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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히친스, 그가 싸움닭이 되어가면서까지 이야기하려 한 것은…

불편하되 무시할 수 없는 신과 종교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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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보면 그는 마더 테레사에게까지 시비를 거는 싸움꾼 논객으로 보이겠지만 그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가 연민이 뭔지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돼서 자꾸 정이 간다. 연민이 있는 사람이 사랑이 없을 리 없지, 신에게만 분노한 것이 아니라 신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압과 폭정을 훨씬 미워하고 식도암에 걸려 201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담배를 뻑뻑 피우고 술을 마셔대면서 덤벼들 만큼 가슴이 뜨거운 사람이 사랑이 없을 리가.

방에 꽂아 두면 폼나는 책들이 있다. 양장에 두꺼울수록 멋지구리한데, 이런 책이면 새로 낸 것보다 옛 버전이 오히려 멋지구리해서 사귀는 사람을 집에 초대해서 이렇게 외치고 싶을 정도다. 자, 내 방을 봐! 텔레비전 따위 없다고! 멋지지! 무한도전 따위 보지 않아! 이 책장을 봐라!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고려원 판본이라고! 개정판에서 저자가 직접 수정한 오류가 그대로 남아 있는 버전이지! 봐 달란 말이야, 제임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 다! 까치글방에서 나온 거라고! 귄터 발라프가 쓴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 것 없이』 도 있어, 내가 이런 사람이다! 그렇다고 지루한 사람인 것만은 아니야, 여기 있다 『굿바이 스바루』 야! 그 옆에 리영희 전집 보여? 보이냐고! 내가 이런 사람이야!! 세상에, 말해 놓고 보니 이렇게 민망한 인간일 수가. 책이 사실 이중으로 꽂혀 있는 그 책장 뒤에 V.C 앤드류스가 쓴 『다락방의 꽃들』 은 물론이고 『헤븐』 『도온』 『오드리나』 까지 다 꽂혀 있는 걸 하나님은 아시건만(지금은 내 책장이 없어서, 이 책장들은 내 마음 속에 꾸린 상상의 책장임을 밝혀 둔다. 그러나 한때 내 책장과 매우 유사하고 책장 거느릴 여력이 되면 바로 이렇게 될 것 같다)!

하여튼 이 가상의 이중 책장 앞쪽에 꽂혀 있는 멋지구리한 책들 옆에 꽂아 둬야 할 책이 있는데 특히 당신이 기독교 신자라면,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같은 걸 꼭 하나 꽂아 두어서 화룡점정을 이루어야 한다. 조금 욕심내 보자면 개역개정 성경 옆에 공동번역, 새번역성경, 킹 제임스 성경까지 하나씩 놔두면 모양새야 끝내주겠지만(이러다가 『바울신학』 까지 꽂아 놓자고 갈 태세! 상상이라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책장이라니 신이 나서 막 내달리는 저를 자비로운 독자 여러분께서 부디 적당히 끊어 보시길) 너무 과장하는 감이 없잖아 있다. 다시 생각해 보니 몹시 위험하다. 옛날 수학의 정석 책의 집합 부분만 새까맣듯이 이 모든 성경이 창세기나 마태복음만 조금 넘겨 본 채로 접은 자국 하나 없다면 제 꾀에 역으로 당해 더욱 창피를 당할 수 있으니 정말로 읽은 게 아니라면 쉽게 쓰지 않는 게 좋을 수다. 근데 정말로 그 모든 번역판 성서를 다 읽는 독자분이라면 지금 내 글을 읽고 계시지 않으려나. 어쨌든, 각종 판본의 성서는 포기하자. 그러면 『만들어진 신』 옆에 C.S 루이스의 책을 하나 꽂아 두는데 균형을 위해 얇은 판본으로 꽂도록 한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정도면 적절할 것 같다. 『나니아 연대기』 는 여기 꽂아 두기는 좀 그래. 귀찮다면 마크 트웨인의 에세이집이나 자서전 같은 걸로 중화해도 된다.

보통 이쯤되면 안일하게 선택하게 되는 것이 『체 게바라 평전』 인데, 그 감색의 겉묘지가 그야말로 멋지구리하다는 건 알지만 이건 아니야! 너무 뻔하잖아! 게다가 대한민국 가정의 필수품, 이거 하나 없는 집이 도대체 어디 있담, 사실 우린 다 게바라가 알았으면 너무너무 싫어했을 만큼 너무너무 돈을 좋아하는데도. 하기야 자녀에게 죽어라 사교육을 시키는 엘리트 부모가 책장에 전태일 평전을 살짝 꽂아 두곤 한다니까. 자녀가 그걸 정말로 읽기를 바라는지 내 자녀의 책장에 전태일 평전이 꽂혀 있기를 바라는지는 내가 알 수 없다, 어머, 또 못된 말했다. 어쨌든 내가 내 책장에 『만들어진 신』 대신 꽂아 두고 싶은 것은 도킨스가 ‘동료 기수’라 불렀던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신은 위대하지 않다』 이다. 책 겉모양의 멋지구리함으로는 결코 도킨스의 책에 뒤지지 않는다.

사실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에 대해서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다구요, 예 옳으신 말씀입니다, 하고 덮게 되는 면이 좀 있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개신교에 대해서 머리 터지게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만들어진 신』에서 다루는 이야기가 워낙 골치 썩던 이야기라는 것. ‘개독교’를 미워하고 어떤 신앙이든, 특히 개신교를 받아들이지 않을 자세가 투철한 사람들이야말로 은혜로다, 하며 이 책을 받아들일 독자층이다. 기독교에 대한 적대감이 막연한 것이 아니라 이유가 있음을 조목조목 확인받는 순간의 속시원함과 시대의 지성답게 결코 감정적으로 치우치지 않는 도킨스의 태도가 신뢰감을 더한다. 그래서 역시 개독은 안 된다니까, 이런 훌륭한 학자가 조목조목 이야기를 했잖아, 하면서 섣불리 전도를 하려고 하거나 뭐 이런 사람들에게 당신 도킨스도 안 읽어봤어? 하기에 꼭 적합한 책이다. 나 같은 경우 병아리 크리스찬인데 앞서 말했듯 『만들어진 신』에서 제기하는 의문들이 유의미하다는 것을 알고 아이고 옳으신 말씀입니다, 라고 덮었는데 다시 보게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신은 위대하지 않다』 쪽을 뭘 먹다가 봐서 음식이 묻고 책장을 접는 등 끼고 여러 번 보았다. 지금 『만들어진 신』이 틀렸다는 거야? 라고 묻는다면 그게 아니고 워낙 골치 썩은 이야기라니까요.

크리스토퍼 히친스(Christopher Hitchens, 2007) [photo by ensceptico from wikipedia]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신은 위대하지 않다』 에서 기독교만 까는 게 아니다! 통일교고 기독교고 카톨릭이고 이슬람이고 뭔가 신자에게 폭압을 가하는 종교의 꼴을 보기만 하면 다 덤벼든다. 모든 사람이 찬양하여 거의 신성에 가까운 명성을 지니게 된 마더 테레사-실제로 시복이 되었으니 이제 성녀인가, 어쨌든 영구 까방권을 지닌 인물이라는 것은 확실-의 사역에서 미심쩍은 점을 비판하는 『자비를 팔다』 까지 내놓을 정도니 성녀와 대적할 정도의 맷집인데, 『신은 위대하지 않다』 에서 읽다가 데굴데굴 굴렀던 것이 교황청에서 어떤 기적을 인정하는 심사가 열릴 때 이전에 그가 해당하는 기적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고 밝힌 것 때문에 그 기적의 심사에 참여하게 된다. 카톨릭 관련 지식이 부족해 더듬더듬 설명하는 것을 이해하시길. 여기에서 그의 표현이 배꼽을 잡을 만한데 기적이 안 일어났다고 교황청에 가서 이야기를 하러 가는 거니까, 이를테면 자신은 ‘악마의 대리인’격으로 참가하게 된 것이라고.

도킨스와 히친스의 결정적인 차이를 알았다. 웃기다는 차이! 지금까지 내가 웃긴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살아갈수록 그냥 웃기지 않는 걸 못 참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다. 히친스는 재미있다! 하지만 재미로 볼 수 없었던 부분은 그가 책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여 쓴 종교의 이름을 빌려 어린 아이들에게 행하는 폭압이다. 나도 십대 시절 교회에서 주최하는 여름 수련회 같은 것을 갔을 때 도대체 이 짓을 왜 하나, 하고 입을 떡 벌리고 놀랐던 적이 있는데 그 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그것은 확실히 틀린 일이라고 생각한다. 뭐였냐 하면 학생들을 하나씩 관에 넣어서 땅에 묻는 것이다. 일종의 임사체험이랄까, 그리고 모두 그 관 위에 흙을 덮어서 죽음을 체험하게 만들고 한동안 땅 속에 있도록 놓아둔다. 그 다음에 꺼내면서 부활을 체험하게 하는 건데... 자본을 아주 아낀 귀신의 집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데다가, 단순히 지옥 가기 싫어서 믿는 신앙이라면 하나님 쪽에서도 약간 서글프지 않을까. 이런 어설픈 임사체험 말고 히친스가 책에서 소개하는 귀신의 집들은 자본도 아주 많이 들였다. 어린이들에게 지옥의 체험을 하게 하는 교회들이 있는데, 이 교회들은 지옥이 무서우면 무서울수록 아이들의 신앙심이 강해진다며 공포의 수준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데 노력하고 있다고. 아, 이건 악취미다. 분명히 악취미다. 무슨 뜻이 고매하건 단순히 악취미다! 지옥의 소리니 어쩌니 하며 최진실이 울부짖는다며 고인을 몇 번 죽이는 것만큼이나 악취미다. 히친스가 멜 깁슨의 예수 전기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삼류 감독이 만든 고문 포르노 영화’라고 강도 높게 비판한 것도 분명히 영화관에 끌려가서 눈 똑바로 뜨고 주님의 고난을 보란 말이다! 하는 식으로 뭐랄까, 강제로 성화당하는 사람들을 동정해서가 아닐까. 신의 이름으로든 누구의 이름으로든, 이거 다 알고 보면 너한테 좋은 거야, 하면서 고통을 줄 자격은 없으니까.

단순히 보면 그는 마더 테레사에게까지 시비를 거는 싸움꾼 논객으로 보이겠지만 그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가 연민이 뭔지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돼서 자꾸 정이 간다. 연민이 있는 사람이 사랑이 없을 리 없지, 신에게만 분노한 것이 아니라 신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압과 폭정을 훨씬 미워하고 식도암에 걸려 201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담배를 뻑뻑 피우고 술을 마셔대면서 덤벼들 만큼 가슴이 뜨거운 사람이 사랑이 없을 리가.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아는 사람이 죽은 것도 아닌데 굉장히 슬펐다. 그의 장례는 무신론자에게 어울리는 방식으로 치러졌다고 한다. 리처드 도킨스가 조사를 낭독했는데, 무신론자에게 어울리는 작별 인사로 ‘잘 살았어요’ 라고 말했다고. 나는 이렇게 작별하고 싶다.

히친스 선생님, 음, 그렇게 불러도 된다면 크리스토퍼, 당신 마음을 알아요. 당신이 뭘 말하려고 했는지, 알아요. 내가 지금 이야기하는 당신이 말하려고 하는 그것, 당신이 싸움닭이 되어 가면서 이야기하려 한 것, 그것이 옳아요. 당신이 지키려고 했던 것, 당신이 흠집내려고 했던 것이 뭔지 알아요.

당신이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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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현진(칼럼니스트)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오래된 캐치프레이즈를 증명이라도 하듯 '88만 원 세대'이자 비주류인 자신의 계급과 사회구조적 모순과의 관계를 '특유의 삐딱한 건강함'으로 맛깔스럽게 풀어냈다 평가받으며 이십 대에서 칠십 대까지 폭넓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에세이스트. 『네 멋대로 해라』, 『뜨겁게 안녕』,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 『그래도 언니는 간다』, 『불량 소녀 백서』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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