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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완선의 살다보니 SF] 게임 친구를 소중히

인류의 존속이 걸린 게임이 펼쳐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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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더 말하자면, 훌륭한 게임 상대는 존중해야 마땅하다. 비열한 속임수 없이 진심으로 임할 때 게임은 우리를 즐거운 경험으로 묶어준다.


심완선 SF 칼럼니스트가 일상에서 벗어난 딴생각을 풀어내는 칼럼을 연재합니다.
격주 화요일 연재.


출처: pexels 


MBTI의 유행에 편승하여, 나는 보드게임 성격유형 분류를 만들었다. 보드게임을 플레이하는 모습에 따라 성격을 유형별로 나눌 수 있다는 내용이다. 심리학 전공자의 양심을 걸고 말하건대 과학적 근거는 거의 없다. 하지만 게이머 인생을 걸고 말하건대 내용은 그럴싸하다. 유형별 설명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유형을 놓고 토론에 돌입했다. 기준이 모호하다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분류 방법이 썩 괜찮게 정해졌다는 증거다. 원고가 곧 출간될 예정이지만 여기에도 내용을 살짝 공개하고 싶다. 이에 따르면 사람들의 성격은 3개의 축을 기준으로 하여 8가지로 분류된다.



나는 교류-자립에 기울어 있다. 성취를 싫어하진 않지만, 그보다는 게임을 통해 남들과 노는 데 관심이 많다. 경쟁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이기려고 애쓰지 않는다는 뜻이다. ‘포커’를 해도 베팅보다 패 맞추기가 재미있다. 승패나 득점은 어디까지나 덤이다. 사람들과 많이 웃고 즐겼는지(교류), 내가 하고 싶은 걸 이루었는지(자립) 여부가 중요하다. 반대로 성취를 추구하고 경쟁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겨야 재미있지’ ‘아무것도 안 걸면 게임이 무슨 재미야’라고 말하곤 한다. 내기에 불이 붙는 유형이다. 덕분에 이들은 실력이 금방 상승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만약 인류의 존속이 걸린 게임이 펼쳐진다면 누가 참가해야 할까?

로저 젤라즈니의 단편소설 「유니콘 베리에이션」은 인류의 존속을 둘러싸고 유니콘과 인간이 술집에서 체스를 두는 내용이다. 인간인 ‘마틴’이 이기면 유니콘 ‘틀링겔’은 아무 짓도 하지 않기로 한다. 틀링겔이 이기면 그는 인류가 자멸하는 데 약간쯤 손을 보탤지도 모른다. 인류가 사라지면 유니콘들에게 이쪽 세계에서 살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어떤 생물이 멸종할 때마다 그 자리를 신화적 생물이 대체한다. 마지막 회색곰이 죽었을 때는 그리핀에게 길이 열렸다. 독수리가 사라지자 코카트리스가 이쪽에 나타났다. 유니콘들도 가능성의 냄새를 맡았다. 틀링겔은 이쪽 세계가 살기에 괜찮을지 탐색하는 중이었다. 그는 미래를 보았지만, 아직은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다. 마틴은 졸지에 인류의 명운을 좌우하게 되었다. 그는 부담감이 크면 최고의 플레이를 펼칠 수 없다는 핑계로 다음 수를 차일피일 미룬다. 두 존재는 한 달 뒤에 같은 자리에서 만나 게임을 지속하기로 한다.

젤라즈니가 이 소설을 쓰는 데는 조지 R. R. 마틴이 큰 역할을 했다. 그는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원작자로도 유명한데(물론 원작인 『얼음과 불의 노래』는 이전부터 유명했다), 젤라즈니와는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유니콘 베리에이션」을 쓰기 전에 젤라즈니는 먼저 편집자로 유명한 가드너 도조와로부터 ‘유니콘’ 앤솔러지에 넣을 작품 없느냐는 연락을 받았다. 다른 사람으로부터는 ‘술집’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 요청을 받았다. 젤라즈니가 마틴에게 이런 이야기를 꺼냈을 때, 마틴은 마침 ‘체스’ 작품집 소식을 들은 상태였다. 그리고 그는 웃으면서 젤라즈니에게 ‘유니콘, 체스, 술집이 나오는 소설을 써서 여러 번 파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다. 젤라즈니도 그때는 웃어넘겼지만 몇 달 후 정말로 마틴의 제안을 따랐다. 소설 등장인물 이름이 ‘마틴’인 이유는 그와 아주 관련이 없지는 않다. 이후 젤라즈니는 「유니콘 베리에이션」을 ‘크루즈 경비를 충당할 만큼’ 여러 번 팔았고, 그해 휴고상을 수상했다. 마틴의 소설은 이에 밀려 떨어졌다. (『조지 R. R. 마틴 걸작선』에 실린 마틴의 코멘트를 빌리면 “(젤라즈니는) 주인공에게 마틴이란 이름을 붙임으로써 내게 감사를 표했고…… 그런 다음 내가 받아 마땅한 휴고상을 다짜고짜 강탈해 갔다.”)

여기에는 몇 가지 교훈이 있다. 우선, 친구는 중요하다. (때로는 친구가 나보다 잘될 수도 있다. 분한 동시에 축하할 일이다.) 친구를 사귀려면 같이 게임을 하면 좋다. 그것도 보드게임이나 TRPG처럼 여러 사람이 모여야 하는 게임을 같이 해주는 친구는 정말 소중히 여겨야 한다. 마틴이 아는 사람이라곤 젤라즈니밖에 없던 동네로 이사 갔을 때, 젤라즈니는 당시 안면만 있던 마틴을 친절하게 이곳저곳에 데려가주었다. 마틴은 그렇게 같이 게임을 하는 작가 친구들을 사귀었고, 그들과 플레이한 TRPG 내용을 바탕으로 『와일드 카드』 시리즈를 짰다. ‘에이스’로 불리는 초능력자들과 ‘조커’로 불리는 빌런들이 등장하는 이 수퍼히어로 시리즈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젤라즈니를 포함해 40명이 넘는 작가가 참여하여 몇십 권짜리 소설, 코믹스, 그래픽노블이 나왔다. 워낙 인기를 얻는 바람에 TRPG 룰인 ‘겁스’의 설정집으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재차 강조하자면, 친구는 중요하다. 같이 게임을 하는 친구는 더욱 중요하다.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보자. 인류의 존속이 걸린 게임은 누가 플레이하면 좋을까? 유니콘과 게임을 하다가 서로 친구가 될 수도 있는 사람이면 좋지 않을까? (물론 성취-견제형이라도 이런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나는 그들에게 사적 원한이 없다는 점을 밝혀둔다. 아마도, 거의.)

마틴과 틀링겔의 체스는 평화롭게 끝난다. 마틴은 속임수를 써서 이길 수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비열한 방법으로 판을 망치고 싶지 않다는 쪽으로 기운다. 훌륭한 게임 상대는 존중해야 마땅하다. 결말을 자세히 설명하면 아직 읽지 못한 사람들의 감상을 망칠 테니 말을 아껴야겠다. 다만 이 점은 밝혀두고 싶다. 소설은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두 존재는 즐겁게 다음 게임을 시작한다. 승패는 중요하지만 게임의 재미는 더 중요하다.

젤라즈니는 「유니콘 베리에이션」을 쓰고 10여 년 후 『고독한 시월의 밤』을 출간했다. 이는 젤라즈니의 마지막 작품이자 그가 개인적으로 아꼈던 다섯 작품 중 하나다. 그는 여기서 다른 작가들이 창조한 등장인물을 익명으로 데려온다. 예를 들어 ‘위대한 탐정’은 분명 아서 코난 도일이 창조한 ‘셜록 홈즈’임에 틀림없다. ‘훌륭한 박사’와 그의 괴물은 물론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서 왔을 것이다. 이들은 런던 근교의 외딴 마을에 모여서 일종의 게임을 벌인다. 시월의 마지막 날에 결판이 지어지는, 세계의 존속과 멸망이 걸린 게임이다. 게임에서 이기려면 같은 편을 돕고 상대편을 방해해야 한다. 설득도 유효하다. 다만 누가 어느 편인지는 비밀이므로 쉽게 알아낼 수 없다. 『고독한 시월의 밤』을 읽는 과정은 독자에게도 흥미진진한 게임이다.

소설에는 전반적으로 경쾌함과 친근감이 감돈다. 풍부한 장르문학 레퍼런스를 사용해 독자에게 눈짓을 보내는 덕분이다. 읽다 보면 ‘알지? 좋아하지? 나도 좋아해’ 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또한 등장인물에게 게임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가 배어 있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다. 이들은 상대가 다른 편이라고 바로 죽이려 들진 않는다. 참가자는 모두 같이 게임을 하는 중이다. 게임은 이번으로 끝나지 않고 다음에 다시 시작될 수 있다. 상대편이었던 참가자가 중간에 편을 바꿀 수도 있다. 한 번 더 말하자면, 훌륭한 게임 상대는 존중해야 마땅하다. 비열한 속임수 없이 진심으로 임한다면 게임은 우리를 즐거운 경험으로 묶어준다. 마틴과 젤라즈니가 친해지는 데는 게임이 필요치 않았던 듯하지만, 게임을 더해서 나쁠 것 없다. 젤라즈니는 다른 사람에게 TRPG를 소개받았을 때 기꺼이 게임 세계로 뛰어들었다. 게다가 혹시 모른다. 그렇게 생긴 친구가 중대한 조언을 해줄지도. 크루즈 경비 정도는 챙기게 해줄지도.



왕좌의 게임 1, 2 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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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R. R. 마틴 걸작선 꿈의 노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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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R. R. 마틴 등저 | 김상훈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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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시월의 밤
고독한 시월의 밤
로저 젤라즈니 저 | 이수현 역
시공사
프랑켄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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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셸리 저 | 김선형 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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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심완선

SF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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