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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의 숨은 1인치
아는 만큼 들리는 케이팝
남들과 다른 음악, 더 좋은 음악을 향한 많은 이들의 노력이 케이팝의 크레딧을 그 어느 때보다 역동적으로 만들고 있다.
얼마 전 발표된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세 번째 정규 앨범 <이름의 장: FREEFALL>을 보다 재미있는 참여진에 눈길이 갔다. 일곱 번째 트랙 ‘물수제비’의 작사와 작곡에 한국 음악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꽤 눈에 익었을 만한 이름들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지난해 어딜 가나 가장 돋보이는 신인으로 언급된 싱어송라이터 한로로, 다른 하나는 ‘지극히 주관적인 아름다움을 노래합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활약한 밴드 데카당에서 보컬과 기타를 담당했던 진동욱이었다.
두 사람이 호흡을 맞춰 완성한 건 얼터너티브 록 넘버로, 한로로가 페스티벌 무대에서 신곡으로 선보이거나 진동욱의 솔로 앨범에 한 곡 슬쩍 끼어 놔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법했다. 더 재미있는 건, 그렇다고 그 노래가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앨범에도 딱히 겉돌지 않았다는 점이다. 2021년 발표한 <혼돈의 장: FREEZE>의 타이틀곡 ‘0X1=LOVESONG (I Know I Love You)’을 기점으로 이들은 이미 이모코어, 록 힙합 등 록 음악을 활용한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을 중심에 두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앨범 역시 브리티시 펑크 룩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티져 이미지를 시작으로 강렬한 기타 리프가 돋보이는 하드 록 넘버 ‘Growing Pain’으로 문을 연다. 정작 뚜껑을 연 앨범은 그보다는 훨씬 영미권을 겨냥한 팝 색채를 띄고 있었지만, ‘물수제비’에 이어 쌉쌀한 뒷맛을 남기는 팬 송 ‘Blue Spring’까지 누가 뭐래도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답다 해도 좋을 자연스러움이 이어졌다.
사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케이팝 안에서도 크레딧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는 대표적인 그룹이다. 창작에 참여한 이들의 정보를 꼼꼼히 살펴볼 수 있는 앨범 크레딧은 이미 아는 사람은 아는 케이팝의 숨은 재미다. 그런 이들의 앨범에서 최근 몇 년간 꾸준히 보이는 이름 가운데 송재경과 스텔라장이 있다. 송재경은 한국에서 서정적인 모던록을 가장 완성도 높게 구사한다는 평을 듣는 밴드 ‘9와 숫자들’의 프론트 맨 9의 본명이다. 특유의 고아하면서도 사랑스러운 감성으로 사랑받는 싱어송라이터 스텔라장은 BTS와 투모로우바이투게더를 거쳐 최근 H1-KEY(하이키)의 두 번째 미니 앨범 <Seoul Dreaming>의 수록곡 ‘Magical Dream’의 작사도 공동으로 담당했다.
스텔라장과 함께 뉴트로 콘셉트 걸 그룹 치스비치로 활동 중인 프로듀서 박문치는 이제 케이팝 크레딧에 없으면 허전한 이름이 됐다. 그만의 위트와 세련 넘치는 감각적 프로듀싱은 태민과 정세운을 거쳐 강다니엘, 수호, 권은비에까지 닿았다. 수호하니 한 사람이 더 떠오른다. 모던록에 진심인 그의 의지가 빅뱅을 일으킨 두 번째 미니 앨범 <Grey Suit>에는 반가운 이름 Gila(길라)가 있었다. 밴드 바이바이배드맨의 멤버로 2011년 첫 미니 앨범 <Bye Bye Badman>을 발표하며 한국 언더 그라운드 신에 순식간에 ‘핫 루키’로 떠올랐던 인물이다. 한국에서 ‘영국 냄새 나는 록’을 들려주는 데 그보다 더한 적임자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앨범의 첫인상과도 같은 첫 곡 ’Morning Star’와 질주하는 리듬과 속도감 있는 현악의 조화가 시원시원한 ‘Hurdle’이 그의 손맛을 느낄 수 있는 곡이었다.
마치 꼬리물기 같은 이런 대화는 앞으로도 한없이, 몇 장에 걸쳐,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엑소 수호에게 Gila(길라)가 있다면, 슈퍼주니어 예성에게는 김다니엘이 있다. 밴드 웨이브 투 어스(wave to earth)의 멤버로, 최근 웬만한 아이돌 보다 높은 해외 인기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의 젊은 밴드다. 그는 예성의 국내 첫 정규 앨범 <Sensory Flows>는 물론 이어 발매된 스페셜 앨범 <Floral Sense>의 타이틀곡도 함께 작업했고, 음악뿐만이 아닌 뮤직비디오에 멤버들과 함께 밴드 역할로 등장하기도 했다. 탄탄한 마니아층을 가진 검정치마나 신해경과 작업한 가수 청하나 하나음악과 어떤날로 기억되는 조동진과 조동익의 동생으로 장필순의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를 작사한 싱어송라이터 조동희가 노랫말을 쓴 샤이니 온유의 노래는 또 어떤가. 남들과 다른 음악, 더 좋은 음악을 향한 많은 이들의 노력이 케이팝의 크레딧을 그 어느 때보다 역동적으로 만들고 있다. 케이팝이 보는 음악이라는 정의는 변하지 않더라도, 듣는 음악으로서도 충분히 재미있다는 걸 앨범 크레딧 증명한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처럼 아는 만큼 들리기도 하는 음악, 케이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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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