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섬별 칼럼] 살아 있는 채로, 기쁨.
이 삶을 계속 같이 살자 ⑧ : 낭기열라로 떠나는 올리버가 모험에 앞서 단단히 채비를 마치기를 바라면서.
글 : 송섬별
2025.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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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른다. 올리버가 떠나기 전날 뒷발로 내 팔에 남긴 긴 상처는 이제 빛에 한참 비춰 봐야 아주 가늘게 보인다. 가느다랗고 비스듬한 선 하나다. 


그런데 계속 들여다보면 하나가, 두 개가 더 보인다. 다른 팔에도 있다. 언제 난 상처인지는 알 수 없다. 내가 고양이와 함께 산 역사만큼이 내 몸에 빗금으로 새겨져 있다. 마치 별 도리 없어진 사람이 동굴 벽에 날짜를 세며 긋는 선처럼. 마침내 이곳에서 나갈 때까지. 


여기서 나가면 어디로 가나? 


고양이가 없는 미래. 


영원히 아홉 살인 고양이와 헤어진 나는 여전히 열아홉 살 고양이와 함께 산다. 


털과 살과 뼈와 발톱을 부둥켜 안은 아늑한 동굴 바깥으로 나가야 하는 때가 오면, 그래서 더 이상 그을 수 있는 빗금이 없어지면,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나는 오랫동안 막연히 생각해 왔다. 


아무도 없는 외롭고 꿋꿋한 미래. 

 

*


나는 빗금들을 친구들의 팔에서 보았다. 손목과 허벅지와 발바닥에서 보았다. 


그 중 몇 개는 연극을 보러 갔을 때 본다. 대학로에서, 정동에서, 신촌에서, 또 다른 곳에서, 나는 객석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았다. 무대 위 배우들은 퀴어의 삶, 퀴어의 사랑, 퀴어의 예술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나는 슬프고 무력한 것을 보러 멀리 외출하는 일이 잘 없고, 시간과 마음을 들여 무엇을 보러 왔다면 그 대가로 힘이나 재미를 얻어가고 싶다. 오늘도. 나는 그런 것을 보러 왔다. 무대 위에서는 멋진 미래가 펼쳐진다. 모두가 자신에 관한 대사를 술술 말하고, 자신감 있게 등장하고 여운을 남기며 퇴장한다.


오늘의 연극 무대에서는 동성혼이 이미 법제화 되었고 재생산이 아닌 방식으로 가족을 확장하는 것 역시 가능하며 아무도 이 결혼과 가족 구성에 대해 의구심을 품거나 반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사랑에 빠지고 일가를 이룬 사람들은 이제 다른 고통을 느낀다. 여느 사람들이 하는 고민, 이혼, 양육, 상속, 다른 미래, 그런 것들로 인해 고통을 느낀다. 그러니까 예술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SF 같은 퀴어 유토피아는 우리의 고통을 없애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만 느끼는 억울한 고통을 다음 단계인 여느 사람들의 고통으로 넘어가게 도와준다. 덜 억울하게 해준다. 고작 그것만으로도 실제로 덜 억울한 기분이 든다. 

 


나는 객석 가장자리에 앉아 무대 위에서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고 있는 배우들을 구경한다. 관객들은 손뼉을 치고 환호한다. 좋은 연극이고 재미있는 연극이다. 힘과 재미가 넘친다. 게다가 <다시 만난 세계>는 언제부턴가 누군가가 목이 터져라 부르는 것을 들으면 불수의적으로 눈물이 나는 노래가 됐다. 살아 있어야 세계를 다시 만나니까. 그건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살아 있고 싶다는, 그 어려운 일을 향해 용기를 내고 있다는 증거니까.


나는 객석도 구경한다. 그러다 나와 통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아 있는 커플을 본다. 이혼, 양육, 상속, 거기까지 갔을까? 아닐까? 두 사람의 흰 손목에 나란한 상처가 나 있다. 타투, 프라이드 팔찌, 애플워치, 커플 팔찌, 그런 것으로 가려지지 않는 깊은 상처다. 그것들이 겹겹이 상처를 장식하고 있다. 


기쁨, 무대에서 기쁨이 뿜어져 나온다. 객석에서 그 기쁨이 반사되어 더 커지고 요란해진다. 나는 그것을 보러 왔다. 우리 삶은 기쁨이 대부분이므로.  

 

*



올리버는 2024년 2월 12일에 떠났다. 병원에 입원한 고양이는 전혀 먹지 않는 채로 점점 야위어갔고, 매일 새로운 증상이 더해졌다. 그곳에 있는 다른 고양이들도 모두 투명한 관을 코에 달고 있었고, 작았다. 처음부터 작지는 않았을 것이다. 올리버가 점점 옅어지고 있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올리버는 새끼일 때부터 손발이 큼직했고, 모두의 예상대로 8킬로그램이 넘는 우람한 고양이로 자라났다. 늘 펄쩍 뛰었고, 힘이 셌고, 우는 소리도 우렁찼다. 우리는 그의 심장에 발전기가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햇빛을 듬뿍 받으며 누워 있으면 걸걸한 그릉그릉 소리를 내면서 모터가 돌아갔다. 그렇게 온종일 충전한 빛과 열의 에너지를 모두에게 나누어주었다. 안고 있으면 우리는 덜 추웠고 덜 외로웠다. 아주 큰 배터리같은 녀석이었다. 언제나 꽉 차 있었고, 흘러 넘쳤다. 


매일 10분 그 애를 면회할 수 있었다. 나는 섬망에 빠진 사람을 이미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고양이의 눈빛을 볼 때 슬펐다.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래도 굳이 그걸 확신하지는 않았다. 그 애의 몸을 만지고, 응원의 말을 들려주었다. 계속 만졌다. 고양이의 몸은 부드러운 풀이 자란 아주 완만한 언덕 같았다. 이 언덕이 내 손길을 기억하고, 나의 손이 이 언덕의 굴곡과 따스함을 잊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러던 어느 날, 고양이는 낫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이 정말 올 줄은 몰랐는데, 정말로 그런 앎이 찾아왔다. 아무리 생각하기 어려운 문제라도 나는 생각을 해야 했다. 올리버를 데려온 순간부터 나는 그를 위해 무엇이든 하기로 했으므로. 


내가 면회하는 10분이 그 애의 결정적 순간이 될 리는 없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헐레벌떡 찾아갈 때까지 내 고양이가 모르는 사람들의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간신히 숨만 붙어 있기를 바라지 않았다. 

 


친구들과 끌어안고 한참 운 다음에 나는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그날 우리는 함께 여행했다. 우리의 첫 자동차 여행이었다. 늙었지만 건강한 고양이 물루는 우뚝 서서 선장처럼 앞을 내다보고 있었고, 어리고 아픈 올리버는 요람 속에서 잠을 잤다. 둘은 정말로 사자왕 형제처럼 보였다. 올리버의 몸에 달린 여러 개의 관을 통해 간혹 주사기로 유동식이며 약을 급여했다. 그가 그것을 잘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나는 뒷좌석에 앉아 한 손을 고양이의 옆구리에 내내 얹고 있었다. 숨을 쉬고 있는지, 따뜻한지 확인했다. 자동차가 터널을 나서자 빛이 쏟아졌다. 옅은 노란색이었다. 기쁨. 고양이들이 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났다. 내 손은 여전히 고양이를 만지고 있었다. 약하지만 분명한 박동이 느껴졌다. 우리는 살아 있는 채로 다 같이 밝은 곳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우리가 마지막에 기억할 만한 모험을 해서 다행이었다. 우리는 슬픔과 외로움을 위해 살았던 적이 없다. 

 

*


올리버는 이틀간 내 곁에서 지냈다. 치료를 그만둔 것이 아니었으므로 시간 맞춰 약을 먹이고, 나비침을 꽂아 피하주사를 놓고, 별수없다는 걸 알면서도 병원에도 데려갔다. 2월 11일 밤에 고양이는 내 앞에 누워 있었다. 낡아빠진 것처럼 보였다. 그의 몸에 연결된 저 거추장스러운 관들을 얼른 다 떼어 주고 싶었다. 고양이에게 이불을 덮어준 다음에 책을 읽어주었다. 여행을 떠나며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단 한 권의 책이었다. 올리버가 아프기 시작한 뒤로 우리는 한동안 대화하지 못했는데, 책을 읽어 주는 동안 그 애가 오랜만에 내 말을 다 알아듣는다고 느꼈다. 

 


스코르판 : 그렇게 끔찍한 일이 어디 있어? 열 살도 채 되기 전에 죽어야 한다는 건 너무하잖아?

카알 : 스코르판, 그건 별로 끔찍한 일이 아냐. 죽은 뒤에 넌 굉장히 신나는 생활을 하게 될 테니까. 땅속에 남는 건 다만 너의 껍데기뿐이거든. 진짜 너는 어딘가 전혀 새로운 세계로 날아가는 거야.

스코르판 : 도대체 어디로 간단 말야?

카알 : 낭기열라로 가는 거야.*

 

 

2월 12일. 

한동안 걷지 못하던 올리버는 평생 함께 살았던 물루에게 힘겹게 다가가 물루에게 턱을 얹고 가만히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한참 지켜본 뒤에 고양이를 다시 요람에 넣어주었다. 고양이는 이불을 덮은 채로 몇 번 길고 낮은 목소리로 울었다. 무섭지 않았다. 나는 고양이를 지켜보다 엎드린 채 잠깐 잠들었다. 눈을 떠 보니 집 안이 고요했다. 이곳에 누군가 죽은 이가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올리버를 만져보았다. 아직 차갑지 않았다. 물과 약과 밥과 주사약을 차분히 챙겨온 다음에 그것을 고양이 옆에 내려놓고, 다시 올리버를 만져보았다. 


올리버는 마지막으로 또 길게 울었을까? 내 얕은 잠을 깨우지 못할 정도였으니, 크게 고통스럽지는 않았을까? 그랬으면 했다. 입을 벌리고 있어서 마음이 아팠지만 다시 닫아 줄 수가 없었다. 전화로 장례식장을 예약하고 친구들에게 소식을 전한 다음에 앉아서 기다렸다. 올리버와 함께. 활짝 편 손바닥으로, 살아 있을 때와 똑같이, 넓고, 부드럽게, 언덕 전체를 쓰다듬었다. 낭기열라로 떠나는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고양이를 위해서, 그가 모험에 앞서 단단히 채비를 마치기를 바라면서.


그것이 우리가 미래를 맞이한 방식이다.

 



*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사자왕 형제의 모험』, 김경희 옮김, 창비.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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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왕 형제의 모험 (리커버 한정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김경희> 역/<일론 비클란드> 그림

출판사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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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섬별

읽고 쓰고 옮긴다. 매일 일기를 쓰고 자주 시를 쓴다. 용감하게 살아가는 일에 관심이 많다. 물루와 올리버라는 치즈 고양이의 식구다. 옮긴 책으로 <페이지보이>, <자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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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리드 린드그렌

1907년 스웨덴 스몰란드 지방의 작은 도시 빔메르뷔에서 태어나 2002년 스톡홀름 달라가탄 자택에서 생을 마감했다. 일생 동안 동화책, 그림책, 희곡 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으며, 전 세계 백 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그 작품들은 아동 문학의 고전으로 일컬어지며,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독일청소년문학상 등 수많은 상을 수상하고,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로 제작되어 세계 여러 나라에서 방영되었다. 『소년 탐정 칼레』, 『에밀은 사고뭉치』, 『나, 이사 갈 거야』, 『떠들썩한 마을의 아이들』,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 등 수많은 작품에서 린드그렌은 어린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린이가 재미있어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그려 내며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002년 린드그렌이 세상을 떠난 후 스웨덴 정부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기념 문학상’을 제정해 그 업적을 기리고 있으며, 2005년에는 린드그렌의 필사본을 비롯한 관련 기록들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자기 안에 있는 ‘아이’를 즐겁게 하기 위해 글을 쓴다고 했던 린드그렌의 손에서 태어난 칼레, 에밀, 로타, 삐삐, 로냐, 라스무스 등은 자연과 공동체가 살아 있던 시골 마을과 더불어 영원히 어린이들 곁에서 생명을 이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