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에서 만난 수녀님, 그녀는 천사였다
텐트 칠 장소나 허락 받아 볼 요량으로 말씀을 드렸는데 생각지도 못한 호의를 베풀어 주셔서 조금은 어리둥절하다. 친절을 한 번에 몰아서 받으면 조금은 민망해 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알게 된다.
2012.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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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일주 6일차/ 이동구간: 고창ㆍ불갑 저수지-영광-함평]
이제까지는 식당에서 점심을 사 먹고, 텐트를 친 후 저녁을 만들어 먹는 방식으로 해왔다. 그런데 오늘부터는 반대로 하기로 계획을 바꾼다. 찌는 더위가 계속되는 바람에 한낮 라이딩이 정말 지친다. 그래서 가장 더울 때 잠시 쉴 겸 점심도 해 먹으면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보려는 방안이다. 어제는 면 위주로 먹었더니 오늘은 보양을 해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점심 메뉴를 닭볶음탕으로 정한다. 근처에 시장이 있어 필요한 재료들을 미리 구입해 두기로 했다. 우리의 빛나는 꼬라지를 본 상인 분들은 재료를 살 때마다 이것 저것 덤을 많이도 얹어 주신다.
목적지인 영광이 10km 정도 남았을 때, 매점 겸 식당이 보여 잠시 쉬어 가기로 한다. 아침도 먹지 않은 상태로 출발했기 때문에 빵과 우유로 허기를 달래 본다. 그런데 갑자기 엄습하는 이 불길한 기운은 뭐지? 뭔가 굉장히 허전하다. 그렇다. 시장에서 요리 재료를 전부 다 샀으면서 제일 중요한 쌀을 안 샀다. 이런 멍청한 짓을 하다니! 이 더위에 온 길을 다시 돌아가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때 희열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렇다. 이미 우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빈대의 달인 구걸 윤희열 선생님께서 바로 행동을 개시하신다. 식당으로 들어가시더니, 얼마 지나지도 않아 위풍당당하게 쌀을 가지고 나오신다. 후광이 비친다. 멋진 분이다. 앞으로 형이라 부를까도 잠시 고민해 본다.
쌀을 챙겨주신 매점 아주머니는 희열이를 보니 군에 간 아들 생각이 난다며 김치, 고추장, 마른 멸치, 찹쌀, 후식으로 먹을 포도까지 듬뿍듬뿍 챙겨 주신다. 세상에 이런 행운이! 희열이의 향후 진로를 영업으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겠다. 영광으로 들어와 점심 먹기에 안성맞춤인 정자를 발견했다. 음식 만들 때 필요한 물은 정자 바로 앞에 있던 가정집에 들어가 부탁했다. 할머니께서 손수 쌀과 닭을 씻어 주신다. 집에 계시던 할아버지도 우리가 신기하신 듯 밖으로 따라 나오신다. 감사하면서도 죄송스러운 마음에 괜히 너스레를 떨어 본다.
“식사 안 하셨으면 같이 하시죠, 어르신?”
할아버지는 사람 좋은 너털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신다. 닭볶음탕으로 든든하게 한 끼를 해결했다. 아까 매점 아주머니가 챙겨 준 포도로 후식까지 챙겨 먹으니 백 점짜리 만찬이다.
지루한 국도를 달려 오후 6시쯤 함평에 도착했다. 이 시간쯤이 되면 항상 숙소 걱정이 시작된다. 여행 첫 날부터 달고 다닌 감기가 아직도 떨어지지 않아 뜨거운 물에 몸이라도 담그고 싶지만, 서울 에서와 달리 지방에서는 사우나나 찜질방을 찾기가 어렵다. 고민을 거듭하면서 달리다가 우연히 발견한 곳이 바로 함평 성당이다. 성당 앞 마당에 텐트 치기 딱 좋은 잔디밭이 준비되어 있었다. 희열이가 텐트를 쳐도 좋은지 허락을 받기 위해 성당 안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 수녀님 한 분과 함께 나온다. 성당 사용을 위해서는 신부님께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신부님께서는 지금 외부에 계신다고 한다. 일단 연락을 해 볼 테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하신다. 잠시 후 다시 나온 수녀님께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신다.
“신부님께서 업무를 보고 계시는지 전화를 받지 않으시네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이미 머릿속으로 시간이 더 늦기 전에 근처 초등학교를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수녀님께서 예상 밖의 말을 이어 나가신다.
“신부님께서도 이해하실 겁니다. 제가 나중에 다 말씀 드릴 테니, 일단 취사장에 자전거와 짐을 풀어 놓으세요.”
“아닙니다, 수녀님. 자전거랑 짐은 저희 텐트 안에 보관하면 되요.”
“무슨 소리세요. 손님을 밖에서 재울 수는 없죠. 지금 안 쓰고 있는 방이 있으니 거길 사용하세요. 어서 따라오세요.”
너무나도 정갈한 말투에 위축된 탓인지 우리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말 없이 자전거를 끌고 수녀님 뒤를 졸졸 따라가고 있었다. 수녀님은 취사장의 가스레인지 사용법, 화장실 위치, 전등 스위치 위치, 방 열쇠 놓는 곳 등을 정말 꼼꼼하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신다. 텐트 칠 장소나 허락 받아 볼 요량으로 말씀을 드렸는데 생각지도 못한 호의를 베풀어 주셔서 조금은 어리둥절하다. 친절을 한 번에 몰아서 받으면 조금은 민망해 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알게 된다. 아무튼 오늘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행운이 대단하다. (성당 이름을 노출하면 혹시라도 누가 되지 않을까 고민하다가, 마음을 다해 챙겨 주신 수녀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고 싶어 적는다.)
짐을 대충 풀어 놓고 근처 목욕탕으로 향했다. 체중계 앞에 선 나는 약간 긴장한 상태이다. 이번 여행 목적 중에 다이어트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빠졌을까? 두둥! 앗! 빠졌다, 빠졌어! 달랑 500g….
지금까지 500km를 죽어라 달려왔는데 1kg도 아니고 고작 500g이 웬 말이냐. 더군다나 아직 저녁도 안 먹은 상태인데 말이다. 나만 힘들고 내 몸뚱이는 놀았단 말이더냐? 그래도 굶을 순 없는 법! 저녁은 함평에서 유명하다는 육회 비빔밥이다. 목욕탕에서의 슬픔을 말끔히 씻어주는 맛이다. 놋그릇에 정갈하게 담겨 나온 육회 비빔밥에 삶은 돼지 껍데기와 고추장을 넣고 쓱쓱 비벼 한 입 크게 베어 물으니 환상이다. 베스트 초이스!
성당으로 돌아와 잠자리를 펴고 짐 정리를 하는데 노크 소리가 들린다. 수녀님이다.
“그래도 손님인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서요. 과일을 좀 가져왔어요. 드세요.”
배와 청포도가 담긴 쟁반을 내미신다.
“아… 아… 괜찮은데… 고맙습니다.”
내가 말을 더듬다니 정말 이상하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수녀님께는 평소에 습관처럼 떨던 너스레도 못 떨겠더라. 평소 내 모습이라면 “아이고~ 뭘 이런 걸 다 주시고!”라면서 껄껄거리고 웃어야 하는데 말이다. 수녀님이 인간의 모습을 가장한 천사처럼 느껴져서 인지도 모른다.
오늘은 많은 귀인들 덕에 로또 맞은 날이다. 현진건의 소설 『운수좋은 날』이 생각난다. 소설과 다른 점이라면 우리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라는 것! 많은 분들의 호의를 받은 만큼 반드시 베풀며 살아가리라.
이제까지는 식당에서 점심을 사 먹고, 텐트를 친 후 저녁을 만들어 먹는 방식으로 해왔다. 그런데 오늘부터는 반대로 하기로 계획을 바꾼다. 찌는 더위가 계속되는 바람에 한낮 라이딩이 정말 지친다. 그래서 가장 더울 때 잠시 쉴 겸 점심도 해 먹으면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보려는 방안이다. 어제는 면 위주로 먹었더니 오늘은 보양을 해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점심 메뉴를 닭볶음탕으로 정한다. 근처에 시장이 있어 필요한 재료들을 미리 구입해 두기로 했다. 우리의 빛나는 꼬라지를 본 상인 분들은 재료를 살 때마다 이것 저것 덤을 많이도 얹어 주신다.
목적지인 영광이 10km 정도 남았을 때, 매점 겸 식당이 보여 잠시 쉬어 가기로 한다. 아침도 먹지 않은 상태로 출발했기 때문에 빵과 우유로 허기를 달래 본다. 그런데 갑자기 엄습하는 이 불길한 기운은 뭐지? 뭔가 굉장히 허전하다. 그렇다. 시장에서 요리 재료를 전부 다 샀으면서 제일 중요한 쌀을 안 샀다. 이런 멍청한 짓을 하다니! 이 더위에 온 길을 다시 돌아가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때 희열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렇다. 이미 우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빈대의 달인 구걸 윤희열 선생님께서 바로 행동을 개시하신다. 식당으로 들어가시더니, 얼마 지나지도 않아 위풍당당하게 쌀을 가지고 나오신다. 후광이 비친다. 멋진 분이다. 앞으로 형이라 부를까도 잠시 고민해 본다.
쌀을 챙겨주신 매점 아주머니는 희열이를 보니 군에 간 아들 생각이 난다며 김치, 고추장, 마른 멸치, 찹쌀, 후식으로 먹을 포도까지 듬뿍듬뿍 챙겨 주신다. 세상에 이런 행운이! 희열이의 향후 진로를 영업으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겠다. 영광으로 들어와 점심 먹기에 안성맞춤인 정자를 발견했다. 음식 만들 때 필요한 물은 정자 바로 앞에 있던 가정집에 들어가 부탁했다. 할머니께서 손수 쌀과 닭을 씻어 주신다. 집에 계시던 할아버지도 우리가 신기하신 듯 밖으로 따라 나오신다. 감사하면서도 죄송스러운 마음에 괜히 너스레를 떨어 본다.
“식사 안 하셨으면 같이 하시죠, 어르신?”
할아버지는 사람 좋은 너털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신다. 닭볶음탕으로 든든하게 한 끼를 해결했다. 아까 매점 아주머니가 챙겨 준 포도로 후식까지 챙겨 먹으니 백 점짜리 만찬이다.
지루한 국도를 달려 오후 6시쯤 함평에 도착했다. 이 시간쯤이 되면 항상 숙소 걱정이 시작된다. 여행 첫 날부터 달고 다닌 감기가 아직도 떨어지지 않아 뜨거운 물에 몸이라도 담그고 싶지만, 서울 에서와 달리 지방에서는 사우나나 찜질방을 찾기가 어렵다. 고민을 거듭하면서 달리다가 우연히 발견한 곳이 바로 함평 성당이다. 성당 앞 마당에 텐트 치기 딱 좋은 잔디밭이 준비되어 있었다. 희열이가 텐트를 쳐도 좋은지 허락을 받기 위해 성당 안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 수녀님 한 분과 함께 나온다. 성당 사용을 위해서는 신부님께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신부님께서는 지금 외부에 계신다고 한다. 일단 연락을 해 볼 테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하신다. 잠시 후 다시 나온 수녀님께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신다.
“신부님께서 업무를 보고 계시는지 전화를 받지 않으시네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이미 머릿속으로 시간이 더 늦기 전에 근처 초등학교를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수녀님께서 예상 밖의 말을 이어 나가신다.
“신부님께서도 이해하실 겁니다. 제가 나중에 다 말씀 드릴 테니, 일단 취사장에 자전거와 짐을 풀어 놓으세요.”
“아닙니다, 수녀님. 자전거랑 짐은 저희 텐트 안에 보관하면 되요.”
“무슨 소리세요. 손님을 밖에서 재울 수는 없죠. 지금 안 쓰고 있는 방이 있으니 거길 사용하세요. 어서 따라오세요.”
너무나도 정갈한 말투에 위축된 탓인지 우리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말 없이 자전거를 끌고 수녀님 뒤를 졸졸 따라가고 있었다. 수녀님은 취사장의 가스레인지 사용법, 화장실 위치, 전등 스위치 위치, 방 열쇠 놓는 곳 등을 정말 꼼꼼하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신다. 텐트 칠 장소나 허락 받아 볼 요량으로 말씀을 드렸는데 생각지도 못한 호의를 베풀어 주셔서 조금은 어리둥절하다. 친절을 한 번에 몰아서 받으면 조금은 민망해 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알게 된다. 아무튼 오늘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행운이 대단하다. (성당 이름을 노출하면 혹시라도 누가 되지 않을까 고민하다가, 마음을 다해 챙겨 주신 수녀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고 싶어 적는다.)
※ 텐트 짐을 들여 놓고도 공간을 여유롭게 쓰기 위해서는 2~3인용이 적당하고, 가능하면 최대한 가벼운 것이 좋다. 물론 가벼울수록 비싸다. 비 올 때를 대비해 텐트 위에 덮는 플라이는 반드시 챙겨간다. 플라이는 추운 날에는 방한 효과도 있다. | ||
짐을 대충 풀어 놓고 근처 목욕탕으로 향했다. 체중계 앞에 선 나는 약간 긴장한 상태이다. 이번 여행 목적 중에 다이어트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빠졌을까? 두둥! 앗! 빠졌다, 빠졌어! 달랑 500g….
지금까지 500km를 죽어라 달려왔는데 1kg도 아니고 고작 500g이 웬 말이냐. 더군다나 아직 저녁도 안 먹은 상태인데 말이다. 나만 힘들고 내 몸뚱이는 놀았단 말이더냐? 그래도 굶을 순 없는 법! 저녁은 함평에서 유명하다는 육회 비빔밥이다. 목욕탕에서의 슬픔을 말끔히 씻어주는 맛이다. 놋그릇에 정갈하게 담겨 나온 육회 비빔밥에 삶은 돼지 껍데기와 고추장을 넣고 쓱쓱 비벼 한 입 크게 베어 물으니 환상이다. 베스트 초이스!
성당으로 돌아와 잠자리를 펴고 짐 정리를 하는데 노크 소리가 들린다. 수녀님이다.
“그래도 손님인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서요. 과일을 좀 가져왔어요. 드세요.”
배와 청포도가 담긴 쟁반을 내미신다.
“아… 아… 괜찮은데… 고맙습니다.”
내가 말을 더듬다니 정말 이상하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수녀님께는 평소에 습관처럼 떨던 너스레도 못 떨겠더라. 평소 내 모습이라면 “아이고~ 뭘 이런 걸 다 주시고!”라면서 껄껄거리고 웃어야 하는데 말이다. 수녀님이 인간의 모습을 가장한 천사처럼 느껴져서 인지도 모른다.
오늘은 많은 귀인들 덕에 로또 맞은 날이다. 현진건의 소설 『운수좋은 날』이 생각난다. 소설과 다른 점이라면 우리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라는 것! 많은 분들의 호의를 받은 만큼 반드시 베풀며 살아가리라.
※ 자전거 여행자를 위한 실전 보너스 팁 <음식편> -혼자 여행을 한다면 어설프게 밥을 해먹는 것보다 사 먹는 편이 비용이 더 싸다. -반찬통을 준비해 다니면서 식당에서 먹고 남은 반찬을 담아라. 아마 그 모습을 본 주인은 십중팔구 남은 반찬이 아닌 새로운 반찬을 담아주려고 할 것이다. -주유소와 관공서는 사막의 오아시스이다. 그곳에서 물통도 채우고 화장실도 이용하자. | ||
- 내 생애 한 번은 자전거 전국일주 김효찬 글,사진 | 프라하
이 책은 뻔한 한강 자전거 코스를 달리는 게 지겨워서 좀 더 먼 곳으로의 여행을 계획하려는 사람들, 새로운 일에 뛰어들기 전에 특별한 여행으로 마음을 다잡고 싶은 사람들, 온 몸으로 전국의 바람을 맞으며 달리고 싶은 사람들, 삶에 대한 열정을 되찾기 위해 스스로에게 이벤트를 선물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자전거 여행 이야기이자 안내서이다. 저자의 30일 자전거 전국일주 에피소드를 통해 자전거 여행의 희로애락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12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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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효찬
다대기
2012.10.02
클라이스테네스
2012.09.30
이런 만남이 여행하는 재미를 더욱더 북돋아주는거같네요
sc4you
2012.09.17
전 성당들어가기도 좀 어렵던데 거기 잔디밭에 텐트치려고 하셨다니 ㅋㅋ
좋으신 수녀님 만나셨네요.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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