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요리와 라이프 스타일에 대해 고민하는 날 - 쌀을 넣은 당근수프
2008.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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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실린 조리법들은 여러 곳에서 취합한 기록이지만 주로 1700년대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방법들로 오래 전에 백지'묶음'에 손으로 베껴둔 내용이다. 2남 2녀인 내 자식들은 이 책을 보면서 요리하는 법을 익혔다. 이제는 하도 많이 써서 해지고 얼룩진 책이 되어버렸다. 이 책은 끈으로 다시금 곱게 묶여서, 버터와 밀가루 범벅이 된 손주들이 사용하고 있다 인기 좋은 요리법은 얼룩이 많아서 쉽게 구분이 된다.
- 타샤 튜더Tasha Tudor,
『타샤의 식탁』 18p
세상에는 요리책이 너무 많고, 요리사도 너무 많고, 요리도 너무 많다. 음식에 대해 다른 요리책과는 완전히 다른 태도와 경향을 기반으로 쓰지 않는다면, 여기서 당장 그만둬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독특한 책을 쓰려 하고 있고 그런 소망을 품고 있다. 내가 제안하고 기술할 식이요법은 영양가 있고 무해하고 간소한 음식이 될 것이다. 복잡하고 세련된 사람들을 위한 복잡한 음식이 아닌, 소박한 삶을 영위하는 이들을 위한 소박한 음식 말이다. 음식을 준비하고 만드는데 있어 경제적이고 간단한 것이 나의 목표이다. 만일 가로세로 9*15 센티미터 카드에 다 적지 못할 조리법이라면 잊어버리자. 내 책의 주제는 이렇다. 대충 말고 철저하게 살자 부드럽게 말고 단단하게 먹자. 음식에서도 생활에서도 견고함을 추구하자.
- 헬렌 니어링Helen Nearing,
『소박한 밥상』 10p

타샤는 영국에서 미국 보스턴으로 건너온 선조들이 메이플라워호에 같이 싣고 왔을, 오래된 영국과 아일랜드의 레시피들을 수없이 만들어 보고 정리해 아들딸들에게 전해주었지만, 헬렌은 꽤 강경한 채식주의자인 데다가 먹는 것을 미식의 행위가 아닌, 몸의 건강을 위한 섭생 이외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조리가 복잡하지 않은 요리와 생식을 병행하며 요리책을 쓰는 목적 자체를, 요리를 최대한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재료 맛을 살려 조합하는 레시피들을 선보이는 데 두고 있다.

약에 찌들고 기침하느라 지친 몸과 마음으로 유학을 준비하고 건강을 걱정하면서 관심을 가지게 된 채식. 나도 그때는 채식은 야채만 열심히 먹는 것이라고 막연하게 알고 있었다. 하여간 그렇게 채식에 대한 자료를 모으면서 헬렌 니어링과 스콧 니어링 삶에 관한 책도 보았고 런던 가는 비행기안에는 그녀의 『소박한 밥상』에 푹 빠져 있었다. 그렇게 열두 시간이 넘는 비행시간 동안, 런던에 가서 간단하게 채식을 하며 요리학교를 다니는 나의 모습을 상상했다. '아침에는 사과를 갈아 넣은 오트밀을 먹고, 점심은 샐러드, 저녁엔 그래도 달걀을 먹어줘야 하는 건 아닐까?'라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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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수업 때마다 "맛을 보지 않는 요리사는 대단히 오만한 사람이다."라는 말을 듣고, 심지어 시험을 볼 때에도 맛을 보지 않으면 배려심이 없는 요리사로 감점을 받게 마련이니 심플하게 내 몸을 위한 음식을 공급해주는 차원을 넘어 맛에 대한 지식을 불려나가야만 하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스스로가, 인류가 오랜 시간 동안 만들어 놓은 식문화, 식재료를 사용하는 여러 가지 방법들, 향신료, 허브들을 이용하는 수많은 방법들을 알아가는 데 완전히 매료되었다. 복잡한 요리방법들을 이용해 만드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요리들과 저장식품들도 갓 뽑은 야채와 살짝 불리거나 구운 곡물과 견과만큼이나 중요하고, 지켜나갈 가치가 있는 것들이니까. 요리를 만들면서 그 조리방법과 숨어있는 이야기들을 파고들며 몰랐던 역사와 사람들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한번에 맛보는 기분은 정말 즐겁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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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꾳의 쇠고기구이에는 꼭 요크셔 푸딩을 곁들여야 한다. 다 구워진 고기를 덜어낸 구이 팬에 푸딩을 만들고, 그 전에 고기는 미리 자를 준비를 해둔다. 팬의 기름기를 닦지 말고 그 기름으로 조리한다. 콜레스테롤에 신경 쓰는 사람들은 질색할 것 같다. 하지만 1년에 한번쯤 기름지게 먹는다고 큰일이 있을까? 인생은 짧으니 이따금 마음껏 먹는 것도 좋다.
내 요리책에 포함될 조리법은 가능한 한 밭에서 딴 재료를 그대로 쓰고, 비타민과 효소를 파괴하지 않기 위해 가능한 한 낮은 온도에서 짧게 조리하고, 가능한 한 양념을 치지 않고, 접시나 팬 등의 기구를 최소한 사용한다는 방침을 고수하기도 결심했다. 음식은 소박할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또 날것일수록 좋고, 섞지 않을수록 좋다. 이런 식으로 먹으면 준비가 간단해지고, 조리가 간단해지며, 소화가 쉬우면서도 영양가는 더 높고, 건강에 더 좋고 돈도 많이 절약된다.
요리에 대해 완전히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는 타샤와 헬렌이었지만 잘 만든 수프 한 그릇이 주는 따듯함을 어느 누구보다도 즐기는 사람들이었던 듯 하다. 수프를 잘 끓이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는 이야기에 나도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간단해 보이는 음식이 실은 제일 어렵기 마련이다. 넉넉히 끓여 사람들과 나누는 수프는 요리사가 잘 고른 재료와 만드는 과정의 정성과 배려가 무엇보다 중요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나는 운 좋게도 신선한 달걀과 집에서 만든 버터, 염소 젖, 텃밭에서 가꾼 풍성한 푸성귀를 재료로 써왔다. 밀을 심고 농사를 지어 직접 타작해서 밀가루를 낸 적도 있다. 먼저 신선한 식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특히 수프나 스튜를 만들 때는 최상을 맛을 내기 위해 여러 번 간을 봐야 한다. 밍밍한 수프는 말 그대로 실망스러움 그 자체다. 또 지름길을 모색하지 말기를 바란다. 훌륭하고 가치 있는 것은 모두 시간과 공이 들게 마련이다.
수프는 위로를 주는 음식이다. 만들기 쉽고 소화도 쉬워서 누구에게나 어디서나 환영받을 만하다. 남은 재료를 이것저것 섞어 아주 적은 비용으로 준비할 수 있는 음식이 수프다. 쓰고 남은 재료와 야채 우린 물만 있으면 행복한 식탁을 마련할 수 있다. 근채류 약간과 푸른 잎 채소 한두 잎. 한 두 가지 허브, 전날 먹고 남은 음식 조금에 물을 붓고 끓이면 수프가 준비된다 나는 수프를 많이 끓이면서 3분의 1은 재료, 3분의 1은 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솜씨, 3분의 1은 행운이라는 것을 터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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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헬렌과 타샤 두 여인의 요리 솜씨에도 매료되었지만 그들의 독특한 라이프 스타일을 사랑했고, 작은 것부터 따라하고 싶은 마음에 그들의 요리법을 알고 싶어한 것이다. 먹는 것을 통해서 가장 쉽고 빠르게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나, 먹는 것을 바꾸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요리를 하며 마음이 복잡해지거나 만들고 있는 레시피에서 조금 벗어나고 싶을 때 항상 헬렌과 타샤의 책을 휘리릭 넘겨 보이는 대로 읽곤 했다. 내가 꿈꾸는 요리는 무엇이며 내가 평생 이끌어 나가야 할 나의 라이프 스타일은 어때야 하는지 생각하다 보면 눈앞의 작은 문제들의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 때문이다. 물론 마음을 다잡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이요 기분전환도 된다. 내가 지금 당장 그들처럼 살고 있진 않지만 곧, 자연하고 더 가깝게 살게 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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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을 보고 솜씨를 부려 친구들을 위해 맛난 음식을 크리스마스며 생일 때마다 잔뜩 차려주고 싶은 마음도 가득하지만 너무 가공하지 않은 식재료를 스스로 재배해보고, 너무 칼로 자르거나 난도질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감사히 땅의 기운을 느끼면서 먹는 것. 감자와 고구마, 채소들, 아프지 않게 있는 그대로 먹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동시에 일어난다. 더불어 문자 그대로 석유 없으면 못 사는 지금 인류들이 자원이 고갈되었을 때 만나게 될 식생활 위기도 걱정된다. 좀 더 미리 땅과 친해지고, 자급자족을 배우고, 딱 알맞은 만큼만 채우고 살고 태양과 바람에너지를 이용하는 방법에 익숙해져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유전자를 조작해 많은 양을 생산하고 바다를 메꾸어 땅을 만들고 더 많이 재배하고 생산하지만 왜 세계의 기아는 끊이질 않는지, 이해할 수가 없고 마음이 무척 아프다. 먹는 것이 넘쳐나 병이 나는 사람들이 있는데 지구 어디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세상에서 가장 불공평한 일이다.
더 많은 요리를 만들어 내고, 새로운 맛을 창조하는 것 이외에 요리를 하는 사람으로서 진정한 현실문제는 환경과 자연과 가면 갈수록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것이 줄어든다는 근본적인 문제로 바뀌어 가고 있다. 아직은 알고 싶은 것이 너무 많고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수많은 요리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왔는지 기록하고 싶은 마음 가득하지만 한편으로는 스스로 시골집에서 야채를 키우고, 스스로 마와 면으로 된 옷과 신발을 만들어 입고 조용히 고독을 즐기며 글을 쓰고 싶은 생각도 굴뚝같다. 핸드폰도 인터넷도 없던 시대로 돌아가 원고지에 만년필로 한자한자 써내려갈지도 모르지. 어떤 방법으로 소박한 삶을 살던, 곧 선택을 해야만 하는 날이 올 것이다. 바람이 있다면 갑자기 변화를 겪지 않고 하나 둘씩 바꾸어나가 큰 무리 없이 조용히 자연에 가까운 삶을 완성하고 싶다는 것. 그러려면 지금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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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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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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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y
2008.11.28
지원
2008.11.26
엘라
2008.11.26
따끈한 당근수프 맛있을 것 같아요! 바로 해봐야지^^
그런데 당근수프 사진에 보면 가운데 파슬리 말고 하얀 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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