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의 무리에 둘러싸인 늑대 - 『양의 노래』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6.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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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희망이 없는 세상을 과연 살아가야 할까? 토우메 케이의 『양의 노래』를 보고 있으면 너무나도 암울해진다. 남매인 카즈나와 치즈나에겐 그 어떤 ‘미래’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들은 살아가고 있다.

고등학생인 카즈나가 가족과 함께 살았던 것은 겨우 3년뿐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는 얼굴조차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누나만을 데리고 어딘가로 떠나갔다. 고아 아닌 고아가 된 카즈나는 아버지의 친구 집에 살게 되었다. 어느 날, 카즈나는 희미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는 옛날 집으로 가 본다. 그리고 누나인 치즈나를 만나게 된다. 치즈나는 카즈나에게, 다카시로 가문에 전해지는 유전병을 알려준다. 유전성 혈액병에 걸린 다카시로 가문의 사람은 혈액 내의 성분을 정기적으로 보충해 주어야만 살 수 있다. 그 방법은 타인의 피 자체를 흡수하는 것이다. 마치 흡혈귀처럼.

단지 누군가의 피를 필요로 하는 존재를 흡혈귀라고 부른다면, 『양의 노래』에 나오는 흡혈귀는 우리가 알고 있던 영화나 소설 속의 존재와는 전혀 다르다. 앤디 워홀이 만든 실험영화에서 그려낸 뱀파이어처럼, 치즈나와 카즈나는 피를 보충하지 못하면 끊임없이 쇠약해지는 병자의 이미지다.

“당신은 우리를 위험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위해를 가하지 않아요. 우린 양의 무리에 숨어 있는 늑대가 아니에요.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지고 태어난 양일 뿐”이라는 말처럼, 다카시로 가문은 단지 병에 걸린 것뿐이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그들은 피를 원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기 의지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흉악한 감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다카시로 가문은 스스로를 유폐시킨다. 그것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하고.

다카시로 가문은 드라큘라 같은 강력한 괴물이 아니다. 오히려 나약한 병자다. 그들은 사람을 유혹하는 초능력도 없고, 자유자재로 사람을 갖고 놀 힘도 없다. 그들이 피를 원하는 존재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고 사회에 위험한 존재라는 것이 알려지면, 그들은 당장 연구소에 격리되거나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집단 테러를 당해 죽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가급적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그들만의 공간으로 숨어든다. 되도록 바깥에 나가지 않고 자신들의 영역 안에서만 살아간다. 단지 그것뿐이다.

『양의 노래』 1권에서 토우메 케이는 말한다. “양의 무리에 둘러싸인 늑대는 쓸쓸한 송곳니로 자신의 몸을 물어뜯는다”라고. 다카시로 가문에겐, 위험하지만 그들이 택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를 파괴하는 일뿐이다. 『양의 노래』는 카즈나와 치즈나의 그 쓸쓸하고 막막한 선택을 보여준다. 치즈나와 만난 카즈나는 자신의 병을 알고 난 후, 모든 관계를 끊어버리고 ‘가족’에게 돌아간다.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자신을 물어뜯는 길을 택한 것이다.

동인지 출신의 토우메 케이는 정말 암울한 느낌의 작가다. 『흑철』 같은 작품에는 약간의 유머도 있지만, 그의 작품에는 일관되게 비관적인 세계관이 깔려 있다. 그림만 보고 있어도 어둡고 침울한 느낌이 전해진다. 『양의 노래』는 토우메 케이의 작품 중에서도 유별나게 암울한 작품이다. 카즈나는 치즈나에게 빨려들어 가면서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한다. 치즈나는 무언가 방법을 찾으려는 카즈나에게 끊임없이 말한다. 아무 소용없는 일이고, 거역할 수 없다고. 포기하라고.

하지만 『양의 노래』가 진정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단지 어둠만이 아니다. 카즈나와 치즈나의 주변에는 두 사람이 있다. 미나세와 야에가시. 어린 치즈나에게 피를 주었던 대학생 미나세는 그녀를 치료하는 의사가 되었고 결코 치즈나를 떠나가지 못한다. 하지만 치즈나는 결코 미나세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치즈나와 마나세의 관계는, 치즈나와 아버지의 관계와 겹쳐진다.

아내가 죽은 후, 아버지는 치즈나에게서 아내의 모습을 보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카시로 가문에 들어온 아버지는 아내가 없이 살 수가 없었다. 어린 치즈나는 아내의 대역일 뿐이었고, 그 모순과 죄의식에 괴로워하던 아버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만 했다. 치즈나는 아버지의 고통과 슬픔을 알고 있기에, 혹은 아버지의 선택을 미워했기에, 결코 미나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카즈나가 돌아오자, 치즈나는 아버지가 행했던 ‘죄’를 다시 저지른다. 근친상간이라는, 피의 원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아버지와 치즈나, 카즈나, 미나세의 관계는 서로를 미워하면서 닮아가고, 두려워하면서 끌려드는 것이다. 그들은 결코 운명을 거역할 수 없고, 그렇다고 모든 것을 포기하지도 않는다. 송곳니를 어딘가에 찔러 넣어야만 하는 것이다. 결국은 자기 몸으로.

하지만 야에가시는 다르다. 야에가시는 『양의 노래』의 주요 인물 중에서 유일하게 바깥에 있는 인물이다. 야에가시는 자신의 손목을 커터로 그어 카즈나에게 내민다. 카즈나의 곁에 있고 싶다고, 피가 필요하다면 이걸 가지라고. 야에가시는 바깥에서 카즈나와 치즈나를 바라보는 인물이다. 그것만이 유일한 길이다. 미나세는 그들의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한다. 하지만 야에가시는 바깥에서 카즈나를 부른다. 들어가지 말고, 나와서 자신과 함께 있자고 한다. 『양의 노래』가 말하는 것은 결국,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어떤 희망조차 보이지 않을지라도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조차도 희망적인 결론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카즈나는 여전히 ‘송곳니를 가진 양’이다. 다카시로 가문의 병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나 위험한 존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우메 케이의 선택은 결국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양의 노래』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논리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래야만 할 것 같기 때문에.

17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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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inkeyes

2019.07.01

신청 기간이 지났나요? 참가하고 싶은데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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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less

2019.06.30

불행과 슬픔을 따뜻한 시선으로 응시할 수 있다면 그건 더 이상 불행도 슬픔도 아니겠죠 불행과 슬픔이 없이는 행복도 기쁨도 의미가 없듯이 뭐든 좋은 게 있으면 나쁜것도 있음을 인정하고 눈 앞에 닥친 상황과 문제를 슬기롭고 현명하게 해결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여기서 슬기롭고 현명하게는 아무도 답을 줄 수가 없습니다 오직 개개인의 생각과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에 우리는 평소 책도 많이 읽고 이런 북토크 같은 것을 신청해 생각을 글로 정리할 줄 아는 사람과 대화를 나눠보는 시간도 가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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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2

2019.06.29

꼭 참가하고 싶습니다. 주제가 제가 너무 듣고 싶은 거라서요. 기회 주시면 꼭 참가합니다. 2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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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

글 쓰는 일이 좋아 기자가 되었다. [씨네21] [브뤼트] [에이코믹스] 등의 매체를 만들었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를 거쳤다. 어린 시절부터 영화, 소설, 만화를 좋아했고 어른이 되어서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자연스레 대중문화평론가, 작가로 활동하며 『나의 대중문화 표류기』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내 안의 음란마귀』 『좀비사전』 『탐정사전』 『나도 글 좀 잘 쓰면 소원이 없겠네』 등을 썼다. 15년 이상의 직장 생활, 7, 8년의 프리랜서를 경험하며 각양각색의 인간과 상황을 겪었다. 순탄했다고 생각하지만 다시 통과하고픈 생각은 별로 없는 그 시기를 거치며 깨달았다. 직장인과 프리랜서 모두 쉽지 않고, 어른으로서 살아가는 일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것. 월급도 자유도 결국은 선택이고, 어느 쪽도 승리나 패배는 아니라는 것. 모든 이유 있는 선택 뒤엔 내가 감당해야 할 후폭풍이 남는다는 것. 다 좋다. 결국은, 지금의 내가 있으니까. 2007년부터 13년간 상상마당 아카데미 ‘전방위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며 쌍은 경험과 노하우를 이 책에 그대로 풀어냈다. 글쓰기 초보자에게 글을 잘 쓸 수 있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 준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글을 잘 쓰고 싶어 하는 모든 이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선물할 것이라 확신한다. 주요 저서에는 『전방위 글쓰기』(2008), 『영화 리뷰 쓰기』(2008),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2012), 『나의 대중문화표류기』(2015), 『웹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 가이드: 미스터리』(2015), 『웹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 가이드: 호러』(2016), 『고우영』(2017) 등이 있다. 공저로도 『클릭! 일본문화』(1999), 『시네마 수학』(2013), 『탐정사전』(2014), 『웹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 가이드: 웹소설 작가 입문』(2017) 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