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잠시만 조용히 해주세요
2011.12.05
| |||||
‘아, 시끄러워.’
하루에도 문득문득 저런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세상은 참 시끄럽다. 이런 저런 일들로 늘 어지럽고 복잡한 세상이라지만 그런 문제들 다 내려놓고 물리적으로만 따져봐도 이 세상은 너무 시끄럽다. 요즘에는 거리를 나가봐도,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싶어도 한적하고 조용한 곳을 쉽게 찾을 수가 없다. 그저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에 비집고 들어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정신 없이 시간을 흘려 보내는 경우가 태반인 듯 하다. 누군지도 모르는 이들의 대화를 본의 아니게 들어야 하고, 마주 앉은 일행에게 내 얘기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그래서 그 시끄러운 소음에 내 목소리까지 더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하루는 아무 한 일도 없이 사람을 지치게 만들기도 한다.
TV, 자동차, 컴퓨터, 그리고 사람들까지. 소리를 듣는 이들보다 소리를 내는 것들이 더 많은 세상이라 때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순간의 정적이 더 특별하고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 『조용한 그림책』을 처음 접했을 때 어느 책을 읽을 때보다 신선하고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은은한 색채의 표지에는 책을 읽다 스르륵 잠든 듯한 토끼가 얌전히 엎드려 있는데, 그 모습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옅은 미소를 지으며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기게 된다.
|
이 책은 갑자기 주변이 고요해지는 순간, 숨바꼭질 할 때 술래를 피해 숨어있는 시간, 하늘에서 소리 없이 첫 눈이 내리는 순간 등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조용한 순간들과 그 특별함에 대해 잔잔하게 그리고 있다. 너무 무서워서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는 순간, 난처해서 할 말을 잃은 순간, 또 가장 친한 친구와 함께 있기에 아무 말도 필요 없는 순간까지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순간들을 재치 있게 포착해냈다. 글작가 데보라 언더우드의 섬세한 감각은 그림작가 레나타 리우스카의 따뜻하면서도 간결한 그림 속에서 은은하게 빛을 발한다.
이 책에서는 수많은 조용한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막상 우리 생활에서 그 조용한 순간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주변에서는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와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목소리, 복도를 지나는 이의 발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만날 수 없는 그 조용한 순간들과 우연히 만나게 되면, 굳이 그 조용함을 깨뜨리려고 하거나 무심히 넘겨 버리지 말고 가만히 그 고요함을 느껴보자고 말하고 싶다. 외부의 자극과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여러 일들을 모두 멈추고 가만히 자신의 마음에, 그 순간의 감정에 집중해 보면 어떨까.
|
때로는 입을 여는 것보다 주변의 소리에 먼저 귀를 기울여 보자. 내가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상처받고 지친 우리 자신의 마음이 어떤 소리를 내는지 가만히 들어보자. 그러면 세상이 조금은 더 조용하고 깊어지지 않을까. 살얼음판 같이 얇고 위태로운 세상 위에서 매일 종종 걸음을 걷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 그림책을 권한다.

6개의 댓글
추천 기사
추천 상품
필자
채널예스
채널예스는 예스24에서 운영하는 콘텐츠 플랫폼입니다. 책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 보세요.


![[큐레이션] 독주회 맨 앞줄에 앉은 기분을 선사하는 시](https://image.yes24.com/images/chyes24/article/cover/2025/09/20250910-a343a9af.png)
![[큐레이션] 사랑을 들려주는 동화](https://image.yes24.com/images/chyes24/article/cover/2025/07/20250708-0e176043.jpg)
![[리뷰] 우뚝 선 존재로서](https://image.yes24.com/images/chyes24/article/cover/2025/03/20250314-8f0cacf6.png)
![[Read with me] 김나영 “책을 통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요”](https://image.yes24.com/images/chyes24/article/cover/2025/01/20250109-f468d247.jpg)
![[큐레이션] 부모가 먼저 감동할지도 몰라](https://image.yes24.com/images/chyes24/article/cover/2024/11/20241129-abd83d47.jpg)
tvfxqlove74
2013.05.31
나이기를
2012.03.14
prognose
2012.02.06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