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장르문학, 그중에서도 웹소설에 주로 갖는 편견이 무엇일까요?
“다 거기서 거기인 이야기이다. 형식이 비슷해서 누구나 쓸 수 있고, 자본 친화적이며 자극과 재미만을 추구해 돈을 버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가치 없고 허무한 이야기.”
물론 이걸 단순한 편견이라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웹소설은 그 어떤 장르보다도 현금을 기반으로 생태계가 조성된 산업 시장이고, 시장의 구성원들은 치열하게 상업적인 아이템과 연출을 고민하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저 말이 모두 맞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모든 문화산업이 그렇듯, 이 시장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울리고 감동을 주는 작품에 기꺼이 돈을 지불하니까요. 재미나 자극은 돈이 움직이는 하나의 충분조건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돈의 필요조건은 아닙니다. 오히려 장르를 오래, 깊게 소비해 왔던 사람들일수록 단순히 말초적인 쾌락이나 재미보다는 감동적인 체험에 의해서 콘텐츠를 보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 이런 독자들은 웹소설에서 어떤 요소가 나오면 감동을 받을까요? 시한부 이성을 사랑하는 애정 서사? 가족에 대한 서사?
많은 독자는 소설 속의 주인공이나 서술자가 독자 자신을 긍정하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때 감동을 느꼈다고 진술합니다. 소설이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현실로 확장되어 독자인 나에게까지 이야기를 건네줄 때 말이지요. 이것은 비단 소설 시장에 그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음악 시장에선 ‘잘 부른 곡에는 댓글이 달리고 명곡엔 사연이 달린다’라는 이야기가 있지요. 보편적 대중이 자신의 이야기인 것처럼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는 작품. 그것이 흔히 말하는 명작이 되지요.
웹소설 중에서 ‘문화를 좋아하는 나’를 긍정해 주는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전지적 독자 시점』과 『데뷔 못하면 죽는 병 걸림』이라는 두 작품입니다. 두 작품은 플랫폼도, 장르도, 그리고 소재와 주제도 다르지만, 소재를 다루는 경향만큼은 닮아있는 작품입니다.
싱숑 작가의 『전지적 독자 시점』은 웹소설을 좋아하고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는 ‘나’를 긍정하는 메타 웹소설입니다. 주인공 김독자는 불행한 과거를 가진 계약직 사원으로, 매일매일 자신을 압박하는 현실을 웹소설 독서로 버티는 존재입니다. 그중에서 주인공이 가장 좋아한 건 작중작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입니다. 해당 작품이 완결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독자는 자신이 좋아하던 멸세법 이야기와 현실이 겹친 것을 깨닫게 됩니다. 김독자는 자신이 읽었던 소설의 내용을 바탕으로 혼란한 세계의 시나리오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지요.
백덕수 작가의 『데뷔 못하면 죽는 병 걸림』의 주인공 류건우는 29살의 4년 차 공시생입니다. 시험에 떨어지고 술을 마시다 잠든 다음 날, 낯선 천장의 모텔에서 박문대의 몸으로 깨어나며 자신이 3년 전으로 회귀했고, 1년 안에 아이돌로 데뷔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류건우는 과거 생계를 위해 아이돌 찍사를 했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돌판의 지식과 센스를 활용해 아이돌 데뷔를 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전지적 독자 시점』은 판타지 소설을 읽었던, 그리고 읽고 있는 독자들을 위로합니다. 90년대. PC통신을 통해 창작 판타지 소설 공간이 처음 열렸을 때, 당시 10~20대 독자들은 학업 스트레스와 일상의 압박을 잊고 상상의 나래를 펼쳤습니다. 이들은 이후 00년대 웹브라우저 시대가 열리면서 ‘환상 세계로 모험을 떠나는 나’를 서사적으로 구현해 ‘퓨전 판타지 소설’ 장르의 적극적인 창작자가 되었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판타지 소설의 인식은 지금의 웹소설보다 훨씬 뒤떨어졌습니다. 돈도 안 되고, 내용도 없고, 아마추어가 쓴 형편없는 소설을 읽는다며 시간 낭비하지 말란 타박이 이어졌지요. 판타지 소설의 독자들은 고립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의 독자들은 20년 정도가 지난 지금 30대 중후반에서 40대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지금 웹소설의 가장 큰 구매층과 정확히 일치하지요.
『전지적 독자 시점』은 그 시기 읽었던 판타지를 낭만화하는 동시에, 오랫동안 판타지를 읽어온 독자를 위로합니다. 판타지 소설의 장르가 변화한 과정을 소설 속 무대로 전경화하고, 판타지 소설을 알고 사랑하기에 이 세상을 버티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킬 수 있다고 위로하며 따뜻한 메시지를 권합니다.
『데뷔 못하면 죽는 병 걸림』의 주인공 박문대가 아이돌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건 팬덤을 실망시키지 않고, 많은 리스크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며 자신들의 가치가 팬들의 사랑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의 아이돌에게 상처를 입고, 기획사나 소속사의 상업놀음에 지친 현실의 아이돌 팬들은 박문대가 보여주는 기획과 행보에 열광할 수밖에 없습니다.
박문대와 그의 동료들이 겪는 문제들은 과장되었을지언정 현실에서 볼 수 없는 문제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이돌 팬덤들이 늘 겪는 일상의 문제에 가깝지요. 팬덤들은 자기가 사랑하는 아이돌들을 지키기 위해서 많은 문제를 감내하고 버티며 희생합니다. 그런 희생을 누구보다 잘 아는 박문대의, 그리고 백덕수 작가의 메시지는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들이 위로받고, 행복한 환상을 소비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처럼 거대한 인기를 거둔 웹소설을 살펴보면 사랑을 테마로 한 작품이 많습니다. 보편적 인류애를 다루며 타인에 대한 선의가 결국 해피엔딩을 가져올 것이라 주장하는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같은 작품처럼요. 이 작품은 후속 칼럼을 통해서 또 깊게 이야기할 생각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이번 달, 여러분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고 위로해 주는 웹소설을 찾아 읽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여러분들이 어렸을 적, 『드래곤 라자』나 『룬의 아이들』, 『SKT』나 『하얀 늑대들』, 『하얀 로냐프 강』이나 『월야환담』 같은 판타지 소설을 읽으며 꿈을 키우셨던 세대들이라면. HOT, 젝스키스, 신화, 소녀시대, 샤이니, 카라, 원더걸스부터 아이돌의 무대를 동경하셨던 세대라면. 저 웹소설들은 겨울의 마지막에서 여러분의 마음을 보다 따뜻하게 만들어 줄 겁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부 1
출판사 | 위시북스
전지적 독자 시점 양장본 세트 1
출판사 | 비채
전지적 독자 시점 양장본 세트 2
출판사 | 비채
전지적 독자 시점 PART 2&3 : 굿즈키트 세트
출판사 | 비채
전지적 독자 시점 PART 4&5 : 굿즈키트 세트
출판사 | 비채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부 초판 한정 굿즈박스 세트
출판사 | 위시북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부 7~10권 세트
출판사 | 위시북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부 초판 한정 굿즈박스 세트
출판사 | 위시북스
전지적 독자 시점 PART 1 - 01
출판사 | 비채

이융희
장르 비평가, 문화 연구자, 작가. 한양대학교 국문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2006년 『마왕성 앞 무기점』으로 데뷔한 이래 현재까지 꾸준히 장르문학을 창작하고 있다.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웹소설 창작학과 조교수로 재직했으며 장르 비평 동인 텍스트릿의 창단 멤버이자 팀장으로 다양한 창작, 연구, 교육 활동에 참여했다.
짜피
2025.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