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우리. 그 작은 깨달음을 전하는 시와 그림
30년간 산중에서 홀로 그림을 그리며, 있으면 있는 대로 세상과 나누는 집착과 소유를 떠난 길 위의 삶. 자유로운 삶의 표상으로 비워 사는 기쁨을 노래하는 허허당 스님은 산속 명상에서 얻은 맑은 기운을 시와 그림에 담아 간절한 마음으로 삶의 길을 찾고 있는 뭇 사람들의 타오르는 갈증을 시원하게 해갈해준다.
글 : 이동진
2013.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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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나는 책

오늘 소리 나는 책에서는 2주간 ‘책, 임자를 만나다.’에서 소개해드린 모옌의 <개구리>를 읽어드리려 합니다. 먹을 것이 없어 석탄을 먹는 장면이나, 소설 속 고모가 주인공의 아내를 잡으러 가는 장면 등, 소설 속 중요한 장면들을 들으면 소설의 분위기를 느껴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우리는 석탄더미 앞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마치 지질학에 심취한 사람들이 기이한 광석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폐허에서 먹이를 찾는 개들처럼 코를 벌렁거렸습니다. 여기서 우선 천비에게, 그리고 왕단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해야 겠습니다. 제일 먼저 석탄더미를 집은 사람은 바로 천비였으니까요. 천비는 코끝에대고 냄새를 맡더니 마치 뭔가 중요한 문제를 고민하는 것처럼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천비의 주먹코는 언제나 우리에게 웃음거리였습니다. 그애는 잠시 뭔가 생각하는것같더니 손에 쥐고 있는 석탄을 커다란 석탄덩이위에 세차게 내리쳤습니다. 석탄이 소리를 내고 부서지면서 향긋한 냄새가 주위에 퍼졌습니다. 천비가 작은 석탄더미를 하나 들어올리자 왕단도 따라서 하나를 들어 올렸습니다. 그가 석탄을 혀로 햝아서 맛을 음미하더니 눈알을 뱅그르르 돌리며 우리를 바라보았습니다. 왕단도 천비를 따라서 석탄을 햝더니 우리를 바라보았습니다. 두 아이는 이내 서로 바라보며 베시시 웃으며 약속이나 한 듯이 조심스럽게 앞니로 석탄을 갉아먹어보더니 다시 덥썩 한 입 베어물어서 신나게 씹어먹기 시작했습니다.
『개구리』 (모옌/민음사) 中에서


에디터 통신

저에게 산은 현실과 단절되는 공간이었습니다. 업무 스트레스, 일상의 우울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산으로 달려가기 위해 배낭을 꾸리는 그 시간부터 이미 사라지곤 했지요. 너그러움, 용기, 자유로움 등 모두 산이 제게 가르쳐준 마음가짐들입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허허당 스님의 시와 그림을 보면 바로 이런 마음을 들더군요. 복잡다단한 생각들이 가지런히 정리되며 오직 산행에만 집중했듯, 인생사의 이런저런 고민들을 잊고 문제의 본질만 바라보게 만드는 힘.


안녕하세요, 『바람에게 길을 물으니 네 멋대로 가라 한다』 를 편집한 박지숙이라고 합니다.
넘어야 할 산이라면 망설이지 마라
산이 높다고 마냥 쳐다보기만 할 것인가
가라
이번 책 『바람에게 길을 물으니 네 멋대로 가라 한다』 의 원고를 처음 받고 저를 가장 사로잡았던 시 ‘가라’입니다. 살다 보면 망설일 일이 흔히 있지요. 고난 앞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어떤 길이든 택해서 가야 합니다. 힘들다고 포기하고 주저앉는다면 두고두고 후회가 남게 됩니다. 덤불을 해치고 너덜 길을 걷고 걸어 ‘아, 이젠 정말 죽겠다’ 싶은 순간 만나는 능선 길이 더 큰 감흥을 가져다주듯 삶도 그런 게 아닐까요. 허허당 스님은 이처럼 간결한 시로 깊이 생각하게 하고, 또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알아차리게 합니다.

지난해 테드 강연에서 스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환경 중 가장 잘 가꿔야 하는 것인 인간이라는 환경”이라고. 스님이 깊은 산중에서 길어 올린 명상의 결실, 그리고 자연을 노래하고 표현한 시와 그림을 세상에 전하는 것도 아마 그 때문이겠지요. 시간 내 자연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바쁜 날들이 이어지더라도 잠시라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라고.

마음이 복잡한 날, 생각이 꼬리를 물고 멈추지 않는 날, 어딘가 불쑥 떠나고픈 생각에 괴로워지는 날… 허허당 스님의 그림 잠언집 『바람에게 길을 물으니 네 멋대로 가라 한다』 와 함께 자연이 당신에게 건네는 위로를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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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당 스님 #바람에게 길을 물으니 네 멋대로 가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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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모옌> 저/<심규호>,<유소영> 공역

바람에게 길을 물으니 네 멋대로 가라한다

<허허당>

출판사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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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어찌어찌 하다보니 ‘신문사 기자’ 생활을 십 수년간 했고, 또 어찌어찌 하다보니 ‘영화평론가’로 불리게 됐다. 영화를 너무나 좋아했지만 한 번도 꿈꾸진 않았던 ‘영화 전문가’가 됐고, 글쓰기에 대한 절망의 끝에서 ‘글쟁이’가 됐다. 꿈이 없었다기보다는 꿈을 지탱할 만한 의지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삶에서 꿈이 그렇게 중요한가라고 되물으며 변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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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옌

쟝이모 감독의 영화 [붉은 수수밭]의 원작소설 『홍까오량 가족』의 작가. 그는 산둥성(山東省) 까오미(高密) 따란향(大欄鄕) 핑안춘(平安村)의 빈한한 가정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관모예(管謨業)이나, 글로만 뜻을 표할 뿐 "말하지 않는다"는 뜻의 '모옌(莫言)'이란 필명을 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문화대혁명이 일어나자 학업을 포기하고 수년 간 농촌 생활을 하다가 소학교를 중퇴한 뒤 18세 되던 해 면화 가공 공장에서 직공으로 일했다. 1976년 20세 나이로 고향을 떠나 중국 인민해방군에 입대해 복무하던 중 문학에 눈을 돌려 1978년 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며, 해방군 예술학원에 입학, 1986년에 문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베이징 사범대학과 루쉰 문학창작원에서 문학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1981년부터 창작 활동을 시작하여 인민해방군 총참모부 소속 1급 작가로 일하다가 1997년 사직하고, '검찰일보'에 재직하면서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1981년 격월간지 『연지(蓮池)』에 단편소설 「봄밤에 내리는 소나기(春夜雨)」를 발표한 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치기 시작하며, 1984년 발표한 「황금색 홍당무(金色的紅蘿蔔)」(1985년 「투명한 홍당무(透明的紅蘿蔔)」로 개작)가 좋은 평가를 얻게 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1987년 대표적인 장편소설 『홍까오량 가족』을 발표해 반향을 일으켰고, 그 작품의 일부를 쟝이모 감독이 영화 '붉은 수수밭'으로 제작해 1988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이는 모옌의 작품이 전세계 20여 개국으로 번역 출간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장편소설 『티엔탕 마늘종 노래(天堂蒜之歌)』(1988), 『열세 걸음(十三步)』, 『술의 나라(酒國)』(1993), 『풀을 먹는 가족(食草家族)』(1993), 『풍유비둔(豊乳肥臀)』(1995), 『탄샹싱(檀香刑)』(2001), 『사십일포』(2003), 『생사피로(生死疲勞)』(2006) 등을 발표하였고, 「환락」, 「생화를 품은 여인」, 「폭발」,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등의 중편소설과 「그네 틀의 흰둥이」, 「메마른 강」, 「엄지수갑」, 「눈얼음 미녀」등의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이 중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는 장이모 감독에 의해 영화 '행복한 날들(幸福時光, Happy Time, 2000)'로 제작된 바 있다. 『풍유비둔』은 그의 창작상 최고조에 오른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1,2』는 1980년대 중국의 개혁 · 개방의 전성기를 배경으로 농촌 마을과 관료 사회의 부패 양상을 탁월한 주제의식과 기교로 그려낸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외에도 많은 희곡과 텔레비전 드라마 극본을 썼는데, 1997년 창작한 희곡 「패왕별희(覇王別姬)」는 무대에 올려져 중국 대도시를 중심으로 두 달간 연속 공연되면서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기도 했다. 1993년에 출간된 『술의 나라』는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여러 나라에 소개되어 큰 호평을 받았고, 그는 데뷔 후 중국 최고의 문학상인 따자(大家)문학상을 비롯, 프랑스 루얼 파타이아 문학상, 이탈리아 노니로 문학상, 프랑스 예술문화훈장상, 홍콩 아시아문학상, 일본 후쿠오카 아시아 문화대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모옌은 201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중국의 첫 노벨 문학상 수상자라는 영예까지 얻었다. 스웨덴 한림원은 모옌이 현실과 환상을 역사적, 사회적 관점에서 절묘하게 융합한 문학 세계를 창조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그는 대부분의 작품에서 그의 고향인 산동성 까오미현 둥베이(東北)를 배경으로 삼고 있으며, 2002년 10월부터는 고향의 산둥 대학에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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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당

법명 향훈. 출가 수행자이자 이름난 선화가禪畵家. 비학산 자락 산골마을의 단칸방 ‘휴유암(쉬고 노는 집)’에서 그림 그리는 일로 수행을 삼으며, 청정한 산속 명상에서 얻은 맑은 기운을 세상에 전해 사람들의 상처를 위로하고 삶을 격려하고자 트위터에 시와 그림을 올린다. 열여덟 살 되던 1974년 해인사로 출가해 해은 스님을 은사로 향훈이라는 법명을 얻었다. 당대의 선승 향곡 선사 문하에서 촉망받는 수행승으로 선 수행을 쌓았고, “깨달음은 결코 찾아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비워 버리면 스스로 찾아오는 것”이라는 깨달음 뒤에 ‘비고 빈 집’이란 뜻의 ‘허허당’으로 스스로 이름을 바꿨다. 1978년부터 붓을 잡기 시작해 1983년 지리산 벽송사 방장선원에서 본격적인 선화 작업에 들어갔다. 사찰도 없고 시주도 안 받으며, 있으면 있는 대로 모두 세상과 나누어 자신의 소유로 된 재산이 없다. 소유와 집착을 버린 길 위의 삶, 이 공부 외에 다른 것은 없다고 여기고 지금껏 ‘비워 사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 그 뒤 꾸준히 국내 전시회뿐 아니라, 2000년 6월 스위스 취리히, 2010년 하와이에서 전시회를 가졌으며, 2013년 뉴욕 전시를 진행했다. 현재 포항 비학산 자락에서 작업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당신이 좋아요 있는 그대로』, 『그대 속눈썹에 걸린 세상』, 『바람에게 길을 물으니 네 멋대로 가라 한다』, 『머물지 마라 그 아픈 상처에』, 『왼발은 뜨고 오른발은 닿네』, 『낙타를 모는 성자』 등이 있다. 2024 허허당 통일염원 초대전 (고성 통일전망대) 2024 허허당 그림콘서트 ‘겁외풍경’ (가나인사아트센터) 2022 허허당 화엄세계 초대전 (이웰갤러리) 2017 허허당 초대전 (제주도 심헌갤러리) 2015 허허당 작품전 ‘바람의 기억’ (가나인사아트센터) 2014 허허당 초대전 (육군3사관학교) 2013 허허당 초대전 (갤러리 한빛) 2010 허허당이 본 화엄세계 하와이 전시 2009 ‘백만 동자(새벽)’ 전국 순회음악회 (서울·대구·부산) 2008 ‘백만 동자(새벽)’ 완성 2007 허허당이 본 화엄세계 ‘천년의 세월을 씻고’ 초대전 (불일미술관) 2000 허허당이 본 화엄세계 ‘생명의 축제’ 초대전 (스위스 테제미드) 1998 세계문화유산기념 초대전 (합천 해인사) 1997 허허당이 본 화엄세계 ‘우담바라의 꽃은 피고’ 전국 순회전 (서울 공평아트홀, 부산 국제신문사, 광주 라인문화회관) 1995 허허당이 본 화엄세계 ‘생명의 걸음으로’ (서울역문화회관) 1991 허허당 선화전 ‘가고 가고 또 간다’ (벽아미술관) 1984 허허당 선화전 ‘빈 마음의 노래’ (중앙화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