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렸다는 그 책, 성경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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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야기하려고 하는 책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팔렸다는 그 책, 많이 팔렸다는 책들이 하나같이 이 책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렸다고 주장하는 바로 그 책, 성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볼 셈이다.

오늘 이야기하려고 하는 책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팔렸다는 그 책, 많이 팔렸다는 책들이 하나같이 이 책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렸다고 주장하는 바로 그 책, 성서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 볼 셈이다. 몇 년 전 우연히 한신대학교 명예교수이며 삭개오작은교회 원로목사이신 김경재 선생님을 만나 뵈었을 때 자신이 레위 지파(성서에 등장하는 유대인의 열두 지파 중 성전과 예배에 대한 일을 담당하고 있으므로 다른 열한 지파처럼 땅을 기업으로 얻지 못하고 성전에서 바쳐지는 것 중 일정 부분으로 생활을 이어간다, 한 마디로 성직자 지파라 다른 노동을 하지 않고 성직에만 종사한다고 볼 수 있다)이기 때문에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하시는 아버지-지금은 소천하셨다-에 대한 골치를 털어놓았을 때 진보적이고 개방적인 한신대학교의 학풍에 따라 혁명적인 대답을 주실 줄만 알았는데 의외로 김경재 선생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성경을 열 번만 읽어 봐라. 그러면 아버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아버지는 몇 년 후 소천하셨고 나는 아직 성경을 열 번 읽으려면 멀었다. 정말로 성경을 열 번 읽으면 아버지를 이해하게 될까. 나는 당시에 레위 지파라니, 아버지는 경북 영양 출신이잖아요, 그런 건 이스라엘에나 있다구요, 하며 펄펄 뛰고 이를 갈고 뭐 이러다가 결국 아버지에게 아르바이트라도 좀 하시라는 말 붙이기를 포기했고, 대신 아버지가 한게임 바둑을 두고 있는 걸 보면 공부 못하는 자식이 몰래 오락, 이를테면 그것도 GTA, 하는 현장을 잡은 부모처럼 이럴 시간에 설교 준비랑 성경 공부라도 한 줄 더 보시라며 기세등등하게 컴퓨터 코드를 뽑아 버렸다. 한번만 더 게임하고 계시면 아예 파워 써플라이 빼버릴 거예요, 하면 아버지는 대한민국은 자유 국가다, 라고 하시곤 했다.

결국 돌아가실 때까지 일은 하지 않으셨고 돌아가시고 나서는 등기가 애매하게 되는 바람에 자취방 보증금을 빼서 교회 보증금에 보탰던 몇천 만원이 홀라당 날아갔다. 돈이야 있다가도 없고 없으면 계속 없는 것이고 나는 가난에 익숙하다는 요즘 세상을 버티기에 아주 유리한 강점이 있으므로 돈 날린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애석하지 않았지만, 아버지 생전에 조금 더 성경을 열심히 보지 않은 것은 상당히 애석하다. 조금 더 성경을 알았더라면 목사라면 모두가 존경하는 천하의 사도 바울도 전도하면서 신도들의 연보로만 생활한 것이 아니라 천막 짓는 일을 하면서 자신과 동역자들의 쓸 것을 공급했다고 좀 더 설득력 있게 말할 수 있었을 텐데, 아버지가 미워서 성경까지 싫어해 버리는 바람에 나만 손해를 본 기분이다.

구텐베르크 성경(Gutenberg Bible) [photo by Raul654 from wikipedia]

어쨌거나 성경은 요즘 내가 가장 많이 읽는 책이기도 하고, 이 책의 문학 텍스트로서의 아름다움에도 새삼스럽게 놀라곤 한다. 모태신앙인데 부끄러운 일이다. 이제야 아 그렇구나 싶은 일이 옛날 어르신들 중에 교회 다니는 분들은 남달리 지적이라는 느낌이 있었던 것이다. 성경이 상당히 난해한 텍스트이고 문학적으로도 아름다운데, 이런 텍스트를 계속 접하고 외니까 자연스럽게 그만큼 지성이 쌓이신 것이 아닌가 싶다. 교회 다니면서도 무식한 늙은이들을 얼마든지 많이 보았다고? 그럼 그럼, 나도 살면서 얼마든지 보았다. 그건 일부 기독교인이예요, 따위 말은 내 비위에도 영 맞지 않아 결코 할 생각이 없으니 염려 마시길, 다만 어릴 적부터 교회가 직장인 아버지 덕분에 교회 사람들을 많이 겪어 본 결과, 교회 오래 다니고 나름 믿음 좋다고 소문난 사람들 중 근데 왜 이렇게 무식해, 싶은 사람들은 대체로 성경 읽기는 멀리하고 영적 체험이나 뭐 다른 것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닌 노인 분들 중 성경을 많이 읽으신 분들은 묘하게 지적이었는데, 이 어려운 책을 그리 많이 읽으셨으니 지적이지 않을 수가. 심지어 베껴쓰기까지 하시는 어른도 많다.

내가 가진 몇 안 되는 재주 중 하나가 어렵지 않은 책이면 300페이지 정도를 30분 정도에 속독할 수 있는 것인데, 성경에는 이 재주가 먹히지 않는다. 그래서 좀 신기한 책이기도 하다. 뭐하리라, 뭐하노라, 가라사대, 이런 것 때문에 그런가 싶어 현대인의 성경이나 표준새번역을 읽어 보아도 속독이 되지 않으니 거참 신기한 책이다.

사람의 고정관념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하는데, 아주 어릴 때부터 성경에 대해 품고 있던 고정관념이 최근 꽤 바뀌게 되었다. 아버지 직업이 직업이라 어렸을 때부터 성경과 가까이 자라면서 성경에 품었던 강렬한 의문과 불만은 축복기도를 받거나 남이 받는 것을 볼 때 주로 생겼다. 내가 워낙 유아 시절부터 반항적이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지금도 기억하는 것이 네 살 때 선교원(유치원)에서 요만한 요구르트와 빅파이(big이 아니다! vic! 엄청 작은 그거!) 한 개를 간식이라고 나눠 주고는 “날마다 우리에게 양식을 주시는~ ”으로 시작하는 감사 찬양을 번번이 입을 모아 부르게 할 때마다 속으로 이런 게 양식이라면 굶어 죽겠다, 이렇게 인색하기 짝이 없는 간식을 주면서 왜 감사 찬양은 길게 부르게 하나 하나님은 좀 치사하다, 라고 생각했던 것이 선하다-어쨌거나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안수하여 축복기도를 하실 때 늘 불만이었던 것이 이런저런 인물로 자라게 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할 때 남자아이의 경우 요셉처럼, 다윗처럼, 욥처럼, 아브라함처럼, 모세처럼, 엘리야처럼, 위대한 인물을 거명하여 축복하려 할 때 끝도 없이 이름을 댈 수 있는데 여자아이를 축복할 때면 레퍼토리가 너무 뻔하다. 미스 이스라엘 1위하고 구국의 사명도 완수한 에스더. 말고 그 밖에 도대체 누가 있담. 이브? 여자로 인해 죄가 이 세상에 들어왔다고 6천년을 욕먹고 있는 그 이브? 다윗에게 치명적인 죄를 범하게 한 밧세바? 신전의 유녀였던 라합? 삼손을 막장의 길로 이끈 데릴라? 아들 하나만 편애한 리브가? 하녀들까지 끌어들여 언니와 아기 낳기 경쟁을 한 라헬? 바울을 후히 대접한 루디아 정도가 칭찬받는 여성이지만 다뤄지는 비중이 너무 적다. 어쨌거나 유대인들은 지금도 종이 아니고 이방인이 아니고 여자가 아닌 것을 감사합니다, 라고 기도한다는데 그렇게 기도할 만도 하지, 성경에 나오는 여자들은 남자를 유혹하거나 어리석거나 둘 중 하나였기 때문에 참 불만이었다.

그런데 최근 성경을 통독하고 이런저런 공부에 참여하게 되면서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른 네 여인의 출신을 보고 마음속에 이상한 감회가 생겨났다. 뭐 일단 그리스도의 족보에 여자가 네 명밖에 언급 안 되다니, 이런 불만은 차치하고 그 네 명은 다말, 라합, 룻, 그리고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인데 이들은 하나같이 세상 사람들이 볼 때 그럴싸한 여자가 아니다. 오히려 멸시받고 배척받는 존재들이다. 창녀로 변장하고 시아버지와 관계를 가져 후사를 남긴 다말은 세상 질서로 볼 때 근친상간을 범했고, 신전에서 몸을 파는 유녀였던 라합은 자기 나라에 쳐들어오기 위해 정탐을 온 이스라엘 사람을 숨겨 주고 그 대가로 자신과 가족들의 생명을 살린 배신자니 속된 말로 ‘붙어먹어서’ 나라 팔아먹은 대신 제 가족만 챙긴 셈이다. 룻은 모압인이다. 유대인들이 가장 괄시하는 이방인이었으니 요즘으로 치면 대통령의 가까운 혈족이 조선족인 모양새라고 할까, 게다가 남편을 잃은 과부였고 추수한 밭에서 땅에 떨어져 있는 벼이삭을 주워 살아갔으니 사회적 계급도 최하층이다. 그리고 마리아? 간단히 말해 미혼모다. 그 남편 요셉은 아내가 메시아의 어머니로 선택받은 것을 인정하고 지켜 주었지만 세상 사람들 눈에는 평생 미혼모라는 딱지가 붙었을 것이다. 이렇게 가장 낮아 보이는 여자들이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르는 영광을 차지한 것을 볼 때, 누구 못지않게 죄를 실컷 지으며 살아온 나 역시 혹시 구원이 있을까, 하나님의 사랑에 부스러기라도 내가 차지할 몫이 있을까, 이 많은 죄가 사해질까, 꿈을 꾸게 된다. 예수님께 자기 자녀에게서 귀신 내쫓기를 간구한 여인이 개들도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는다고 주님을 설득한 것처럼, 예수님이 그 헬라 여인에게 부스러기를 차지할 권리가 있다고 인정하셨다면 혹 나에게도 그 권리를 허락하지 않을까. 많은 것이 아니라 그저 부스러기라도, 부스러기라도. 나는 이제 죄짓기에도 지쳤다. 부스러기라도 떨어진다면 붙들고 싶다.

성경이 신비한 것은 속독이 안 되어서가 아니라, 예전같으면 말도 안 된다고 비웃었을 꿈을 진지하게 꾸게 하는 책이라 그렇다. 그 꿈을 개꿈으로 만들지, 성취되게끔 할지는 하루하루 성화의 길을 나아가는 데 달렸겠지만. 구원은 거저 받으나 성화는 거저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성경을 제대로 읽기만 하면 적어도 아주 막된 인간은 안 될 것도 같다. 읽을수록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다 이유가 있다 싶다. 제자들이 죄다 도망갔으니 예수의 리더십이니 뭐니 하는 책들은 좀 아닌 것 같고, 신약성경을 보았을 때 요즘 세상에서 윤리적으로 아주 수준 있는 삶을 권하는 자기계발서로서의 의미도 크다. 내가 주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둥 저 땅이 내거라는 둥 자기 마음에 드는 구절만 쏙쏙 뽑아 읽는 것 말고, 마음에 찔림을 받는 구절들을 상고하다 보면 으아, 스스로가 송충이보다 해롭게 느껴진다. 신약에서 예수님과 사도들이 하는 그 많은 당부들 중 일부만 지킬 수 있어도 개독교라는 말은 없었을 텐데. 쉬울 것 같지만 어려운 하나부터 당장 오늘부터 지켜 보아야겠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지금의 나에게는 아직 어려우니까. 항상 기뻐하라, 이것만 해도 요즘 한국 사회에서는 너무나 어려운 주문이다. 뉴스만 봐도 당장 뇌출혈이 일어날 것 같았던 이전 정부와 지금 정부에서는 특히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기뻐하면서 살 필요가 있다. 그럼, 성경을 복음福音, 기쁜 소식이라고도 부르는데 지금까지 삼십 년을 예수교 때문에 우울했으니 지금부터는 좀 기뻐해도 될 때가 아닌가. 베스트셀러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하지 않는 주의인데, 오늘은 이렇게나 많이 팔린 책에 이야기하고 왜 많이 팔렸는지도 승복해 버렸으니 어디 가서 삐딱한 척 함부로 하지 말아야겠다. 앞으로 아주 자랑스럽게 저 굉장히 대중적인 사람입니다, 라는 자신을 가져야지! 『긍정의 힘』 이나 『목적이 이끄는 삶』 따위가 댈 게 아닌 메가 베스트셀러를 보는 사람이다, 나는! 읽어 주시는 여러분의 오늘 하루에 매 순간 복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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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현진(칼럼니스트)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오래된 캐치프레이즈를 증명이라도 하듯 '88만 원 세대'이자 비주류인 자신의 계급과 사회구조적 모순과의 관계를 '특유의 삐딱한 건강함'으로 맛깔스럽게 풀어냈다 평가받으며 이십 대에서 칠십 대까지 폭넓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에세이스트. 『네 멋대로 해라』, 『뜨겁게 안녕』,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 『그래도 언니는 간다』, 『불량 소녀 백서』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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