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 소개를 한다면.
블로그와 ‘문장 모으는 깐’이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어요. 지금은 웹 기획 일을 하는데, 블로그는 9년 전에 개설했으니 일보다 더 오래 했죠. 페이스북 페이지는 제 생일을 자축하며 생산적인 일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요. 제가 읽은 책의 좋아하는 문장을 ‘좋아요’ 해 주신 분들의 타임라인에 배달하고 있어요. 큰 욕심 없이 소소하게 운영 중입니다.
‘깐’이 블로그에도 페이스북 페이지에도 들어가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말씀드리면 허무해지실 텐데. 열 살도 안 된 어린이 때 친구들이 부르던 별명이에요. 별명이랄 것도 없이 제 이름인 ‘가은’을 빠르고 강하게 말하면 ‘깐’이거든요. 그냥 이름인 셈이죠. 블로그는 제가 하는 이야기를 남기는 곳이니, 제 이름 뒤에 ‘이야기’을 뜻하는 ‘-logue’를 붙여 ‘깐로그’라고 지었어요. ‘블로그’에서 ‘로그’를 떼어오기도 했고요. 페이스북 페이지는 제가 책을 읽으며 ‘수집’한 문장들을 올리는 곳이라, ‘문장 모으는 깐’이라고 지었죠. 사실, 이름에서부터 굉장히 자기중심적인 곳들이에요.
책 중심 블로거로, 파워블로거이기도 했잖아요.
10대 때부터 블로그를 운영했는데요. 파워블로거에 대한 인식이 지금만큼 부정적이지 않을 때에는 파워블로거가 되고 싶기도 했어요. 명예욕이 강한 편인데, 파워블로거가 되는 일을 명예로 느끼기도 했거든요. 그 욕심이 사라지자마자 선정되더라고요. 역시 명예를 느끼거나 하진 않았지만 책임감 비슷한 것을 느껴서 조금은 더 열심히 했는데, 다음 해는 안 됐어요. 바라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도 놓치니 아쉽더라고요. 아, 욕심을 버려야 하는구나. 깨달았죠.
약 10년 동안 블로그를 운영했잖아요. 보통 블로그를 시작하다, 나중에는 맛집이라든지 IT, 체험단 후기 등으로 주제를 넓히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한결같이 책과 영화만 포스팅하고 있습니다.
저도 대학 때 잠시 다른 포스팅도 꽤 올렸어요. 그러다 “뭘 위해 블로그를 하지?”라는 회의가 들더라고요. 결국 본연의 자세로 돌아와서 거의 책과 영화만 쓰고 있어요. 블로그를 처음 하게 된 계기는 기록이었어요. ‘기록병’이라고 할 만한 게 있거든요. 9살 때부터니까 거의 20년 동안 일기를 매일 썼어요. 같은 맥락에서 책과 영화 본 걸 기록하게 됐죠. 처음에는 일기장에 제목만 적었는데 싸이월드 시절부터 약간의 평도 썼죠.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부터는 블로그를 하면서 지금 형태로 일종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이곳 저곳에서 서평 써 달라는 요청도 많을 것 같네요.
솔직히, 많죠. 1주일에 10권이 넘을 때도 있지만, 제가 사서 읽고 싶은 책만 받아요. 주는대로 받다간 그걸 읽고 쓸 자신도 없는 걸요. 무엇보다 관심 없는 책을 억지로 읽고 평을 쓰는 건 성격상 절대 못 할 일이에요. 결국 받는 책보다 거절하는 책이 훨씬 많죠. 최근 몇 달은 거절만 했을 정도고요. 솔직하게 안 쓰겠지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전 소심한 덕에 양심에 걸리는 일은 못 해요. 받은 책이든 아니든, 혹평을 쓰는 경우가 드물기도 하고요. 모든 책에는 장단점이 있고 취향과 상황과 목적에 따라 다르게 읽히게 마련이라, 좋았던 점과 아쉬운 점을 다 써요. 다른 분들도 참고할 수 있게요. 당연히 제 생각이 담긴 글이니 제가 의미 있게 느낀 부분을 강조하고요. 늘 나름의 의미를 찾는 게 제 자신에게 유익하죠. 아무리 찾아봐도 단점만 보이는 책도 아주 가끔씩 있는데, 그런 책은 가차 없이 혹평이에요. 좋은 평을 쓰겠다고 약속하고 책을 받는 건 아니니까요. 읽느라 할애한 제 시간도 아깝고요. 다행히 의미 있겠다 싶은 책을 계획 하에 골라 보니 실망할 일은 적어요.
그렇다면 블로그에서 소개한 책은 추천하고 싶은 책이겠네요.
베스트셀러는 지양하는 편이고, 더 오랜 시간 동안 검증된 고전을 좋아해요. 베스트셀러도 좋아하는 작가이거나, 오래 인정받고 나면 읽는 편이죠. 신간 중에서는 특별한 기준 없이 마음이 끌리는 책을 읽어요. 대체로 좋아하게 되는 책들은 울림이 있는 문장의 에세이와 상상력이 돋보이는 소설이더라고요. 특히 추천하고 싶은 책은, 많은 분들의 바이블이기도 한 소로우의 『월든』. 그리고 버트란트 러셀의 『행복의 정복』이에요. 『행복의 정복』에 이런 문장이 나와요. "사람은 사물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질수록 행복의 기회를 더 많이 갖게 되고 또한 그만큼 운명의 지배를 덜 받게 된다." 제 좌우명이기도 해요. 한 권 더 꼽을 수 있다면, 일본 사진작가였던 호시노 미치오의 『여행하는 나무』도 굉장히 좋았고요. 소설로는 최근에 읽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영원의 끝』과 로랑 고데의 『세상의 마지막 밤』이 재밌었어요.
대학에서 전공은 철학인데, 지금은 웹 기획 일을 하고 있잖아요.
원칙대로 사는 편이에요. 하고 싶은 건 하고, 하기 싫은 건 하지 않는다는 게 그 원칙이고요. 책 선택도, 취직도 같았어요. 아주 짧게 사보 기자로 일하기도 했는데, 글쓰기를 좋아해서 갔죠. 해보니 취재가 잦은 활동적인 일이었고, 쓰는 글의 성격도 생각과 많이 달랐어요. 무슨 일을 하면 재미있을까, 하고 다시 찾아봤죠. 부모님이 컴퓨터 전공이시다 보니 컴퓨터와 친하게 자랐는데, 좋아하는 것들인 웹과 디자인, 글 쓰는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곳이 있더라고요. 온라인 캠페인을 제작하는 에이전시요. 똑 같은 일, 반복적인 일을 잘 못 견디는데, 프로젝트 단위로 매번 새로운 일을 할 수도 있었고요. 정말 하고 싶어 지원했고, 진심을 봐주셨는지 채용이 됐어요. 일하는 동안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좋은’ 캠페인을 제작하고 싶어요.
인문학 공부가 웹 기획에 도움이 되었나요.
저 외에도 인문학 전공자라면 비슷한 이야기를 할 텐데요. 요즘은 교양 인문학이다 해서 대중의 관심을 꽤 받고는 있지만, 인문학은 밥 벌어먹는 것과 무관해 보이는 게 사실이죠. 하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인문학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젊은 기획자에게 묻다』를 보니, 모든 기획자의 일이 비슷하더라고요. 기획은 사람이 생각하는 일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어떤 기획이든 인문학적 면모가 다 있어요. 결국은 인문학, 특히 철학과 닿아 있는 거죠.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 그 바닥에는 인문학이 존재해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모든 게 인문학으로 수렴되는 느낌이에요. 기본을 이룰 뿐 아니라, 인문학이 우리 일상에 채색을 해주기도 하죠. 예술도 같은 맥락일 테고요. 인문학과 예술이 없다면 삶은 활자만 가득한 도화지 같을 거에요.
좋아하는 사상가가 있다면.
버트란드 러셀이요. 노엄 촘스키도 좋아하고요. 좋아하는 분들이 많은데 행동하는 지성에 반하곤 해요. 사상이 사상으로 끝나지 않고 사회에 유효하게 작용하려면 사상가 본인이 행동해야 하는 것 같아요. 진정성이 느껴질 때 영향력이 커지니까요. 게다가 멋지기까지 하잖아요. 두 분이 그런 사람이더라고요. 심지어 분명하고 간결하게 글을 썼어요. 논리학과 언어철학을 전공하며 대학을 다니기도 했고, 명료한 것들에 설레는 타입이라 그런 깔끔한 글이 참 좋더라고요. 러셀의 경우는 여느 사상가들의 글보다 쉽죠. 대중적인 글을 쓰면서 철학의 깊이가 어마어마하다니. 반할 수밖에 없어요. 결혼 생활 등 개인의 삶을 보면 아쉽지만요.
갈수록 책을 안 읽는 시대, 왜 책을 읽고 있나요?
굳이 꼽자면 세 가지 정도에요. 정보와 영감과 즐거움이요. 우선, 필요한 정보가 있을 때 책을 여러 권 보면서 인터넷으로 검증하고 보충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어요. 또 제 경우에는 페이스북 등을 통해 천편일률적인 글을 접하게 되는데, 책을 직접 찾아 읽으면 남들과 똑같지 않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더라고요. 영감을 얻기에 책만큼 좋은 수단을 찾기도 어려워요. 영화나 미술, 음악도 마찬가지의 역할을 하죠. 마지막으로는, 즐겁기 때문이에요. 좋아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읽지 못했겠죠.
원래부터 책을 좋아했나요.
정확하게 언제부터 좋아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릴 때 사진을 보면 항상 책을 들고 있긴 했어요. 아주 어릴 때와 학생 때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한데, 책 속의 글과 책이라는 물건 자체에도 애착이 강한 편이에요. 아마 책이라면 원하는 걸 무조건 사주셨던 아버지와 독서를 중요하게 생각하신 어머니 영향이 클 거에요. 그래도 확신은 못하겠어요. 어머니는 임신하셨을 때에도 무협지를 그렇게 좋아하셨다고 하고 아버지께서는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을 아직도 정갈하게 보관하고 계시는데, 전 무협소설과 추리소설을 전혀 즐기지 않거든요.
전자책도 많이 보시나요?
종이책의 외모와 촉감과 향기까지 모든 것을 사랑하지만, 전자책에 거는 기대가 있어요. 하루에 3시간씩 통학과 통근에 할애해왔기 때문에 항상 들고 다니는 책이 어쩔 수 없이 짐으로 느껴지는 날도 있거든요. 그런 점에서 전자책은 공간 효율적인 데다 가벼워서 유용하죠. 한편 『위 제너레이션』에서는 바다에 있는 쓰레기 섬으로 이야기를 시작해서, 불필요한 ‘새 것’을 만들지 않고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실제 서비스를 소개해요. 제가 모아 온 책들이 달리 보이더라고요. 방 하나는 삼면이 책으로 메워져 있고, 거실도 한 쪽 벽이 가득 다 찼거든요. 사실 다시 보는 책은 몇 권 없는데 허영심에 모으고 있는 것 같았어요.
아, 전자책을 사야겠구나, 했는데 막상 읽을 수 있는 전자책이 많지 않더라고요. 신간을 구하기 어려운 건 허다하고 나와 있는 것도 종이책의 레이아웃을 그대로 재현하지 못하더라고요. 종이책과 전자책의 페이지가 다르다는 것도, 저처럼 페이지와 함께 문장을 기록하는 사람에게는 큰 단점이에요. 그래도 생각이 달라진 이후로 지인들과 이웃분들께 가끔 책을 드리기 시작했어요. 계획을 세우기로는, 결혼을 계기로 이사를 하면 좋아하는 책 몇 권만 빼고 모두 정리하려고 해요. 전자책 시장의 사정이 좋아지고 제작기술이 더 발전하면 더 많은 분들이 책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예스24를 쓰는 사람으로서 한 마디.
온라인 서점을 매번 선택하는 기준이 금액과 모아둔 포인트였는데, 올해 초부터는 예스24에 정착한 상황이에요. 가장 저렴해서 구매한 다른 곳에서, 새책을 샀는데 중고책이 왔거든요. 처음엔 실수라고 생각했지만 대응이 좋지 않았어요. 결국 사과를 받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죠. 검색을 해보니 제가 처음이 아니었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블로그를 통해 다른 분들도 수없이 같은 일을 겪고 계신 걸 알게 됐어요. 저에게 사과를 한 이후로도 계속이요.
바라는 점은 이런 거예요. 새책을 샀는데, 헌책이 오면, 독자가 믿고 살 수 없잖아요. 아주 기본적인 거지만, 믿을 수 있고 구매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으면 해요. 사람이 하는 일인데 잘못 올 수도 있겠죠. 대신 그런 경우에도 상인의 입장이 아니라 책을 다루는 분들의 마음 가짐으로 대응해 주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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