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자. 반대의 경우도 역시 존재한다. 평범하고 별다른 문제가 없는 가정에서 성장한 사람이 끔찍한 범죄자가 되거나 성격파탄을 보이는 경우도 많이 있다. ‘인간이란 생활에 어려움이 없다고 건전하게 자라는 단순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 반대의 사례가 세상에는 수없이 많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마냥 건전해 보이는 인물에게서 낙차가 발생했을 때 외려 무서움이 더 커지겠죠.’(사사키 죠) 어린 시절이 불행했어도, 그것을 이겨내고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많이 있다. <위드아웃 어 트레이스>나 <콜드 케이스> 같은 범죄 드라마를 보면, 똑같은 성장과정을 겪은 형사의 동생이나 형은 범죄자가 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어떻게 된 것일까? 동일한 환경을 거치면서, 무엇이 작용하여 그들이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 것일까? 왜 누구는 현실의 고통에 굴복하여 타락하고, 누구는 현실을 견뎌내고 다른 길을 간 것일까. 고통은 물론 인간을 힘들게 하고, 나락으로 빠트리게 한다. 하지만 동시에 고통은, 인간을 성장시키는 가장 좋은 경험이다. 불이 뜨겁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동물들은, 불의 고통을 작게라도 느낀 후에는 미리 피할 수 있게 된다. 고통을 통해서, 인간은 더욱 절절하게 배우고 각성한다. 환경은 인간을 변화시키지만, 결정적으로 그 사람을 결정짓는 것은 결국 그 자신의 선택이다. 고통에 침윤되어 타인에게 고통을 전가할 것인가, 고통을 견뎌내고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는 길을 갈 것인가.
사사키 죠의 연작 단편집 『폐허에 바라다』의 표제작 ‘폐허에 바라다’에는 한때 탄광으로 번영했다가 몰락한 도시가 나온다. 그 남자는 17살 때 중년의 매춘부를 죽인 죄로 감옥에 갔다가, 나오자마자 다시 똑같은 범죄를 저지른다. 첫 사건을 맡았던 형사 센도는 범인에 대한 탐문수사를 하면서 놀라게 된다. 범인의 성장 환경은, 센도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극한 상황이었다. 탄광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마을은 극단적으로 황량해진다. 엄마가 몸을 팔았지만 먹을 것도 제대로 구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결국 열두 살 때, 어머니는 그와 여동생을 댐 아래로 떨어트려 죽이려 했다. 사사키 죠는 ‘그 황량한 풍경 속에서 살아간 사람, 괴로워한 사람, 범죄자가 된 청년을 그리자는 구상’으로 ‘폐허에 바라다’를 썼다고 말했다. 그는 분명 흉악범이다. 그는 자신이 왜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피할 수 없었음, 도망칠 수 없었음도 알고 있다. ‘내 인생은 한참 전에 종지부를 찍었어야 했다고요. 13년 전에도 늦었어요. 열일곱도 너무 많아요. 전 훨씬 빨리 사라졌어야 할 존재였어요.’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극복할 수 없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끔찍한 트라우마를 겪고도 올곧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은, 웬만큼 강인하지 않고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나오키상을 수상한 『폐허에 바라다』는 단지 그런 ‘어쩔 수 없음’ 만을 토로하는 소설은 아니다. 『폐허에 바라다』의 주인공인 센도 형사는 현재 휴직?이다. 수사 도중에 겪은 일 때문에 정신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요양 겸해서 휴직을 하고 있는 것이다. 『폐허에 바라다』는 그런 센도가, 아는 사람들의 요청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건들에 개입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형사인 것은 맞지만, 실제로는 수사권이 없는 존재. 어떤 의미에서는 탐정의 역할인 것이다. 범인을 알아도 체포할 수는 없고, 현지 경찰과 형사들에게 끊임없이 간섭을 받으면서 움직여야만 하는 상황. 그러면서도 센도는 억울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때로는 상처도 입으면서 사건을 해결해간다. 그 과정을 통해서, 센도의 고통과 상처 역시 조금씩 아물어져 간다. 『폐허에 바라다』는 센도의 관점으로 본다면, 일종의 치유 소설인 셈이다. 그 고통스러운 과거, 그 끔찍하고 잔인한 세상과 인간을 직시하면서도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가는 ‘성장’ 소설인 것이다.
사사키 죠는 강인한 작가다. 1950년생인 사사키 죠는 광고회사, 자동차 회사 등에서 다양한 경험을 겪은 후에 1979년 『철기병, 날았다』로 데뷔하고 ‘제2차 세계대전 3부작’으로 불리는 『베를린 긴급 지령』 『에트로후발 긴급전』 『스톡홀름의 밀사』, 역사소설인 『무양전』 등 남성적이고 시야가 넓은 다양한 작품 활동을 했다. 근래에는 시골 마을의 주재경관을 주인공으로 한 ‘가와쿠보 시리즈’의 『제복 수사』 『폭설권』 등과 3대로 이어지는 경찰 일가의 이야기를 시대상과 함께 묵직하게 그려낸 『경관의 피』 등 경찰 소설에 매진하고 있다. 『제 3의 기회』 등의 요코야마 히데오가 그려내는 경찰이 주로 조직 내의 인간, 조직과 인간의 대립에서 발생하는 파노라마라면 사사키 죠는 인간 그 자체를 그려낸다.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풍경을 그려낸다. ‘마츠모토 세이초가 ‘범죄의 동기’에 집착했다면 사사키 조는 ‘사건의 배경’에 주목한다. 그 점이 새롭다.‘(이츠키 히로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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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에 바라다』의 센도는 어쩔 수 없이, 수사권도 없으면서 사건을 캐기 시작한다. 사라진 딸이 정말로 죽었는지 알고 싶어 하는 아버지의 슬픔이 있고, 동생을 지키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묵비권을 지키는 어부의 각오도 있고, 권위적인 아버지의 그림자에 17년간 눌려온 남자의 뒤틀린 분노도 있다. 센도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서, 다시 상처와 맞닥뜨린다. ‘오지가 좋아하는 마을’에서는 개발을 위해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이 대거 이주하게 되면서 일본인들과 트러블이 생기는 마을이 나온다.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은 자신들이 호주에서 살던 방식을 고수한다. 일본인들은, 그들이 일본의 관습에 적응하기를 원한다. 그러면서 마찰이 생기고, 미움이 생기고, 어느 순간 폭발해버린다. 센도는 상황을 알게 되고, 사건도 해결하지만 순간 아득해지는 상황을 만나게 된다. 사사키 조의 말처럼 ‘진상을 폭로함으로써 주인공은 상처를 입고 타격을 받’는 것이다. 그 상황들을 겪으면서, 센도는 그런 난처한 아니 치욕적인 상황을 이겨내는 방법을 깨닫는다.
그는 사람을 믿고 싶어한다. 설마 그들의 마음 속에 뭔가 이용하려는, 뭔가 속이고 자신들의 이득을 취하려는 마음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그게 사실이라 해도, 그걸 알아차리는 것은 오히려 수사관에게 상처를 준다……그래 솔직해지자. 센도는 눈보라에 마을이 황량해지는 광경을 자기 눈으로 지켜보고 싶다는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
눈을 돌리지 않고 지켜보면서도, 그들의 의도를 헤아리지 않는 것. 의도가 어떻건, 센도는 진실을 찾아내면 된다. 정당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결코 쉽지는 않다. ‘센도는 순간 자기 어깨를 무겁게 짓눌르는 무게를 인식했다. 거인이 자신의 어깨에 양손을 얹기라도 한 양. 어때, 내 무게를 감당할 수 있겠어? 그렇게 묻기라도 하듯.’ 그런 무게, 고통은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맞닥뜨리게 된다. 결코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떨궈낼 수는 없다. 지켜보면서, 스스로를 단련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회복하는 데 제일 필요했던 게 뭐야, 라는 질문에 센도는 답한다. 아무래도 시간이었겠죠. 기억을 휘발시켜야만 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죠. 휴직을 않고 계속 일을 했더라면 기억은 머릿속에 눌어붙은 채로 제 의식 속에 요동을 쳤을 거예요. 그리고 다사다난한 사건들을, 무기력한 탐정의 입장에서 수사를 끝마친 후 이렇게 말한다.
의무를 다하는 순간, 나는 옛날 형사의 얼굴을 되찾게 되리라. 어떤 상황에서 누가 보든, 내 얼굴은 형사 그 자체로 돌아와 있으리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지 시간만이 아니다. 오랜 시간을, 자신의 의무를 다하면서 견디어낼 때, 비로소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어렵지만, 가야만 하는 길인 것이다.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prognose
2011.12.21
앙ㅋ
2011.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