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남자의 삶과 닮은 1번 국도 - 『대한민국 국도1번 걷기여행』신미식, 이민
한때는 목포와 신의주까지 이어지는 대한민국 심장 역할을 하는 최초의 도로였으나 지금은 퇴락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국도1번, 그 길을 다시 걷고 싶었다.
201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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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목포와 신의주까지 이어지는 대한민국 심장 역할을 하는 최초의 도로였으나 지금은 퇴락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국도1번, 그 길을 다시 걷고 싶었다. 국도1번은 대한민국 남자의 삶과 닮지 않았는가. 지난 세월 무모하게 목적 없이 살아온, 아니 내 삶을 살아온 것이 아니라 내 삶에 끌려온 나로부터 나를 구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국도1번 걷기여행』출간 기념 사진전에 마지막 날. 신미식, 이민 두 작가가 독자들을 초대했다. 앞서 온라인으로 베스트컷을 뽑는 투표에 참가했던 독자들 중 추첨을 통해 사진전에 전시된 작품을 증정하는 시간도 있었다. 신미식 작가는 증정 예고된 작품 외에도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 이 날 참석한 독자들에게 귀중한 선물을 안겼다.
이날 강연회에는 다과가 있었고, 따뜻한 커피가 있었다. 사진전의 마지막 날 답게, 케익과 샴페인도 함께 했다. ‘뜰’ 출판사 뭐뭐뭐 대표는 “마늘 심는 할머니 모습을 비롯하여 여행길에서 마주치는 풍경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과 사진으로 읽고 보며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작을 수 있으나, 이 따뜻한 이야기를 통해 삶의 자세를 돌아볼 수 있게 해준 것은 그 두 작가가 각각 보여준 ‘여행길’ 자체인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회자가 『대한민국 국도1번 걷기여행』출간의 감회와 이번 여행의 의미를 물었다. 이민 작가는“쑥스럽고 떨리고 어려운 자리”라고 말한다.
“기회만 있다면 언제든 떠나고 싶은 것이 여행입니다. 40대 후반의 남성으로서, 그동안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회의가 드는 시기였습니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어느 정도 해소된 것 같다는 생각을 뒤늦게 합니다. 신미식 작가가 동기부여를 해주었던 점, 이 기회를 빌어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곧이어 신미식 작가가 답변을 이어 받았다.
“우리나라가 통일이 안 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처음 해보았습니다(웃음). 그렇지 않다면, 신의주까지 걸어야 했을지도 모르죠(청중 웃음). 450km가 걸을 수 있는 한계라고 생각했습니다. 통일이 되길 간절히 바라지만 말입니다. 여러 독자들에게 ‘왜 한국은 찍지 않고 외국만 찍고 다니는 가’하는 질문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여행은 많은 걸 얻으려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행을 다니고 오면 그 후에 자연히 ‘무언가’가 체득되어지는 것이지요. 여행은, 현지에서의 삶을 즐기는 것입니다. 덥고 춥고 짜증나는 데 언제 계획하고 기획하겠습니까(청중 웃음). 그러한 과정과 생각이 국내 여행이기 때문에 저에게는 특별했습니다.”
걸어야만 발견할 수 있는 세상의 지혜
이어진 낭독에서 신미식 작가는 “최근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낭독한 경험이 있다.”며 여유롭게 준비한 대목을 읽어 내려갔다.
국도여행이 어느 정도 가닥을 잡아갑니다. 전라북도를 지나 충청도에 진입했습니다. 전라남도에서 전라북도 그리고 충청남도에 이르면서 도의 경계를 넘는 기분은 말할 수 없이 흥분됩니다. 자동차를 타고 지날 때는 잘 모르고 지나쳤던 이 땅의 소중함을 알아가는 것은 어쩌면 이번 여행이 주는 가장 큰 행복일 것입니다.
이제 여행의 중간 지점을 돌아 목적지인 서울에 도착하기까지 5~6일 정도가 소요될 것 같습니다. 하루 20킬로미터 정도를 꾸준히 걷게 된다면 아마 이번 주 일요일이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날씨가 매섭긴 하나 이번 주 목요일부터 풀린다고 하니 좀 더 편안한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걸으면서 드는 생각이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였습니다. 그건 아마 남이 시키지 않은 일을 스스로 할 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누군가 시키지 않은 일을 하는 지금이 어쩌면 가장 행복한 순간이고 저는 지금 그 순간을 누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비록 육체적인 고통은 따른다 해도 나에게 주어진 지금 이 현실은 분명 축복입니다. 스스로 고통을 선택하는 사람들에겐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저 또한 저만의 이유가 존재하는 것이고요. 내가 걷는 한 걸음 한 걸음 속에는 분명 세상이 주지 못하는 지혜가 담겨 있을 겁니다. 그 지혜들이 모아져 내 자신을 더욱 살 찌우겠지요. 이번 여행이 끝나면 저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될 것입니다. 아마 내가 꾸는 꿈은 죽을 때까지 계속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것이 살아가는 이유일 테니까요. (p. 245)
이민 작가의 낭독이 이어졌다.
누구나 여행을 꿈꾼다. 그러나 여행을 떠난다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다. 직장인은 회사 때문에, 주부는 아이들 때문에, 농부는 가축 때문에, 그 지독한 생활, 현실 때문에. 그래서 여행을 밥 먹듯 떠나는 사람들을 대할 땐 한없이 부럽다. 여행가들은 독신이 많다. 특히 해외여행을 자유자재로 다니는 사람들이 그렇다. 신미식 작가처럼 원래 독신이었거나, 여행 때문에 독신으로 돌아갔거나, 독신이 다 보니 여행을 떠날 자유를 갖게 되었거나. 그들에겐 말뚝이 없다. 말뚝이 있다 하더라도 묶인 끈이 없다. 현실은 말뚝이고 생활은 끈이다. 여행도 현실이지만 몽환적 현실이다. 여행자들의 끈과 말뚝도 몽환적이다. 소의 말뚝은 쟁기가 되기도 한다. 여행자의 쟁기는 여행자가 결국은 돌아와야 할 생활이다. 돌아오지 않는 여행자는 없으며, 돌아오지 않는 여행자는 여행자가 아니라 떠돌이거나 수행자다. 그들에겐 말뚝은 없고 멍에와 쟁기가 있기도 하다. (p. 181)
박수와 함께 낭독이 끝나고 독자와 작가의 요청으로 준비한 순서보다 빠르게 작가와의 대화가 시작됐다. 참석한 독자들은 흥미로운 질문을 준비했으며, 작가들의 답변 또한 위트와 재치를 겸비한 성실한 답변이 이어졌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최고의 순간과 최악의 순간을 뽑는다면, 언제인지요.
신미식 작가(이하 ‘신’): “최악의 순간은 여정을 시작하는 날이었고, 최고의 순간은 여정을 끝마치는 날이었습니다.”
이민 작가(이하 ‘이’):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반대였습니다. 목적지에 도달할 즈음 힘들었던 이유는 내 마음에서 커다란 변화가 있으리라 예상 했지만, 변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소득이 없었다는 것. 오늘날 졸업을 앞둔 대학생의 심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신: “다른 게 아니라, 원고를 써야한다는 부담이나 먹고 사는 문제 때문이 아니었을까요(웃음)”
두 분이 처음 만나게 된 경위가 궁금합니다.
신: “결혼 발표 같은 분위기네요(청중 웃음). 90년대 모나코에서 사진을 찍은 적이 있습니다. 자동차 사진이었죠. 당시 자동차 잡지가 있었는데, 그곳에 싣고자 하여 연락을 했습니다. 그 때 그 잡지에 편집팀장이 이민 작가였습니다. 15년 정도 됐네요.”
서로의 첫 인상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이: “저하고는 다르게 여유롭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서로 말을 놓지 않고 존칭하는 사이입니다. 오랜만에 만나서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뼈다귀 해장국을 먹습니다(청중 웃음). 15년 전과 변한 건 없죠.”
신: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건 낚시 이야기입니다. 저는 낚시 때문에 회사에서 잘리기도 했으쾴까요(웃음).”
국도 1번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또 다른 장르나 테마로 쓰실 의향이 있으신지요.
신: “저에게는 우리나라를 처음 여행 한다는 의미가 담긴 책이었습니다. 제가 자란 곳은 1번 국도가 지나가는 근방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어른들의 말이 이 길로 목포도 가고 부산도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내 땅을 돌아보게 됩니다. 뉴욕에 다녀왔는데, 뉴욕에서 부럽다는 블로그 글을 봤습니다. 저는 오히려 글쓴이가 부러웠습니다. 올 가을에는 배를 타고 강에서 단풍을 찍고 싶습니다. 가을 풍경. 색 다른 사진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저는 신 작가보다 채널이 적습니다. 여행 계획은 많이 세웁니다. 그러나 막상 떠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한강 여행을 진행중에 있습니다. 아름답다는 생각은 해왔지만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어차피 멀리 떠나지 못한다면 한강을 돌아보자는 생각입니다. 생활 속에서 도보여행을 한 것이지요. 몇 차례 더 시도해볼 예정입니다. 신작가가 배에 노를 저을 예정입니다(청중 웃음).”
‘미쳤다’는 말을 듣지 않는 못하는 재미없는 삶
여행 중간에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었는지, 그 마음은 어떻게 극복하였습니까.
신: “첫날 포기하고 싶었습니다(청중 웃음). 목포 시내 걷기 너무 어려웠습니다. 지쳤죠. 날은 더운데 계속 오르막이었습니다. 내가 왜 이걸 했을까. 생각했죠.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미리 떠벌려 놓은 게 있었기 때문에 끝까지 할 수 있었죠. 여러분에게도 추천 드리는 방법입니다.”
이: “하루에 20~30km는 육체적으로 힘들었습니다. 일기 조건도 좋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한 번 해보겠다. 다 걷고 나면 뭔가 얻을 것이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포기할 마음을 찾지 못하였던 거죠.”
신: “걷고 나서 ‘걷지 말아야겠다’ 는 생각을 했습니다(청중 웃음). 걷기를 위한 길이 아니기 때문에 이 땅을 사랑하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차가 다니는 길입니다. 산티아고 길 같은 도보를 위한 길이 아니기 때문에 차도 옆길이 오히려 좋았습니다. 그런 길들을 찾아보고 싶더군요.”
또 다른 국도를 여행할 생각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신: “아직은 없습니다. 본능적으로 다시 걷고 싶은 때가 오리라 믿습니다. 언젠가 강원도 한계령을 걷는 불쌍한 모습을 상상해보고는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하면서 사진과 글을 남깁니다. 두 분은 앞으로 어떤 사진과 글을 남기고 싶은지요.
이: “도보여행이 트렌드가 된 거 같습니다. 산업이 되기도 했습니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 동행인에 대한 이야기를 쓰게 될 거 같습니다. 사람에 대한 얘기를 쓸 것 같습니다.”
신: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찍고 싶은 것만 찍은 적이 많았지만 앞으로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찍고 쓰고 하는 일이 많아질 거 같습니다. 그 후에 자유롭게 목적이 없는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그게 제일 행복한 거 같습니다.”
신미식 작가님은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는 직업을 가지고 계신데, 스케줄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궁금합니다.
신: “스케줄을 관리할 만큼 스케줄이 많지 않습니다. 일반 직장인보다 바쁘지 않습니다. 최근 2달이 가장 많은 거 같습니다. 요즘은 강의 요청이 많이 옵니다. 강의를 하면 큰 프로젝터가 준비되는데, 사진을 그 화면으로 보는 매력이 있더군요. 짜여진 일이 많아서 내년에는 자유롭게 파리에 6개월 살아보는 게 꿈입니다. 여행자가 아닌 생활인이 되고 싶습니다. 여행은 여행자가 아닌 생활인으로 사는 게 꿈입니다. 예전에는 13년 정도 직장인 생활을 했었습니다. 직장 생활 중에 주말에 파리를 가고 싶었던 적이 있습니다. 통장에는 돈이 별로 없었습니다. 겨우 티켓을 살 정도의 금액이었죠. 민박집에서 하루자고 퐁피두센터에서 카푸치노를 마시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시간이 없다고들 합니다. 그렇다고 시간이 많으면 떠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살면서 ‘미쳤다’는 말을 듣지 않는 삶은 재미가 없습니다.”
1년이 지났습니다. 남은 게 있으신가요.
신: “물론 책이 남았습니다. 남았다기보다 책이 태어났다는 표현이 맞겠네요. 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에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죠.”
미혼이신데, 정착의 욕구는 없으신지요.
신: “중학교 때 부터 결혼을 생각했습니다(청중 웃음). 뒸기 때문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먹여 살릴 자신이 없었습니다. 내 몸 하나 지탱하기 힘든 시절을 15년을 살아왔기 때문에 작년부터는 누군가를 먹여 살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혼을 하지 않아서 외로웠던 건 아닙니다. 동네에서는 소문이 있더군요(웃음). 이 나이가 되니 루머가 많이 생깁니다. 결혼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같이 있고 싶습니다.”
여행을 떠날 때, 계기는 무엇인지요.
신: “13남매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존재였습니다(웃음).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던 건, 집안에 어떤 기대감도 없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성장할 수 있었던 계기도 되었습니다. 여행은 본능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한민국 국도1번 걷기여행』출간 기념 사진전에 마지막 날. 신미식, 이민 두 작가가 독자들을 초대했다. 앞서 온라인으로 베스트컷을 뽑는 투표에 참가했던 독자들 중 추첨을 통해 사진전에 전시된 작품을 증정하는 시간도 있었다. 신미식 작가는 증정 예고된 작품 외에도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 이 날 참석한 독자들에게 귀중한 선물을 안겼다.
이날 강연회에는 다과가 있었고, 따뜻한 커피가 있었다. 사진전의 마지막 날 답게, 케익과 샴페인도 함께 했다. ‘뜰’ 출판사 뭐뭐뭐 대표는 “마늘 심는 할머니 모습을 비롯하여 여행길에서 마주치는 풍경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과 사진으로 읽고 보며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작을 수 있으나, 이 따뜻한 이야기를 통해 삶의 자세를 돌아볼 수 있게 해준 것은 그 두 작가가 각각 보여준 ‘여행길’ 자체인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회자가 『대한민국 국도1번 걷기여행』출간의 감회와 이번 여행의 의미를 물었다. 이민 작가는“쑥스럽고 떨리고 어려운 자리”라고 말한다.
“기회만 있다면 언제든 떠나고 싶은 것이 여행입니다. 40대 후반의 남성으로서, 그동안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회의가 드는 시기였습니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어느 정도 해소된 것 같다는 생각을 뒤늦게 합니다. 신미식 작가가 동기부여를 해주었던 점, 이 기회를 빌어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곧이어 신미식 작가가 답변을 이어 받았다.
“우리나라가 통일이 안 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처음 해보았습니다(웃음). 그렇지 않다면, 신의주까지 걸어야 했을지도 모르죠(청중 웃음). 450km가 걸을 수 있는 한계라고 생각했습니다. 통일이 되길 간절히 바라지만 말입니다. 여러 독자들에게 ‘왜 한국은 찍지 않고 외국만 찍고 다니는 가’하는 질문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여행은 많은 걸 얻으려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행을 다니고 오면 그 후에 자연히 ‘무언가’가 체득되어지는 것이지요. 여행은, 현지에서의 삶을 즐기는 것입니다. 덥고 춥고 짜증나는 데 언제 계획하고 기획하겠습니까(청중 웃음). 그러한 과정과 생각이 국내 여행이기 때문에 저에게는 특별했습니다.”
걸어야만 발견할 수 있는 세상의 지혜
이어진 낭독에서 신미식 작가는 “최근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낭독한 경험이 있다.”며 여유롭게 준비한 대목을 읽어 내려갔다.
국도여행이 어느 정도 가닥을 잡아갑니다. 전라북도를 지나 충청도에 진입했습니다. 전라남도에서 전라북도 그리고 충청남도에 이르면서 도의 경계를 넘는 기분은 말할 수 없이 흥분됩니다. 자동차를 타고 지날 때는 잘 모르고 지나쳤던 이 땅의 소중함을 알아가는 것은 어쩌면 이번 여행이 주는 가장 큰 행복일 것입니다.
이제 여행의 중간 지점을 돌아 목적지인 서울에 도착하기까지 5~6일 정도가 소요될 것 같습니다. 하루 20킬로미터 정도를 꾸준히 걷게 된다면 아마 이번 주 일요일이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날씨가 매섭긴 하나 이번 주 목요일부터 풀린다고 하니 좀 더 편안한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걸으면서 드는 생각이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였습니다. 그건 아마 남이 시키지 않은 일을 스스로 할 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누군가 시키지 않은 일을 하는 지금이 어쩌면 가장 행복한 순간이고 저는 지금 그 순간을 누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비록 육체적인 고통은 따른다 해도 나에게 주어진 지금 이 현실은 분명 축복입니다. 스스로 고통을 선택하는 사람들에겐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저 또한 저만의 이유가 존재하는 것이고요. 내가 걷는 한 걸음 한 걸음 속에는 분명 세상이 주지 못하는 지혜가 담겨 있을 겁니다. 그 지혜들이 모아져 내 자신을 더욱 살 찌우겠지요. 이번 여행이 끝나면 저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될 것입니다. 아마 내가 꾸는 꿈은 죽을 때까지 계속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것이 살아가는 이유일 테니까요. (p. 245)
이민 작가의 낭독이 이어졌다.
누구나 여행을 꿈꾼다. 그러나 여행을 떠난다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다. 직장인은 회사 때문에, 주부는 아이들 때문에, 농부는 가축 때문에, 그 지독한 생활, 현실 때문에. 그래서 여행을 밥 먹듯 떠나는 사람들을 대할 땐 한없이 부럽다. 여행가들은 독신이 많다. 특히 해외여행을 자유자재로 다니는 사람들이 그렇다. 신미식 작가처럼 원래 독신이었거나, 여행 때문에 독신으로 돌아갔거나, 독신이 다 보니 여행을 떠날 자유를 갖게 되었거나. 그들에겐 말뚝이 없다. 말뚝이 있다 하더라도 묶인 끈이 없다. 현실은 말뚝이고 생활은 끈이다. 여행도 현실이지만 몽환적 현실이다. 여행자들의 끈과 말뚝도 몽환적이다. 소의 말뚝은 쟁기가 되기도 한다. 여행자의 쟁기는 여행자가 결국은 돌아와야 할 생활이다. 돌아오지 않는 여행자는 없으며, 돌아오지 않는 여행자는 여행자가 아니라 떠돌이거나 수행자다. 그들에겐 말뚝은 없고 멍에와 쟁기가 있기도 하다. (p. 181)
박수와 함께 낭독이 끝나고 독자와 작가의 요청으로 준비한 순서보다 빠르게 작가와의 대화가 시작됐다. 참석한 독자들은 흥미로운 질문을 준비했으며, 작가들의 답변 또한 위트와 재치를 겸비한 성실한 답변이 이어졌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최고의 순간과 최악의 순간을 뽑는다면, 언제인지요.
신미식 작가(이하 ‘신’): “최악의 순간은 여정을 시작하는 날이었고, 최고의 순간은 여정을 끝마치는 날이었습니다.”
이민 작가(이하 ‘이’):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반대였습니다. 목적지에 도달할 즈음 힘들었던 이유는 내 마음에서 커다란 변화가 있으리라 예상 했지만, 변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소득이 없었다는 것. 오늘날 졸업을 앞둔 대학생의 심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신: “다른 게 아니라, 원고를 써야한다는 부담이나 먹고 사는 문제 때문이 아니었을까요(웃음)”
두 분이 처음 만나게 된 경위가 궁금합니다.
신: “결혼 발표 같은 분위기네요(청중 웃음). 90년대 모나코에서 사진을 찍은 적이 있습니다. 자동차 사진이었죠. 당시 자동차 잡지가 있었는데, 그곳에 싣고자 하여 연락을 했습니다. 그 때 그 잡지에 편집팀장이 이민 작가였습니다. 15년 정도 됐네요.”
서로의 첫 인상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이: “저하고는 다르게 여유롭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서로 말을 놓지 않고 존칭하는 사이입니다. 오랜만에 만나서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뼈다귀 해장국을 먹습니다(청중 웃음). 15년 전과 변한 건 없죠.”
신: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건 낚시 이야기입니다. 저는 낚시 때문에 회사에서 잘리기도 했으쾴까요(웃음).”
국도 1번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또 다른 장르나 테마로 쓰실 의향이 있으신지요.
신: “저에게는 우리나라를 처음 여행 한다는 의미가 담긴 책이었습니다. 제가 자란 곳은 1번 국도가 지나가는 근방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어른들의 말이 이 길로 목포도 가고 부산도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내 땅을 돌아보게 됩니다. 뉴욕에 다녀왔는데, 뉴욕에서 부럽다는 블로그 글을 봤습니다. 저는 오히려 글쓴이가 부러웠습니다. 올 가을에는 배를 타고 강에서 단풍을 찍고 싶습니다. 가을 풍경. 색 다른 사진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저는 신 작가보다 채널이 적습니다. 여행 계획은 많이 세웁니다. 그러나 막상 떠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한강 여행을 진행중에 있습니다. 아름답다는 생각은 해왔지만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어차피 멀리 떠나지 못한다면 한강을 돌아보자는 생각입니다. 생활 속에서 도보여행을 한 것이지요. 몇 차례 더 시도해볼 예정입니다. 신작가가 배에 노를 저을 예정입니다(청중 웃음).”
‘미쳤다’는 말을 듣지 않는 못하는 재미없는 삶
여행 중간에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었는지, 그 마음은 어떻게 극복하였습니까.
신: “첫날 포기하고 싶었습니다(청중 웃음). 목포 시내 걷기 너무 어려웠습니다. 지쳤죠. 날은 더운데 계속 오르막이었습니다. 내가 왜 이걸 했을까. 생각했죠.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미리 떠벌려 놓은 게 있었기 때문에 끝까지 할 수 있었죠. 여러분에게도 추천 드리는 방법입니다.”
이: “하루에 20~30km는 육체적으로 힘들었습니다. 일기 조건도 좋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한 번 해보겠다. 다 걷고 나면 뭔가 얻을 것이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포기할 마음을 찾지 못하였던 거죠.”
신: “걷고 나서 ‘걷지 말아야겠다’ 는 생각을 했습니다(청중 웃음). 걷기를 위한 길이 아니기 때문에 이 땅을 사랑하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차가 다니는 길입니다. 산티아고 길 같은 도보를 위한 길이 아니기 때문에 차도 옆길이 오히려 좋았습니다. 그런 길들을 찾아보고 싶더군요.”
또 다른 국도를 여행할 생각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신: “아직은 없습니다. 본능적으로 다시 걷고 싶은 때가 오리라 믿습니다. 언젠가 강원도 한계령을 걷는 불쌍한 모습을 상상해보고는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하면서 사진과 글을 남깁니다. 두 분은 앞으로 어떤 사진과 글을 남기고 싶은지요.
이: “도보여행이 트렌드가 된 거 같습니다. 산업이 되기도 했습니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 동행인에 대한 이야기를 쓰게 될 거 같습니다. 사람에 대한 얘기를 쓸 것 같습니다.”
신: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찍고 싶은 것만 찍은 적이 많았지만 앞으로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찍고 쓰고 하는 일이 많아질 거 같습니다. 그 후에 자유롭게 목적이 없는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그게 제일 행복한 거 같습니다.”
신미식 작가님은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는 직업을 가지고 계신데, 스케줄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궁금합니다.
신: “스케줄을 관리할 만큼 스케줄이 많지 않습니다. 일반 직장인보다 바쁘지 않습니다. 최근 2달이 가장 많은 거 같습니다. 요즘은 강의 요청이 많이 옵니다. 강의를 하면 큰 프로젝터가 준비되는데, 사진을 그 화면으로 보는 매력이 있더군요. 짜여진 일이 많아서 내년에는 자유롭게 파리에 6개월 살아보는 게 꿈입니다. 여행자가 아닌 생활인이 되고 싶습니다. 여행은 여행자가 아닌 생활인으로 사는 게 꿈입니다. 예전에는 13년 정도 직장인 생활을 했었습니다. 직장 생활 중에 주말에 파리를 가고 싶었던 적이 있습니다. 통장에는 돈이 별로 없었습니다. 겨우 티켓을 살 정도의 금액이었죠. 민박집에서 하루자고 퐁피두센터에서 카푸치노를 마시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시간이 없다고들 합니다. 그렇다고 시간이 많으면 떠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살면서 ‘미쳤다’는 말을 듣지 않는 삶은 재미가 없습니다.”
1년이 지났습니다. 남은 게 있으신가요.
신: “물론 책이 남았습니다. 남았다기보다 책이 태어났다는 표현이 맞겠네요. 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에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죠.”
미혼이신데, 정착의 욕구는 없으신지요.
신: “중학교 때 부터 결혼을 생각했습니다(청중 웃음). 뒸기 때문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먹여 살릴 자신이 없었습니다. 내 몸 하나 지탱하기 힘든 시절을 15년을 살아왔기 때문에 작년부터는 누군가를 먹여 살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혼을 하지 않아서 외로웠던 건 아닙니다. 동네에서는 소문이 있더군요(웃음). 이 나이가 되니 루머가 많이 생깁니다. 결혼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같이 있고 싶습니다.”
여행을 떠날 때, 계기는 무엇인지요.
신: “13남매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존재였습니다(웃음).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던 건, 집안에 어떤 기대감도 없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성장할 수 있었던 계기도 되었습니다. 여행은 본능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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