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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의 근원적 죄책감 : 태민 'Guilty'
태민의 신곡 'Guilty'
태민은 독보적이다. 케이팝의 근원에 켜켜이 쌓인 죄책감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뿌리째 흔들 만큼.
케이팝에 깊이 빠져본 사람 가운데 죄책감을 한 번도 느껴보지 않은 이는 없다. 단언컨대 기필코 없다. 죄책감은 케이팝의 화려한 외연만 느긋하게 즐겨온 사람은 결코 찾을 수 없는 깊은 심연에서 오랫동안 생명력을 유지해 왔다. 케이팝을 이루는 요소가 다채로워질수록 가지를 뻗어나간 이 감정은 맹목적 사랑이 가꾼 꽃밭만 같은 케이팝 세상을 떠받치는 의외의 에너지원이다. 수요와 공급 모두에서 미성년자를 주요 동력으로 삼는 산업의 태생적 한계, 어린 연습생들이 데뷔를 위해 거쳐야만 하는 혹독한 훈련 과정, 피할 수 없는 유서 깊은 대상화, 여전히 얕잡아 보는 시선과 자기 파괴적 열망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타는 사랑의 줄타기. 죄책감 아래 도사린 사정은 이외에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을 볼 수 있는 곳에서 태민이 Guilty, 죄책감이라는 키워드를 꺼냈다. 드디어 올 게 왔다는 느낌이었다. 지금껏 꿈과 이상, 이성과 본능, 젠더 등 쉽지 않은 주제를 철저히 벼려진 퍼포머의 입장에서 해석해 온 그가 던진 죄책감이란 단어는 분명 사전적 의미만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여전히 정의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 위로 태민이라는 인물이 오랜 시간 쌓아온 이미지가 자연스레 겹쳤다.
앨범 발매 전 공개된 이미지와 티저 영상, 뮤직비디오와 앨범 구성품 구석구석에 녹은 태민은 우리가 오래전 기억하고 한 번쯤 사랑한 태민의 모습에 가까웠다. 말간 모습으로 등장한 그는 잠시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가는 이내 분열하고, 파괴하며, 파괴된다. 정확한 묘사보다는 추상적 이미지를 전달하는데 탁월한 케이팝식 비주얼답게 7대 죄악에서 인간의 본성을 다룬 각종 영화와 드라마에 빗댄 해석이 난무할 수밖에 없는 모호함 가운데 오직 태민만이 뚜렷했다.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이건 태민에 관한 이야기였다.
태민이 던진 카드는 그 자체로 혼돈이다. 줄곧 외면했던 질문들에 죄다 물음표가 붙어버린 탓이다. 까다로운 상대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역공은 상대방의 질문 그대로를 의문형으로 바꾸는 것이라는 진리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15년 전, 아직 한참이나 성장이 남은 팔다리를 부서져라 휘두르며 신들린 듯 춤추던 열다섯 태민을 보며 사람들이 느낀 대부분의 감정은 아마 경이와 죄책감 사이의 어딘가였을 테다. '1만 시간의 기적'에 증인처럼 등장하거나 '열아홉의 마지막 밤, 스무 살이 된 자신이 너무 부족해 보여 소리 내 엉엉 울었다'는 에피소드를 덤덤히 전하는 태민의 모습은 위태로울 정도로 자신을 몰아쳐야만 맞이할 수 있는 어떤 경지다. 그를 찬양하는 동시에 연민을 느끼는 스스로에 대한 혐오는 케이팝의 역학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또다시 상대를 향한 끓어오르는 애정으로 자주 변한다. 그렇게 들끓는 불특정 다수의 정념이 대기를 두둥실 채운 순간에도 태민은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몸부림 같기도 한 춤을, 절규 같기도 한 노래를.
죄책감을 시작으로 한 이 형체를 알 수 없는 상념을 감싸 안는 것이 결국 태민의 실력이라는 건 새삼스럽지 않은 만큼 놀랍다. 그의 질문 카드는 태민 나아가 케이팝 아이돌을 생각하며 사람들이 떠올리는 거의 모든 종류의 죄책감과 배덕감을 아무런 악의 없이 대중 앞에 그저 늘어놓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자세로 그 위에 서서 자신의 삶을 말 그대로 갈아 넣은 음악과 무대로 기꺼이 승화시킨다. 적지 않은 이들이 태민의 무대를 보며 홀린 듯 쓰는 ‘성스럽다’는 표현은 단지 익숙한 케이팝의 과장된 비유가 아닌 세속을 초월한 이에게서 보이는 기운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것에 다름 아니다.
컴백에 맞춰 웹예능 '슈취타'에 출연한 태민은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대중성과 아이덴티티 가운데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택했고, 그걸 변치 않고 계속하고 있을 뿐이다." 두 손 가득 분에 넘칠 만큼 쥐었음에도 자신이 채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욕망을 숨기지 못하는 범인들이 충분히 부끄러울 만한 말이었다. 자신이 가진 욕망의 방향을 정확히 인지하고 매 순간 진심으로 추구해 온 사람 앞에 그 어떤 부끄러움도 설 자리는 없다. 그런 사람이기에 케이팝의 가장 밑바닥에 놓인 것들을 모조리 긁어 수면 위로 끌어올려도 도무지 과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일 테다. 독보적이라는 말을 쉽게 쓰고 싶지 않지만, 이 사람에게만은 아낌없이 써도 좋을 것 같다. 태민은 독보적이다. 케이팝의 근원에 켜켜이 쌓인 죄책감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뿌리째 흔들 만큼. 실로 대단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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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