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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 누구나 사랑을 말하지만 사랑을 전하기란 이토록 어려운 일, 여기 사랑을 어떻게 전해야할지를 잘 보여주는 그림책이 있다. 헬린 옥슨버리가 그림을 그린 『찰리가 온 첫날 밤』 과 후속편인 『찰리가 할아버지를 만난 날』 이다.

때가 되면 찾는 것들이 있다. 이걸 직업윤리라고 해야 하나 직업 의무라고 해야 하나 모르겠지만, 입학철, 어버이날, 어린이날, 스승의 날 혹은 연말연시가 되면 딱 어울리는 책이 없을까 애를 써가며 책 찾기에 열을 올린다.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크리스마스인데, 이날을 기념할 만한 의미 있으면서 재미있는 책이 그다지 많지 않다. 누구나 알고 있고 심지어 지겨워할 법한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 을 빼면,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한 소설 중에는 폴 오스터의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가 가장 좋다(물론 그림책은 산타 할아버지가 등장하는 책이 여럿이지만). 영화라면 단연 <러브 액츄얼리>다. <러브 액츄얼리>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앤드류 링컨이 키이라 나이틀리에게 스케치북에 “지금 고백할게요. 크리스마스니까요.”라고 써서 보여주며 사랑을 고백하는 대목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 누구나 사랑을 말하지만 사랑을 전하기란 이토록 어려운 일, 여기 사랑을 어떻게 전해야할지를 잘 보여주는 그림책이 있다. 헬린 옥슨버리가 그림을 그린 『찰리가 온 첫날 밤』 과 후속편인 『찰리가 할아버지를 만난 날』 이다.

그림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알겠지만 헬린 옥슨버리는 존 버닝햄의 부인이다. 두 사람은 센트럴 미술학교에서 만났다. 당시 존 버닝햄은 그래픽 디자인과 일러스트레이션을, 헬렌은 무대 디자인을 전공했다. 무대 디자인을 공부한 헬린이 그림책을 그리기 시작한 건 존 버닝햄과 결혼한 뒤부터였다. 아이들이 어릴 때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기가 그리 쉬운 건 아니니까. 세 자녀를 키우며 작업을 한 헬린 옥슨버리의 그림에는 마치 어머니 품 같은 따뜻함이 담겨있다. 연필선으로 그려진 인물이나 동물의 모습은 사랑스럽고, 색감은 따뜻하고 포근하다.


눈이 내리는 밤이었다. 길을 가던 헨리는 길 잃은 강아지를 만나 집으로 데려온다. 헨리는 가방에서 자신이 아기 때 쓰던 낡은 담요를 꺼내 강아지를 감싸 안고 간다. 어찌된 일인지 모르나 가방에 아기 때 쓰던 담요를 넣고 다니는 걸로 봐서 헨리는 사랑이 많이 필요한 아이가 아닌가 싶다. 아이들이 원하는 사랑의 크기는 저마다 다른데 내면에 사랑이 넘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이정도면 되었다 싶은데도 여전히 사랑이 절실한 아이도 있다.


사랑이 절실해 보이는 헨리는 찰리라고 이름붙인 길 강아지를 만나 돌보며 사랑받기보다 사랑을 나눠주는 아이로 변해간다. 헨리는 강아지에게 집을 여기저기 구경시켜주고 찰리를 산책 시키고 먹이도 주는 일을 맡기로 한다. 한데 한 가지, 부모님은 찰리를 헨리의 방이 아니라 부엌에서 재워야 한다고 말한다. 집에 온 첫날밤, 쓸쓸하게 홀로 잠들 강아지 찰리를 위해 헨리는 곰 인형을 가져다주고 마치 부모들이 그랬듯 찰리 곁에서 잠들기를 기다려 준다. 하지만 그날 밤 찰리는 여러 번 깨서 보챘고 헨리는 결국 침대로 찰리를 데리고 가서 눈을 들여다보며 이렇게 말한다. “사랑해, 찰리.” 그리고 찰리도 헨리도 잠이 든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아이가 어릴 때 저녁밥 먹기 운동을 한 적이 있다. 평소답지 않게 왜 일찍 가냐는 지인들의 비아냥을 물리치고, 아직 끝내지 못한 일거리를 팽개치고 집으로 내달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더 늦기 전에 함께 밥을 먹으며 아이에게 사랑을 전하고 싶어서였다. 한데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초보엄마였다. 어느 날 밥상에서 내가 뭘 하나 돌아보니 세상에나 아이 말을 건성으로 들으며 신문을 들척이고 있었다. 다음부터는 적어도 저녁밥을 먹을 동안은 아이와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노력했다. 물론 아이에게 물어보면 좋은 소리는 못 듣겠지만. 『찰리가 온 첫날 밤』 은 애완동물을 키우는 아이가 감정을 이입해도 좋은 책이고, 사랑을 어떻게 나누는지를 헨리와 찰리의 몸짓과 눈빛으로 느껴도 좋은 책이다. 그림책에는 한 생명을 안았을 때만이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이 있다. 그 사람의 체온과 심장소리, 달콤한 냄새, 부드러운 감촉 그리고 사랑이 몽실몽실 피어난다.


『찰리가 온 첫날 밤』 에 더해 찰리와 할아버지가 친구가 되는 이야기를 담은 『찰리가 할아버지를 만난 날』 도 함께 보면 좋겠다. 한 번도 강아지와 친구가 된 적이 없는 할아버지가 어떻게 찰리를 받아들이지를 보여준다. 『찰리가 할아버지를 만난 날』 에는 인상 깊은 구절이 나온다. 사랑이란 무엇일까에 관해 저마다 한마디씩 하지만 그럼에도 추가할 만한 말이다.
“찰리는 할아버지의 눈을 들여다봤고 할아버지도 찰리의 눈을 들여다보았어요. 그런 우리만의 암호랍니다. 사랑한다는 뜻이죠. 사랑해요. 사랑한다. 사랑합니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나면 꼭 눈을 맞추고 따뜻하게 안아주며 “사랑한다”라고 말해주길. 부모가 해주는 이런 사랑의 말을 듣고 몸짓을 느끼며 자란 아이가 훗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머뭇거림 없이 상대의 눈을 바라보며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도록. 사랑 또한 배우는 거니까.


함께 읽으면 좋을 그림책

『엄마 가슴 속엔 언제나 네가 있단다』 몰리 뱅 글,그림/최순희 역 | 열린어린이
일하는 엄마가 아이에게 읽어주기 좋은 그림책. 엄마와 아이를 연결하는 사랑의 유대감을 보여준다.

『엄마는 언제나 너를 사랑한단다』 에이미 헤스트 글/아니타 제람 그림/김서정 역 | 베틀북
『찰리가 온 첫날 밤』 에서 찰리와 헨리의 교감을 정감 있는 글로 표현한 에이미 헤스트가 글을 쓴, 엄마와 아이의 사랑을 담은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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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한미화

독일문학을 공부했고 웅진출판과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일했다. 현재는 책과 출판에 관해 글을 쓰고 방송을 하는 출판칼럼니스트로 일하고 있다. [황정민의 FM대행진]에서 ‘한미화의 서점가는 길’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겨레신문]에 어린이책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시대 스테디셀러의 계보』 『베스트셀러 이렇게 만들어졌다 1-2』 등의 출판시평과 『잡스 사용법』, 『책 읽기는 게임이야』,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공저)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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