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윤 작가의 첫 장편동화 『앵무새 돌려주기 대작전』은 실수해도 괜찮다고, 아직 꿈을 찾지 못했다고 해서 잘못을 저지른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지금까지 우리가 아이들에게 ‘희망고문’을 해왔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도 때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진실을 알려줬더라면, 실패 앞에서 아이들은 조금 덜 아파하지 않았을까. 조금 더 빨리 다시 일어설 수 있지 않았을까. 아이들을 자라게 하는 것은 성공의 경험만이 아니고, 실패를 거듭하는 중에도 꿈은 발견된다. 그 작지만 소중한 진리를 『앵무새 돌려주기 대작전』은 경쾌한 리듬으로 들려준다.
선머슴 같지만 이름처럼 정이 많은 13세 소녀 ‘정마니’.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한 마리 앵무새로 인해 마니는 특급 임무를 부여 받는다. 동생이 실수로 데려온 아빠의 사장님네 앵무새를 아무도 모르게 돌려보내야 하는 것. 승진 발표를 앞둔 아빠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작전’을 앞두고 마니는 최선을 다해 해결 방법을 찾는다. 하지만 실수를 거듭하면서 일은 점점 꼬여만 가고, 같은 반으로 전학 온 사장님 아들 ‘문수혁’에게 앵무새를 들킬 위기에 처하게 된다. 과연 마니는 ‘앵무새 돌려주기 대작전’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을까.
『앵무새 돌려주기 대작전』은 제18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의 고학년 부문 수상작이다. 어린이책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던 중 ‘아이들에게 재밌는 책을 읽게 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는 임지윤 작가. 『앵무새 돌려주기 대작전』을 통해 그 바람은 현실이 되었다. “입담 좋은 문장, 리듬을 타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서사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시선을 잡아끄는 작품의 도입부도, 선머슴 같지만 속은 여린 주인공도, 작품 전체를 일관하는 유머러스함도 매력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동화 작가로서 성공적인 첫 발을 내딛은 것이다. 가벼운 웃음은 물론 묵직한 의미까지도 놓치지 않으며 주목할 만한 신인 작가의 탄생을 알린 임지윤 작가와 만났다.
앵무새를 기르듯 아이를 키우고 있다면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시다가, 동화를 직접 써야겠다고 생각하신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그림책 그리는 일을 하면서 동화를 많이 읽었는데, 조금 우울하거나 사회 비판적인 내용의 동화들을 볼 때면 아쉽기도 했어요. 아이들에게 뭔가 일깨워주려고 하는 건 정말 좋다고 생각하지만, 조금 더 재밌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정말 웃기고 재밌는 책을 쓰면 어떨까’ 생각이 들어서 동화를 쓰게 됐어요.
소설이 아닌 동화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게는 성인 독자를 대상으로 한 소설보다 동화가 더 잘 맞는 것 같아요. 이야기가 훨씬 담백하고 꾸밈이 없잖아요. 표현적인 측면보다는 서사로써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아주 담백하게. ‘인생은 이런 거야’라고 멋지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살다 보면 삶의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소설 같을 때가 있잖아요. 거기에서 오는 감동들도 있고요. 그런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이야기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가장 동화답다고 느끼고요.
동화 속 아이들의 모습은 굉장히 현실적입니다. 대화에 사용된 단어만 보더라도 요즘 아이들에게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것들이죠.
어른의 입장에서 ‘아이들은 이럴 거야’하고 생각하면서 쓰면 진실 되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아이들을 만날 기회를 많이 가졌죠. 성당 주일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도서관에서 봉사활동을 하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보다는 많이 지켜봤어요. 아이들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쓰기 시작하니까 아이의 말투가 나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앵무새 돌려주기 대작전』에 등장하는 아이들 대부분은 제가 친하게 지냈던 아이들을 모델로 하고 있어요. 아이들을 전혀 이해하지 않고 동화를 쓸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앵무새 돌려주기 대작전』은 이야기의 끝까지 반전이 이어지죠. 서사에 있어서 많은 고민을 하셨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정말 많이 다듬었어요. 초고가 나온 후에 출간되기까지 1년이 걸렸는데요, 후반에 수정 작업을 할 때는 거의 캐릭터들한테 맡겼던 것 같아요. ‘주인공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면서요. 그러다 보니까 ‘이 캐릭터라면 이렇게 멋지게 이야기를 끝맺지는 않을 거야, 뭔가 엉터리 같은 사건이 벌어질 거야’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반전 있는 이야기들이 떠올랐죠. 단조로운 서사를 피하고 싶은 마음에 사건을 조금 더 다양하게 넣어서 풀어가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요.
작품 안에서 아이들은 앵무새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이들의 모습을 앵무새에게 투영시키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동네 도서관에서 봉사 활동을 한 적이 있는데요, 그 곳 관장님이 새를 굉장히 좋아하셔서 ‘호동이’라는 이름의 초록 앵무를 키우셨어요. 그런데 어느 날 호동이가 없어진 거예요. 아이들과 같이 앵무새를 찾아 나섰죠. 동네 곳곳에 포스터를 붙이면서요. 그때 ‘이건 완전 동화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 이야기를 꼭 써봐야겠다고 생각을 했었죠. 이야기의 재미를 위해서 배경은 도서관이 아닌 ‘정마니’의 집으로 바꾸고 새롭게 각색을 했지만, 앵무새를 찾는다는 사건은 똑같죠. 지금도 그 도서관에는 ‘길동이’라는 이름의 회색 앵무를 키워요. 『앵무새 돌려주기 대작전』에 등장하는 앵무새 ‘한비’의 행동이나 특징은 ‘길동이’를 보면서 쓴 거예요.
수혁이 엄마가 앵무새 ‘한비’를 대하는 태도는 현실에서 우리가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과 닮아 보입니다.
수혁이 엄마는 ‘한비’에게 말을 가르치기 위해서 하루 종일 녹음기를 틀어 놓잖아요. 실제로 그런 모습을 보고 너무 속상했던 적이 있었어요. 아이들을 가르치는 엄마의 모습 그대로더라고요. 그런데 그렇게 한다고 해서 앵무새가 말을 따라하지는 않거든요. 자기가 하고 싶을 때만 말하고, 자기와 친한 사람이 아니면 말을 하지 않을 때도 있어요. 아이들도 마찬가지예요. 자기가 기분이 좋고 말을 하고 싶을 때 엄마와 이야기하는 거죠. 아무리 ‘왜 엄마랑 얘기를 안 하니, 왜 공부 안 하니’라고 해봤자 말을 듣지 않아요. 그런 점에서 앵무새와 비슷한 점이 참 많죠.
꿈이 바뀌어도 괜찮아. 중요한 건 나를 믿는 거야
작품을 쓰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앵무새 돌려주기 대작전』에서 ‘정마니’의 엄마는 집안 곳곳에 명언을 붙여놓잖아요. 그걸 보면서 의지를 북돋우는 게 좋기는 하지만, 부모가 자신이 하지 못했던 걸 자식한테 강요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내 인생을 사는 거지, 부모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게 아니잖아요. 부모님 뜻대로 살다가 어른이 돼서 ‘나는 꿈이 없어, 나는 뭘 해야 될지 모르겠어, 난 다른 걸 하고 싶은데 엄마한테 어떻게 말하지’ 이렇게 고민하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아요. 자존감이라는 건 대학에 보낸다고 해서 생기는 게 아니거든요. 어릴 때부터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려면 부모가 자식을 믿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가끔 못된 짓을 할 때가 있긴 하죠. 그런데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다면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못된 짓 한 번도 안 하고 자란 아이가 결코 좋은 어른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그런 경험도 해 보면서 ‘이러지 않아야 되겠구나’ 느끼잖아요. 남한테 준 것보다 더 큰 상처를 자신이 받는다는 것도 느껴보고요. 그런 것들을 다 느끼면서 또 자기 자신을 믿으면서 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앵무새 돌려주기 대작전』을 쓰면서 알게된 ‘아이들과의 소통법’이 있다면.
아이들한테 답을 주려고 하지 말고 질문을 조금 더 많이 해보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사실 어른들도 완벽하게 답을 알지 못하거든요. 그런데도 답을 주려고 하다 보니까, 속으로는 ‘이게 아닌 것 같은데’ 싶으면서도 체면 때문에 강하게 자기 주장을 펼 때가 있죠. 그게 아이들한테는 조금 더 폭력적이고 강압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은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하고 물어보려면 인내심이 필요하죠. 아이들은 전혀 엉뚱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그것 자체로 이해하고 포용해줄 수 있는 인내심이 조금 더 필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아이들에게 참으라고 하지 말고 우리가 조금 더 참아주면 안 될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아이들과 더 가까워지는 방법이 아닐까 싶어요. 아이들은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데 시간이 걸려요. 속상한 일이 있으면 심통 부리고 화부터 내죠. 그럴 때 혼을 내는 게 아니라 ‘무슨 일이 있었니? 오늘 어땠니?’ 이렇게 물어보면 아이가 분명히 얘기할 거예요. 그렇게 아이 안에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를 건드려줘야 부모와 아이가 잘 생활해 나갈 수 있는 것 같아요.
부모와 아이가 함께 책을 읽는 것만큼 좋은 일도 없을 텐데요. 『앵무새 돌려주기 대작전』을 읽은 독자와 자녀들이 어떤 이야기를 나누기를 바라시나요?
엄마 아빠의 꿈이 아이들한테만 기울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엄마도 꿈이 있었으면 좋겠고, 아빠도 꿈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대부분의 동화책들과 달리, 저는 『앵무새 돌려주기 대작전』의 끝에서 아빠한테도 행복을 주고 싶었어요. 아빠한테도 꿈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꿈을 이루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꿈을 갖고 있지 않은 부모님들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요. 부모가 꿈이 없는데 과연 아이가 어떤 꿈을 갖고 살아갈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거죠. 제 바람은 『앵무새 돌려주기 대작전』을 통해서 엄마, 아빠, 아이가 다 같이 모여서 자신의 꿈에 대해 얘기하는 시간을 가져봤으면 좋겠어요.
『앵무새 돌려주기 대작전』의 아이들처럼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무엇이 될지 몰라서 고민하는 아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신가요?
꿈이 바뀌는 건 괜찮다고 생각해요.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을 믿는 거죠. 그냥 나니까, 믿는 거예요. 내가 무엇이 돼서 좋은 사람인 것도 아니고, 무엇이 되지 못해서 나쁜 사람인 것도 아니잖아요. 이야기의 끝에서 ‘정마니’는 꿈을 찾지만 그 꿈이 바뀌어도 된다고 생각해요. 지금 그게 좋다면 그렇게 생각하고 행복하게 지내라고 얘기해 주고 싶어요.
앞으로 작품 속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깔깔대고 재밌게 웃을 수 있는 명랑 동화를 쓰고 싶고요. 그리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아이들이 재밌게 읽을 만한 이야깃거리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겠지만 삶의 진솔한 부분을 놓치고 싶지는 않아요. 꼭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아이들의 생활 안에서 소소하게 벌어지는 일들에도 철학이 다 담겨있거든요. 그런 이야기 안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삶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동화를 쓰고 싶어요.
- 앵무새 돌려주기 대작전 임지윤 글/조승연 그림 | 창비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저마다 문제를 안고 있는 열세 살 소녀 마니네 가족이 앵무새를 둘러싼 사건을 겪으면서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는 과정이 독자들의 공감을 자아냅니다. 때로는 따뜻하고, 때로는 톡톡 튀는 유머도 작품을 더욱 친근하게 느낄 수 있게 합니다. 화려한 성공만을 좇고 멘토가 넘치는 요즘 같은 때, 성공이 아닌 행복을, 멘토가 아닌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건강한 어린 주인공의 등장이 믿음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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