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품질을 높이기 위한 세 가지 장치
2010.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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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그렇게 아파트 운운하는 그녀가 바로 나다. 집, 그래 나에겐 그런 것이다. 부의 상징, 남들에게 보여지는 행복의 척도, 성공의 비유물...... 뭐 이런 것들. 이런 나에게 감히 ‘속물’이라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이가 과연 현재 이 나라에 있을까? 이 책 『조용헌의 백가기행 百家紀行』저자가 말하듯이 지금의 집은 그 사람의 신분이 되었다. 주(住)야말로 의(衣)와 식(食)을 능가하는 위치로 등극했다. 이 말에 ‘난 아니오.’라고 자신있게 말할 이 있는가?
집을 꿈꾸며 집을 얻었지만 돈과 행복을 잃은 사람들. 속칭 ‘하우스 푸어’가 시사의 쟁점이 되는 시대, 현대인들은 집의 노예가 되었고 집이 주는 행복을 잃었다. 동양학자 조용헌이 집을 사유의 소재로 생각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스물 한 채의 집을 방문하며 그 안에서 배우고, 둘러보고, 토론한다. ‘대체 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해.
‘돈으로서의 집, 신분으로서의 집’이라는 고정관념을 깨준 장성 축령산 자락의 도공 김형규씨가 20일 동안 혼자힘으로 지은 집부터 그야말로 한국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명가名家 경주 최 부잣집, 현대의 가장 보편적 건축양식인 아파트에서 자신만의 가치있는 공간을 꾸미고 살고 있는 부산 조효선씨의 아파트 다실까지 저마다의 의미를 지닌 조용헌이 찾은 집들. 그 안에서 저자는 가내구원家內救援이란 답을 찾는다.
가내구원家內救援. 이는 결국 구원의 길이 바로 ‘집안’이 있었다는 깨달음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집에서 집의 진정한 존재 이유라는 가내구원家內救援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조용헌의 백가기행 百家紀行』은 이에 대해 이런 답안을 남긴다. “바쁘면 깊이 있는 삶을 살 수 없다. 삶이 얕아지는 것이다. 얕아진다는 것은 결국 품질이 떨어지는 삶을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렇다면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 필요한 장치가 있는가? 나는 세 가지를 꼽는다. 집 안에 세 가지를 갖추고 싶다. 첫째는 다실(茶室)이고, 둘째는 중정(中庭)이요, 셋째는 구들장이다.”
고명 선생은 “차를 마시면 의식주가 바뀌고, 의식주가 바뀌면 생각이 바뀌니, 차는 풍류가 아닌 혁명”이라 말했다. 정사각형의 마당은 곧 중정이다. 집 안의 정원 중정. 책에 등장하는 조병수씨의 땅집은 평지 밑이라 방이 어둡다. 한 사람 겨우 누울 정도로 좁다. 대신 마당이 넓고 환하다. 어두운 곳에서 보는 빛! 이 또한 가내구원이다. “휴휴산방의 명품은 구들장”이라 말하는 저자의 집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아궁이에 불을 피워 뜨거워지려면 10시간이나 기다려야 하는데, 여기에 등짝을 지지면 세상사 부러운 게 없어진다고 한다. “공간이 사람을 치유한다”는 이 새삼스런 사실은 분명 가내구원의 또다른 모습일 것이다.
앞의 일화에서도 말했듯이 나에게, 혹은 우리들이 집을 갖고자 하는 이유가 왜곡되었던건 “나는 누구인가?”라는 영영 풀리지 않을 근원적인 질문에 억지맞춤으로 답을 구하기 위해 넓고 비싼 집이란 엄한 곳에서 사회적 권력을 증명하고자 했던 어리석음에서 기인했던 것이리라. 내 집의 다실(茶室)과 중정(中庭), 그리고 구들장에서 얻어야 했던 위로와 휴식을 무지의 소산으로 말미암아 바깥에서 얻으려 하며 집을 허울뿐인 허수아비로 남겨두었으니 날이갈수록 마음은 헛헛해지고 행복은 자꾸만 멀어져만 갔던 것은 아닐까? 어둑한 저녁 10시. 지금 30cm쯤 빼꼼히 열린 내 방문 밖 거실에서 부모님의 웃음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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