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권위에 순복했는가? - 존 비비어 『순종』
존 비비어는 위에 있는 권위에 순복하라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베푼 것이 나에게 한 것과 같다는 예수의 말씀과 이것은 상충하는 것이 아닌가? 개인적으로 그들을 일일이 구명한다면 그것은 그저 자선에 그치는 것이 아닌가?
2013.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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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떠난 지 좀 되었다. 최근에는 어머니가 봉사 때문에 서울에서 천안까지 이사를 감행하며 머무르고 계신 곳인 천안에 함께 있는데, 워낙 좁은 원룸이라 책을 거의 다 버리고 평소 즐겨 읽으시는 책 몇 권만 달랑 있었다. 그 중에 ‘존 비비어’라는 사람의 이름이 유독 많이 보였다. 어머니가 이 책 읽어 봤니? 이 사람 책 참 좋은데, 라고 말씀하셔서 『순종』 이라는 제목의 책을 한 권 꺼내 읽기 시작했다. 돌아가신 아버지께 사사건건 불순종한다고 책망의 말을 많이 들은데다, 워낙 오랫동안 기독교에 대해 반항적이었기 때문에 뭐가 순종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독서의 끝은 『긍정의 힘』 다음으로 우웩, 소리가 나는 책들에게 부여하는 나의 ‘우웩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참담함으로 맺어져 버렸다.
초반에는 읽을 만했다. 그런데 초반을 지나면 책 전체에 계속되는 권위에 복종하라는 말이 심하게 거슬리기 시작했다. 모든 권위는 하나님이 세운 것이니 다 뜻이 있고, 그래도 이해가 안 된다면 하나님의 뜻은 우리 뜻보다 높고 깊으니 무조건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벽돌 안에 넣을 짚도 주지 않고 지푸라기를 공급할 때만큼 생산하라며 이스라엘 백성을 학대하고 열 가지에 이르는 재앙을 겪을 때까지 “내 백성을 가게 하라Let my people go!”라는 모세의 요구에 독하게 대응했던 바로 왕 같은 경우에도 하나님이 세웠다는 말이다. 하지만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가 하나님이 세운 권위이니 그에게 순종하기는커녕 10가지 재앙을 흩뿌리면서까지 대항했는데 권위에 순복하라니 어느 논리를 믿어야 할지? 저자가 처음부터 빌 클린턴의 대통령 당선 시절을 회고하며 그가 절대 대통령을 되지 않기를 바랬고 그가 믿고 있던 것들이 다 악한 것들이라 믿었다(다시 말해, 민주당이 상징하는 가치를 부정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는 이야기에서 어느 정도 낌새를 챌 수 있었지만, 굉장히 친공화당적 인물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는 있었지만 갈수록 냥냥이라는 충청도 사투리가 있던데 정말이지 읽을수록 냥냥이었다. 사도 베드로가 자신을 붙잡아 간 로마에 순복하라고 말했고, 성서에 관원에게 반항하지 말라는 말이 나와 있으며, 모든 권위가 하나님에게로부터 나왔다는 말이 맞긴 하다. 그런데...
존 비비어는 한 기독교 방송국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경험을 적는다. 그날의 궂은 날씨에 빗대어 한창 무능하다고 비판받던 그 지역 주지사를 프로그램 사회자가 가볍게 조롱하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정면으로 기독교 방송국이라는 곳에서 주지사라는 자리는 엄연히 하나님이 주신 권위인데 이렇게 모독하는 것이 있을 수 있느냐고 물었고, 사회자는 존 비비어 목사님과 우리는 모두 각자의 생각이 있을 수 있다고 능란하게 넘어가 버린 모양이다. 그는 이 사실이 매우 유감스러웠던 듯 ‘큰 충격을 받았다’라고 말한다. 자신이 순종하지 않았다가 순종으로 돌이킨 이야기들은 뭐랄까 지금처럼 거물이 되기 전에, 담임 목사 밑에서 일하는 살짝 잔챙이 교역자 시절 뿐이고 그 이야기들의 내용도 하나같이 똑같다. 담임 목사의 목회 방침이나 당회의 결정 사항에 반발하여 그 말을 듣지 않으려 하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권위에 순복할 것을 말씀하시어 무조건 담임 목사에게, 그러니까 자기보다 위에 있는 사람에게 순종했을 때 하나님이 큰 복과 은혜를 주시더라는 것이다. 지금 존 비비어에게는 자기보다 위에 있는 목사가 없다. 자기 재단에서 일하고 있으므로 그는 하나님 외에 특별히 순종할 존재가 없다. 이 부분은 다소 의미심장하게 읽혀진다. 그렇다면 예수는 권위에 순복했는가?
예수는 자기를 잡아가려 온 사람들에게 순순히 붙잡혀 갔고 그 와중에 다친 사람을 고쳐 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그가 세상 권위에 복종한 것이 아니라 메시아라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끝까지 순종하는 것으로 읽는 것이 마땅할 것 같다. 예수는 안식일을 걸핏하면 어겼다. 그 당시의 유대에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율법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계명 중 하나였지만 그는 병도 고치고 이삭도 따먹었다.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예수가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임을 나타냈다는 의미로 설명한다. 그 날이 바로 하나님이신 예수를 위한 날이므로 그분은 안식일에도 율법에 매이지 아니하고 옳다고 보시는 대로 행할 수 있는 것이다. 위에 있는 권위가 자신이므로 예수는 자유로웠지만, 위에 있는 존 비비어가 말하는 권위에 순복한 모습은 아니다. 빌라도의 법정에서도 그는 권위에 순복하기는커녕 영 비협조적이었다. 하도 비협조적이라 입을 꾹 다물고 별 말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답답한 빌라도가 내가 너를 놓아 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음을 알지 못하느냐? 라고 묻자 위에서 주지 않았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다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준 자의 죄는 더 크다, 라고 대꾸한다. 한 마디로 네 권한은 내가 보기에는 영 별로라는 것이다. 심지어 예수가 성전을 깨끗하게 한 사건은 비신자들도 모두 알 만큼 유명한 사건이다. 성전이 유대인들에게 그토록 권위가 있었던 이유는 그 안에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만 들어가서 하나님을 만나는 곳, 즉 하나님의 집이었고 하니님이 그 안에 계셨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장사치들이 제물로 바쳐야 할 동물들을 팔면서 폭리를 취했고 환전상들도 어마어마한 환전 이득을 보았다. 이것을 보신 예수는 채찍으로 그것들을 모두 흩으셨다, 속시원한 장면이지만 비비어가 말하는 위의 권위에 복종하는 모습이라고 볼 수는 없다. 물론 아버지의 집이 강도의 소굴이 되어 있는 것을 눈뜨고 볼 수 없는 아들의 거룩한 분노이지만, 성전의 권위에 복종하는 모습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쨌거나 예수는 권위 그 자체이니까 일단 빼고, 성경 전반에 나오는 좋지 않은 지도자들의 공통점을 보자. 현대의 독재자들도 그렇지만 그들은 모두 고아와 과부, 가난한 자를 박해한다. 그런데 가서 못 살게 굴고 때리고 괴롭히고 쥐어박는 것만이 박해가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일일이 돌아가야 할 인간의 기초적 권리, 공교육이나 급식 등 빈곤 계급이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놓는 안전장치에 대하여 가난을 맛본 적이 없고 일생에 실패를 맛본 적이 없는 자들이 그것들을 거지에게 적선하는 꼴로 여기고 그러한 제도를 없애려 할 때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존 비비어는 위에 있는 권위에 순복하라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베푼 것이 나에게 한 것과 같다는 예수의 말씀과 이것은 상충하는 것이 아닌가? 개인적으로 그들을 일일이 구명한다면 그것은 그저 자선에 그치는 것이 아닌가?
무상급식이나 기초교육의 권리 같은 것을 뺏어버리는 위에 있는 자들에게 항의하고 그들을 저지하는 것도 존 비비어의 기준에서 보면 맞지 않다. 그는 우리가 민주주의에 너무나 익숙해져서 위에 있는 질서를 잘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과부와 고아와 가난한 자를 핍박하는 신자유주의적 통치를 하는 위에 있는 자들에 대해서도 그저 축복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의 전부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도 아직 양반들의 땅을 죽도록 소작하고 있어야 하는 게 맞단 말인가? 노예계급이 실제로 존재할 때 그들은 결코 봉기하지 않고 노예로 태어난 신분에 자족하며 위에서 주신 권위인 백인 주인에게 영원히 순종하고 살았어야 했나? 역시 위에서 준 권위인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그들을 자유케 하기 전까지는 죽도록 순종만 했어야 되는 것인가? 하긴 노예 상인이었던 아주 유명한 목사도 있었지, 참.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은 어떤가? 모든 권위는 위에서 온 것이니 미 대통령이라는 어마어마한 권위로 행해지는 이 일을 응원했어야 하는 것인가? 이런 정서야말로 닥치고 헌금이나 하고 무급 봉사를 자청하는 교인 말고는 별 필요, 혹은 쓸모가 없다고 외치는 교회의 모습이 아닌가? 순종하라(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전교조를 해체하라고 지시하는 우리의 지도자는 어떤가? 무덤에 한 발 걸치고 있는 자기 아빠 친구들로 주변을 채우는 것은? 친일파로 잘 알려진 자기 아빠 친구의 이름을 딴 상을 제정해서 지켜보고 있는 국민들을 엿먹은 기분으로 만드는 것은?
나는 이 책에 순종하여 그 대통령을 위해 기도했다. 그 자신과 달리 가난하게 살아온 사람들을 깊이 생각하고 그들을 위한 통치를 하는 대통령이 되게 해 주십사 기도를 올렸지만 역겨운 기분까지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아마 이 책을 쓴 사람이 예를 들어 파푸아뉴기니에서 온 빈곤계급으로 자라난 그리스도인 존 비비어였다면 감회가 좀 달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존 비비어는 백인 남성이며, 그가 지금까지 해 왔던 ‘순종’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교회 정치에서 담임목사에게 조금 숙여서 체면을 살려 주고 자기의 사회적 위치를 강화하는 매우 현명한 처신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들이다. 순종을 실행했을 때 당장 분명한 이득이 있는 그런 것들. 게다가 지금 그가 순종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하나님께 순종할 일이야 있겠지만 사람에게는 글쎄, 언제나 ‘갑’이지 않을까.
갑이 말하는 순종은 영 맛이 떨어진다. 게다가 더 많은 순종을 얻으면 얻을수록 유리한 자리에서 순종을 말하는 모습이 별로 보기 좋지 않았다. 그래서 유교적 풍토가 있는 극동아시아에서 자라난 비교적 젊은 여자인 나는 이 책에 몹시 비위가 상했다. 어머니께 항의했더니 ‘아니 나는 『은혜』 라는 책을 권했다’라며 재빠르게 방어했다. 좋게 보려 해도 그는 순종하기 쉬운 입장이었을뿐더러, 그의 재단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 책은 ‘내 말을 들어라!’ 라는 뜻이 아닐까. 아니, 그의 ‘목사’라는 권위에 의하여 나처럼 어째 찜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도 역시 ‘내 말을 들어라!’ 라고 외치고 있는 것은 동일하다. 겨우 완독하고 났더니 온갖 반항심이 드는 것이, 내가 마귀이거나 존 비비어가 재수탱이거나 어쨌든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존 비비어의 『끈질김』 이라는 책도 있던데, 제목을 보자마자 아이구 끈질긴 건 비비어 씨 당신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도 한 권 써 볼까. 김현진의 『비위』 나 『재수털림』 이나 『밥맛』 이랄까, 뭐 그런 제목으로... 유치하긴 하지만 어린 아이와 같이 되어야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고 성경에 나와 있던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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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자기를 잡아가려 온 사람들에게 순순히 붙잡혀 갔고 그 와중에 다친 사람을 고쳐 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그가 세상 권위에 복종한 것이 아니라 메시아라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끝까지 순종하는 것으로 읽는 것이 마땅할 것 같다. 예수는 안식일을 걸핏하면 어겼다. 그 당시의 유대에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율법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계명 중 하나였지만 그는 병도 고치고 이삭도 따먹었다.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예수가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임을 나타냈다는 의미로 설명한다. 그 날이 바로 하나님이신 예수를 위한 날이므로 그분은 안식일에도 율법에 매이지 아니하고 옳다고 보시는 대로 행할 수 있는 것이다. 위에 있는 권위가 자신이므로 예수는 자유로웠지만, 위에 있는 존 비비어가 말하는 권위에 순복한 모습은 아니다. 빌라도의 법정에서도 그는 권위에 순복하기는커녕 영 비협조적이었다. 하도 비협조적이라 입을 꾹 다물고 별 말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답답한 빌라도가 내가 너를 놓아 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음을 알지 못하느냐? 라고 묻자 위에서 주지 않았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다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준 자의 죄는 더 크다, 라고 대꾸한다. 한 마디로 네 권한은 내가 보기에는 영 별로라는 것이다. 심지어 예수가 성전을 깨끗하게 한 사건은 비신자들도 모두 알 만큼 유명한 사건이다. 성전이 유대인들에게 그토록 권위가 있었던 이유는 그 안에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만 들어가서 하나님을 만나는 곳, 즉 하나님의 집이었고 하니님이 그 안에 계셨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장사치들이 제물로 바쳐야 할 동물들을 팔면서 폭리를 취했고 환전상들도 어마어마한 환전 이득을 보았다. 이것을 보신 예수는 채찍으로 그것들을 모두 흩으셨다, 속시원한 장면이지만 비비어가 말하는 위의 권위에 복종하는 모습이라고 볼 수는 없다. 물론 아버지의 집이 강도의 소굴이 되어 있는 것을 눈뜨고 볼 수 없는 아들의 거룩한 분노이지만, 성전의 권위에 복종하는 모습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쨌거나 예수는 권위 그 자체이니까 일단 빼고, 성경 전반에 나오는 좋지 않은 지도자들의 공통점을 보자. 현대의 독재자들도 그렇지만 그들은 모두 고아와 과부, 가난한 자를 박해한다. 그런데 가서 못 살게 굴고 때리고 괴롭히고 쥐어박는 것만이 박해가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일일이 돌아가야 할 인간의 기초적 권리, 공교육이나 급식 등 빈곤 계급이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놓는 안전장치에 대하여 가난을 맛본 적이 없고 일생에 실패를 맛본 적이 없는 자들이 그것들을 거지에게 적선하는 꼴로 여기고 그러한 제도를 없애려 할 때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존 비비어는 위에 있는 권위에 순복하라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베푼 것이 나에게 한 것과 같다는 예수의 말씀과 이것은 상충하는 것이 아닌가? 개인적으로 그들을 일일이 구명한다면 그것은 그저 자선에 그치는 것이 아닌가?
무상급식이나 기초교육의 권리 같은 것을 뺏어버리는 위에 있는 자들에게 항의하고 그들을 저지하는 것도 존 비비어의 기준에서 보면 맞지 않다. 그는 우리가 민주주의에 너무나 익숙해져서 위에 있는 질서를 잘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과부와 고아와 가난한 자를 핍박하는 신자유주의적 통치를 하는 위에 있는 자들에 대해서도 그저 축복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의 전부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도 아직 양반들의 땅을 죽도록 소작하고 있어야 하는 게 맞단 말인가? 노예계급이 실제로 존재할 때 그들은 결코 봉기하지 않고 노예로 태어난 신분에 자족하며 위에서 주신 권위인 백인 주인에게 영원히 순종하고 살았어야 했나? 역시 위에서 준 권위인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그들을 자유케 하기 전까지는 죽도록 순종만 했어야 되는 것인가? 하긴 노예 상인이었던 아주 유명한 목사도 있었지, 참.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은 어떤가? 모든 권위는 위에서 온 것이니 미 대통령이라는 어마어마한 권위로 행해지는 이 일을 응원했어야 하는 것인가? 이런 정서야말로 닥치고 헌금이나 하고 무급 봉사를 자청하는 교인 말고는 별 필요, 혹은 쓸모가 없다고 외치는 교회의 모습이 아닌가? 순종하라(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전교조를 해체하라고 지시하는 우리의 지도자는 어떤가? 무덤에 한 발 걸치고 있는 자기 아빠 친구들로 주변을 채우는 것은? 친일파로 잘 알려진 자기 아빠 친구의 이름을 딴 상을 제정해서 지켜보고 있는 국민들을 엿먹은 기분으로 만드는 것은?
나는 이 책에 순종하여 그 대통령을 위해 기도했다. 그 자신과 달리 가난하게 살아온 사람들을 깊이 생각하고 그들을 위한 통치를 하는 대통령이 되게 해 주십사 기도를 올렸지만 역겨운 기분까지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아마 이 책을 쓴 사람이 예를 들어 파푸아뉴기니에서 온 빈곤계급으로 자라난 그리스도인 존 비비어였다면 감회가 좀 달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존 비비어는 백인 남성이며, 그가 지금까지 해 왔던 ‘순종’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교회 정치에서 담임목사에게 조금 숙여서 체면을 살려 주고 자기의 사회적 위치를 강화하는 매우 현명한 처신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들이다. 순종을 실행했을 때 당장 분명한 이득이 있는 그런 것들. 게다가 지금 그가 순종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하나님께 순종할 일이야 있겠지만 사람에게는 글쎄, 언제나 ‘갑’이지 않을까.
갑이 말하는 순종은 영 맛이 떨어진다. 게다가 더 많은 순종을 얻으면 얻을수록 유리한 자리에서 순종을 말하는 모습이 별로 보기 좋지 않았다. 그래서 유교적 풍토가 있는 극동아시아에서 자라난 비교적 젊은 여자인 나는 이 책에 몹시 비위가 상했다. 어머니께 항의했더니 ‘아니 나는 『은혜』 라는 책을 권했다’라며 재빠르게 방어했다. 좋게 보려 해도 그는 순종하기 쉬운 입장이었을뿐더러, 그의 재단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 책은 ‘내 말을 들어라!’ 라는 뜻이 아닐까. 아니, 그의 ‘목사’라는 권위에 의하여 나처럼 어째 찜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도 역시 ‘내 말을 들어라!’ 라고 외치고 있는 것은 동일하다. 겨우 완독하고 났더니 온갖 반항심이 드는 것이, 내가 마귀이거나 존 비비어가 재수탱이거나 어쨌든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존 비비어의 『끈질김』 이라는 책도 있던데, 제목을 보자마자 아이구 끈질긴 건 비비어 씨 당신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도 한 권 써 볼까. 김현진의 『비위』 나 『재수털림』 이나 『밥맛』 이랄까, 뭐 그런 제목으로... 유치하긴 하지만 어린 아이와 같이 되어야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고 성경에 나와 있던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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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현진(칼럼니스트)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오래된 캐치프레이즈를 증명이라도 하듯 '88만 원 세대'이자 비주류인 자신의 계급과 사회구조적 모순과의 관계를 '특유의 삐딱한 건강함'으로 맛깔스럽게 풀어냈다 평가받으며 이십 대에서 칠십 대까지 폭넓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에세이스트. 『네 멋대로 해라』, 『뜨겁게 안녕』,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 『그래도 언니는 간다』, 『불량 소녀 백서』 등을 썼다.
stongrup
2022.04.12
대다수의 교회와 기독교인이 순종해야 하며 순종할 자세를 갖는 것 자체가 신앙인것처럼 말하나, 무엇에 순종해야 하는지는 보통 비워 놓습니다. 가져다 쓰는 사례들도 무언가 극단적이거나 전제적 인습속의 무언가를 예로 들며 일방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경우가 다수입니다.
예수님의 인도에 따른 가시밭길의 삶에 순종해야 함에도 자신들이 이미 꽃길위에 있는 이들은 꽃길에서 내려오는 대신 더 좋은 무지개길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순종을 말하며, 그리하면 너도 그리로 올라갈 것..이라는 다단계 같은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일꾼
2014.02.01
순종이라는 것은 기독교 신앙상 필요한 부분이니까요
누군가에 대한 원망과 모든 문제를 자신의 문제가 아닌 다른 문제로 보는데서
항상 마음의 어려움과 상처는 시작되니까요
불의한 것을 두고 순종하라고 했다면 저도 이 책을 비판하고 우엑스럽다고 하고 싶지만
전체적인 내용과 의도가 그렇지 않음에도 이렇게 비판하는 것은 너무나도 비뚫어진 시선이라고
보여집니다
좀 더 세상은 살만하고 밝은 점이 많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때로는 순응하고 내려놓을 때 더 큰 자유함과 기쁨이 있다는 것도....
roughskate
2013.11.04
저는 '밥맛'에 한표를 던지고 싶어요. 나오면 꼭 사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