, 그리스를 거쳐 중동 지역까지 건너가지요. 이후에 오스트리아 빈을 통해 덴마크로 다시 돌아오는 여정이었습니다. 약 9개월이 걸렸다고 하지요. 그는 당시의 여행에서 겪은 일들과 보고 들은 것들을 2년 뒤에 책으로 펴냈습니다. 『시인의 시장』(En Digter Bazar)이라는 여행기입니다. 그 책의 초판 속표지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우리 함께 상상 속의 시장을 돌아다녀 보자 / 그 풍요로움을 내가 보여줄 테니 / 코펜하겐에서 동방까지 /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그 아치 주랑들을’

 

어떤가요? 책을 내놓고 홍보하는 카피라고 해야겠지요? 안데르센이 살았던 19세기 중반에도 이렇듯 노골적인 카피로 독자들을 유혹했습니다. 어쨌든 이 책은 국내에서 『안데르센의 지중해 기행』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출간됐는데, 최근에는 절판돼 구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여행기에 첫번째로 등장하는 도시는 독일 함부르크입니다. 코펜하겐에서 출발한지 엿새 뒤인 11월 5일, 안데르센은 함부르크의 슈타트 론돈 호텔에 있었습니다. 사실 안데르센의 주머니 사정으로는 그 호텔에 묵을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지요. 그런데도 그곳을 찾아갔던 까닭은 리스트의 연주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이 뒷계단을 통해 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제일 좋은 자리로 나를 안내해주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리스트

프란츠 리스트 (Franz Liszt, 1837) [출처: 위키피디아]

 

당시에 피아니스트 리스트의 인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정도였지요. 제가 앞서 썼던 <순례의 해>와 <사랑의 꿈>에서도 언급했듯이, 리스트가 당대의 피아노 비르투오조로 등장한 시기는 1830년대였습니다. 여행길에 나선 안데르센이 소문으로만 듣던 리스트의 연주를 실연으로 마주한 것은 그로부터 10년쯤 세월이 흘러서였지요. 리스트의 나이가 스물아홉 살 때입니다.

 

 안데르센의 기록에 따르면 “홀은 순식간에 초만원이 되었다”고 하지요. 안데르센도 그날 현장에서 매우 흥분했던 것 같습니다. 책 속에 등장하는 문장들, 예컨대 “리스트는 (연주를) 시작하기도 전에 청중을 흥분시켰다”라든가 “(그가) 무대에 등장하자 한줄기 전류가 홀을 관통하는 느낌이었다”는 구절들에서 안데르센 본인이 느꼈을 흥분감이 고스란히 전해옵니다. 그는 그날 리스트의 연주를 ‘음악의 바다’에 비유하지요. “피아노 한 대가 하나의 완벽한 오케스트라로 변해 버린 느낌” “광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숙련된 열 손가락, 위대한 천재의 손가락…” 같은, 어찌 보면 허황되기까지 한 극단적인 찬사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튀어나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데르센의 이 여행기는 당대에 리스트의 인기가 과연 어느 정도였는지, 특히 연주회장에 모여든 여성들로부터 얼마나 큰 열광을 받았는지를 문학가적인 필치로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리스트가 연주를 마치자 사방에서 비오듯 꽃다발이 날아들었다. 예쁘고 젊은 여자들과, 한때 예쁘고 젊었을 노부인들이 저마다 부케를 던졌다.”

 

유럽 곳곳을 돌아다니며 숱한 여성들의 환호를 받았던 리스트가 ‘나도 이제 한 곳에 정착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1840년대 후반 무렵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가장 유력하게 등장하는 인물은 카롤리네 자인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이지요. 리스트는 러시아를 세번째 방문했을 때 그녀를 만나 이후 15년간 연인이자 친구로 지냈습니다. <사랑의 꿈> 편에서도 언급했지만, 그녀는 화려하고 섹시한 여성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외모상으로 보자면 그 몇 해 전에 결별했던 마리 다구가 훨씬 더 남성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타입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한데 당대 사교계에서 ‘완전 센 여성’으로 통했던 마리 다구마저도 리스트의 여성 편력 때문에 상당히 속을 끓였다고 전해집니다.

 

리스트는 어딜 가나 여성들의 환호에 둘러싸여 있었고, 그중에는 바람둥이 리스트의 마음을 흔들었던 여성들도 당연히 적지 않았겠지요. 특히 아일랜드 출신의 롤라 몬테스(1820~1861)라는 여성이 유명합니다. 당시 사교계에서 처음에는 무희로 이름을 날렸고, 나중에는 부유층 남자들을 상대로 몸을 팔면서 살았던 여인입니다. 초상화로 남아 있는 그녀의 얼굴은 감탄사가 나올 만큼 예쁘지요. 아마 리스트가 평생 만난 여인 중에서도 가장 눈부신 외모를 지닌 여성이었을 겁니다. 한데 성격이 매우 뜨겁고 거침없었다고 전해지지요. 그녀는 유부남 리스트를 거리낌 없이 대동하고 파티장에 드나들었고, 파티 테이블 위에 올라가서 춤을 추는 일이 예사였다고 합니다. 아마 천하의 바람둥이였던 리스트마저도 감당하기가 좀 어려웠을 겁니다. 어쨌든 리스트와 롤라 몬테스의 스캔들은 마리 다구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고, 그녀가 리스트와 결별을 결심하게 된 이유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카롤리네와 만났을 무렵이 되면 ‘낭만의 화신’처럼 살아온 리스트도 좀 지쳐 있었을 겁니다. 사실 리스트는 그보다 몇 년 앞선, 그러니까 1842년에 바이마르 궁정의 음악감독 직을 수락하는 잠정적 계약서에 서명을 한 적이 있었지요. 유럽 곳곳을 바람처럼 떠돌며 살던 그가 바이마르에 정착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했던 것입니다. 그런 리스트에게 카롤리네가 했던 충고는 “이제 피아노 연주를 줄이고 작곡에 전념하세요”라는 것이었습니다.

 

카롤리네는 매우 지적이고 사려 깊은 여인이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두 사람이 만난 이듬해에 리스트는 바이마르 알텐부르크에 집을 마련하지요. 1848년이었습니다. 카롤리네는 남편인 비트겐슈타인 공작과 법적으로 이혼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바이마르로 와서 리스트를 내조하기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그녀는 법적인 남편과 끈질긴 이혼 투쟁을 벌이지요. 하지만 비트겐슈타인 공작이 세상을 떠난 1864년에야 이혼이 성사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리스트와 그녀가 이후에 법적인 부부가 된 것은 아닙니다. 속사정이야 정확히 알기 어렵지만, 그 무렵이 되면 두 사람의 관계는 거의 친구에 가까웠다고 전해집니다. 급기야 리스트는 1865년에 신부가 되지요.    
 
어쨌든 바이마르에 집을 마련한 1948년에 리스트는 궁정의 음악감독 직에 마침내 취임합니다. 삶에서의 큰 변화였을 뿐 아니라 음악에서도 획기적 전환을 보여주는 대목이지요. 유럽을 곳곳을 돌며 환호를 이끌어냈던 투어 피아니스트로서의 시기는 막을 내립니다. 이때부터 리스트는 바이마르 궁정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면서 관현악곡 작곡에 심혈을 기울입니다. 특히 교향시(symphonic poem)야말로 이 시기의 리스트를 대표하는 장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음악사에 새겨진 리스트의 족적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피아노 비르투오조의 시대를 열었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교향시’라는 장르를 개척했다는 점이지요.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에 대해 썼던 지난 회 칼럼에서도 설명했듯이, ‘음악과 문학의 융합’은 낭만주의 시대의 두드러진 경향입니다. 리스트의 교향시는 바로 그런 경향을 이끌었던 음악입니다. 교향시란 ‘관현악 곡으로 한 편의 시를 쓰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음시’(音詩, tone poem)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교향곡처럼 여러 악장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한 개의 단일악장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교향곡에 비해 표현 방식이 좀더 자유롭다는 특징을 갖지요. 리스트 이후의 작곡가들 중에서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교향시’에서 가장 많은 걸작을 남긴 대표적인 작곡가로 손꼽힙니다.
 
절대음악과 표제음악이라는 분류에 따르자면 교향시는 당연히 표제음악이지요. 그림이나 조각, 희곡이나 시 같은 문학 작품, 풍경이나 인물 등의 내용을 음악으로 표현하면서 곡의 제목(표제)을 붙이는 것이니까요. 낭만주의 시대에 절대음악을 옹호했던 대표적 인물로는 음악평론가 에두아르트 한슬리크(1825~1904)가 손꼽힙니다. 반면에 표제음악의 옹호자들은 주로 창작자 본인들이었지요. 특히 베를리오즈와 리스트가 유명합니다. 리스트는 1855년에 쓴, 베를리오즈의 <이탈리아의 해럴드>를 옹호하는 글에서 절대음악 진영을 비판하면서 표제음악의 가치를 이렇게 주장합니다. “왜 작곡가가 표제를 통해 자신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일까? 노래를 통해 문학 혹은 그와 유사한 것과 음악의 결합은 항상 있어 왔다. 그 통합은 지금까지 서로 떨어져 있던 것보다 훨씬 친밀하게 그 둘이 하나가 되기를 약속하는 것이다.”

 



바이마르 궁정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1848년부터 1958년까지, 리스트는 ‘교향시’로 명명한 12곡의 관현악곡을 작곡합니다. 훗날, 리스트가 세상을 떠나기 4년 전이었던 1882년에 또 한 곡이 추가돼 모두 13곡의 교향시를 남깁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이 오늘 들을 음악, 바로 교향시 3번 <전주곡>(Les Preludes)이지요. 1848년에 작곡해 1854년에 바이마르 궁정 극장에서 초연했습니다. 1854년에 작곡한 교향시 6번 <마제파>(Mazeppa)와 더불어 가장 애청되는 리스트의 교향시라고 할 수 있지요. 음악의 내용은 프랑스의 시인 알퐁스 드 라마르틴(Alphonse de Lamartine)의 ‘시적 명상’(meditations poetiques)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 시는 ‘우리 인생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으로의 전주곡이다’라고 시작하지요. 표제인 ‘전주곡’이 바로 그 첫 구절에서 유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주곡>은 내용적으로 보자면 모두 4부로 이뤄져 있습니다. 현악기들이 느린 주제 선율을 연주하면서 시작하는 1부는 ‘인생의 봄날과 사랑’을 묘사합니다. 물론 ‘삶은 죽음의 전주곡’이라는 시구처럼, 화창하고 명랑하기보다는 철학적이고 명상적인 분위기가 주조를 이룹니다. 2부는 ‘생명의 폭풍우’입니다. 1부의 잔잔함과는 대조적입니다. 템포는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빠르지만 지나치지 않게), 관악기를 앞세운 강력한 사운드가 터져 나오지요. 아마 이 칼럼을 읽을 여러분들의 귀에도 익숙한 선율일 겁니다.
 
3부는 이 곡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으로 손꼽힙니다. ‘사랑의 위안과 평화로운 목가’입니다. ‘알레그레토 파스트랄레’(조금 빠르게, 목가적으로)라는 지시가 붙어 있지요. 호른으로 시작하는 관악기의 목가적 선율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금관악기들이 행진곡풍으로 시원하게 터져 나오는 4부는 ‘싸움과 승리’를 묘사하지요. ‘알레그로 마르치알레 아니마토’(빠르게, 행진곡풍으로 활기차게)라는 지시가 붙어 있습니다. 신경을 조금 집중해서 들으면 4부로 이뤄진 구성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을 겁니다.

 

 

페렌치크프리차이▶ 페렌치크 프릭세이(Ferenc Fricsay)베를린 방송교향악단/1959년/DG

 

확고한 추천 음반이다. 힘찬 금관의 사운드가 명불허전이다. 막연하고 추상적인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프리차이의 지휘봉이 만들어내는 음악은 순정하고 견고하다. 특히 ‘전주곡’에서는 음악을 힘차게 밀어붙이는 힘이 막강하다. 푸르트벵글러가 빈 필하모닉을 지휘한 녹음과 더불어 1950년대의 대표적 명연으로 손꼽힌다. 현재 국내 매장에서 품절된 상태라 추천을 망설였으나, 곧 구입 가능할 전망이다.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가 함께 수록돼 있다.   

 

카라얀

 

▶카라얀,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1967년/DG


템포는 약간 느리고 음색은 밝은 편이다. 카라얀 특유의 채색 탓에 호불호가 엇갈리지만,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이들이 선택해온 베스트셀러 음반이다. 현재 국내 매장에서도 리스트의 ‘전주곡’ 음반 중에 가장 보편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1980년대에 이뤄진 디지털 녹음도 있으나 1967년 레코딩을 권한다. 교향시 3번 ‘전주곡’과 6번 ‘마제파’를 비롯해 헝가리언 랩소디 4번 등을 함께 수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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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문학수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다. 청년시절에는 음악을 멀리 한 적도 있다. 서양음악의 쳇바퀴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 부르주아 예술에 탐닉한다는 주변의 빈정거림도 한몫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을 다소나마 털어버렸고,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에도 한동안 빠졌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재즈에 대한 애호는 점차 사라졌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대편성의 관현악이거나 피아노 독주다. 약간 극과 극의 취향이다. 경향신문에서 문화부장을 두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2013년 2월 철학적 클래식 읽기의 세계로 초대하는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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