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희 “다음 작품은 더 야한 중학생 이야기”
지난 11월 27일, 서울 홍대 부근의 한 카페에선 청소년들과 『더 빨강』의 김선희 작가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당연히 성(性)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2013.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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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책. ‘응답하라 세대’만 해도 그것은 상상력의 보고였다. 성(性)에 대한 모든 것은 빨간책에 있었다. 지금은 그것이 영상으로 대체됐을지 몰라도. 그러니 빨간책이 주는 감상과 이야기를 다룬 ‘응답하라 세대’의 외전이 나오는 것도 좋겠다. 『더 빨강』 은 그런 빨간책의 추억(?)을 연상시킨다. 빨강이 주는 색채적 연상도 그렇고, 혈기방장한 시절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가장 강력한 시기, 청소년기
『더 빨강』 이 나오고 난 뒤, 김 작가는 주변으로부터 ‘약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역시 ‘빨간책’에 대한 기대 때문일 것이다. 이에 김 작가는 다음 작품은 더 세게, 중학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겠다며 웃는다. 실은 이 책은 성(性)을 주제로 쓴 것이 아니었다. 가족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러나 가족이야기를 하자면 반응이 시들시들했다. 청소년 등을 대상으로 강연을 나가도 그랬다. 이른바 ‘야한’ 이야기를 하면 말똥말똥했고, 졸던 학생들도 일어났다. 그러면서 김 작가는 깨달았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목이 많이 말랐구나. 갈증이 심하구나. 그래서 갈증을 충족시킬 의무가 있는 것 같다. 다음 작품을 꼭 기대해 달라(웃음). 여자도 성충동이 있다. 남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여자도 감정이 있고, 본능이 있는데, 내 경험상 열일곱, 고1때가 가장 강렬했다. 뜨겁고 어찌 할 수 없고, 이게 뭔가 싶고. 인생에서 가장 강렬할 때가 사춘기 시절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고등학교 시절이 가장 회색빛이라고 여긴다. 나도 그때 내 인생을 회색이라고 생각했다. 늘 불행하다고 생각했고, 사는 게 너무 힘들었다. 시간이 너무 안 가고, 현실은 너무 힘들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 작가가 되고 싶은데, 글은 안 써지고, 가족과 세상이 다 싫어지고. 매일 죽는 상상만 했다. 벌레만도 못한 인간인 것 같고.”
상상과 달리 현실은 너무 초라했다. 잘 하는 것도 없고, 예쁘지도 않으며, 주위는 자신을 너무 힘들게 했다. 김 작가가 당시 쓴 詩를 봐도, 염세적이기만 했다. 그러니 사춘기 시절을 도려내고 싶었다. 그랬던 시절을 최근 청소년 소설을 쓰면서 돌아봤다. 그 시절을 다시 돌아보니, 가장 강력한 빨강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힘든 시기가 없었다면 지금 작가가 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도려내고 싶었던 3년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가장 소중했던 3년이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청소년이 있다면 용기를 주고 싶다. 힘들고 고민한 만큼 나중에 소중한 삶을 살게 된다. 그런 소중한 시간을 헛되이 생각 없이 흘려보내면 나중에 가볍게 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성(性)은 가장 강력한 열쇠 말
김선희 작가는 그렇게 가장 강력한 시기를 쓰고 싶었다. 자신이 겪은 실화는 아니나 남자들에게 듣거나 본 얘기를 다뤘다. 취재를 하면서 보니, 청소년기에도 성이 가장 강력한 열쇠 말이었다. 성은 무시할 수 없는 테마임을 확인했다. 이런 이야기를 편하게 하고 싶어서 『더 빨강』 을 쓰게 됐다. 그런 찰나, 알고 지내던 남고 선생님을 통해 한 남학생 이야기를 들었다. 불우한 가정환경의 고2 남학생이 직장 다니는 연상의 여자와 빈집에서 동거를 했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이 학교에 알려지면서 남학생은 징계를 받았다. 학생부로 끌려온 남학생에게 선생들이 하는 짓거리가 하나같았단다. 학생 뒷머리를 툭툭 치면서 하룻밤에 몇 번이나 했어, 이런 식이었다.
“선생이나 어른들의 시각은 여자와 몇 번이나 섹스를 했는지에만 관심이 있는 거라. 나도 ‘이들의 밤 생활은 어떨까’ 궁금해서 남학생과 연상녀의 동거 이야기 700매를 썼다. 그런데 읽어보니 부끄럽더라. 학생부 선생과 내가 다를 바가 없더라. 청소년의 성을 쓰고자 했으나, 나도 성생활에만, 얼마나 뜨거웠을 지에만 관심을 가진 거지. 어떤 이유와 사정으로 그 폐가에서 연상녀와 살게 됐는지, 개인의 아픔이 없어서 부끄럽더라. 이들의 시선에서 바라보지 않고 색안경 낀 눈으로 바라보고 있구나. 그래서 내용을 다 지우고, 그들의 시선으로 들어갔다. 성에 대한 고민이 있다면 어떤 고민이고, 지금 피부로 느끼는 성은 어떤 것이 있을까를 고민했다.”
책은 주변 사람들의 경험에 많이 기댔다. 가령, 성욕이 끓어오르는데, 그걸 풀 수가 없어서 열을 식히고자 밤마다 옷을 벗고 나가 뛰었다는 이야기 등을 책에도 썼다. 혹자는 책을 읽고 주인공을 왜 그리 불쌍하게 그렸냐고 물었다. 작가는 지금 청소년에겐 그런 문제 하나쯤은 갖고 있고, 소설의 주인공이 성, 친구, 가족 등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갖고 있는 것은 소설적으로 풀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했다. 종합선물세트처럼 불우한 환경에 처한 것으로 구상했고, 이걸 돌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성을 끌어들였다고 덧붙였다.
작가는 글을 쓰면서 중학생 남학생들에게 포르노 동영상을 본적 있느냐고 물었다. 딱 2명이 봤다고 했다. 남고에 가서 그 얘길 했더니 거짓이라는 말을 들었단다. 중학생 때 이미 다 마스터한다는 것. 소설의 주인공 길동이는 그런 면에서 늦된 아이다. 중학교까지 포르노를 섭렵(?)하지 못했다. 늦게 접하면서,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고, 더 심하게 빠진다.
“길동이는 내가 생각하기에 중3때 성에 눈을 뜬 것 같진 않고, 성에 대한 판타지를 갖고 있는 것 같다. 꿈속에서 케이트 윈슬렛과 섹스를 하는 건 판타지잖나. 나도 고등학교 때 꿈속에서 그런 꿈을 꿨다. 진짜 섹스가 아니지. 내가 생각하는 길동이의 진짜 성은 여수 밤바다에서 손을 잡았을 때인 거 같다. 그때 비로소 이성에 접촉하는 거지. 꿈속에서도 별의별 짓을 다해도 가짜일 뿐이다.”
성장을 한다는 것
작가가 소설 속 인물 중에 가장 큰 애착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버지다. 작가가 생각한 책의 전체적인 주제는 성장으로, 모든 인물이 성장을 한다. 길동은 미령이와 손을 잡으면서 판타지가 아닌 현실로 안착한다. 즉, 현실에 눈을 뜨면서 청소년에서 어른이 돼 가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다. 아버지는 가장 문제적 인간으로 애증의 인물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버지로, 작가는 아버지를 통해 성장을 멈춘 어른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57세의 아버지는 평생을 가부장적으로 살았다. 돈을 벌어준다는 이유로 가족을 학대했다.
“이 아버지는 90~100세가 되어도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청소년기는 되게 쉽게 변할 수 있는데, 나이가 들수록 고집이 생기고 삶이 콘크리트처럼 굳어져서 감동도 않고 변하지도 않는다. 이 아버지는 그렇게 성장이 멈춘 채 죽는 거지. 나도 이런 아버지가 싫지만 한편으로 정말 불쌍하다. 어떻게 가족과 화해를 시킬까를 고민했다. 어쩔 수 없지만 퇴행을 시키자고 결정했다. 인생에서 가장 기쁠 때가 언제일까 생각해보니 일곱 살 정도가 마냥 다 좋을 때였던 것 같았다. 그래서 아버지를 7살로 퇴행시켰다. 아버지에게도 기억을 잃었다는 게 행복한 것 같았다. 7살인 채로 나머지 삶을 살아도 좋을 것 같아서 강제 화해를 시켰다.”
김 작가는 가족들이 서로 아끼고 살아가는 게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에선 쉽게 일어날 수 없겠지만, 현실도 해피엔딩이면 좋겠다고 여겼다. 성을 매개로 했지만, 성장과 가족이야기가 가장 주되고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힘들겠지만 청소년기를 즐겼으면 좋겠다. 나이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 십대는 시속 10km로 가는데, 그리 가는 건 그만큼 많이 생각하라는 뜻인 것 같다. 깊게 오래 고민하라고 시간이 늦게 가는 건 아닐까. 그 시기를 벗어나려고 하지 말고 자신에게 오는 것을 다 받아들이고 극복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고민하면 좋겠다.”
책에 경험이 얼마나 들어가 있나?
이거 쓸 때는 부끄럽지 않았다. 남자 이야기라서. 이 책에 내 경험은 없다. 남자 이야기는 들은 것이고. 내 경험은 여자 이야기를 쓸 때 나오겠지. 그건 남자랑은 다르겠지. 그래서 좀 두렵기도 하다. 여자가 여자 이야기를 할 때는 다 경험이라고 볼 것 아니겠나. 대학 다닐 때 소설을 써서 상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소설에 강간당하는 장면이 있었다. 한 남학생이 그걸 읽고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내 경험 아니냐고 묻더라. 막 웃었다. 소설가는 함부로 자신의 이야기를 쓰면 안 되겠구나 하고 느꼈다. 소설은 경험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경험 없이 쓸 수도 없다. 작가는 많이 읽고 생각하고 보는 것 중요하다고 본다. 소설가는 작품 하나를 세상에 내보내면 옷 벗고 광장에 서 있는 기분이다. 그걸 견딜 수 있을 만큼 뻔뻔스러워져야 한다.
다음에 19금 소설을 쓸 거라고 얘기하고 다니는데, 어쩌면 감옥에 갈지도 모른다(웃음). 사식 넣고 면회 자주 오라고 주변에 말하고 있다. 그런 걸 쓸 때 그만큼 뻔뻔스러워져야 하고, 벌거벗어도 내 알몸을 남들이 봐도 안 부끄럽다는 강단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지금 청소년 소설로 훈련하고 있고, 나중엔 진짜 빨간 책을 쓰고 싶다(웃음).
좋아하는 소설가가 있다면?
소설을 전공해서 소설을 많이 읽었다. 주인공 이름이 길동인데, 홍길동이 아니다. 동이라는 이름이 좋았다. 되게 좋아하는 소설가가 80년대 요절했는데, 그 작가의 주인공 이름이 동이여서 동이라는 이름을 썼다. 요즘 좋아하는 작가를 보면, 에밀 아자르(로맹 가리) 광팬이고, 오정희 작가의 광팬이다. 세계 문학 작품도 많이 읽어서 도스토예프스키도 꼽을 수 있겠다. 작가들 보면 비슷한 궤적을 그리곤 한다. 초등학교 땐 『빨강머리 앤』 광팬이었고, 중학교 때 『데미안』 의 헤르만 헤세, 고등학교 땐 도스토예프스키, 지금은 김영하 소설을 좋아한다.
취재할 때 얘기하기 힘든 것을 어떻게 끄집어 내나?
옛날에 나는 극소심자라서 고등학교 때까지 발표도 못했다. 시키면 기절할 것처럼 떨고 얼굴이 빨개졌다. 낯선 사람과 대화도 못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사보 기자를 잠깐 했는데, 처음 만난 사람이 최불암 씨였다. 정말 떨었다. 질문을 꼼꼼하게 다 적어서 인터뷰를 했다. 그렇게 질문거리를 다 생각해서 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준비를 안 해가도 되더라. 나는 듣는 걸 기본적으로 굉장히 좋아한다.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 사람 역사가 있다. 듣다가 인상 깊은 이야기가 나오면 적어 놓는다. 일단 듣는 걸 잘해야 한다. 남의 말을 잘 들어주다보면 궁금한 것이 그때그때 생기고 물어보면 상대방은 이야기를 술술 한다. 이야길 잘 들어주는 사람이 매력적인 사람이다. 자기 말만 잘하는 것보다 상대방 이야길 잘 들어주면 대화가 잘 된다.
소설 쓸 때 인물부터 짜는지, 줄거리부터 짜는지?
작가들이 하는 질문이네. 나는 뭣에 대해 쓸 것인지를 제일 처음에 한다. 가령, 성에 대한 것인지, 가족에 대한 것인지 큰 틀을 잡는다. 이후 스토리를 생각한다. 늘 머릿속에 스토리를 생각하고, 그걸 하다보면 등장인물이 하나둘 튀어나온다. 머리로 늘 생각하고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스토리를 쓴다. 나는 스토리를 길게 쓴다. 100매 정도 쓰고, 작업을 하면서 계속 변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하나의 바위덩어리를 미세한 돌로 만드는 정밀세공 같다. 이 책도 3년 걸렸는데, 2번을 엎고 무수하게 많이 고쳤다. 정말 힘들게 썼고 그래서 애착이 많이 간다.
[관련 기사]
-무관심 속에 죽은 영혼을 위로하고 싶었다 - 『조커와 나』
-한국 사람들은 왜 항상 화난 표정이죠? - 김선영 『특별한 배달』
-음식, 그냥 먹지 말고 생각하며 먹자 - 『식탁 위의 세계사』
-씩씩한 열여덟 여고생의 ‘엄마 떠나보내기’
-셰익스피어가 4대 비극을 쓸 수 있었던 배경 - 『청소년을 위한 셰익스피어』
가장 강력한 시기, 청소년기
『더 빨강』 이 나오고 난 뒤, 김 작가는 주변으로부터 ‘약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역시 ‘빨간책’에 대한 기대 때문일 것이다. 이에 김 작가는 다음 작품은 더 세게, 중학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겠다며 웃는다. 실은 이 책은 성(性)을 주제로 쓴 것이 아니었다. 가족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러나 가족이야기를 하자면 반응이 시들시들했다. 청소년 등을 대상으로 강연을 나가도 그랬다. 이른바 ‘야한’ 이야기를 하면 말똥말똥했고, 졸던 학생들도 일어났다. 그러면서 김 작가는 깨달았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목이 많이 말랐구나. 갈증이 심하구나. 그래서 갈증을 충족시킬 의무가 있는 것 같다. 다음 작품을 꼭 기대해 달라(웃음). 여자도 성충동이 있다. 남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여자도 감정이 있고, 본능이 있는데, 내 경험상 열일곱, 고1때가 가장 강렬했다. 뜨겁고 어찌 할 수 없고, 이게 뭔가 싶고. 인생에서 가장 강렬할 때가 사춘기 시절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고등학교 시절이 가장 회색빛이라고 여긴다. 나도 그때 내 인생을 회색이라고 생각했다. 늘 불행하다고 생각했고, 사는 게 너무 힘들었다. 시간이 너무 안 가고, 현실은 너무 힘들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 작가가 되고 싶은데, 글은 안 써지고, 가족과 세상이 다 싫어지고. 매일 죽는 상상만 했다. 벌레만도 못한 인간인 것 같고.”
상상과 달리 현실은 너무 초라했다. 잘 하는 것도 없고, 예쁘지도 않으며, 주위는 자신을 너무 힘들게 했다. 김 작가가 당시 쓴 詩를 봐도, 염세적이기만 했다. 그러니 사춘기 시절을 도려내고 싶었다. 그랬던 시절을 최근 청소년 소설을 쓰면서 돌아봤다. 그 시절을 다시 돌아보니, 가장 강력한 빨강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힘든 시기가 없었다면 지금 작가가 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도려내고 싶었던 3년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가장 소중했던 3년이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청소년이 있다면 용기를 주고 싶다. 힘들고 고민한 만큼 나중에 소중한 삶을 살게 된다. 그런 소중한 시간을 헛되이 생각 없이 흘려보내면 나중에 가볍게 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성(性)은 가장 강력한 열쇠 말
김선희 작가는 그렇게 가장 강력한 시기를 쓰고 싶었다. 자신이 겪은 실화는 아니나 남자들에게 듣거나 본 얘기를 다뤘다. 취재를 하면서 보니, 청소년기에도 성이 가장 강력한 열쇠 말이었다. 성은 무시할 수 없는 테마임을 확인했다. 이런 이야기를 편하게 하고 싶어서 『더 빨강』 을 쓰게 됐다. 그런 찰나, 알고 지내던 남고 선생님을 통해 한 남학생 이야기를 들었다. 불우한 가정환경의 고2 남학생이 직장 다니는 연상의 여자와 빈집에서 동거를 했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이 학교에 알려지면서 남학생은 징계를 받았다. 학생부로 끌려온 남학생에게 선생들이 하는 짓거리가 하나같았단다. 학생 뒷머리를 툭툭 치면서 하룻밤에 몇 번이나 했어, 이런 식이었다.
“선생이나 어른들의 시각은 여자와 몇 번이나 섹스를 했는지에만 관심이 있는 거라. 나도 ‘이들의 밤 생활은 어떨까’ 궁금해서 남학생과 연상녀의 동거 이야기 700매를 썼다. 그런데 읽어보니 부끄럽더라. 학생부 선생과 내가 다를 바가 없더라. 청소년의 성을 쓰고자 했으나, 나도 성생활에만, 얼마나 뜨거웠을 지에만 관심을 가진 거지. 어떤 이유와 사정으로 그 폐가에서 연상녀와 살게 됐는지, 개인의 아픔이 없어서 부끄럽더라. 이들의 시선에서 바라보지 않고 색안경 낀 눈으로 바라보고 있구나. 그래서 내용을 다 지우고, 그들의 시선으로 들어갔다. 성에 대한 고민이 있다면 어떤 고민이고, 지금 피부로 느끼는 성은 어떤 것이 있을까를 고민했다.”
책은 주변 사람들의 경험에 많이 기댔다. 가령, 성욕이 끓어오르는데, 그걸 풀 수가 없어서 열을 식히고자 밤마다 옷을 벗고 나가 뛰었다는 이야기 등을 책에도 썼다. 혹자는 책을 읽고 주인공을 왜 그리 불쌍하게 그렸냐고 물었다. 작가는 지금 청소년에겐 그런 문제 하나쯤은 갖고 있고, 소설의 주인공이 성, 친구, 가족 등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갖고 있는 것은 소설적으로 풀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했다. 종합선물세트처럼 불우한 환경에 처한 것으로 구상했고, 이걸 돌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성을 끌어들였다고 덧붙였다.
“도무지 잠이 안 와서 밖으로 나왔다. 불이 꺼진 집 안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이럴 때는 무작정 달리는 게 최고다.”(p.77) | ||
“길동이는 내가 생각하기에 중3때 성에 눈을 뜬 것 같진 않고, 성에 대한 판타지를 갖고 있는 것 같다. 꿈속에서 케이트 윈슬렛과 섹스를 하는 건 판타지잖나. 나도 고등학교 때 꿈속에서 그런 꿈을 꿨다. 진짜 섹스가 아니지. 내가 생각하는 길동이의 진짜 성은 여수 밤바다에서 손을 잡았을 때인 거 같다. 그때 비로소 이성에 접촉하는 거지. 꿈속에서도 별의별 짓을 다해도 가짜일 뿐이다.”
“남들은 초딩 때 보기 시작한다는 야동을 나는 중학교 3학년, 비교적 늙은 나이에 보기 시작했다. 그 야동이라는 세계가 한 번 빨려 들어가면 헤어나기 힘든 블랙홀 같았다.”(p.35) | ||
성장을 한다는 것
작가가 소설 속 인물 중에 가장 큰 애착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버지다. 작가가 생각한 책의 전체적인 주제는 성장으로, 모든 인물이 성장을 한다. 길동은 미령이와 손을 잡으면서 판타지가 아닌 현실로 안착한다. 즉, 현실에 눈을 뜨면서 청소년에서 어른이 돼 가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다. 아버지는 가장 문제적 인간으로 애증의 인물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버지로, 작가는 아버지를 통해 성장을 멈춘 어른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57세의 아버지는 평생을 가부장적으로 살았다. 돈을 벌어준다는 이유로 가족을 학대했다.
“이 아버지는 90~100세가 되어도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청소년기는 되게 쉽게 변할 수 있는데, 나이가 들수록 고집이 생기고 삶이 콘크리트처럼 굳어져서 감동도 않고 변하지도 않는다. 이 아버지는 그렇게 성장이 멈춘 채 죽는 거지. 나도 이런 아버지가 싫지만 한편으로 정말 불쌍하다. 어떻게 가족과 화해를 시킬까를 고민했다. 어쩔 수 없지만 퇴행을 시키자고 결정했다. 인생에서 가장 기쁠 때가 언제일까 생각해보니 일곱 살 정도가 마냥 다 좋을 때였던 것 같았다. 그래서 아버지를 7살로 퇴행시켰다. 아버지에게도 기억을 잃었다는 게 행복한 것 같았다. 7살인 채로 나머지 삶을 살아도 좋을 것 같아서 강제 화해를 시켰다.”
김 작가는 가족들이 서로 아끼고 살아가는 게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에선 쉽게 일어날 수 없겠지만, 현실도 해피엔딩이면 좋겠다고 여겼다. 성을 매개로 했지만, 성장과 가족이야기가 가장 주되고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힘들겠지만 청소년기를 즐겼으면 좋겠다. 나이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 십대는 시속 10km로 가는데, 그리 가는 건 그만큼 많이 생각하라는 뜻인 것 같다. 깊게 오래 고민하라고 시간이 늦게 가는 건 아닐까. 그 시기를 벗어나려고 하지 말고 자신에게 오는 것을 다 받아들이고 극복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고민하면 좋겠다.”
책에 경험이 얼마나 들어가 있나?
이거 쓸 때는 부끄럽지 않았다. 남자 이야기라서. 이 책에 내 경험은 없다. 남자 이야기는 들은 것이고. 내 경험은 여자 이야기를 쓸 때 나오겠지. 그건 남자랑은 다르겠지. 그래서 좀 두렵기도 하다. 여자가 여자 이야기를 할 때는 다 경험이라고 볼 것 아니겠나. 대학 다닐 때 소설을 써서 상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소설에 강간당하는 장면이 있었다. 한 남학생이 그걸 읽고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내 경험 아니냐고 묻더라. 막 웃었다. 소설가는 함부로 자신의 이야기를 쓰면 안 되겠구나 하고 느꼈다. 소설은 경험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경험 없이 쓸 수도 없다. 작가는 많이 읽고 생각하고 보는 것 중요하다고 본다. 소설가는 작품 하나를 세상에 내보내면 옷 벗고 광장에 서 있는 기분이다. 그걸 견딜 수 있을 만큼 뻔뻔스러워져야 한다.
다음에 19금 소설을 쓸 거라고 얘기하고 다니는데, 어쩌면 감옥에 갈지도 모른다(웃음). 사식 넣고 면회 자주 오라고 주변에 말하고 있다. 그런 걸 쓸 때 그만큼 뻔뻔스러워져야 하고, 벌거벗어도 내 알몸을 남들이 봐도 안 부끄럽다는 강단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지금 청소년 소설로 훈련하고 있고, 나중엔 진짜 빨간 책을 쓰고 싶다(웃음).
좋아하는 소설가가 있다면?
소설을 전공해서 소설을 많이 읽었다. 주인공 이름이 길동인데, 홍길동이 아니다. 동이라는 이름이 좋았다. 되게 좋아하는 소설가가 80년대 요절했는데, 그 작가의 주인공 이름이 동이여서 동이라는 이름을 썼다. 요즘 좋아하는 작가를 보면, 에밀 아자르(로맹 가리) 광팬이고, 오정희 작가의 광팬이다. 세계 문학 작품도 많이 읽어서 도스토예프스키도 꼽을 수 있겠다. 작가들 보면 비슷한 궤적을 그리곤 한다. 초등학교 땐 『빨강머리 앤』 광팬이었고, 중학교 때 『데미안』 의 헤르만 헤세, 고등학교 땐 도스토예프스키, 지금은 김영하 소설을 좋아한다.
취재할 때 얘기하기 힘든 것을 어떻게 끄집어 내나?
옛날에 나는 극소심자라서 고등학교 때까지 발표도 못했다. 시키면 기절할 것처럼 떨고 얼굴이 빨개졌다. 낯선 사람과 대화도 못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사보 기자를 잠깐 했는데, 처음 만난 사람이 최불암 씨였다. 정말 떨었다. 질문을 꼼꼼하게 다 적어서 인터뷰를 했다. 그렇게 질문거리를 다 생각해서 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준비를 안 해가도 되더라. 나는 듣는 걸 기본적으로 굉장히 좋아한다.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 사람 역사가 있다. 듣다가 인상 깊은 이야기가 나오면 적어 놓는다. 일단 듣는 걸 잘해야 한다. 남의 말을 잘 들어주다보면 궁금한 것이 그때그때 생기고 물어보면 상대방은 이야기를 술술 한다. 이야길 잘 들어주는 사람이 매력적인 사람이다. 자기 말만 잘하는 것보다 상대방 이야길 잘 들어주면 대화가 잘 된다.
소설 쓸 때 인물부터 짜는지, 줄거리부터 짜는지?
작가들이 하는 질문이네. 나는 뭣에 대해 쓸 것인지를 제일 처음에 한다. 가령, 성에 대한 것인지, 가족에 대한 것인지 큰 틀을 잡는다. 이후 스토리를 생각한다. 늘 머릿속에 스토리를 생각하고, 그걸 하다보면 등장인물이 하나둘 튀어나온다. 머리로 늘 생각하고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스토리를 쓴다. 나는 스토리를 길게 쓴다. 100매 정도 쓰고, 작업을 하면서 계속 변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하나의 바위덩어리를 미세한 돌로 만드는 정밀세공 같다. 이 책도 3년 걸렸는데, 2번을 엎고 무수하게 많이 고쳤다. 정말 힘들게 썼고 그래서 애착이 많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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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가 4대 비극을 쓸 수 있었던 배경 - 『청소년을 위한 셰익스피어』
- 더 빨강 김선희 저 | 사계절
쉰아홉의 남자는 2년 전 사고로 머리를 다친 이후 일곱 살 꼬마가 되어 틈만 나면 지붕에 올라간다. 그런 아빠를 돌보는 건 열여덟 소년, 길동의 몫이다. 때 아닌 육아 스트레스와 피로에 절어 있는 길동은 답답하고 외로운 마음을 풀고자 밤마다 ‘야동’을 본다. 그러던 어느 날 길동 앞에 동갑내기 소녀 ‘오미령’이 나타난다. 미령은 참한 외모와 달리, 청양고추를 껌 씹듯 잘근잘근 씹어 낼 만큼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아이다. 길동은 미령이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 ‘더 빨강-고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식도락 모임’에 가입한다. 그 날 이후, 길동의 고독한 삶에 놀랍도록 강렬한 일들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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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