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면 안 되는 이야기인데 보면서 웃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 -『실종일기』
요즘은 노숙자 자립을 위한 <빅이슈>등의 잡지도 나오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노숙자란 아직 무섭고 낯설고 두려운 존재다. 하물며 알코올 중독자는 어떨까.『실종일기』의 작가인 만화가 아즈마 히데오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경험했다. 그 경험을 만화『실종일기』로 펴냈는데…
글ㆍ사진 김현진(칼럼니스트)
2012.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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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노숙자 자립을 위한 <빅이슈>등의 잡지도 나오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노숙자란 아직 무섭고 낯설고 두려운 존재다. 하물며 알코올 중독자는 어떨까. 『실종일기』의 작가인 만화가 아즈마 히데오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경험했다. 그 경험을 만화 『실종일기』로 펴냈는데, 처절하거나 괴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이 사람 자기를 희화화하고 있잖아? 본인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는데?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냉정하게 그 경험을 바라보고 있다. 책 말미의 대담에서 ‘자신을 제 3자의 입장에 놓는 것이 개그의 기본’이라고 말하는 그의 어투에서 만화의 세계에서 잔뼈 굵은 작가의 노련함을 엿볼 수 있다.

주제는 심각하지만, 둥글둥글한 그림체로 유쾌하게, 그러면서 담담하게 자신의 노숙자 경험과 알코올 중독 병원 입원기를 그려냈다. 웃으면 안 되는 이야기인데 보면서 웃을 수밖에 없다. 만화고 뭐고 때려치고 목을 매어 죽겠다는 각오로 산에 들어갔다가 다른 노숙자의 음식을 훔쳐 먹기도 하고, 버려진 술병들에서 한 방울씩 술을 모아 ‘아즈마 칵테일’이라며 마시는 그의 모습을 보고 웃지 않으면 이상하다. 아마 알코올 의존증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 처절하게 웃고 말 것이다. 특히 알코올 중독 병동에서 동료 환자나 간호장 등 여러 사람을 인물의 특징을 잡아 기록한 것이 웃기면서도 처절하다. 요즘 사람들이 하는 말, ‘웃프다’ 라는 말이 이 책에 적합한 말인지도 모른다. 웃기면서 슬픈데, 한국에서는 이런 책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한국은 알코올 중독자가 많기로 전세계 2위를 달리고 있지만 알코올 중독에 대한 일반의 인식도 아직 낮고, 책을 찾아보기도 힘들다. 사실은 알코올 의존증 뿐 아니라 다른 정신장해 역시 모두 그렇다. 정신과 한번 드나들면 정신병자, 막장,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는 면에서 한국 사람들이 정신과를 꺼려하는 것은 결혼 안 젊은 아가씨가 간단한 검진 때문에라도 산부인과 가기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분위기와 비슷하다.

특히 알코올 의존증은 정신장해지만 그냥 ‘인간쓰레기’ 정도로 취급받는 경우가 많다. 사실 우리들 중에 인간쓰레기가 많긴 하다. 왜 우리라고 말하냐 하면, 나 역시 알코올 의존증 치료를 꽤 오랫동안 받고 있기 때문이다. 증상은 호전되었다가 악화되었다가 왔다갔다 한다. 이 병의 완치율은 20%정도인데, 아즈마 히데오의 말로는 그나마 50대가 되면 다 죽어 버린다고 한다. 알코올 의존증 전문 치료 병동은 직계 가족 2인 이상의 동의가 있을 경우 강제 입원이 가능하다.

89년 만화고 가족이고 다 내팽개치고 이 책 제목처럼 실종되어 노숙자 생활을 하다가 배관공으로 일하면서도 그는 일하는 가스 회사의 만화 모집에 만화를 그려 보내기도 하지만, 결국 집으로 돌려보내진다. 이후에도 결국 98년에 연속음주, 즉 자는 시간 이외에는 모두 술을 마시는 지경까지 처한 그는 환각을 보는 정도의 고통을 겪다가 강제 입원 조치를 당한다. 처음에는 창살이 달린 방에서 사지를 구속당하며 길고 고통스러운 알코올 의존증 치료를 위해 병동에 입소한다. 아즈마 히데오는 결국 AA(익명의 알콜중독자들 모임, 영화에서 흔히 둥글게 모여앉아 자신의 중독 증상을 고백하던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한국에도 지부가 있다)와 연이 닿아 구제받았지만, 같이 치료받던 사람들이 금주하다가 무너지는 광경을 몇 번이나 본다. 알코올 중독자는 ‘문제 음주자’들과 다르다. 문제 음주자란 술을 마시는 습관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로써, 이들은 술 마시는 습관을 교정할 경우 문제 없이 음주 생활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알코올 중독자들은 다르다. 이들에게는 즐기면서 마시면 되잖아, 본인이 조절하면 되잖아, 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인플루엔자에 걸렸을 때 세균을 스스로 조절하면 되잖아, 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병인 것이다. 나 역시 작년에 8개월 정도 완전 금주에 성공했지만 결국 올해 들어 또 무너지고, 4월에는 총선 개표 결과를 보고 또 무너지고 말았다. 그래도 또 병원에 간다. 이게 나아질 수 있을까, 스스로도 계속 의심하면서 나아지려고 애쓴다. 자신이나 가까운 사람이 알코올 때문에 고통을 겪는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실종일기』가 남 이야기 같지 않다면 AA나 전문 병원을 찾아서 치료받기를 권하고 싶다.

지난 4년 간 치료를 받고 있고, 나아질 때도 있고 안 나아질 때도 있지만, 적어도 병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던 것만은 확고한 발전이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사고를 많이 쳤고, 본인과 주변 사람들을 괴롭혔지만 이게 병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인격의 문제(물론 그것도 무시할 수는 없다)라고만 생각했다면 아마 지금쯤 나는 어느 차가운 길바닥에 죽어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본인의 알코올 문제나, 주변 사람들의 알코올 문제로 고통받아 본 사람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 남들 보기에는 멀쩡한 알코올 의존증 환자로 몇 년이나 지냈던 유명 칼럼니스트 『술, 전쟁 같은 사랑의 기록』(캐럴라인 냅)과 같이 읽으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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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일기 아즈마 히데오 글,그림 | 세미콜론

1969년에 데뷔한 후 SF, 개그, 에로틱한 미소녀물 등 다양한 장르의 만화를 발표할 때마다 각 장르 마니아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얻으며 활동하던 만화가 아즈마 히데오는 어느 날 모든 스케줄을 내팽개치고 사라진다. 그리고 약 10년이 흐른 날에 자살 기도, 반복된 가출과 복귀, 노숙, 노동자 생활, 알코올 중독 치료 등의 솔직한 이야기를 고스란히 종이 위에 담아내어 그 누구보다 화려하게 슬럼프를 극복하였다. 바로 이 『실종 일기』로…

 




#실종일기 #아즈마 히데오 #알코올 중독 #알코올 의존증
3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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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quarid

2013.02.18

꼭 읽어보고 싶네요. 노숙자이자 알콜중독자의 자기희화화라,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느낌도 좀 나는데요. 이런 작품 참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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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h0122

2012.05.02

중독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멀리 있는 것이 아니더군요.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허무함이 중독의 큰 원인이라 들었습니다.

순간 대학교 새내기들이 가장 이 책 혹은 이 칼럼을 읽어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새로운 형태로 처음 인간관계를 맺기 시작하고, 또 술을 접하기 시작하는 그 순간에 '알코올 의존증'이 쉽게 다가올 수 있을 것 같으니 말이죠.

여러모로 '의식의 전환'이 필요한 부분인 점은 확실한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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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sooyoon

2012.05.01

실종일기? 노숙자에 대한 경험을 만화로 펴낸 책이라고 하는데..글쎄요~ 소재거리나 내용 등 신선하고 재미(?)있을것같긴한데요...너무 무리수 아닌가요? 노숙자에 대한 진정한 경험이라고 할수 있을까요? 노숙자를 경험하다니요? 노숙자를 경험하고 책을 펴내게 된것인지, 아니면 책을 펴내기위해 노숙자를 경험한 것인지..너무 가볍게 바라보는건 아닌지..................약간 걱정아닌 걱정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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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칼럼니스트)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오래된 캐치프레이즈를 증명이라도 하듯 '88만 원 세대'이자 비주류인 자신의 계급과 사회구조적 모순과의 관계를 '특유의 삐딱한 건강함'으로 맛깔스럽게 풀어냈다 평가받으며 이십 대에서 칠십 대까지 폭넓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에세이스트. 『네 멋대로 해라』, 『뜨겁게 안녕』,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 『그래도 언니는 간다』, 『불량 소녀 백서』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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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삶이 구차하고 남루할수록 농담은 힘이 세다고 믿는다. 줄곧 글 쓰는 삶을 살아왔고 계속 쓸 것이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오래된 캐치프레이즈를 증명이라도 하듯 '88만 원 세대'이자 비주류인 자신의 계급과 사회구조적 모순과의 관계를 '특유의 삐딱한 건강함'으로 맛깔스럽게 풀어냈다 평가받으며 이십 대에서 칠십 대까지 폭넓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에세이스트. 스스로를 도시빈민이라 부르는 그녀는 대구 출생에 목회자인 부친의 모든 희망에 어긋나게 성장하였고 기어코 말 안 듣다가 고등학교를 두 달 만에 퇴학에 준하는 자퇴를 감행하였다. 냉소와 분노와 우울을 블랙 유머로 승화시키는 연금술을 몸 속에 장착한 그녀가 숨 막히는 고등학교를 용감히 박차고 나온 '불량소녀'로 세상에 알려진 지 이제 10년이 넘어간다. 그녀는 단편영화 [셧 앤 시 Shut And See](97년) 감독, 웹진 [네가넷](97년)의 최연소편집장,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최연소 합격 등의 화려한 타이틀을 가졌다. 영화 시나리오와 서사 창작을 공부했다. 그래서 한 시사주간지는 성공한 10대라는 제목으로 그를 표지인물로 내세웠다. 그가 고등학교 1학년 자퇴생이라는 사실이 언론의 호기심을 자극했는지, 텔레비전의 관심도 남달랐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명확하게 직시하면서 자기만의 삶을 꾸준히 살아왔다. 학교를 7년 만에 졸업, 간신히 영화 [언니가 간다]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으나 전국 18만 8000명으로 종결 후 좌절하였다. 먹고 살기위 해 아르바이트와 직장생활 등 애써봤으나 여전히 도시빈민 겸 철거민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통합과정 전문사에 진학했으나, 등록금 대출 이자를 갚지 못해 달마다 '신불자'가 될 위기에 처한 상태로 휴학 중인 그녀는 이러한 상황에도 굴하지 않는다. MB 정권과 격렬히 불화했다. 기륭전자를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싸움터에서 그 어떤 학교에서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웠다 한다. '최상의 연대는 입금이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앞으로도 구체적 연대를 꿈꾸는 그녀는 강자에겐 얼음처럼 차갑게, 약자에겐 불처럼 뜨겁게 반응하며 거창하게 무슨 무슨 '주의자'로 불리기보다는 항상 지는 편에 붙는 '내 감정주의자'로 살아가겠노라고 강단 있게 말한다. 그녀를 주목받게 한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1999년)는 십대에 쓴 글들을 엮은 것으로, 글에서 밝히는 바와 같이 소위 일류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이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은 책과는 사뭇 다르다. 이 책은 공교육 공간에서 부대끼는 아이들 중 한 사람으로 아프게 혹은 당차게 살아낸 저자의 경험이 그대로 담겨 있다. 교복을 입고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무심코 "참 좋은 때야" 라고 말하지만, 그들의 현실은 좋은 시절만이 아닌, 제도와 체벌 혹은 또래 아이들에게 치이는 생활로 인해 아파하고 견디어내야 하는 따갑고 아픈 시절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남대문 시장의 미싱을 돌리는 외국인 노동자와 여인숙에서 일하는 여성을 자연스레 볼 수 있던 생활환경으로 일찍 '진실'에 노출된 아이가 십대 초반부터 사회문제와 '나'에 관하여 고민했던 생각을 담은 글들은 문화비평적인 성격을 띄기도 한다. 결국 자퇴를 선택했던 자신과 학교에 남은 아이들, 때로는 분노에 찬 음성으로, 때로는 깊은 슬픔을 간직한 눈으로 바라본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자신과의 화해를 시도하고 있다.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 김현진의 B급 연애 탈출기』는 그런 그녀가 A급 연애는 못 하고 늘 B급 연애만 하는, 늘 지는 연애의 홍수에서 허우적대는 이십 대 여성 동지들의 영혼에 바치는 위로와 동감의 노래이다. 유기견 네 마리를 데려다 기르는 그녀의 성품에서 잘 드러나듯 버림받고 약하고, 작고, 아픈 것들에 대한 애정과 연대 의식은 이 책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청소년 계간지 [풋] 편집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매거진T], [씨네21], [독서평설], [시사IN] 이외에도 다수의 일간지와 월간지 등에 에세이를 기고했다. 『뜨겁게 안녕』, 『내가 죽고 싶다고 하자 삶이 농담을 시작했다』, 『육체탐구생활』, 『우리는 예쁨 받으려고 태어난 게 아니다』 등의 에세이와, 장편소설 『XX 같지만, 이건 사랑 이야기』, 김나리 작가와 공동 집필한 『말해봐 나한테 왜 그랬어』, 『녹즙 배달원 강정민』 그 외 저서로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 『불량소녀백서』, 『질투하라 행동하라』, 『당신의 스무 살을 사랑하라』, 『그래도 언니는 간다』, 『동물애정생활』, 『새벽의 방문자들』(공저) 등이 있다. 독자에게 직접 글을 보내는 에세이 메일링 서비스 『월간 살려줘요 김현진』을 발행 중이다.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며 게임 시나리오, 영화 시나리오, 회사 홍보자료 등등 살기 위해 각종 글을 썼고 한때는 녹즙 배달원으로 일하다 업계의 생리를 약간 터득하고 알코올의존증을 거의 이겨냈다. 다음 20년도 계속, 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