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 석가모니 부처에 빠지다
좋은 만남은 사람의 운명을 바꿔놓는다. 내게는 석가모니 부처와의 만남이 그랬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한 번 뿐인 인생을 잘 살 수 있을까. 인생에 대해 가장 궁금하고 회의가 많던 시절, 나는 우연한 기회로 석가모니 부처를 만났다. 직접 본 적이 없으니 가르침을 통해 만났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때 알게 된 이 성인聖人의 삶은 충격 그 자체였다. 내가 정신없이 좇던 돈과 권력을 미련 없이 버리고 출가한 것도 충격이었고, 여든 살까지 평생을 남을 위해 살다 간 생애도 경이로웠다. 그분은 내가 옳다고 생각한 기존 관념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내가 추구하던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깨닫게 해주었다. 도대체 무엇이 그런 삶을 선택하게 한 것일까. 이 책은 그 공부에 대한 작은 기록이다.
우리는 잘 사는 인생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원의 차원에서 보면 촛불처럼 짧은 인생이라 해도 한 생을 사는 사람에게는 길고 긴 것이 인생이다. 오랜 세월을 복대 기 치며 살다 보면 별의별 사람들과 얽히고설킨다. 기왕이면 뼈아픈 후회 없이 넉넉하고 여유롭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남들에게 눈총 받을 정도만 아니라면 행복 속에 깊이 파묻혀 사는 것도 좋은 인생이 아닌가.
작자 미상, 『통도사 영산전 팔상도』, 비단에 색, 233.5?151cm, 1775, 보물 제1041호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복 받은 사람일까. 유교儒敎에서는 다섯 가지 복五福을 갖춘 사람을 진짜 복 있는 사람이라 평한다. 『서경書經』의 「홍범洪範」 편을 보면 ‘오복’ 에 대해 이렇게 적어놓았다. 첫째는 오래 사는 것壽, 둘째는 부유한 것富, 셋째는 건강하고 편안한 것康寧, 넷째는 덕을 좋아하는 것攸好德, 다섯째는 목숨을 살펴서 마치 는 것考終命. 우리는 오복 중에서 몇 개나 누리고 살까. 전부를 가진 사람도 있겠지만 누구나가 다 한두 개 정도는 결핍을 느끼며 산다. 젊었을 때는 세상을 전부 가진 것처럼 힘이 넘치던 사람도 나이 들면 신체가 쇠락해지는 것을 실감한다. 열 살 때 의 활력과 스무 살 때의 열정을 유지하고 싶어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돈도 마찬가지이다. 개나리꽃 같은 미소와 벚꽃 같은 손짓으로도 떠나가는 돈을 불러들일 수는 없다. 건강은 어떠한가. 아무리 운동을 하고 좋은 음식을 먹어도 병은 피할 수 없다. 죽고 사는 문제야 더더욱 뜻대로 할 수 없다. 이러니 무슨 수로 오복을 다 누릴 수 있겠는가. 큰 비극의 주인공이 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할 판이다.
그런데 스물아홉 살에 행복이 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사내가 있었다. 석가모니 부처였다. 한 나라의 왕위 계승자로 태어난 석가모니 부처는 어느 누구도 누려보지 못한 부와 권력을 가졌지만 그 본질이 무상하다는 것을 알았다. 대단하지 않은가. 무엇이든 두 손에 움켜쥐려고만 하는 팔팔한 나이에 인생 을 마무리할 때나 깨닫게 되는 진리를 알았다는 사실이. 이것이 필자가 놀란 이유 였고, 불교를 공부한 이유였다. 공부 과정에서 만난 석가모니 부처의 가르침은 경이로움과 감동으로 다가왔다. 필자는 석가모니 부처를 공부하면서 누렸던 행복과 안녕과 평화를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었고, 이 책은 그렇게 기획되었다.
책에서 소개하는 석가모니 부처의 일대기는 그 생애를 여덟 장면에 압축 저장 한 팔상도八相圖에 맞춰 여덟 개의 장으로 구성했다. 팔상도는 도솔천에서 호명보살 로 있던 석가모니 부처가 지상에 내려온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에서부터 쿠시나가라 의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신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까지 생애의 중요한 장면 을 여덟 개의 그림으로 압축한 것이다. 생애의 요약본이라 할 수 있다. 책의 내용은 ‘팔상도’에 맞춰서 진행하되, 그에 맞는 적절한 옛 그림을 보충하는 형식으로 구성 했다.
중간중간에 가끔씩 필자의 개인사도 덧붙였다. 따라서 이 책은 서로 다른 세 개의 이야기가 인드라망처럼 얽혀 있는 구성이다. 부처의 생애와 옛 그림과 필자의 개인사가 그것이다. 여러 개의 글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는 점에서, 이는 후기인상 파의 점묘법點描法식 글쓰기가 되겠다. 점묘법은 원하는 색을 미리 혼합해서 화폭에 칠하는 채색기법과 달리, 화폭에 직접 색을 찍어서 그것들이 보는 이의 눈 속에서 한데 혼합이 되게 하는 기법이다. 화폭에 점점이 찍혀 있는 원색들은 가까이 들여다보면 서로가 전혀 관련이 없는 색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떨어져서 보면 각각의 점들은 큰 그림을 만드는 세포처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각 글을 엮는 세 개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서로 무관하면서도 절묘한 장면을 연출하는 점묘법의 색 점처럼 서로 다른 옛 그림과 필자의 개인사가 부처의 위대한 생애와 혼색이 되어, 끊임없이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 되었으면 한다.
옛 그림은 예배 대상으로서의 불화佛畵 대신 감상용 회화를 선택했다. 이것은 필자의 전공이 일반 회화라는 사실이 큰 이유이지만 불법佛法의 세계를 불화로만 설명 하던 좁은 테두리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크게 작용했다. 부처의 가르침은 불자에 게만 해당되는가. 불교를 모르거나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한정적인 진리’인가. 불법이 만법萬法이라면 불교 교리를 전혀 담지 않은 일반 회화에서도 불법 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의문이 불화가 아닌 감상용 회화를 선택하게 했다.
이 책은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에 맞춰 기획된 ‘옛 그림으로 배우는 불교이야기’ 시리즈 중 첫 번째인 ‘불佛’이다. 전생에서부터 열반까지, 부처의 생애와 발자취를 따라간다. 그런 만큼 1권의 고갱이는 부처의 생애가 된다. 부처의 가르침이 담긴 경전經典의 내용은 두 번째인 ‘법法’에서 살펴볼 예정이다. 부처의 10대 제자와 역대 조사祖師들의 발자취는 세 번째인 ‘승僧’에서 만나게 된다. 점묘법 스타일의 글쓰기로 진행될 불법승 삼보를 다 읽고 나면, 나와는 상관없는 줄로만 여겼던 석가모니 부처의 가르침이 여전히 나의 삶 속에 현재형으로 진행 중임을 비로소 발견하게 될 것 이다. 부디 위대한 성자의 생애와 가르침을 담은 이 시리즈가 독자들의 마음과 삶 을 조금이나마 밝혀주었으면 좋겠다.
2014년 봄
조정육
- 옛 그림, 불교에 빠지다 조정육 저 | 아트북스
이 책은 스물아홉 살에 출가해서 여든 살에 열반에 든 석가모니 부처의 생애와 발자취를 따라가되, ‘전생’에서 ‘열반’하기까지의 과정을 산수화, 인물화, 풍속화, 사군자, 병풍화 등의 옛 그림으로 들려준다. 구성은 “부처 생애의 요약본”(4쪽)으로 통하는 「팔상도(八相圖)」에서 형식을 빌려왔다. “도솔천에서 호명보살로 있던 석가모니 부처가 지상에 내려온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에서부터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든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까지 생의 중요한 장면을 여덟 개의 그림으로 압축”(5쪽)해놓은 불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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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jukaki
2014.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