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LP가 인기라면서요?
음악 그 자체가 아니라 음악과 만나는 과정을 통한 쾌락은 음악을 감상하는데 더 많은 결을 부여한다. 그래서 이런 경험이 중요하다. LP의 붐은 음악을 듣는다, 혹은 소유한다는 것에 대해 새삼 여러 가지를 ‘뒤집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글ㆍ사진 차우진
2014.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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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 화요일, 음악평론가 차우진의 대중음악 이야기

‘차우진의 사운드 & 노이즈’가 연재됩니다.

 

확실히 LP가 붐이다. 해외 록 밴드, 국내 인디밴드, 혹은 몇몇 메이저 가수들에 국한되던 LP 발매가 최근 부쩍 늘었다는 인상을 받는다. 최근에는 비틀스의 LP 박스세트와 아이유의 <꽃갈피> 음반이 각각 한정판 LP로 발매되었다. 아이유의 경우엔 수록곡 7곡 외에 ‘건전가요’가 하나 수록된다는 게 특이하다. 1970~80년대 가요 앨범의 콘셉트를 그대로 살리는 기획이다. 3호선 버터플라이의 앨범도 더블 음반의 LP로 400장 한정으로 발매되었다.

 

<서울레코드페어>에서도 국내 음반들을 한정판 LP로 소개하고 있다. 올해는 노브레인 1집 <청년폭도맹진가>(2000), 언니네 이발관 5집 <가장 보통의 존재>(2008), 디제이 소울스케이프의 데뷔 앨범인 <180G BEATS>(2000)와 김목인 1집 <음악가 자신의 노래>(2011), 더 콰이엇과 도끼, 빈지노가 속한 일리네어 레코즈의 최근작 <11:11>(2014)이다. ‘오프라인 음반 판매 플랫폼’이라고 해도 좋을 <서울레코드페어>는 지난해까지 누적 관객 1만 2천명을 모았다.

 

꽃갈피  3호선버터플라이

 

노브레인  잭화이트

 


LP 붐은 그저 ‘느낌적 느낌’이 아니다. 미국으로 가보자. 얼마 전 잭 화이트의 새 앨범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했다. 발매 첫 주 판매량이 13만 8천장이었는데 이 중 음원이 약 5만 6천장이었다. 나머지 중 CD가 대략 4만 1천장, LP가 약 4만장이었다. 결코 적은 양이 아니다. 이 앨범은 닐슨 사운드스캔(Nielsen SoundScan)이 LP 판매량 조사를 시작한 1991년 이후 최고의 주간 LP판매량을 기록하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LP 판매량이 2007년 1백 만 장 판매를 기록한 후 2009년 2백 50만장, 2012년에는 4백 50만 장, 2013년에는 6백 10만 장을 기록하며 무서운 속도로 상승하고 있다.

 

이런 LP 붐에 대해서는 여러 입장이 엇갈리기도 하는데, 대체로 ‘소리’에 대한 것은 편견이다. LP가 들려주는 특유의 사운드는 ‘언리미티드 와이드 다이내믹스(unlimited wide dynamics)’에서 시작하는데, CD에서는 이 부분이 제거된다. 최근에 재발매되는 LP들은 대부분 CD 마스터링 음원을 사용한다. 그러므로 최근에 발매된 LP에서 ‘특유의 소리’를 찾는 건 넌센스다. 이런 이유로 제작사들도 LP 발매를 홍보할 때 ‘최초 LP 발매’나 ‘180g 중량반’, ‘유럽 최고의 생산 라인 이용’ 등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제작에 대한 것이지 음질에 대한 얘기는 아니다.

 

LP에 대한 수요는 주로 손으로 만지는 것, 디자인이 예쁜 것, 그래서 소장하는 것에 대한 욕구가 반영된다. 잭 화이트의 LP에는 재생할 때 홀로그램으로 인쇄된 천사 이미지가 떠오르고, 가운데의 동그란 스티커 부분에 히든 트랙이 숨어 있다. B면 첫 곡의 인트로는 전자음악과 어쿠스틱의 두 개 버전으로 녹음되었는데 바늘을 어떻게 대느냐에 따라 두 버전을 동시에 들을 수 있다. ‘고객 이벤트’ 같은 것이다.

 

오히려 음질을 따진다면 일본에서 수입되는 ‘Platinum SHM-CD’ 시리즈를 구하는 것이 훨씬 낫다. 우타다 히카루의 15주년 한정판이나 주다스 프리스트의 앨범들, 그 외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불새>나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19, 23번> 등 팝과 헤비메탈, 클래식에 이르는 범위의 음반들이 발매되어 있다. 전문가들은 이 포맷의 음질이 현존하는 CD 버전 중 최상이라고 여긴다. 패키지도 두껍다. 요컨대 기본에 가장 충실한 CD인 셈이다.

 

 

차우진

 

소리가 아닌 물건에 대한 관심


그런데 미국의 LP 판매량은 왜 늘고 있을까? 2007년 이후 급증했다는 사실에 주목해보자. 2006년은 구글이 유튜브를 인수한 해고, 2008년은 아이튠즈가 음악 산업 매출 1위를 차지한 해다. 미국의 음악 산업 구조는 이때부터 디지털로 전환되었다. 음반에서 (디지털)음원으로 시장 구조가 바뀌었다는 것은 물건에서 저작권으로 수익구조가 변환되었다는 뜻이다. 21세기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수익구조는 음반 판매에서 저작권 관리 체계로 바뀌었다. 이즈음부터 역설적으로 LP 판매량이 급증한 것은 음악이 대중문화의 다른 장르들보다 더 개인과 밀접하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이때 중요한 건 다시, 음악적 경험이다. 이 음악이 ‘내 음악’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이 음악을 통해 어떤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LP에 대한 높은 관심은 디지털 음원 시대에 대한 반작용이면서 아닐 수도 있다. 최근의 LP 붐은 소리가 아닌 물건에 대한 관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디지털과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산업적으로 스트리밍에 대한 수익을 기대하는 게 점점 어려워지기 때문에 20세기처럼 물리적 음반을 판매하는 것(과 동시에 페스티벌에서 머천다이즈를 판매하는 것)이 음악 산업의 실제 수익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때 다시 중요한 것이 ‘음악적 경험’이다. 음악 자체에 대한 경험이 아니라 음악을 듣기 위해 혹은 음악에 접착된 경험 말이다. 음반을 사려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거리를 걷던 기억, 혹은 특정 쇼핑몰을 클릭하는 것, 손에 들었을 때의 촉감, 플레이버튼을 누르고 첫 소리를 듣던 감각 등이 바로 음악적 경험이다. 음악 그 자체가 아니라 음악과 만나는 과정을 통한 쾌락은 음악을 감상하는데 더 많은 결을 부여한다. 그래서 이런 경험이 중요하다. LP의 붐은 음악을 듣는다, 혹은 소유한다는 것에 대해 새삼 여러 가지를 ‘뒤집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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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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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ah

2017.03.29

SHM-CD 찾다 들어왔는데... Platinum 이 또 붙으니 아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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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dq37rmt

2014.09.14

전 지금도 턴테이블이 있는 LP Bar에서 7~80년대의 추억의 음악들을 들으러 갑니다. 신청곡을 해서 어렸을때 너무 좋아했던 음악을 듣는 순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정말 황홀하고 좋습니다. 30년넘게 지난 지금에도 그 순수할때 좋아했던 음악에 대한 추억과 상황이 또렷이 생각나고, 특히 LP의 튀거나 지글거리는 소리들이 더 정감있고 편안하게 들리는 2014년인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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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선

2014.08.31

예전에 먼지 닦고 손때 묻으랴 조심하며 듣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이젠 다시 그렇게 한다면 좀 귀찮긴 하겠지만 음악을 좀 더 정성스럽게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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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진

음악웹진 <weiv> 편집장. 『청춘의 사운드』를 썼다. 대체로 음악평론가로 불리지만, 사실은 지구멸망과 부동산에 더 관심이 많은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