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에 헤어진 남자와 6년째 동거 중인 남자
『그녀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들』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중반 정도를 넘어서면 트릭이 무엇인지, 결말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대충 짐작이 간다. 하지만 궁금하다. 대충의 스토리는 예상할 수 있지만, 토와코와 진지가 과연 어떤 인간인지가 너무나 궁금하다. 게다가 누마타 마호카루의 필력은 섬세하면서도 강렬하게 휘몰아친다. 토와코의 사막 같은 마음을, 진지의 너덜너덜해진 몸을, 서늘하게 그려낸다.
글ㆍ사진 김봉석
2013.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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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에 헤어진 남자를 잊지 못하는 여자가 있다. 이름은 토와코. 지금은 진지라는 남자와 동거하면서, DVD를 빌리고 장을 보는 것 말고는 집에 틀어박혀만 있다. 토와코는 여전히 그녀를 버린 남자 쿠로사키를 잊지 못한다. 5년 전부터 함께 살기 시작한 진지를 혐오하고 진저리를 치면서, 쿠로사키의 다정한 말과 그가 준 선물들을 떠올린다.

진지는 토와코보다 무려 15살이나 많다. 한때 대기업 건설회사에 다녔지만 지금은 중소기업에서 근근이 버티고 있다. 보는 여자들마다 들이대던 진지는 토와코에게도 접근했고, 쿠로사키에게 버림받아 공허했던 토와코는 진지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진지는 혐오스럽다. 얼굴도 못 생겼고, 지저분하고 투박하다. 바지를 입다가 다리를 잘못 넣어 넘어지기도 하고, 손재주가 없어 뭘 망가뜨리기 일쑤다. 토와코는 진지에게 늘 화를 낸다.

진지에게 상처를 주고 싶다. 가장 효과적으로 상처를 줄 말을 골라 진지의 심장을 세차게 찌르고 싶었다. 외로워서 진지와 함께 있는 건지, 진지와 함께 있어서 외로운 건지 토와코는 알 수 없었다.

누마타 마호카루의 『그녀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들』은 이렇게 시작된다. 한 남자를 잊지 못하면서, 다른 남자와 동거하는 여자. 지금 살고 있는 남자를 혐오하고, 상처를 주고 싶어하는 여자. 토와코가 상처를 입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녀가 여전히 8년 전의 쿠로사키에게 집착하고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래서 그녀의 마음도 얼핏 이해가 된다. 혼자 웅크리고 지냈던 빛도 바람도 들지 않는 텅 빈 함정의 절벽에서 진지를 혐오하는 것으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 걸음, 또 한 걸음 올라올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녀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들』을 읽다보면 뭔가 묘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된다. 토와코가 상처를 입었고, 여전히 후유증에 시달리면서 진지를 괴롭힌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진지가 대단히 혐오스럽다는 것도 알겠다. 하지만 그게 정말일까? 토와코의 시선을 통해 보여지는, 그녀의 생각을 통해서 보이는 진지라는 사람의 모습에 자꾸만 의심이 간다. 어쩌면 이건 토와코가 보고 있는, 자신의 의식 속에서 만들어낸 진지의 이미지인 건 아닐까? 토와코의 진술이, 토와코의 마음 자체가 거짓일 수도 있지 않을까?

눈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기괴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데 토와코의 눈이 그걸 분별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토와코는 5년 전 백화점에서 산 시계가 망가졌다는 것을 알고 항의 전화를 한다. 대형 백화점에서 판 시계라면 적어도 10년은 쓴다. 그런데 제조회사가 망했다고 해서 수리를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계속해서 항의 전화를 거는 토와코를 보고 있으면,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토와코의 마음 한 구석이 심하게 뒤틀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그녀의 진술에 자꾸만 의심이 간다. 토와코라는 인물을 보고 있으면, 기리노 나쓰오의 『아임 소리 마마』의 그녀를 보는 것만 같다. 세상의 어떤 것을 보더라도 자신의 욕망과 우월감에만 기초해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여자. 그의 생각과 행동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지는 인물.

그런데 사건이 벌어진다. 아니 이미 사건은 벌어져 있고, 모호한 판단들이 난무한다. 쿠로사키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그가 5년 전 행방불명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토와코는 진지를 의심한다. 그가 쿠로사키를 죽인 것은 아닐까? 그렇게 혐오스럽고 비열한 남자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야. 그러면서 토와코는 백화점의 시계 판매 매장의 매니저인 미즈시마와 사랑에 빠진다. 아내와 이혼하고 토와코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겠다는 미즈시마에게 푹 빠진다. 그런데 누군가 그들을 스토킹한다. 그들의 사랑을 방해하기 위해 누군가 그들을 뒤따라 다니고, 협박한다. 하지만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누군가의 망상일까?

이게 꿈이 아니라면 모두 토와코의 망상일까? 모든 것이 전부 머릿속에서 일어난다. 밖에서 일어하는 일들은 모두 머릿속에서 일어난다. 아니면 그 반대일까? 아아, 아아, 아아,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그녀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들』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중반 정도를 넘어서면 트릭이 무엇인지, 결말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대충 짐작이 간다. 하지만 궁금하다. 대충의 스토리는 예상할 수 있지만, 토와코와 진지가 과연 어떤 인간인지가 너무나 궁금하다. 게다가 누마타 마호카루의 필력은 섬세하면서도 강렬하게 휘몰아친다. 토와코의 사막 같은 마음을, 진지의 너덜너덜해진 몸을, 서늘하게 그려낸다.

사람과 물건은 크게 다르다. 사람은 무섭다. 순수하게 타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친구도 아니다. 아는 사이도 아니고 모르는 사이도 아닌 틈새에서, 언제나 이쪽으로 기어 나와 토와코에게 엉겨 붙을 기회를 노리고 있다. 토와코에게는 진지와 미스즈 언니 이외의 인간은 모두 물건 아니면 타인이었다.

걷고 있지만, 안에는 아무도 없는 텅 빈 몸뚱이였다. 그럼에도 눈의 구멍에서는 뭔가에 홀린 인간의 빼도 박도 못할 광기가 당장에라도 검게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기분이었다. 그건 얼굴이 아니었다. 적어도 진지의 얼굴은 아니었다. 희로애락이 확실하고 턱없이 자신만만하며 걸핏하면 불평하던 평소의 진지를 움직이던 모든 감정이 전부 빠져 나가버린 것만 같았다.


여기까지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읽다 보면 예상할 수 있는 결말이지만, 그건 읽으면서 직접 느껴야만 한다. 그걸 느껴야만 결말의 모든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다. 단순하고, 식상한 설정이라도 그걸 깊이 있게 이야기하는 솜씨에 따라 얼마나 다른 여운을 남기는지 『그녀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누마타 마호카루는 20대에 결혼을 했다가 30대에 이혼을 하고, 친정인 사찰의 주지가 되기 위해 출가해 승려가 된다. 그리고 마흔 넷에 친구와 동업하여 건설 컨설팅 회사를 차리지만 10년 만에 파산한다. 파산 후, 대인공포증이 있었던 누마타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작가의 길을 선택했다. 데뷔작 『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을 발표한 것은 그녀의 나이 56세인 2005년이었다.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에서 얻은 경험과 인식 덕분인지, 누마타의 작품은 사람의 마음 깊숙한 부분들을 강렬하게 쑤셔대며 외면하고픈 기억의 근원을 드러낸다. 아프고, 도망치고 싶어진다.

토와코는 생각한다.

그대로 쿠로사키 곁에서 살면서 쿠로사키의 아이를 낳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미즈시마를 만나지도 않고, 진지도 만나지도 않고, 다른 세상에서 다른 것을 보고 다른 것을 생각하며 살았을까? 그 세상이 실제로 어딘가에 존재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세상이란, 내가 살고 인식하는 세상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한다 해도, 내 알바가 아니다. 그 세상은, 그 세상의 내가 주관하고 있을 뿐이니까. 아무리 쓰라려도, 결국 우리는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사랑 역시 해야만 하고. 그러니까 『그녀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들』은 결국 순애 이야기다. 그리고 단언컨대 『용의자 X의 헌신』을 뛰어넘는, 처절하고 비통한 순애보다. 이 말들로 귀결되는.

즐거웠다. 토와코. 진짜 즐거웠다. 이 삶이 언제 망가질지 모르기 때문에 별별 일이 다 생겨도 그렇게 즐거웠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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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들 누마타 마호카루 저/박수지 역 | 북홀릭
대인기피증세에다 하는 일 없이 비디오나 보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토와코는 8년 전 자신을 참혹하게 이용하고 버린 남자 쿠로사키를 여전히 잊지 못하는 33세의 여자. 헤어진 후 진지라는 남자와 6년째 동거 중이다. 진지는 하는 짓마다 어눌하고 추접하며 볼품없는 남자로, 토와코보다 열다섯 살이나 많다. 토와코는 진지를 혐오스러워하고 무시하며 함부로 대하고, 진지는 그런 토와코에게 집요하리만치 집착하며 산다. 그러던 어느 날, 토와코를 찾아온 형사로 인해 쿠로사키가 5년 전부터 실종 상태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둘의 관계는 묘하게 위태로워지기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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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마타 마호카루 #그녀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들
10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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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d1318

2013.06.30

<그녀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들> 한번 읽어보고 싶군요! 매력적인 소개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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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kdldodh

2013.05.30

내 안에 상처가 너무 커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상처 입히고 싶은 마음, 바닥까지 긁어내보이고싶은 마음 깊이 공감합니다. 꼭 읽어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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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ee78

2013.05.03

일본소설의 매력을 물씬느낄수있을것같아 관심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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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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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마타 마호카루

1948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1985년부터 오사카 문학학교에 다니며 글쓰기를 배웠다. 독특한 삶의 이력을 가진 것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주부였으며, 승려였고, 회사를 경영하기도 했다. 첫 장편소설 『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을 발표한 뒤, ‘뒤늦게 꽃을 피운 슈퍼스타’라는 찬사를 받으며 제5회 호러서스펜스대상을 수상하고 56세의 늦깎이 작가로 화려하게 등단했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높은 완성도와 인간의 마음을 건드리는 심리묘사를 보여주어 평단의 호평은 물론이고 대중들에게도 사랑을 받고 있다. 《고양이 울음》은 인간과 고양이의 관계가 이야기의 중심이 되면서 누마타 마호카루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미스터리에서 일반 소설로 접근한 작품이다. ‘몽’이라는 고양이를 통해 보여주는 삶과 죽음에 대한 섬세한 묘사와 생명을 바라보는 강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일본에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추천문고왕국》 2010~2011(《책의 잡지》 발행) 엔터테인먼트 부문 1위에 올랐다. 또한 《유리고코로》는 생생한 살인 노트를 통해 인간 내면의 불가사의한 어둠과 미묘한 슬픔을 보여주며 독자를 매료시켰고 일본 전역에 ‘누마타 붐’을 일으켰다. 2012년에는 최고의 미스터리 하드보일드 소설에 수여하는 ‘오오야부 하루히코 대상’을 수상했으며,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5위, ‘일본 서점 대상’ 6위에 올랐다. 주요 저서로는 《고양이 울음》, 《유리고코로》, 《아미다사마》, 《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 《그녀가 그 이름을 모르는 새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