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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벨벳 웬디, 충실한 기본이 낳은 행복의 얼굴
레드벨벳 웬디 ‘리무진 서비스’
세계 진출도 비즈니스 확장도 좋지만 결국 우리가 음악으로 함께 도달하고자 하는 궁극의 영역은 이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새삼 들게 한, 그런 순간이었다.
노래 잘하는 사람을 오랫동안 선망해 왔다.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단언컨대 노래나 음악을 하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한 적이 없다는 점을 밝혀둔다. 음악을 하고 싶었으나 문턱에서 좌절한 이들이 하는 일이 음악평론가라는 이야기를 적잖이 들어 하는 말이다. 실제로 그런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스토리를 가진 이도 없지는 않겠으나 아무튼, 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은 전혀 아니었다. 다만 오래도록 그들을 추앙할 뿐이었다. 뛰어난 보컬리스트의 목소리가 타고난 순정한 아름다움, 숨으로 공기의 파동을 살짝 바꾸는 것만으로 수많은 상상을 가능케 만드는 특출 난 재능, 소리만으로 시공간을 초월해 불특정다수를 기어코 행복하게 만들고야 마는 마력을 언제고 우러러봤다.
레드벨벳의 메인 보컬 웬디가 노래를 잘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 아니다. 아마 요즘은 거의 사라진 유행인 ‘전문가가 뽑은 최고의 아이돌 보컬’ 같은 리스트를 만든다면 단연 상위권에서 이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웬디의 목소리는 좋은 보컬의 기준이 되는 대부분의 요소를 갖추고 있다. 이제 케이팝 데뷔 10년 차를 맞이한 웬디의 목소리는 R&B와 소울을 기본으로 한 풍부하고 기름진 토양을 위에 다년간의 실전을 통해 습득한 팝적 노련함을 중심축으로 한다. 이렇게 잘 만든 기본기 뼈대에 어떤 장르도 소화 가능한 범용 근육이 붙었고, 자유자재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유연한 감정과 리듬 조절 능력이 피와 살을 보탰다. 도무지 건강할 수밖에 없는 목소리의 총체였다. 레드와 벨벳 사이를 끝없이 오가는 그룹 활동은 물론 팝 발라드를 내세운 솔로 앨범이나 뮤지컬 배우로 활약할 때도 그의 목소리는 늘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자랑했다. 목소리가 무기라면 산전수전 공중전 모두에 유효한 영순위 무기를 보유한 셈이었다.
가수 이무진이 진행하는 ‘리무진 서비스’는 최근 노래 좀 한다는 케이팝 보컬이라면 필수로 거쳐 가는 유튜브 콘텐츠다. 보컬이 돋보이는 커버 곡 위주의 라이브를 주력으로 하는 이 콘텐츠에서 웬디는 박지윤의 ‘환상’, 휘트니 휴스턴의 ‘I Have Nothing’ 그리고 박정운의 ‘오늘 같은 밤이면’을 이무진과 함께 듀엣으로 선보였다. ‘환상’을 조금의 요령 부림도 없이 진성으로 소화해 내는 웬디를 보며 노래 내내 입을 다물지 못하던 이무진은 노래가 끝난 뒤 이런 감상을 건넸다. ‘일반 시청자분들은 고음이나 감정선 얘기를 할지 모르지만, 제 주변 (보컬) 전공생들에게 물어보면 ‘경지에 이르렀다’는 표현을 할 수 있는 보컬리스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노래하는 사람끼리만 알 수 있는 호흡법에 대한 언급까지 조목조목 더하며 감탄했다. 이무진의 말처럼, 잘 다진 기본기라는 건 비단 얼마나 높은 데까지 음을 올리느냐 만을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같은 보컬리스트인 이무진에게 ‘기본기가 너무 좋아서 정해진 플레이가 되는 보컬’이라는 놀라움을 준 만큼, 웬디의 기본에 충실한 보컬은 노래를 듣는 사람이 자리한 위치에서 각자의 박수를 보낼만한 다각도의 매력을 자연스레 품는다.
그래서 오랫동안 노래하는 사람을 선망해 온 나는, 무엇보다 너무나 행복한 표정으로 노래하는 웬디의 얼굴에 반했다. ‘리무진 서비스’에서 노래와 이야기를 이어가는 가운데 틈틈이 자신이 평소 좋아하는 곡을 부르는 웬디의 얼굴이 특히 대단했다. 그건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부담 없이 해낼 수 있는 단계에 올라선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어떤 것이었다. 잘하는 것처럼, 행복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짓는 것이 아닌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며, 그렇게 되기까지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을 즐겁게 소화해 낼 수 있게 된 사람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이었다. 최종 선곡 단계에서 탈락했다는 비욘세의 ‘Love On Top’을 가볍게 부르는 1분여의 장면을 몇 번이고 다시 돌려봤다. 충실한 기본이 낳은 편안한 행복의 얼굴에 내 얼굴에도 몇 번쯤 미소가 번졌다. 세계 진출도 비즈니스 확장도 좋지만 결국 우리가 음악으로 함께 도달하고자 하는 궁극의 영역은 이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새삼 들게 한, 그런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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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