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나누고 싶은 사람에게 -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살다보면 가끔 비밀을 공유할 때 금방 친구가 되는 경우가 있다. 내가 사랑하는 그림책, 혹은 추억이 있는 그림책을 선물해보면 어떨까. 그 사연을 지렛대 삼아 당신과 나 사이에 훨씬 많은 이야기들을 불러낼 수 있으리라.
글ㆍ사진 한미화
201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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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다 보면 같이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서로 좋아하는 그림책부터 그림책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나 주인공이 아끼는 인형까지 함께 공감할 수 있다. 나아가 그림책을 매개삼아 부모의 추억을 들려줘도 좋겠다. 어린 시절 읽었던 책을 서른이 넘어 다시 수집한 사연을 담아낸 곽아람의 『어릴 적 그 책』 을 넘기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곽아람은 그때 그 시절 읽었던 동화들을 기억하며 “《수학의 정석》이나 《성문종합영어》도 그 책들만큼 자주 읽진 않았다. 토씨 하나까지 외울 정도로 반복해서 읽은 책은 연하고 어린 뇌에 화인처럼 각인됐다. 누가 나게 당신 인생을 변화 시킨 책은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어린 시절을 지배했던 동화를 꼽겠다”라고 고백한다.

어릴 때 변변한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읽은 기억이 없는 내게 단 한 명 추억으로 떠오르는 그림 작가가 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거의 모든 책에 그림을 그린 일론 비틀란드다. 그림책이나 동화책으로 접한 것도 아니라 어린이 잡지 《소년 중앙》의 별책 부록으로 나온 중철 제본의 ‘로타와 자전거’에서 일론 비클란드의 그림을 처음 봤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글을 쓰고 일론 비클란드가 그림을 그린 ‘로타와 자전거’는 1982년에 백제 출판사에서 《현대세계걸작동화》라는 26권 짜리 그림책 전집 중 한 권으로 국내에 선보였다. 그 책이 잡지의 부록이 된 이유는 확실하지 않으나 출판사가 판촉을 목적으로 제공한 것이 아닌가 추측할 뿐이다.


『로타와 자전거』 는 막내 로타가 요나스 오빠와 마리아 언니는 학교도 가고 두발 자전거도 타지만 자기만 세발자전거를 타자 심술을 부리는 이야기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글을 썼다는 사실은, 당연히 몰랐다. 그저 그림이 아름다웠다는 사실만 선명하게 기억한다. 골이 난 로타가 커다란 벚나무에 매어 놓은 그네에 앉아있는데 벚꽃이 하얀 눈처럼 내리는 펼침 장면은 너무나 시적이었다. 또 하나 로타가 늘 데리고 다니던 돼지 인형(엄마가 로타의 세 번째 생일에 분홍색 천으로 만들어준 인형으로 이름이 ‘밤새’다)도 무척 정감 있었다.

『로타와 자전거』 는 그 이후 볼 수 없었지만 두 사람이 콤비를 이룬 그림책은 몇 권 만날 수 있다. 『나도 동생이 있으면 좋겠어』 『로타는 기분이 좋아요』 『저거 봐, 마디타, 눈이 와!』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등이다. 이 중에서도 『로타와 자전거』 에 등장한 심술도 부리고 떼도 쓰지만 귀여운 로타가 다시 등장하는 그림책이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다.


막내 로타는 여전히 오빠와 언니를 따라 한다. 휘파람도 스키도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있을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서 스키 연습을 하다 정신이 팔려 밤새를 담은 봉투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등 좌충우돌이다. 요나스 오빠는 마을에 전나무가 동이나 이번 성탄절에는 크리스마스트리 없이 보내게 되자 로타에게 심술을 부린다. 넌 뭐든지 할 수 있다고 했으니까 전나무를 구해오라고! 하지만 정말 로타 앞에 기적처럼 전나무가 나타났다. 정말로 로타는 ‘뭐든지 할 수 있는’ 아이였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도 일론 비틀란드도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동네의 굴뚝 청소부 아저씨, 이웃집 아줌마 등이 모두 한 식구처럼 지내는 그런 작은 마을 말이다. 성탄절이나 생일이면 엄마가 음식을 준비하고 온 가족이 식탁에 모여 식사를 하고 크리스마스트리도 함께 꾸민다. 일론 비클란드는 로타 같은 어린아이가 온전하게 보호 받고 사랑 받으며 자라는 이상적인 마을과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는 종종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언뜻 비례가 맞지 않아 보이지만 포근하게 마을과 방안 등 무대 전체를 보여주곤 한다. 그러고는 마을이나 집안 구석까지 세세히 그려내 그림을 보고 있자면 스웨덴 사람들이 무얼 먹으며 어떻게 사는지를 알 겠다 싶을 정도다. 무엇보다 호기심 많고 소리도 잘 지르고 울기도 잘하고 샘도 많고 고집도 센 로타의 표정과 움직임은 너무도 사랑스럽다.

로타를 그린 일론 비클란드는 동부 유럽의 발트 해 연안에 있는 에스토니아의 합살루에서 자랐다. 하지만 1944년 구소련이 두 번째로 에스토니아를 지배하자 가족과 함께 스웨덴으로 건너갔다. 이후 그녀는 스톡홀름에서 광고와 출판 미술을 공부했고 《미오 나의 미오》에 그림을 그리며 처음으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을 만났다. 이후 린드그렌의 책에 많은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렸다. 2006년에는 800여점의 원화를 자신의 조국인 에스토니아의 박물관에 기증했고. 고향인 압살루에 일론 기념관이 문을 열었다고 한다.

일론 비클란드와의 추억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20대 초반 그녀의 원화 전시회에 간적 있다. 서울 시청 역 부근의 작은 공간이었다. 왜, 어떤 이유로 전시회가 열렸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전시를 보러 간 날은 추웠고, 내가 어린 시절 보았던 『로타와 자전거』 를 그린 바로 그 작가라는 사실을 확인하며 살짝 흥분했다. 이 즐거움을 누구와 나눠야 할지 알지 못 한 채, 전시가 지루한지 그만 술이나 먹으로 가자는 남자친구의 성화에 서둘러 나왔다.

살다보면 가끔 비밀을 공유할 때 금방 친구가 되는 경우가 있다. 내가 사랑하는 그림책, 혹은 추억이 있는 그림책을 선물해보면 어떨까. 그 사연을 지렛대 삼아 당신과 나 사이에 훨씬 많은 이야기들을 불러낼 수 있으리라.


함께 읽으면 좋을 책

『나도 동생이 있으면 좋겠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일론 비클란드 그림/박진희 역 | 북뱅크
오빠가 막 태어난 동생을 시샘하는 마음을 담아낸 책이다. 로타가 살았을 법한 마을과 집을 배경으로 삼은 일론 비클란드의 그림을 즐길 수 있다.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일론 비클란트 그림/강일우 역 | 창비
린드그렌의 단편을 골라 실은 동화집이다. 동명의 단편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뿐 아니라 린드그렌이 창조해낸 어린 주인공을 여럿 만날 수 있다. 린드그렌의 책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 맞춤한 책.


[관련 기사]

-이제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 『바람이 멈출 때』
-간절히 쉬고 싶은 사람들에게 - 『마지막 휴양지』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오랫동안 함께 한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이들을 위하여
-하얀 눈밭을 그리워하는, 비좁은 사무실 안 직장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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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뭐든지 할 수 있어 #로타와 자전거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일론 비틀란드
1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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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4.07.06

스톡홀름에서 광고와 출판 미술을 공부했고 《미오 나의 미오》에 그림을 그리며 처음으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을 만났다. 이후 린드그렌의 책에 많은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렸다는 이력이 새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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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jshy

2014.06.30

<로타와 자전거>는 <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제목으로 이번에 나왔네요~~ 소식 전해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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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그나

2014.01.23

그림이정말예쁘고선명하네요^^우리아이들에게몽땅보여주고싶은욕심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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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화

독일문학을 공부했고 웅진출판과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일했다. 현재는 책과 출판에 관해 글을 쓰고 방송을 하는 출판칼럼니스트로 일하고 있다. [황정민의 FM대행진]에서 ‘한미화의 서점가는 길’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겨레신문]에 어린이책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시대 스테디셀러의 계보』 『베스트셀러 이렇게 만들어졌다 1-2』 등의 출판시평과 『잡스 사용법』, 『책 읽기는 게임이야』,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공저)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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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리드 린드그렌

1907년 스웨덴 스몰란드 지방의 작은 도시 빔메르뷔에서 태어나 2002년 스톡홀름 달라가탄 자택에서 생을 마감했다. 일생 동안 동화책, 그림책, 희곡 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으며, 전 세계 백 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그 작품들은 아동 문학의 고전으로 일컬어지며,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독일청소년문학상 등 수많은 상을 수상하고,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로 제작되어 세계 여러 나라에서 방영되었다. 『소년 탐정 칼레』, 『에밀은 사고뭉치』, 『나, 이사 갈 거야』, 『떠들썩한 마을의 아이들』,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 등 수많은 작품에서 린드그렌은 어린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린이가 재미있어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그려 내며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002년 린드그렌이 세상을 떠난 후 스웨덴 정부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기념 문학상’을 제정해 그 업적을 기리고 있으며, 2005년에는 린드그렌의 필사본을 비롯한 관련 기록들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자기 안에 있는 ‘아이’를 즐겁게 하기 위해 글을 쓴다고 했던 린드그렌의 손에서 태어난 칼레, 에밀, 로타, 삐삐, 로냐, 라스무스 등은 자연과 공동체가 살아 있던 시골 마을과 더불어 영원히 어린이들 곁에서 생명을 이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